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연애중 02 " 근데 너 민윤기랑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어? " " 어?" " 키스는 당연히 했을거고.. 잤어? " " 뭐래... 아, 아니야. " 잘못하면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 했다.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친구에게서 쏟아지는 당황스러운 질문에 바보 같은 표정으로 멍청하게 말을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 와. 9년을 사귀면서 민윤기는 뭐했대? 지켜주는건가? 아니, 9년을 지 여자로 묶어놓고 뭘 지켜줘? " " 몰라. 걔가 좀 무뚝뚝하고 그렇잖아. " "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거랑 뭔 상관이냐? " 친구 사이에서 연인이 된 민윤기와 나 사이에 스킨쉽을 찾아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다. 그래도 중학교 때는 길을 걸을 때는 손을 잡고 걸을 때도 있었다. 가끔은 가볍게 안기도 했고. 나는 친구에서 연인이 된 다른 커플들도 다 그런줄 알았다. 그렇지만 주위 얘기를 들어보면 그냥 민윤기와 내가 다른, 아니 특이한 케이스였다. 민윤기와 첫 키스를 한 건 고등학교 1학년이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눈이 오던 날 야자를 하고 민윤기가 날 집에 데려다주었다. 1층 현관에서 들어가기 전 내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주는 민윤기의 손길이 다정해서 그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다 까치발을 해 내가 먼저 입을 맞췄다. 민윤기는 약간 움찔하다가 이내 입을 맞추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고도 미친 짓이었다. 현관 앞에서 키스라니. 그 날 밤은 잠이 들 수가 없었다. 모처럼만에 가슴이 미친듯이 뛰었기 때문에. 고등학생 때 몇 번한 키스라고 하기도 애매한 입맞춤이 우리 9년 연애의 스킨쉽의 끝이었다. " 하여튼 너네도 참 별나. 안 지겹던? 요즘 사람들 3년만 넘어도 권태기 오고 그렇다는데. " " 권태기? " 우리가 달달했던 적이 있어야 지금을 권태기라고 하지. 예전이랑 다를게 없는데 뭐. " 아 몰라. 딴 얘기해. 넌 남자친구 없어? " " 야, 이 언니 미모를 봐. 없겠어? 당연히 있지. " " 미모는 무슨. 놀고 있네. " " ...어? 타이밍 대박. 전화왔다. " 전화를 받으러 나간다는 친구에게 알겟다고 손짓하며 내 앞의 커피를 홀짝 마셨다. 친구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통화하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런 친구를 바라보던 내 시선은 내 핸드폰으로 향했다. 통화기록을 한참은 아래로 내려야 나오는 민윤기. 연인사이의 흔한 애칭도 아닌 그냥 민윤기.라고 그 이름 세 글자를 저장했다. 새삼스럽게 그게 너무 딱딱해 보여 바꿀까하는 마음에 편집 버튼을 눌렀지만 완료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딱히 부르는 애칭도 없었고 그렇다고 남자친구나 애인이라고 저장하는 것은 왠지 낯간지러워 그만두었다. 꺼진 핸드폰 액정을 쳐다보고 있자니 또 한 번 머리속을 복잡하게 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언젠가 민윤기에게 묻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물어보지 못하고 속으로 혼자서 고민하던 생각. 민윤기, 너 나랑 왜 사귀니? 얼마 후에 민윤기는 우리 집 바로 옆 오피스텔에 이사를 왔다. 같은 대학교이다 보니 대학교 주변에 살 곳이라곤 여기뿐이라 사실 당연했다. 창문만 열면 민윤기네 집이 보였고 소리를 약간 높여 부르면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렇지만 민윤기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민윤기의 발자국 흔적조차 볼 수 없었다. 사실 민윤기와 만나서도 하는건 별로 없었다. 어릴 때는 그저 둘이 만나서 나혼자 떠들고 민윤기는 가끔 대응해주면서 서로 투닥거리는게 다였다. 그래도 좋았다. 같이 있다는 느낌에 외롭지 않았고 소소한 것들에 즐거웠다. 민윤기가 군대에 가기 전에도 귀찮은 걸 싫어하는 민윤기 때문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잠깐 있다가 헤어지는게 다였다. 나는 예전처럼 많이 떠들지 않았고 민윤기는 예전처럼 역시나 가끔 반응해 주는 것이 다였다. 그래도 민윤기와 있을 때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남들이 보면 대화 없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겠지만 나에겐 무뚝뚝한 민윤기가, 그리고 그런 민윤기와 함께 있는 내가 익숙했다. " 야, 어디야? 집? " [ 응. 왜? ] " 헐. 웬일로 집이시래? 야, 우리 치킨 먹자. 내가 쏠게! " [ 치킨? 그러지 뭐. 너 맨날 먹는 거기로 시켜놓을게. ] " 응. 이따 갈게. " 데이트라고 하기엔 뭐했지만 나와 민윤기는 한 사람의 집에서 치킨 먹으면서 영화보는 것이 가장 좋아하는 데이트였다. 귀차니즘이 심한 민윤기에게는 딱 맞는 그런 데이트였다. 치킨에는 역시 맥주라며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던 맥주가 어느새 주량을 넘겨버린 모양이었다. 취하는 듯 어지러운 느낌에 머리가 아파왔다. " 윤기야. " 성 때고 이름만 불러본게 얼마만인지 참 낯설고 어색했다. " 뭐야, 취했어? " " 아니! 나 완전 하나도 안 취했는데? " "...취했네. 하긴 아까 들이킬 때부터 위험했다. " " 안 취했다니까아! " " 가자. 집 데려다 줄게. " " ...싫어. 집 안 갈거야! " " 왜 이래. 