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년.
잔에 담긴 발그레한 빛의 감홍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내는 손에 든 술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 손길에 따라 잔 속의 액체가 원을 그리며 찰랑였다. 천천히 잔을 입가에 가져다 댄 사내는 잔 속의 감홍로를 한 입 머금었다. 목젖이 움직이며 그가 입에 머금고 있던 술을 그대로 꼴깍였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가만히 느끼고 있던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달구나.”
“…….”
“술이 참 달아.”
“…그러십니까.”
“이 술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했지?”
사내의 물음에 여전히 상 위로 시선을 둔 채로 답했다.
“감홍로입니다.”
“감홍로….”
술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본 사내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흘렸다. 그리곤 잔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옮겨 맞은 편에 고개를 숙이고 앉은 나를 바라보았다. 잠깐 나를 바라보던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잔을 상 위로 내려놓았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들 사이로 탁, 하는 둔탁한 소리가 짧게 들려왔다.
“고개를 들거라.”
사내의 말에 잠깐 망설이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감히 제가…. 말이 미처 끝이나기도 전에 사내는 조금 더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들라고 하였다.”
그의 목소리에 입술을 살짝 깨물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차마 눈을 맞추진 못 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시선을 두자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던 사내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곤 잔을 잡았던 손을 뻗어 내 턱을 잡아왔다.
부드럽지 않은 손길이 내 고개를 조금 더 들게했다. 사내의 손길에 의해 애써 피하고 있었던 시선이 결국 사내에게로 닿았다. 빠져들 것만 같이 검고 깊은 그 눈동자에 작게 몸을 떨자 사내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
“나를 볼 때면 늘 그런 표정이구나.”
“…….”
대답 없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내는 비릿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내가 무서운 것이냐?”
그 물음에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 눈만 바라보자 사내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곤 이내 곧 다시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참 고약하군.”
“…….”
“그래. 너는 그런 표정마저도 예쁘렸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턱을 잡고 있던 손을 거칠게 놓았다. 투박한 그 손길에 고개가 한 쪽으로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떨어진 내 시선이 바닥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사내의 도포 끝자락으로 향했다. 금으로 수놓아진 무늬. 어느 누구도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따라해서는 안 되는 모양. 오직 황제의 옷에만 놓아지는 수繡.
눈 앞의 사내는 ‘라曪’의 황제皇帝, 김지원이었다.
“○○아.”
“…….”
“대답하거라.”
“…네.”
짧은 대답에 잠깐 뜸을 들이곤 날 바라보던 사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섰다. 입고 있던 도포가 불편한 건지 팔을 가볍게 움직이던 사내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살짝 일그러졌다. 여전히 바닥에 앉은 날 내려다보던 사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몸을 돌렸다. 문을 향해 걸어가던 사내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날 바라보지도 않은 채로 내게 말했다.
“궐로 들어오거라.”
“…싫습니다.”
“싫다고 한 것이냐?”
내 대답에 사내는 완전히 몸을 돌려 다시 한 번 날 내려다보았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떨리는 눈동자로 사내를 바라보자 사내의 양쪽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그럼 죽어야겠구나.”
“…….”
“너도, 네 그 잘난 아비도, 너의 가문도, 이 곳의 근처에서 숨을 쉬는 모든 것들이.”
“…그러실 수는 없습니다.”
“그래?”
“…….”
“너는 내가 그 것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사내의 물음에 입을 꾹 다물곤 아무런 답도 못 하자 사내가 가소롭다는 듯 피실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다시 몸을 돌려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들어오거라.”
“…….”
“네 자리는 이미 마련해 두었다.”
할 말이 끝난 지원은 망설임 없이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을 나선 지원을 따라 검은 그림자와도 같은 사내 하나가 그 뒤에 바짝 붙어 움직임을 함께했다.
두 명의 인기척이 방 안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참고 있던 숨이 한꺼번에 내쉬어졌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어찌 이리 마음대로인 겁니까…. 입술을 꾹 깨물곤 붉은 치마의 끝자락을 손으로 꼭 쥐었다.
“빈아.”
