" 꼭 가야 해요? "
한참의 정적 끝, 망설이다가 나온 내 목소리에 아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는 듯 아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고 내 시선은 그 한숨소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궈졌다.
" 미안하다. 우리 딸. "
" ……. "
" 너도 알겠지만 지금은 아빠가 좀 힘들어. "
" ……. "
" 그리고 아빠 때문에 우리 딸도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거고. "
말을 잠깐 멈춘 아빠는 천천히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의 말에 입술을 꾹 깨물곤 아무 것도 없는 바닥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던 아빠는 멈췄던 말을 이었다.
" 전에 말했던 동혁이네 학교로 가는 게 좋겠구나. "
" ……. "
" 동혁이에게 얘기는 해두었으니 아마 잘 도와줄 거라고 믿는다. "
" 그치만…. "
내 목소리에 아빠는 하던 말을 다시 멈추곤 날 바라보았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아빠를 바라보던 내 눈이 작게 떨렸다.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겨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거기엔 아빠도 없잖아요. "
" ……. "
" 게다가 바비도…. "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아빠를 바라보자 아빠는 잠깐 날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피했다. 다시 한 번 내 머리를 쓰다듬은 아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미안하구나. 그런 아빠의 말에서 참 많은 감정이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은 '미안함' 이었다.
마음이 자꾸만 이쪽 저쪽으로 움직였다. 동혁이가 있는 그 곳으로 간다면 다시 그림을 그리고 미술을 시작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그 곳까지 가서 잘할 수 있을까. 동혁이와 J가 있다고 하더라도, 바비와 아빠가 없는 그 곳에서 견뎌낼 수 있을까. 꼭 그렇게 멀리까지 가야만 하는 걸까.
그렇지만 전보다 심해진 아빠의 갈등.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갇혀 지내는 것도 힘들었다. 아무래도 바비가 말한 것처럼 나는 아직 덜자란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선택의 기로에 놓인 건, 뭔가를 꼭 선택해야만 하는 건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또 다시 한참을 이어진 정적 끝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자신은 없어요. "
" ……. "
내 말에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내 손을 꼭 잡았다. 떨리는 내 눈과 아빠의 눈이 마주쳤다.
" …오래 걸리진 않겠죠? "
" 그럼. "
" 가서 공부도 하고, 하고 싶었던 미술도 다시 하고…. "
" ……. "
" 나는…. "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자 아빠가 잡은 내 손을 조금 더 꽉 잡아왔다. 조용한 방 안에는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한참의 고민 끝에 아빠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 …알았어요. "
" 괜찮겠니? "
" 어쩔 수 없잖아요. "
" ……. "
" 나도 가고 싶었던 거고, 또 지금 갈 수 밖에 없는 거고…. "
내 말에 아빠는 다시 한 번 내게 말했다. 미안하다, 우리 딸. 그런 아빠를 잠깐 바라보다가 말 대신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 * *
야속한 시간은 참 빠르게도 흘렀다. 나는 미국으로 갈 준비에 정신이 없었고, 어느새 미국으로 가는 날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하루 하루가 갈 수록 걱정과 함께 조금씩 기대가 자라났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 그리고 낯선 곳에서 이룰 수 있는 나의 꿈.
베개에 파묻은 얼굴을 조금 부볐다. 밤이 되니까 잠이 오기 보다는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시간이 늦었을 텐데…. 이렇게 가만히 누워있는 것도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 거라는 생각에 눈을 꼭 감곤 이불 안의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
'똑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눈을 천천히 뜨곤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방문을 두드리던 사람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틈 새로 새어들어오는 불빛에 살짝 얼굴을 찡그리곤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을 열어 방 안을 바라보던 바비와 눈이 마주치자, 바비는 살짝 웃곤 방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 안 주무십니까. "
그리웠던 바비의 모습에 어, 하는 바보 같은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저은 바비가 나를 다시 침대 위로 눕혔다. 누운 채로 저를 빤히 바라보는 내 눈길에 바비가 피실 웃었다.
