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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해요?"





아무래도 이 말이 그 선배와의 관계에 있어 시발점이 된 것 같다. 물론 여기서의 시발점의 표현은 다소 다의적이다. 계기라는 뜻도 있지만, 내가 말하는 건 여기서 점이라는 말을 빼면, 하여간 뭐 그런 의미도 없지 않아 있다. 이 말이다.

















오전 수업 때문에 설정해놓은 여섯 번째 알람을 끄고 나서야 겨우겨우 눈을 떴다. 알람을 끄기 무섭게, 알람 배너에 문자메시지 알림이 곧바로 밀려왔다.




새로운 메세지 1건




희미한 시야 틈으로 들어온 빛 때문에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보다가 결국 핸드폰 모서리 쪽을 얼굴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 아침부터 재수 없게. 얼얼해진 코를 매만지며 발신인을 보니 '강영현'이라는 이름 석 자가 떡하니 쓰여있어서 1차로 놀랐고, 내용에 2차로 더 놀랐다.





「오늘 같이 밥 먹을래?」 오전 7시 12분





오늘, 같이, 밥



이 세 단어가 한눈에 확 튀었다. 아니, 이 사람이 미쳤나? 아무리 생각해도 밥을 같이 먹을만한 사이도 아닌 뿐더러, 평소에 그가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제스처라든지, 약간의 감정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느낌조차 없었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럽다. 하여간 어느 의도 간에 다 노 땡큐다.









그 와중에 또 하나 문자가 밀려왔다. 이번엔 고등학교 동창회 얘기였다.







「이번에도 올 거지?」오전 7시 15분








"....오늘따라 유독 아침부터 피곤하네."







하루의 초반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는게 딱 질색이라, 일단은 폰을 이불 구석으로 던져놓고선 화장실로 향했다.



부기 빼는 겸, 정신 차릴 겸, 수도꼭지 방향을 찬물이 나오는 오른쪽으로 한껏 당긴 다음, 세수를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거울에는 튀긴 물방울들이 맺혀 흐르고 있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며 흘러내리는 물방울들.
이맘때쯤이면 잊지 않고 돌아오는 동창회.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이상하게도 씁쓸한 감정과 함께 그때의 장면 한 조각이 떠오르곤 했다.















물먹은 호루라기 소리와 동시에 내 눈앞에 튀기는 물방울들ㅡ





그리고 인어처럼 부드럽게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한 형체, 그 형체를 향해 열광하는 내 주변 여학우들. 저마다의 플랜카드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하나같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열광했다. 그가 첫 번째로 결승선에 도착하자마자 귀가 찢어질 듯 커지는 함성소리. 그가 수영모와 물안경을 벗고선 팬 서비스로 열기로 후끈거리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살짝 흔들어주며 웃자, 여기저기서 심장을 부여잡고선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 그대로 연예인이 따로 없었다. 아, 물론 나도 그 팬 서비스에 조용히 가슴 설렌 팬 중에 하나였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수영부로 유독 유명했다.


전국체전에서 많이 우승도 하고 그랬단다. 그래서 각종 지역에서 수영을 하는 애들이 일부러 이 학교에 입학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 아이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각 지역에서 수영으로 난다 긴다 하는 애들만 모였는데도 그중 제일 실력으로 나 인물로나 성격으로나, 모든 면에서 , 모든 면에서 돋보이던 그 아이는 항상 주변에 사람이 들끓었다. 수많은 사람들에 섞여있어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를, 한번쯤은 그를 가슴에 품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ㅡ




한마디로 만인의 연인이였다.




그 누구보다 만인의 연인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렸다. 웃는 걸 보고있으면 정말 그 아이 주변 모든게 화사해보였다. 한편으론 부럽기도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해주니, 어찌보면 타고난 팔자인가 싶기도했다. 그래서 더 끌렸을지도 모른다. 나와 너무 다르니까. 반대인 사람에게 끌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잖아. 아마 내가 그런 쪽이였던 것같았다.





그래, 거기까진 좋았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때는 여름이 다가오던 5월 말. 교실안에서 학생들의 반은 춘추복, 반은 하복을 입었던 그 때, 학교 대청소때문에 분리수거하는 역할을 맡은 내가, 쓰레기처리장에서 그 날 입은 하복이 싱그럽게도 무척이나 잘어울리던 그 아이가 수많은 아이들이 제게 준 정성과 애정이 담긴 선물들을 라이터로 태우고있는 그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얘가 담배를 피던 사람이였던가. 하여간 그 상황에서 그게 중요한건 아니였다.