내 부름에 걸음을 옮기던 것을 멈춘 한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향해 걸음을 옮긴 뒤 손에 쥐고 있던 노란 꽃 한 송이를 그에게로 내밀었다.
“여기.”
“이게 무엇입니까.”
내민 꽃을 받아들곤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빈은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그런 한빈을 바라보며 작게 웃곤 답했다.
“선물이란다.”
보일 듯 말 듯한 옅은 미소를 걸곤 한빈을 잠깐 바라보다가 옆에서 세차게 흐르는 폭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고인 곳을 향해 떨어지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물이 있는 곳으로 가볍게 걸음을 옮긴 뒤 물가의 큰 바위 위에 몸을 앉혔다. 그리곤 한빈을 향해 고개를 돌려 내 옆의 빈 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내 손길에 한빈이 꽃을 꼭 쥐곤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조금 전 톡톡 두드렸던 곳에 몸을 앉힌 한빈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꽃은 왜 주시는 겁니까.”
“그냥.”
“…궁으로 들어가시는 거지요?”
한빈의 물음에 흐르는 폭포만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힐끔 한빈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가야만 하는 거겠지.”
“…….”
“그래. 그렇겠지.”
“…….”
“…그래. 그렇구나.”
혼자 중얼거리던 것을 멈추곤 고개를 돌려 한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날 바라보고 있던 한빈과 눈이 마주치곤 작게 눈을 접어 웃으며 말했다.
“가고 싶지 않구나.”
“…….”
“궁 안은 정말이지 쓸쓸할 것 같아.”
“…궁 안에 가보신 적 없으시잖습니까.”
“그래도 알 수 있어.”
“…….”
“그 곳엔 아버지가 안 계시잖아. 난희도 볼 수 없을 테고….”
끝을 흐리며 말한 나는 한빈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시 폭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 또한…. 말을 마무리짓지 못 하고 입을 꾹 다무는 나를 바라보던 한빈이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손에 쥔 꽃만 만지작거렸다.
“내가 가면 너는 좀 쓸쓸하겠구나.”
“…….”
“말동무가 하나 줄었으니.”
아쉬움 묻은 내 목소리에도 한빈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서운한 마음에 다시 한빈에게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곤 작게 물었다.
“너는….”
“…….”
“내가 궁으로 가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냐?”
“…….”
“내게 하고픈 말이 없는 거야?”
축 처진 눈으로 한빈을 바라보자 한빈은 날 힐끔 바라보곤 다시 꽃으로 시선을 옮겼다. 애꿎은 꽃잎만 만지작거리던 한빈은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가지 말라 떼를 쓰면, 안 가실 겁니까?”
한빈의 물음에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내게 시선이 닿진 않았지만 내 대답을 느낀 건지 한빈이 잠깐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저는 금방 자랄 겁니다.”
“…….”
“얼른 자라서,”
“…….”
“제가 궁 안으로 가겠습니다.”
“…빈이 네가?”
“관직을 얻든, 또 다른 무슨 길이든.”
잠깐 말을 멈춘 한빈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빈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한빈의 말에 그를 잠깐 바라보던 내 눈도 따라 접혔다.
“그래. 그러려무나.”
무엇이든 제 멋대로 하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제국의 황제 김지원
여자의 배 다른 동생이자 그녀의 남자이고픈 또 다른 사내 김한빈
그리고 황제가 소유하고자 하는 여자
♡
안녕! uriel 입니다
쉼표 맞아요 쉼표! 라지만 아쉬움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가는 글입니다 헤 저는 이런 글은 정말 1도 못 써요.. 임시 저장이 안 돼서 한 번 날려먹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좋은 소재가 떠오른 탓에 이렇게 단편을 남기고 갑니다! ♡
시간이 되는 대로 아가씨 마지막 화에 꼭! 꼭! 답글을 달도록 할게요
6월에 만나요 제 사랑들 쪽
음, 글에 대한 내용은 위에 적은 인물에 대한 설명대로에요! 황제 지원이, 배 다른 동생 한빈이, 그리고 그 사이의 여주!
이 글로나마 아쉬움 달래기! (ㅠ_ㅠ)
잘 자요! 내 꿈 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