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너를 만난다면 04
집에 들어가자마자 반짝이는 핸드폰에 또 뭐냐며 액정을 켰는데 전정국일 거 같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남준이의 카톡이었다.
[안 했을 거 같아서 말해주는데]
[우리 과제 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가방이며 옷이며 침대 위에 던지듯 벗어 놓고 얼른 책상에 앉았다!
과제가 있었다니! 과제!! 내일 들은 수업의 교재를 꺼내서 지난주에 배웠던 곳을 펴보는데 커다랗고 빨갛게 '필수!'라며 중요한 과제물이 적혀있었다.
난 망했어... 망한 거야.... 왜 잊어버리고 있었지..? 그래 전정국 때문이야!! 내가 너 때문에 주말을 다 버렸잖아!
신경질을 내며 얼른 과제를 시작했다. 이제라도 알려줘서 참 고맙다며 남준이에게 답장을 해야 하는 것도 잊고 몰입해서 후다닥 리포트의 양을 늘리고 있었다.
핸드폰이 자꾸 울리는데 모르겠고 난 당장 내일 과제가 중요하니 들려도 안 들리는 척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두고 눈만 붉혔다. 다행히 지난주 이 수업이 끝나고 정리해둔 게 있었지.
절대 하루 만에 할 수 없는 과제가 분명했는데 점수가 꽤 들어가는 중요한 거라서 새벽까지 과제만 붙잡고 있다가 다행히 다 끝내고 피곤해하며 쓰러지듯 침대에 바로 누웠다.
그래도 내일 오후가 첫 수업이라서 다행이지 수업 전까지 잠만 자야겠다. 대체 아까부터 계속 울리던 진동이 뭐였는지 보려고 감기는 눈으로 어렵게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그 진동의 주인이 전정국이었던걸. 부재중도 2통에 문자는 혼자 뭐라고 중얼중얼 많이도 보냈다.
[전화받아요]
[왜 안 받는데]
[지금 내 연락 씹는 거예요?]
[와 대박이다 실망이야]
[문자라도 보내주던가]
[하나만 물어보자. 씹는 거예요 아님 못 하는 거예요]
[나쁘다 진짜]
나쁘다는 문자는 방금, 한 오분 전에 보낸 문자였다. 과제 때문에 답장할 시간이 없었다고 보내려다가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져서 탁탁 몇 자 치다가 결국 눈이 감겼다.
그대로 자고 나중에 일어나서 문자를 해야지 했는데 다시 울리는 진동 때문에 잠이 깼다. 한 번이면 그냥 무시하고 잘 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 울려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눈을 감고 어렵게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 세요..."
[잤어요?]
"누구.. 누군데"
[아까 전화한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안 받아]
"피곤해... 나 지금 과제... 하암... 다 끝났거든요... 졸리니까 내일 다시 전화해주세요 삐-"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였는지 자다 일어나서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해버렸다. 삐는 뭐가 삐야 생각해보니까 또라이도 저런 또라이가 없었다. 삐-소리가 나면 음성메시지를 남겨주세요를 생각하고 저 짓을 한듯싶었다.
전정국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말한 나도 어이가 없으니까 넘어가는 걸로.
통화 같지도 않은 통화를 마치고 다시 잠이 들었다.
****
"저 교수님은 맨날 나한테만 그러더라? 내가 얼마나 죽어라고 했는지 아냐?"
"알어"
"맨날 너만 이뻐하지 아주!"
새벽까지 몸이 부서져라 준비해서 리포트를 제출했건만 이번에도 역시 남준이 칭찬만 늘어놓으시는 교수님 때문에 투덜투덜거렸다. 그놈에 우리 남준이, 우리 남준이. 누가 보면 남준이가 교수님 아들인 줄 알겠네요.