붉게 타들어가는 것들을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바라보고있던 텅 비어있는 눈빛. 그다음, 무너지듯 벽에 기대어 무릎에 얼굴을 파묻는 것까지ㅡ 의도치않게 그 아이의 감정의 밑바닥을 보게 된 나는, 말없이 깊은 우울감으로 가득차있는 그 곳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운동장 구석에 위치해있는 수돗가로 달려가, 수압 때문에 이리저리 튀는 물방울을 무시한 채로, 세수를 했다. 물에 비쳐, 블라우스 안에 받쳐 입던 검은 티셔츠가 선명해질 정도로. 계속해서 닦고 또 닦았다. 그 우울감이 내게 달라붙었을까 봐, 덜컥 겁이 났었다. 그리고선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여름날의 햇빛이 너무나 강렬했던 탓이었을까. 수돗가에 이리저리 어지럽게 흐트러진 물방울들이 빛을 받아 구슬처럼 반짝였을 때, 살짝 눈물이 고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굳이 의미 부여를 하고 싶지 않다.




그날 이후로. 그 아이에 대한 감정은 애정이 아닌, 연민으로 바뀌게 되었고, 내 짧은 짝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허무하거나 아쉽진 않았다. 그냥, 조금 씁쓸했다. 쟤도 똑같은 사람인 건데, 내가, 아니 나 말고 다른 사람들마저 이상적인 틀에 그를 억지로 끼워 넣은 거겠지.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인데, 너무 가혹했다. 그래서, 그 아이는 탈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숨구멍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때 내가 도망치지않고 그 아이 옆을 지켜줬다면, 좀 더 상황이 나았을까.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그 아이의 무섭도록 텅 비어있는 눈빛에 나마저도 텅 비어버릴 것만 같아서ㅡ 한때는 그때의 그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목 끝까지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아 괴로웠다. 그래서 애써 그 아이를 잊으려고 하기도 했다. 노력 끝에 지금은 이름, 얼굴조차 희미했지만, 아직까지 그 장면만큼은 어제 일만큼 생생하게 머릿속에 자동 재생이 돼버린다. 그리고, 그때보단 감정이 아주 많이 희석 되었지만 그래도 그 일을 떠올릴 때면 항상 마음이 아렸다.







그 이후로 난, 그런 유형의 사람을 극도로 불편해했다. 솔직히 싫어한다는 표현이 맞기도 한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때 그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서 더더욱 영현을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었던 것 같았다. 첫 만남 때부터 그랬다.















"너어는 진짜, 박제형 혈육이라 해도 믿겠다."






시끌벅적한 동아리 회식 분위기, 그 속에서 겨우 소주 반병으로 한껏 벌게진 얼굴을 하고는 원필이 한 손으론 숟가락이 안에 들어간 소주 병을 들고선 마이크처럼 입에 대고선 소리쳤다. 어묵탕을 먹고 있던 나는 제형이와 동시에 한쪽 눈썹을 들썩이곤 대답했다. 기가 막히게, 그것도 같은 음절 수로 라임 맞춰서.





"뭔 개소리야."
"뭔 지랄이야."
"와, 성진이 형 이거 봐봐. 나 지금 소름 돋은 거 보여? 너넨 진짜 찐이야 찐."





술기운 때문에 텐션이 꼭대기까지 간 원필은 긴팔 소매를 걷고선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데에 열중한 성진의 눈앞에 들이대다가, 저것 좀 보라며 팔을 붙잡고 계속해서 흔든다. 성진은 그런 원필을 겨우 진정시키고선, 옆에 두었던 자신과 원필의 겉옷들을 챙기며 말했다.







"오버하지 말고, 영현이 도착했단다 가자. 잠깐 갔다 올게."
"벌써? 아까는 이제 나왔다면서ㅡ"





원필이 약간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을 팔랑거리며 성진을 따라갔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엔 나와 원필, 성진, 제형밖에 없었기 때문에 덕분에 여기 자리에는 잠시 찾아온 정적. 나는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선 천장에 달려있는 실링팬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다른 애들은 신나게 술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안주랑 술이 엎질러져 엉망이 된 테이블에 비하면, 우리가 앉은 자리는 완전히 양반이었다. 그나저나,







"영현이?"
"경영학과. 너보다 세 살 많아."