얘가. " " 윤기야. 윤기야. 민윤기! " " 왜. " " 너 왜 나랑 안 자? " " ...뭐? " " 우리 사귄지 9년이나 됐는데 너 왜 아직도 나랑 안 자? 왜 뽀뽀도 안하고 키스도 안하고 그래? 나 지켜주는거야? " " ... " "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그래? " 내 말에 민윤기는 작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 허- 진짜. " " 윤기야아- 나 안 예뻐? 나 안 좋아? " 나는 어린애처럼 나 안 예쁘냐고 징징거리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민윤기가 나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 팔을 뿌리치며 다시 한 번 물었다. " 응? 나 안 예뻐? " 따뜻한 바닥에 눕자마자 피곤함과 어지러움과 함께 밀려오는 졸음에 눈이 금새 무거워졌다. " 나 안 예쁘냐고- " " ...예뻐. " 민윤기의 희미한 마지막 말을 들으며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땐 난 우리집 침대에 있었고 어젯밤 일이 너무 또렷하게 생각나서 이불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발칙하게 나랑 왜 안 자라니. 그래놓고 또 어린애같이 나 예뻐라니. 미쳤다. 쪽팔려.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어봐도 추한 내 모습에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하긴. 민윤기는 내가 묻는다고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할 위인이 못 되는데 뭘 바라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다. 그날부터 난 한동안 필사적으로 민윤기를 피했다. 학교도 일찍 나가서는 점심도 밖에서 먹고 저녁도 먹고 들어왔다. 민윤기는 먼저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내가 피하는 한 우리 만날리 없었다. 그렇게 꽤 오래 민윤기를 피할 수 있었다. " 응. 나 내일 아침에 출발해. "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며칠 집을 비우고 꽤 멀리 다녀올 일이 생겼다. 멀리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의 팔순잔치었기에 꼭 오라는 부모님에 말씀에 가야했다. 간만에 고향 친구들도 보고 싶었기에 이틀정도 머무르기로 하였다. 민윤기에게 연락을 할까말까 하려다가 관두었다. 며칠을 그렇게 피하다가 나 어디 좀 갔다올게. 라고 말하는 모양새가 좋지않아 보였다. 민윤기는 우리 집에 불이 켜지지않아도 내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몰랐을 것이다. 늘 그런거에 둔했으니까. 집에 온 그날 저녁에 그냥 바로 집에서 뻗었다. 침대에 누워 충전해 놓은 보조 배터리로 배터리를 갈았다. 충전을 다 해놓고 가져가지 않아 배터리가 부족해 고생했다. 늘 칠칠맞은게 문제였다. 폰을 키자 친구에게 전화 몇 통이 와있었다. 의아함에 전화를 거니 연결음은 금방 끊기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야. 왜 전화가 안 돼. ] " 나 엄마 집에 다녀온다고 했잖아. 보조 배터리 안 가져가서 배터리 없었어. 왜? " [ 아니 그게, 내가 다른 과 친구한테 들었는데. ] " 뭘? " 난 양말을 벗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 걔가 어제 미팅을 했는데, ] " 응. " [ 거기에.. 민윤기가 나왔대. ] " ...어? " [ 내가 전에 걔한테 너 얘기해서 얼굴은 몰라도 너 남자친구 이름 민윤기인거 안단 말이야. 우리 학교에 민윤기, 걔 하나잖아. ] " ... " [ 듣고 있어? ] " ...응. " [ 뭐 걔 성격에 자기가 나간다고 했겠어? 끌려나왔겠지만 그래도 알려줘야 할 거 같아서. ] " 응. 고마워. " [ ...너 괜찮아? ] " 괜찮아. 내가 언제부터 그런거 신경썼다고. 나 피곤해서 끊을게. " 집에 와서 딱 씻고 개운하게 자려고 했는데 이미 물 건너간게 틀림없다. 몸도 찝찝했고, 마음도 찝찝했다. 혹시 내가 연락 안했다고 민윤기가 우리가 헤어진 거라고 생각 하는건 아닌지, 아니면 혹시 다른 여자가 끌리는건 아닌지 별 의심이 다 들었다. 늘 민윤기를 가장 잘 아는건 자신일 것이라고 자부해왔는데 이럴 땐 민윤기를 정말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핸드폰을 찾아 오랜만에 민윤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응. ] " 어디야? 나 할 말 있는데. " [ 할 말? 나 집인데. ] " 응. 그럼 지금 집 앞으로 갈게. " 외투를 챙기면서 집을 나설 준비를 하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공존했다. 내가 먼저 피해놓고 이렇게 간섭해도 되는걸까? 혹시 아니라면 무슨 망신이야. 말다툼을 할 때는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던 민윤기이기에 또 지고 돌아올까봐 걱정도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입술이 마르고 긴장이 되었다. 그렇지만 걱정에도 불구하고 내게 용기를 주고 내가 집을 나설 수 있게 해주었던 건 단 하나의 사실이었다. 민윤기의 여자친구,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빨리 찾아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늦어졌네요ㅠㅠㅠ 처음 써 본 글인데도 많이 좋아해주시고 암호닉도 신청해주시고! 기분 짱짱이었어요ㅎㅎ 기대해 주신 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암호닉] 슈웁 석진센빠이 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