물론 남준이는 며칠 동안 이걸 준비했겠지만 그냥 괜히 부럽고 심술이 나서 입을 잔뜩 내밀고 남준이에게 한탄을 했다. 아니 그리고 남준이가 잘했으면 칭찬하고 끝내면 되지 굳이 내껄 들먹이면서 핀잔을 주실 건 뭐람. 매번 보면 난 남준이 발끝도 못 쫓아가더라...하... 너 최고....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남준이는 그저 내 볼을 손으로 톡톡 찍을 뿐이었다. 나도 엄청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도 에이제로 주셨잖아"
"에이플이랑 에이제로랑 같나요, 흥"
"그러지 말고. 츄러스 사줄까?"
"어!!"
츄러스라니!! 요즘은 꼭 놀이동산에 가지 않아도 츄러스를 사 먹을 수 있는 시대라는 말씀! 내가 좋아하는 걸 사준다는 말에 질투고 나발이고 다 잊어버리고 신이 나서 대답하니까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나를 끄는 남준이었다.
지잉- 지잉-
추워서 찔러 넣은 손으로 주머니 안에서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계속 울리는 걸로 봐선 카톡도 문자도 아닌데. 전화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보니까 저장돼있지 않은 번호였다. 뭐야, 나 모르는 번호 안 받아. 주위에서 하도 보이스피싱, 보이스피싱 거려서 애초에 난 모르는 번호는 받지도 않는다.
무시하고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다 혹시나 싶어서 핸드폰을 다시 꺼냈다. 일부러 받지 않는 티 나지 않게 진동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부재중 표시가 뜬 걸 확인하고 통화기록을 눌렀다.
전정국이네. 주말에 나와 문자를 주고받았던, 전화를 했던 그 번호였다. 저장 안 해놨었지. 저장해야 되나.
핸드폰을 오래 보고 있는 나에게 남준이가 물었다.
"왜?"
"어? 아, 그 남자애"
"남자애?"
"응. 카페에서 봤다는 남자 있잖아"
"아, 닮았다는 그 남자. 연락 온 거야?"
"어... 왔는데... 음... 그게 좀 말하려면 길어"
"주말 동안 뭔 일이 있었네"
있었지. 마아안-히 있었지.
남준이한테 얘길 안 해줬네. 츄러스 먹으면서 얘기해 줘야지. 츄러스 생각에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걷는데 또 한 번 진동이 울렸다. 아 맞다. 전화 왔었지.
"여보세요"
[한 번에 받을 수는 없는거예요?]
"미안. 왜"
[학교가 어딘지 모르니까 찾아갈 수가 없잖아요]
"올꺼니...?"
[네]
"오지마... 여길 왜 와, 니가.."
[내가 가고 싶으니까]
또 나왔네. 지멋대로 스킬. 아주 지가 하고 싶은 건 다 해야지.
"안 알려줄 건데?"
[왜]
"아니, 왜라니, 야, 왜라니"
말문이 막히네!! 왜라니! 뭐가 왜야!
"아, 맞다! 내가 말하기 싫.으.니.까"
[나 따라 하지 마요]
좀 따라 해보려 했더니 씨알도 안 먹히네. 화가 난다. 나란 년.
"하... 어딘데. 오늘은 왜"
[그냥, 오늘은. 병원 가는 날이에요]
"병원?"
[같이 가주면 안 돼요?]
한숨을 쉬며 포기하고 이유를 물으니까 병원이란 말이 나왔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수화기 너머로 같이 가달란 말이 이어졌다. 병원엔 왜 가는 거지? 혹시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게 사고 때문인 건가?
"나 또 수업 있는데..."
[내가 데리러 갈게요. 언제 끝나는데]
"4시쯤?"
[4시에 갈게요. 학교 어디냐니까?]
"○○대..."
[그때 봐요]
싹퉁바가지 없는 것. 항상 지가 먼저 끊지. 저쪽에서 먼저 끊긴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쳐다보는데.
악!! 학교까지 말해버렸어!! 게다가 병원까지 같이 간다고! 나 왜.. 나 왜 이러지! 왜 자꾸 말리냐고..! 심성도 곱지 않은 애가 괜한 동정심이 생겨서는 왜 쟤 말이면 다 오케이 인거야!