성진과 원필을 따라가지 않고 자리에 계속 앉아있던 제형이 혼잣말로 내뱉은 내 말에 서비스로 준 감자튀김을 입에 하나 넣으며 친절히 알려줬다. 너도 하나 먹을래? 아뇨 괜찮아요. 제형은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선, 손에 남아있는 소금을 털어냈다.











"내가 봐도 성격이 닮긴 한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
"아마 영현이라는 애, 너한테 완전 안 맞을 거야."
"네?"
"너만 빼고 다 괜찮아. 딱 그 느낌이라고"
"뭔 소리예요 그게."









다짜고짜 저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들으라는 건지. 약간 어벙한 표정을 짓고만 있자, 습관처럼 뒷머리를 털던 제형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만나보면 알게 될 거야. 그리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라이터를 챙겨 자리에 일어났다. 나 담배 좀.









형광등 아래, 탈색으로 잔뜩 상한, 부스스한 제형의 머릿결이 흔들리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거품이 다 빠져버린 나머지 맥주를 한꺼번에 마셨다. 뒤늦게 올라오는 술기운 때문에 몸이 몽롱해져, 약간의 여백이 남은 테이블에 얼굴을 갖다 대었다. 그렇게 잠깐 잠이 든 것 같았다.































"야, 일어나."





흐릿하게 들리는 원필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자리 배치가 오묘하게 바뀌었다. 내 앞에 있던 제형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제형 대신에 성진으로 바뀌었고, 분명히 내 옆에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한번 어루만지고선 다시 눈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도 여전히 낯선 얼굴이었다.











성진도 꽤나 피어싱을 즐겨 하는 편이라 눈에 익숙한데, 드롭 피어싱은 처음 봤다. 검정 가죽 라이더 자재킷 안에 검은색 목폴라, 흑발 머리. 그리고 술잔을 들고 있는 팔목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팔찌들. 내 주변에는 볼 수 없는 화려한 스타일링들. 그래서 더욱 어색해하는 나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 남자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게 무색할 정도로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내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






"아 쟤는 얘 처음 보려나, 아까 들었지, 얘가 영현이다."
"그치, 그때 영현이 형은 휴학했으니까."
"성진이 형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앞으로 잘 부탁해."







영현이라는 저 낯선 사람과 더불어 동시에 세 명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 정신이 없어 머리를 부여잡곤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 영현이 악수를 청하기 위해 뻗은 손을 살포시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잡은 영현의 손은 상당히 차가웠다. 그때 담배를 피우고 온 제형이 영현에게 다가와 손으로 어깨를 감싸 쥐며 아는 척을 했다.




"강영현 왔네."
"어 제형이 형! 오랜만이에요"
"아까부터 현우가 너 찾던데. 저기 테이블."
"아 그래요? 잠깐만요ㅡ"









영현은 자리자리에 일어나 다른 쪽 테이블로 향했다. 테이블에 다다르자마자, 그 테이블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한껏 업된 텐션. 오빠 진짜 오랜만이에요ㅡ 야, 그동안 뭐하고 살았냐.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뻗는, 퍽 소리 날 정도로 등을 두드리는 각종 손길과 함께 격하게 반가워하는 반응. 그걸 익숙하게 받으며 웃고 있는 저 사람.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인데.





"........"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언제 왔는지, 제형이 비어있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늘 습관처럼 핸드크림을 바르는 제형이, 영현을 관찰하고 있는 내게 툭 말을 건넸다. 감귤 향이라고 정직하게 쓰여있는 핸드크림에 눈길을 한번, 그리고 또다시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네, 대충은요."





한 마디로 나랑은 전혀 안 맞는다는 뜻이었다.














[데이식스/강영현] 다정함의 무게 (1) | 인스티즈

다정함의 무게

W. 소주












가능한 그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 같다 싶으면, 얼른 다른 길로 찾아 나섰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는 어김없이 도망을 선택했다. 그게 마음이 한결편했으니까.









그 사람의 성격을 처음에 잠깐 보고 어림짐작으로 판단하고, 아직 내게 일어난 일도 아무것도 없는데도 지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른다잖아. 감정의 아주 깊고 어두운, 우울하기 짝이 없는 그 밑바닥을, 그리고 그걸 목격했을 때 느꼈던 내 감정. 마치 우울이라는, 푸르고 검은색을 띤 심해에 첨벙 빠져버린 느낌.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로 가득 찬 느낌. 뱃멀미할 것같이 울렁이는 속. 난 다시는 그런 느낌을 받는 것에 있어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말하고 싶다.