" 이제 온 거에요? "
" 응. "
" 많이 바쁘구나…. "
왠지 조금은 거칠어진 바비의 얼굴로 손을 뻗어 바비의 볼을 만지작거리자 바비가 작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 왜 안 자고 있어. "
" 잠이 안 와서요…. "
" 걱정이 많아서 그래? "
바비의 물음에 웅얼거리며 답했다. 그냥…. 내 대답에 바비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꽉 잡은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아마 바비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일주일 뒤면 나는 떠나야했고, 아빠의 경호를 맡고 있는 바비는 나와 함께 갈 수 없다는걸.
" 준비는 다 하셨습니까. "
바비의 물음에 잠깐 바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바비가 잘했어, 하는 말과 함께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입을 꾹 다물곤 바비를 바라보자 바비는 내 기분을 읽은 건지 나긋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 내일 쉬는데, 데이트 할까? "
" 정말요? "
" 응. "
" 어디 가게? "
내 물음에 바비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동물원. "
" 전에 그 동물원? "
" 이번엔 내가 가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인 바비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가기 전에 데이트는 해야지. 바비의 말에 입을 꾹 다물곤 바비를 바라보았다. 데이트라는 말에 좋은 기분이 반, 그리고 바비의 입에서 나온 '가기 전' 이라는 말에 괜히 우울한 기분이 반.
괜히 입술을 삐죽이자 바비가 날 바라보며 작게 웃곤 제 손을 내 눈 위로 살포시 덮었다.
" 얼른 자. "
" 조금 더 얘기하다 자면 안 돼요? "
" 그럼 내일 피곤하잖아. "
" 치…. "
내 칭얼거림에 바비가 웃으며 이불을 조금 더 당겨 내 목까지 덮어주었다. 여전히 내 눈 위로는 손을 덮은 채로 바비가 작게 속삭였다.
"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 드리겠습니다. "
" …응. "
" 잘 자, 아가씨. "
바비의 말에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눈 위로 닿아있는 바비의 손이 따뜻했다.
* * *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전에 바비가 생일 선물로 준 원피스, 그리고 어깨 위로 메고 있는 작은 크로스 백. 내가 고른 옷처럼 몸에 꼭 맞는 옷에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때 마침 똑똑하고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네, 하고 짧게 답했다. 방문을 열고 고개만 빼꼼 내밀어 밖을 바라보자 바비가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 준비 다 했어? "
바비의 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활짝 열었다. 짠, 하는 말과 함께 보인 내 모습에 바비가 잠깐 날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 어때요? "
일부러 신경 써서 입은 건데. 양팔을 옆으로 쭉 벌리곤 바비의 대답을 기다리는 내 모습에 바비가 못살겠다는 듯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왜 웃기만 하지…. 별론가? 바비의 반응에 벌린 팔을 내리곤 별로에요? 하고 묻자 바비가 방문 쪽으로 조금 더 걸어왔다. 그리곤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며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
" 괜찮아요? "
" 응. 잘 어울려. "
" ……. "
" 예뻐. "
말을 마치고 다시 한 번 내 머리를 쓰다듬는 바비의 손길에 배시시 웃으며 바비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예뻐요? 하고 장난스럽게 묻는 내 물음에 바비가 잠깐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곤 대답 없이 내 어깨에 팔을 걸곤 가자, 하고 날 이끌었다.
" 왜 대답 안 해요. "
" 왜 그런 걸 물어. "
" 그야 궁금하니까 그러죠. 원래 여자들은 이런 거 궁금해 한다니까. "
그래서, 얼만큼? 어깨에 걸쳐진 바비의 손가락을 꼭 잡곤 고개를 돌려 바비를 바라보자 바비가 못살겠다는 듯 피실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져준다는 듯 말하는 바비의 말투에도 괜히 만족스러워서 고개를 끄덕이자 바비가 피실 웃었다. 그리곤 다른 한 손으로 내 볼을 아프지 않게 살살 꼬집었다.