바보같이 말하라면 하고 가자면 따라가는 내가 한심하고 바보 같아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나한테 해줄 말 많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남준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러게... 해줄 말도 많고.. 나랑 같이 내 욕도 좀 해줄래...?
**
학교를 마치고 남준이와 정문을 나서는데 설마 진짜 올까 했던 전정국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 진짜 같이 병원 가야 하는 거야...?
잘 가다가 전정국을 보고 멈추니까 남준이가 물었다.
"왜 그래?"
"쟤 진짜 왔네"
내 말에 내가 쳐다보는 곳을 따라 남준이도 시선을 돌렸다. 아직 날 못 찾았는지 정문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눈을 굴리고 있는 전정국을.
"쟤야?"
"응"
가까이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 있는데 고개를 돌리던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고 날 보자 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끝났어요?"
"끝났지.."
"그럼 가요"
대답도 듣지 않고 내 손목을 잡더니 날 끌었다. 병원 가니... 정말 병원 가니... 내가.. 내가 너랑 거길 왜 가니...
"진짜 자기 멋대로네"
날 끄는 전정국에 힘 없이 한숨을 쉬며 끌려가는데 반대쪽 손목을 잡은 남준이 때문에 걸음을 멈췄다. 뭐야 구도 이상해.
남준이의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고개를 돌려 남준이를 보며 전정국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사자 의견 묻지도 않고 그렇게 막 끌고 가면 안 되지"
"누구"
남준이를 노려보다 나를 쳐다보며 전정국이 물었다.
"내 친구... 남준이"
"손 좀 놓죠"
둘 다 표정이 안 좋길래 쭈뼛거리며 대답을 해주니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남준이가 또 쏘아붙였다. 나 방어해주는 건 좋은데... 싸우진 말자..
아까 내가 츄러스 먹으면서 너무 흥분해서 말했나...? 좀 귀찮고 내가 바보 같아서 그렇지 엄청 싫은 건 아닌데...
"먼저 놓으면"
말투에 가시가 팍팍 박혀있었다. 왜 그래 너네..
전정국의 말에 남준이가 천천히 내 손목을 놓았다.
"이제 놔요"
"싫은데요"
내가 말했지? 지멋대로라고.
"허?"
어이가 없었는지 남준이가 헛웃음을 쳤다. 나 같아도 그러겠다. 애처럼 뭐 하는 거야..!!
"놓으라고"
뒷말을 자꾸 잘라먹는 전정국에게 차분히 존댓말로 대꾸하던 남준이 입에서 이내 반말이 튀어나왔다. 표정은 더 굳어버렸고... 무서워 나 어떡해..
"누나,"
".... 뭐? 뭐라고?"
"가기 싫어요?"
쟤 지금 나보고 누나라고 한 거야!? 누나?! 누나라고?!! 여전히 눈은 남준이와 마주한 채 내게 물었다.
"나랑 같이 가기 싫어요?"
누나란 말에 깜짝 놀라서 대답을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는데 전정국이 다시 물어왔다.
"그..."
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가기 싫"
"아냐! 괜찮아! 남준아 나 괜찮아! 가자 가자~"
"너,"
"이따 내가 전화할께!"
둘 다 들이받을 기세길래 얼른 남준이 말을 끊고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 전정국을 끌었다. 일단 얘네 좀 찢어놓자...
전정국 안 보이게 뒤를 돌아 남준이에게 입모양으로 '미안, 미안'을 연신 외치며 얼른 남준이에게서 멀어졌다.
**
"친구 맞아요?"
"어, 어?"
택시를 타고 달리는 동안 병원 이름 말고는 한마디도 안 하고 창밖만 바라보다가 전정국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조용한 택시 안에서 기사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만 울릴 뿐 계속 정적이 흐르다 갑자기 깨져서 그런지 말을 더듬어 버렸다. 바보같이 뭐 하는 거야...