영현도 며칠간은 다른 사람처럼 나를 대해주다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어느 날부터는 굳이 내게 아는 척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가끔씩 내 눈치를 보는 시선이 느껴지진 했지만, 그래.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저번 주 금요일
학교 근처 앞 호프집
동아리 회식.


거기서 내가 가위바위보에 지지지지만 않았어도ㅡ







"나란히 졌으니까 둘이 아이스크림 사가지고 온나."
"야 나는 메로나ㅡ"
"........."





아까 홧김에 너무 달렸던 탓이었을까, 회식의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올라오는 술기운 때문에 가뜩이나 정신없는 상태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러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심란함과, 생리적으로 자꾸만 올라오는 토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금 이 자리에 계속 가만히 있고 싶었다.





"그냥 내가 혼자 갔다 올까? 밖에 춥잖아."









그런 내 상태를 눈치챈 건지, 그전부터 계속 자기를 피하던 것을 의식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영현이 먼저 저렇게 말하니 내 쪽에선 할 말이 없어졌다. 물론 몸 컨디션이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만, 나는 저 지독한 다정함이 오히려 더 숨이 막히고 힘들어서, 말없이 고개를 젓고선 영현과 같이 따라나갔다. 영현은 그런 내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살짝 오묘해졌다.














편의점으로 가는 동안 서로 아무 말도하지 않았다. 처음 만난 사람보다 더 어색한 상태였다. 서로 간의 거리를 철저히 지킨 상태로, 나는 팔짱을 낀 상태로, 영현은 계속해서 연락이 오는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편의점으로 향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저 멀리 편의점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11월이 되니, 슬슬 빼빼로데이니 뭐니, 입구 앞부터 현수막에, 초콜릿에, 반짝반짝 화려하게 배열을 해놓았다. 나는 큰 빼빼로 모양의 등신대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편의점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데, 한참 말이 없던 영현이 대뜸 핸드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선,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하루야."
"네?"
"혹시 나 피하는 거야?"
".........."
".........."






아. 역시 눈치챘구나.




저 사람은 다른 사람과 불편한 관계로 지내는 걸 싫어한다는 걸 대충 눈치로 알고 있었으니, 언젠가 나에게 저 질문을 할 것이라는 걸 당연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근데 상상만 했던 저 말을 막상 들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저기서 맞는다고 하면, 원래 없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양심의 가책이 들 것만 같았다. 어느새 편의점 앞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습관처럼 등신대 옆에 배치되어 있는 캡슐 뽑기에 돈을 넣으며 말했다.





"...선배가 잘못한 건 없어요. 그냥 제가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너 성격 안 이상해."





유독 뻑뻑하게 느껴지는 태엽을 겨우 돌리니, 달그락 소리를 내며 분홍색의 캡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여우 모양의 인형 키링이었다. 영현은 그 키링을 보며 귀엽다. 라고 한마디 던지며 나를 바라봤다. 또다시 정적. 그나마 들린 건, 저 멀리 희미하게 어디론가 배달하러 가는 오토바이 소리. 그의 드롭피어싱이 예쁘게 살랑거렸다. 향수 냄새도 살짝 은은하게 퍼졌다.



"선배도 아마 들었을 텐데, 저 싹바가지라고 이미 소문 쫙 돌았어요."
"아 제형이 여자 버전이라는 그거?"
"네, 그거요."
"글쎄, 난 제형이를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그냥 표현방식이 남다른 거지. 너도 그렇고."
"절 너무 좋게봐주시는 것 같은데."
"글쎄ㅡ?"




사람 좋은 미소를 씩 짓더니 앞장서서 아이스크림 박스로 향했다. 아마 사람들이 이런 모습에 저 사람을 좋아하는 거겠지. 싶었다. 동아리 회원들에게 사줄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던 그 뒷모습을, 남들은 듬직하다고 말하는 저 뒷모습이 이상하게도 나에겐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꺼내고 있을 테니까 가만히 앉아있으라는 영현의 말에 먼지 가득한 테라스 테이블에 얼굴을 맞대었다. 여우 인형의 키링을 검지에 끼고선 원을 그리며 돌렸다. 생각해보니, 인형의 생김새가 영현 외모와 매우 흡사해 보였다. 키링 인형이 불안정하게 내 검지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초점을 다시, 인형이 아닌 인형 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고 있던 영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불안정해.