" 하여튼. "
금방 떨어진 바비의 손길에 헤헤, 하고 웃자 바비가 아래층으로 나를 이끌었다. 현관으로 내려와 먼저 신발을 신는 바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신발장 문을 열었다. 선물로 받았던 분홍색 구두까지 꺼내서 바비를 향해 보여주자 바비가 나를 마냥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 이거까지 신으면 끝! "
" ……. "
" 오늘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바비 작품이에요. "
내 말에 바비가 예쁘게 웃으며 손으로 내 볼을 톡톡 두드렸다. 바비의 톡톡, 하는 두드림에 배시시 웃었다. 그럼 갈까요? 하는 내 물음에 바비가 손을 내밀었다. 꼭 공주님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바비의 손 위로 내 손을 살포시 올리자 바비가 내 손을 아프지 않게 꽉 잡아왔다. 이렇게 손이 닿는 것 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런데 말예요.
응?
이 옷도 그렇고 구두도 그렇고, 나한테 되게 딱 맞던데.
…….
어떻게 알고 산 거에요?
그냥… 뭐.
그냥 뭐…?
눈썰미가 좀 좋잖아, 내가.
…바비가?
* * *
주말이라 그런지 동물원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나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란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옆에서 나란히 걷는 바비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곤 말했다.
" 기억 나요? "
" 뭐 말씀이십니까. "
" 우리 처음 데이트도 여기서 했었는데. "
내 말에 바비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실은 그 때 바비 손 잡고 싶었는데 못 잡았어요. "
" 왜? "
" 바비가 싫어할 거 같아서. "
말을 마치곤 잠깐 망설이다 바비를 향해 손을 뻗자 바비가 익숙하게 내 손을 잡아왔다. 깍지를 껴서 내 손을 꼭 잡는 바비의 행동에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때는 내 마음도 바비의 마음도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면, 지금은 감히 내 마음도 바비의 마음도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그도 나를 좋아하고.
소매의 끝자락이 아닌 손을 꼭 잡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예전 만큼이나 가슴이 콩닥거리는 느낌에 배시시 웃자 바비가 날 조금 당겼다. 바비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바비가 만족한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 나도 이렇게 손잡고 싶었어. "
" ……. "
" 가까이서 걷고도 싶었고. "
그럼 가까이서 걸으면 됐잖아요. 웅얼거리는 내 말에 바비가 피실 웃었다.
" 가까이 갔으면 아가씨는 도망갔을 거잖아. "
" ……. "
" 손끝만 스쳐도 얼굴이 빨개졌으면서. "
내가 언제요! 괜히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자 바비가 피실 피실 웃음을 흘렸다. 좋아하는 게 너무 티났어. 바비의 말에 바비를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하며 중얼거렸다. 바비도 나 좋아하고 있었으면서. 내 말에 바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난 티는 안 냈잖아.
" 안 내도 너무 티를 안 냈어요, 오빠는. "
" ……. "
" 그래서 짝사랑인 줄 알고…. "
찡얼대는 내 말에 바비가 걷던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내 손을 여전히 잡은 채로 내 앞을 막으며 날 마주보고 섰다. 갑작스러운 바비의 행동에 하던 말을 멈추곤 바비를 올려다보자 바비가 웃으며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때렸다. 아, 하고 찡그리며 맞은 이마를 문지르자 바비가 웃었다.
" 계속 이런 얘기만 하고 있을 거야? "
" 아파…. "
칭얼대는 내 목소리에 바비가 제가 때린 곳으로 손을 뻗어 그 곳을 문질러주었다. 그리곤 살짝 몸을 굽혀 그 곳에다가 짧게 쪽, 하고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바비의 행동에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없는 듯 했다. 주위를 다 살피곤 바비를 바라보며 괜히 작게 소리쳤다.
" 갑자기 뭐에요! "
" 아프다며. "
" 아픈 거랑 뽀뽀랑은 무슨 상관이야…. "
" 해주면 나을 거 같아서. "
아냐? 하고 짖궂게 웃으며 물어오는 바비를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괜히 그 곳을 다시 만지작거리며 웅얼거렸다. 누가 봤으면 어쩌려구, 밖인데…. 내 말에 바비가 웃으며 말했다.