"무슨 친구가,"
"...."
"... 아니에요"
"근데 너 아까 누나라고 한 거야?"
"...."
"맞지?"
"...."
"왜 갑자기 누나라고 했어? 누나라고 하기 싫다며?"
계속 창문 밖을 쳐다보면서 말을 뱉어대는 전정국에게 물었다. 나 분명히 들었다! 니가 나한테 누나라고 한 거!
뒤통수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당황한 게 딱, 보였다.
"왜 그랬냐니까?"
"...."
"응, 응?"
"그 사람한테 내 욕했죠"
앙? 창문에서 내게 시선을 옮기며 오히려 날 당황시키려는 듯 참 공격적으로 물었다. 아까 남준이가 지멋대로라고 말해서 그런가.... 아니.. 딱히 니 욕은 아닌데... 그냥 난 니가 좀... 자기 멋대로라고... 그냥...
"하.. 하하... 아니!"
"했네"
"아니라니까? 야! 왜 말 돌려! 너야말로 왜 나한테 누나라고 했냐니까?"
"내 맘이죠"
저봐. 지 멋대로 맞잖아. 그건 욕이 아니고 사실이라니까?
"그 사람 맘에 안 들어"
어쩌라고... 니가 맘에 안 드는데 내 친군데 뭐 어쩌라고.
그나저나 그냥 놔두고 온 남준이가 맘에 걸리네...
[남준아 미안ㅠㅠㅠㅠ]
얼른 남준이에게 카톡을 날렸다.
[너는]
[미안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뭐가 미안해]
[너 그렇게 두고 가서...]
[나는 니가 가기 싫어하는 줄 알고 그랬던 거야]
[응... 알아ㅠ]
[나한테 그렇게 징징거렸으면서
나 버리고 걔 따라가니까
좋냐?]
[아니 그게ㅠㅠㅠㅠ]
[니말대로 싸가지 없더라]
[ㅎㅎ...응...]
[난 걔 마음에 안 든다]
둘 다 서로 마음에 안 들고 참 좋네....
[너 누나란 말에
홀랑 넘어간 거지?]
아니.. 아닌데! 아니야! 아닐껄...?
[아니라고 못하는 거 봐]
[아니야!]
[늦었어 인마]
[아닌데...]
[하여간 연하 좋아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누나 소리가 그렇게 좋냐?]
[아니라니까ㅠㅠㅠㅠㅠ]
"여기요. 감사합니다"
폰에 집중해서 남준이와 카톡을 주고받고 있는데 옆에서 전정국이 기사 아저씨에게 돈을 주고 있었다. 다 왔나 보네
요즘 글잡이 축 쳐져있나.... 뭐라고 제 글이 초록글 것도 첫페이지에 있었을까요ㅠㅜㅠㅜㅠ
보고 깜짝 놀랬네ㅠㅜㅠㅜㅠㅜ 감사합니다!! 다 독자님들 덕분입니다ㅠㅠㅠㅠ 와... 초록글 첫페이지...
아마 카톡글 불맠 달았을때? 그때 가보고 진짜 오랜만일껄요? 기분이 좋네요 히히히히
저번엔 일부러 하루 걸러서 온건데 이번엔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왔네요ㅠㅠ
그래도 저 일찍 왔죠?!ㅎㅎㅎㅎ
감사합미당ㅠㅠㅜㅠㅜㅠ 사랑해요!!!
이번에는 정국이보다 남준이가 더 많은 느낌인데 오늘 아 어제? 어제다! 어제 남준이 믹테가 나온 기념이라고 하죠! 하핫 역시 갓남준이었어.... 너님 짱짱bbbbb
독자님들도 짱짱bbbbb
저 또 가볼게요~~
암호닉입니다아아아!!!!
민슈가님, 김남준님, 설날님, 런치란다님, 권지용님, 베베님, 알라님, 수슙닙, 다이님!!! 암호닉이 점점 늘어간다!!헤헤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