그 생각이 들자마자, 툭. 하고 키링 인형이 내 손안에서 떨어졌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 나는, 항상 그를 보면 생각했던 것을 나지막이 툭 던지고야 말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술김에 한 말이었다













"근데요 선배."
"응?"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해요?"




그런 내 말에 고르고 있던 손짓을 멈추고선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눈빛. 희미한 시야로는 그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우리 둘의 정적을 간간이 메꿔주는, 곧 겨울이 오는 걸 알려주는 차가운 바람들.





"............"
"............"
"하루 너는 뭐 먹는다고 했지?"
"괜찮아요, 저는 속이 안 좋아서."
"...계산하고 나올게 잠시만."






나는 다시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눕혀져 있던 키링 인형과 눈이 마주쳤다. 시야가 점점 흐릿해졌다. 편의점 입구에 설치해놓은 작은 종소리가 어지럽게 내 귓가에 맴돌았다. 머리가 윙윙 울렸다. 나는 그게 마치 수면 유도제가 되는 것처럼 기절하듯, 픽 잠에 들고 말았다.


















그 후의 기억들은 온전치 못했다. 완전히 산산조각이 돼버린 조각들을 겨우겨우 끌어모아봤자 소용이 없다. 장면 단위로 그나마 인상 깊게 남아있던 건, 분명한 사실은ㅡ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내게 생판 초면인 인형 키링이 생겼다는 걸 침대 머리맡 근처에 발견한 걸 보아서는, 일단 술 먹으면 캡슐을 뽑는 버릇이 어김없이 나왔다는 것. 그리고,


....내가 영현에게 업혔다는 것.


그거 하나였다.





근데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동아리 멤버들이 그걸 보고서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특히 김원필이 그 다음날이라도 나에게 와서 혹시 썸이라도 타는 거냐고 난리 칠 게 뻔할 텐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제 숙취는 괜찮냐며 안부를 건네는 게. 정말 모르는 눈치라서. 아직까지 그게 의문이었다. 나 집에는 어떻게 들어갔냐고 물어보자 너랑 집 방향 비슷한 동기 두어 명같이 택시 태워서 보냈단다. 그렇다면 내 기억 속 그 장면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 또한 여기서 더 의미 부여를 하면 안 될 것 같아, 더 이상 생각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더 깊이 빠져봤자, 그 사람과 엮이는 꼴밖에 안되니 의문점이 남더라도 넘어가는 게 제일 간단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했었다. 근데 오늘 먼저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화장실에 나오니, 이번엔 전화벨 소리가 나를 재촉했다. 보나 마나 아까 동창회에 나올 거냐는 친구일 것이다. 하여간 성질 급하기는. 아직 물기 묻은 손 때문에, 회색 이불에는 검은색 얼룩이 생기고 말았다.







"여보세요."
ㅡ야, 너 갈 거지?
"왜 이렇게 급해. 천천히 해"
ㅡ이번에 사람이 많아서 따로 예약할 거야 그니까 빨리 말해야 돼
"웬일이래? 원래 오던 사람만 왔잖아."
ㅡ그랬지, 근데 이번엔 걔도 온다고 하니까. 걔 때문에 애들이 올해 몰리는 걸껄?
"걔가 누군데"
ㅡ아 그 있잖아, 아이돌 뺨치게 인기 많았던, 수영하고
"아."








모를 리가 있나. 애써 잊으려고 했던 이름과 얼굴. 나는 부디 친구가 그 이름을 꺼내질 않길 바랐다. 이름을 듣게 되면, 여태껏 잊으려 했던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까 봐 두려워서. 하지만, 친구가 그걸 눈치챌 리가 있나.





ㅡ윤도운이잖아, 윤도운. 너 진짜 몰라?






아, 그 이름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기억 속에 희미했던 얼굴이 기다렸다는 듯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윤도운. 하복이 매우 잘 어울리던,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을 자신의 텅 비어있는 눈빛을 내게 들켜버렸던. 여태껏 동창회에 나오지 않았던 걔가 돌연히 이번에는 나온다고 답했단다. 나는 그 아이를 똑바로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도망쳐야만 한다. 그때 그래왔던 것처럼.