" 오늘은 바비라고 부르기 없어. "
" 응? "
" 오빠라고 부르기야. "
" 그럼, 바비도 존댓말 하지 마요. "
" 바비? "
" 아니, 아니, 오빠도. "
내 말에 바비가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잡은 손을 제 쪽으로 조금 더 당긴 바비가 몸을 돌려 먼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 가자, 예쁜아. "
예쁜아? 예, 예, 뭐…?
바비의 손길에 이끌려 걸음을 옮기면서도 놀라서 에? 하고 되묻자 바비가 피실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 걸어가는 바비의 걸음을 맞춰 뒤에서 쪼르르 따라 걸으면서 바비를 향해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내 물음에 바비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 * *
다시 한 번 하게 된 동물원 데이트는 전과는 비슷한 듯 조금 달랐다. 걷는 내내 바비와 나는 손을 꼭 잡은 채였고, 눈도 못 마주치던 그 때와는 다르게 바비의 다정한 눈길, 그리고 바비의 웃는 모습,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가장 큰 발전은 바로 사진이었다. 바비랑 나랑, 둘이 찍은 사진.
사진은 싫다며 찡그린 바비를 겨우 달래고 또 달래서 예쁜 웃음이 담긴 둘의 사진을 찍었다. 겨우 몇 장 뿐이었지만 그 사진이 좋아서 벌써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지정해둔지 오래였다. 화면을 보며 배시시 웃자 맞은 편에서 바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만 좀 봐. "
" 왜요, 예쁘기만 한데. "
" 그렇게 좋아? "
" 응! "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자 바비가 피실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내 앞에 놓여진 접시를 확인하곤 다 먹었어? 하고 물어왔다. 다시 한 번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바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일어나자.
식당 밖으로 나오자 낮보다는 조금 더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쳤다. 외투를 제대로 꼭 여미곤 바비의 옆으로 가서 바비의 팔에 팔장을 꼈다. 춥다, 하며 자연스럽게 팔장을 끼는 내 행동에 바비가 잠깐 날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피실 웃었다.
" 좀 걸을까요? "
" 안 춥겠어? "
" 괜찮아요. 밖에 나오니까 숨도 탁 트이고 좋은걸. "
게다가 얼마만에 바비랑 이렇게 둘이 있는 거에요. 더 있을 거야. 내 말에 바비가 웃으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걷는 내 걸음에 맞춰 함께 걷는 바비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금세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 바비. 아니다, 오빠. "
" 응. "
" 오-빠. "
" 왜 불러. "
그냥요. 내 말에 바비가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싱겁게 뭐야. 바비의 말에 함께 웃으며 입을 열었다.
" 한빈이는 잘 있어요? "
" 김한빈? "
" 응. "
" 잘 있지. "
" 어머님도 잘 계세요? "
" 아마도. "
" 무슨 대답이 그래요. "
힐끔, 다시 한 번 바비를 바라보며 말하자 바비가 작게 웃었다. 나는 아가씨 네 집에서 같이 지냈잖아. 집에는 못 간지 꽤 됐어. 바비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화는 자주 안 해요? 내 물음에 바비가 어깨를 으쓱 했다. 가끔.
" 완전 무심한 아들이야. "
" 갑자기 이렇게 잔소리 하는 거야? "
바비의 말에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께 전화 자주 해요. 오래 안 보면 얼마나 보고 싶으시겠어. 내 말에 바비가 알았어, 하고 답하곤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날 바라보는 바비의 시선을 느꼈지만 괜히 바비를 바라보지 않았다. 사실 조금 전 했던 말은 다른 의미도 숨어있었다. 나 가면 전화 많이 해요. 오래 안 보면 얼마나 보고 싶겠어…. 바비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느꼈을까.
한참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던 우리는 집 근처 놀이터에 도착했다. 예전에, 바비가 내게 기억해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던 그 벤치 옆이었다. 그네를 발견한 내가 어, 그네다, 하고 말하자 바비가 웃으며 말했다. 잠깐 앉았다 갈까? 바비의 말에 응! 하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네로 쪼르르 달려와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날 따라 걸어온 바비가 웃으며 물었다. 밀어줘? 바비의 물음에 다시 한 번 응, 하고 답하자 바비가 웃으며 내 뒤로 왔다. 그리곤 살살 내 등을 밀기 시작했다. 바비의 손길에 그네 위의 내 몸이 조금씩 바람을 가르며 움직였다.
" 진짜 오랜만에 그네 타요. "
" 그래? "
" 응. 정말 오랜만이야. 어릴 적에도 잘 기억이 없는데. "
내 말에 바비가 작게 웃었다. 바비의 웃음을 끝으로 우리 사이에는 작은 정적이 흘렀다. 여전히 바비는 내 등을 살살 밀어주고 있었고, 바람이 스치는 소리 외에는 별다른 소리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바비도 나도 뭐라고 먼저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서 한 마디 한 마디가 왠지 조심스러웠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할까. 망설이던 나는 머뭇거리다가 작게 먼저 말을 꺼냈다.
" 내일부턴 다시 아빠랑 함께 일하는 거에요? "
" 네. "
" 그럼 토요일에도…? "
내 물음에 바비가 내 등을 밀던 손을 멈췄다. 네, 하고 들려오는 바비의 목소리에 그렇구나, 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으로 가는 날도 바비는 공항에 못 오겠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바비에게 이렇게 직접 대답을 들으니 괜히 더 울적해지는 기분이었다.
발을 구르지도 않았고 바비의 손길도 멈춘 탓에 그네는 천천히 멈춰섰다. 완전히 그네가 멈춰서자, 괜히 바닥만 바라보며 신발이 까지지 않도록 가볍게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내 옆의 빈 그네로 바비가 앉는 것을 느끼곤 고개를 돌려 바비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고, 내가 먼저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 이제 정말 일주일 남았네요. "
" ……. "
"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요? "
" 하고 싶은 말? "
" 응. "
오늘 보면 또 언제 볼지 모르잖아요. 둘 다 바쁠 테고, 그렇게 지내다보면 토요일은 금방 올 테고…. 말끝을 흐린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웃으며 입을 뗐다.
" 다시 안 올 건 아니지만 그래도. "
" ……. "
" 매일을 보다가 1년은 더 못 볼 텐데…. "
말하고 보니 서운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다시 시선을 떨궈 바닥만 바라보며 묻자 바비가 대답 없이 앉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내 앞으로 와서 나를 마주보고 섰다. 다정한 목소리로 나 봐, 하는 바비의 말에 고개를 들어 바비를 올려다보자 그가 살짝 웃으며 양손으로 내 볼을 잡았다.
" 왜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이야. "
" 모르겠어요. 되게 기분 이상해. "
" ……. "
" 일주일 후라는 게 실감도 안 나고. "
내 말에 바비가 다정한 손길로 내 볼을 쓸며 웃었다.
" 잘 다녀와. "
" ……. "
" 가서 아프지 말고. "
바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와 내 시선이 마주쳤다. 내 시선이 닿자 바비가 그 특유의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늘 보던 웃음이었지만 바비의 웃음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바쁜데 억지로 연락 안 해도 돼. "
" ……. "
" 너도 바쁠 테고, 나도 바쁠 거잖아. "
그 말이 왠지 서운하게 느껴졌다. 왠지 연락 하지 말란 말 같은데…. 웅얼거리며 말한 내가 입술을 삐죽이자 바비가 어이가 없단 듯 웃음을 흘리며 내 볼을 꾹 눌렀다. 덕분에 입술만 삐죽 튀어나온 채로 바비를 바라보자 그가 잠깐만, 하는 말과 함께 내 볼을 누르던 손을 뗐다. 그리곤 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바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내 눈 앞으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여졌다. 은색의 목걸이 줄, 그리고 그 목걸이에 걸린 두 개의 똑같은 반지. 멍한 표정으로 반지만 바라보다가 이게 뭐에요? 하고 묻는 내 말에 바비는 대답 없이 그네를 잡고 있던 내 한쪽 손을 잡았다. 그리곤 그 손을 펼쳐서 내 손 위로 반지가 걸린 목걸이를 내려놓았다.