근데 왜 지금 여우 인형 키링과 또다시 눈이 마주치는 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
ㅡ그래서 간다고 만다고, 빨리 말해라.






화장실 거울 표면에 맺혀 흐르던 물방울은 어느새 말라버린 지 오래다. 그저 흔적만 남아있었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얼룩이 돼버린 물자국을 지워내며 말했다.





"이번엔 어디서 모일 건데?"






















참고한 사진


인티가 제 노트북에만 아픈건지..ㅎㅎ...

++일단은 투표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캠퍼스물로 찾아오게됐네요!!ㅎㅎ 다른 주제의 글은 다시 제가 투표로 찾아올게요




사진첨부 하려다가 흐름에 방해가 될까봐 따로 떼어놨어요

어느장면에 삽입했는지 아마 보시면 대충 예상은 가실겁니다


급한대로 글을 올리긴했는데 오탈자나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번번히 수정해놓을게요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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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저번에 투표로 찾아온 글 중에 캠퍼스물이 제일 투표수을 얻게되어 이렇게 찾아오게됐습니다 ㅎㅎ 수정을 하긴했지만 투표 글에서 올린 내용이랑 겹치는 부분이 꽤 있기는 하네요😭
그리고 생각지못하게 세 주제 다 보고싶어하시는 독자님들이 꽤 계셔서 그 부분에 있어서는 조만간 다시 투표로 찾아뵐게요 ㅎㅎㅎ
급하게 올리느라 좀 어색하거나 오탈자가 있을수있는데 확인되는대로 바로바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좀 늦은 시각에 올리게되었네요😭😭
좋은 밤 되세요❤❤☺️

•••답글
독자1
선생님ㅠㅠ 너무 좋아요ㅠㅠ 요즘 날씨가 너무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구 현생도 힘내세요!!!!!!!
•••답글
소주
간만에 이렇게 긴 글을 써보니 조금 어색하네요ㅎㅎㅎ😭 (장마를 도대체 어떻게 쓴건지 1도 모를 지경..)
11월도 화이팅입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
비회원62.147
오랜만이에요 작가님! 담담하면서 잔잔하게 흘러가는 글이 너무 보고싶었어요
•••답글
소주
우ㅠㅠㅜ 너무 오랜만이죠
제 글의 분위기가 그런 느낌으로 느껴지는군요🤔 ㅎㅎㅎ 항상 궁금했는데 이젠 조금 알것같아요
다음에도 이렇게 긴 분량으로 올수있게 노력할게요 저도 그동안 독자님 많이 보고싶었어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
독자2
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깔리는 음악도 좋고 글이 주는 분위기도 넘 조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전 글들 정주행하고 와야겠어요👍 담편 너무 기대돼요ㅠㅠ 편할 때 또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답글
소주
또 저의 최애 음악을 삽입했읍니다..ㅎ
저는 제가 쓴 글 정주행하면 참 일관성없이 생각나는대로 썼구나 싶더라구요 ㅎㅎㅎㅋㅋㅋㅋㅋ 어떤 글은 표현이 괜찮은데 어떤 글은 너무 허접하고..(tmi)
조금있으면 지겨울정도로 올거랍니다 ㅎㅎㅎㅎ 다음에 올 때는 월로적승이랑 해서 두 개올릴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안되면 일단 이거 후속편이라도..
오늘 하루도 화이팅❤❤ 주말이니 푹쉬세요

•••
독자3
아아아 작가님 너무 좋아요 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고가요❤️
•••답글
소주
더더더 좋은 글 나올 수 있게 나중에 여유생기는 때에 달달한 로맨스 드라마좀 봐야겠어요🤗....ㅎㅎㅎㅎ
저야말로 봐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죠 항상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오늘 하루도 힘내서! 화이팅💖💖

•••
비회원94.162
작가님!!! 보고싶었어요 이번에는 가을 냄새 나는 글이네요...정말..좋아요...ㅠㅠ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는 작가님 기다리느라고 글잡 매일 들러요ㅎㅎㅎ 요즘 일교차가 심한거 같은데 건강 조심하세요! 그리고 혹시 음악 제목 알 수 있을까요? 작가님 노래취향 저랑 정말 똑같으신거같아요
•••답글
소주
Clario-bubble gum 이라는 노래입니다! 사클에 검색하면 나올거에요🤗
독자님이랑 노래취향이 똑같다니 ㅎㅎㅎㅎ 언젠가 플레이리스트라도 따로 올릴까 생각이 드네요(김칫국)
가을에서 겨울 시기의 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ㅎㅎㅎ 원래 제목을 첫 눈이라고 할려다가 만 글이라....
독자님두 감기 조심하세요❤❤ 내일도 화이팅👍

•••
소주
아 유튜브에 쳐도 뜨기는 합니다!
•••
독자4
오랜만이에요 작가님! 항상 작가님을 응원하고 있는 저번 글의 독자5(?) 입니다ㅎㅅㅎ우연히 글잡에 들어왔다가 작가님 글을 보고 바로 들어왔지 뭐에요ㅠㅠㅠㅠㅠ분명히 알람설정을 해놓았는데 왜 안 온건지 제 인티도 아픈가봐욕 흑흑 오늘 글도 아주 잘 읽었습니다! 저번에 쓰셨던 내용이랑 이어지면서 여주 기억 속 남자 아이가 누군가 했더니 도운이네요ㅠㅠㅠㅠ에데식 학교 뮤비 시리즈가 생각나면서도 또 너무 기대돼요ㅠㅠ다음글까지 얌전하게 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항상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고 행복만 하시길 바랄게요 좋은 글 써주셔서 한번 더 감사합니다❤️
•••답글
소주
아아아아 반가워요💖💖 저에게 무지무지 좋은 영감을 주신 독자5님❤ 다시한번 감사드려요
요즘 인티 서버가 많이 아픈가봐요 자꾸 오류가 떠서 많이 슬프네요...ㅎㅎㅠㅠ
원래는 도운인걸 중반까지 숨기다가 서프라이즈! 할까 싶다가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에데식 뮤비 쳐돌이(?)이에요 저 ..ㅠㅠㅠㅠㅜ생각난김에 보고와야겠어요
다음글에는 더더 재밌는 글로 올 수 있게 노력해서 올게요 항상 감사합니다❤❤
날씨 추운데 감기조심하세요😍😘

•••
비회원151.223
진짜 짜릿해요... 전에 투표했을때 느꼈던 호감을 기억해서 보기 전에도, 보는 내내에도 심장이 쿵쿵 뛰면서 봤네요... 진짜 너무 재밌고 진짜 떨리게 되고... 최근 소설이나 팬픽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글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ㅜㅠㅠㅠ 부디 오래오래, 그리고 자주동안 연중없이 끝까지 갔으면 좋겠네요....
•••답글
소주
우선 전에 투표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일 좋아하는 글이라는 말이 너무 감사드리고 벅차고 그러네요..ㅠㅠㅠ어떤 감정(?)으로 심장이 쿵쿵 뛰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글을 읽을 때 독자님이 느끼시는 감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할게요
연중 안할테니 너무 걱정마세요 ㅎㅎㅎ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
비회원25.246
저 요즘에 데이식스에 빠져서 엄청 서치하다가 갑자기 영현이 수영 잘 하는지 궁금해서 네이버에 쳐봤는데 갑자기 이런 띵작을 보게 됐네요,,, 머죠 운명인가요 고작 10일 전이라니ㅜㅜ 옛날 거엿으면 한번에 왕창 정주행 할 수 있는데 흐극 얼른 마니마니 올려쥬세요 꾸준히 보겟슴다!!! <<< 혹시 단편은 아니죠????? 아니라고 해주세요ㅜㅜ
•••답글
소주
어....? 글이 뜨나요? 🤯🤯🤯 떠도 괜찮은건가..?ㅠㅠㅠㅠㅠ헉 ㅋㅋ큐ㅠㅠㅠ
단편까지는 아니니 걱정하지않으셔도 됩니다! 장마보다는 좀 길것같은 예감이 드네요😊
곧 올릴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비회원122.58
소주님 글이 너무너무좋아요! 플레이리스트도 담에 한번 부탁드려도될까요오오...🧡
•••답글
소주
다음 글 올릴때 다른 글로 동시에 또 올려드릴게요😊 제가 수록해놓은 노래 제목이랑 비슷한 느낌의 노래를 수록하면 되나요? 아니면 제가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원하시는건가요?
•••
독자5
와악 혐생에 치여 한동안 못들어왔더니 벌써 10화까지 있지 뭐예요 3화까지 읽었었는데..! 정주행하면서 읽으려구요 처음 읽었던 그때처럼 잔잔하고 멀리 오는 파동같은 느낌🥰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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