" 갑자기 이게 뭐…. "
" 가면 잘생긴 놈들도 많을 겁니다. "
" …네? "
" 아가씬 이쁘니까 꼬시는 놈들도 많을 테고. "
" ……. "
" 그러다 눈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
바비의 말에 여전히 멍한 채로 …뭐에요, 하고 되묻자 바비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진작에 줬어야 하는 건데 이제야 줘서 미안해. "
" ……. "
" 이렇게 주는 것도 미안해. "
여전히 다정한 바비의 목소리와 눈길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 말에 바비가 내 머리를 몇 번 더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 곧 돌아올 거니까. "
" ……. "
" 기다릴게. "
" ……. "
" 돌아오면, 그 때 이 반지 줘. "
말을 마치곤 내 손을 꼭 쥐어주는 바비의 행동에 순간 울컥해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바비만 바라보았다. 약간은 붉어진 내 눈가에 바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작게 웃으며 내 볼을 톡 두드렸다.
" 울지 마. 울리려고 주는 거 아니야. "
" 안 울어요…. "
" 거짓말. "
" …정말이야. "
괜히 목이 메이는 느낌에 팔을 뻗어 바비의 목을 껴안자 바비가 웃으며 나를 감싸 안았다. 등을 다독이는 손길과 함께 바비의 목소리가 귓가에 나긋하게 들려왔다.
" 다시 만나자. "
" …응. "
" 잘 다녀와. "
바비의 말에 바비의 어깨 위로 고개를 푹 파묻었다. 그리곤 겨우 목소리를 짜내 응, 하는 짧은 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안녕! uriel 입니다!
사실 이번 편은 제가 뭐라고 썼는지 한 번 읽어보지도 못하고 글을 올려요 지금 집이 아니라서 정신이 없습니다 저는 시집을 간 것도 아닌데 왜 명절 증후군이..? (동공지진) 그래서 시집은 언제 가죠? 가고 싶다..☆ 결혼 빨리 하고 싶다고 하면 늦게 하게 된다던데 저는 중학생 때부터 결혼 하고 싶다고 난리.. 저 결혼 못 하면 어떡하죠? ㅠ_ㅠ 누구 저랑 같이 사실 분? (파티원을 구합니다 ☆)
무튼! 다들 설은 잘 보냈어요? 복은 많이 받았나? 용돈은? 용돈이 많은데 아이콘은 왜 데뷔를 안 하니..☆ 얘들아.. 엉엉.. 제 이쁜이들 설 음식 많이 먹고 포동포동 해졌으려나 ㅎ_ㅎ 전 포동포동한 사람 좋아하는데 물론 제가 포동포동해서 그렇다는 건 안 비밀 엉엉
선택 아이콘이 인기가 많아서 좋습니다! 절 잔인하다며 질타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맞아요 전 잔인해요.. 어떻게 7명에서 한 명을 고르라고 하는지.. 그래도 설렘을 느껴주셨음 됐어요! 질타 받아도 저는 마냥 좋습니다!! 7명 중에서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 사랑을 받아서 저는 마냥 기쁠 뿐 ♡
오늘은 아가씨 21화에요! 아가씨는 참 복잡한 심정일 것 같은데, 그게 잘 표현이 되었을까요 ㅠ_ ㅠ 읽어볼 수가 없어서 지금.. 아가씨 꿈을 위해서도 가야겠지만 그렇다고 잘 할 수는 없을 거 같고, 가면 아무도 없는데, 가야만 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이게 뭐람..? (동공지진) 어찌되었든 오늘은 아가씨 21화입니다, 22화는 곧 오게 될 거 같아요!
어휴 짧게 쓰려던 사담은 또 왜 이렇게 길담? ㅠ_ㅠ
♡제 사랑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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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이제 더 이상 신청을 받지 않습니다! 지금 계신 암호닉 분들은 확인 부탁드려요! 잘 안 보이시는 분들도 많으시지만 ㅠ_ㅠ 그래도 한 때라도, 저와 함께 해주시고 제게 힘을 주셨던 분들이기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또 빠진 분이 계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이건 다 다음 화에서 할게요! ㅎ_ㅎ
오늘 편에선 반지 주는 지원이에 설레며 다들 굿밤 ♡ 사랑해요 쪽! 늘 감사합니다! 워아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