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궈진 프라이팬에서 기름이 요란하게 튀었다.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프라이팬 안을 골똘히 들여다보던 그가 집게로 바싹 익은 베이컨을 집어 올렸다. 이미 계란프라이와 야채가 담겨진 둥그런 접시에 그것을 옮겨 담은 뒤 똑같은 순서대로 똑같은 접시를 하나 더 만들어 식탁에 올려두었다. 맛있는 김이 두 줄기 피어올랐다. 자리에 앉은 그는 접시를 바라볼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나를 기다리는 것이다.
해가 잘 들지 않는 작은 집 안, 하나의 방과 하나의 욕실엔 모두 문이 없다. 처음을 기억한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눈과 입을 가로막았던 검은 천을 겨우 풀어 내렸을 때 나는 이 집의 거실에 주저앉아 있었고 그는 방문을 부수듯 뜯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있던 자리에 가장 자리가 얼룩진 얇은 커튼을 비뚤비뚤 박았다. 어쩔 줄 모르는 내 팔뚝을 쥐어 일으키는 커다란 손에 땀이 조금 배어있었다. 방 안은 좁고 서늘했다. 우리는 잠시 커튼을 사이에 둔 채 마주섰다. 바깥에서 안이 보였고, 안에서도 바깥이 보였다. 희미하지만. 가로로 긴 눈이 옅게 떨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천막 너머로 그를 보지 않는 척 본다. 그는 여전히 접시를 바라볼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얼마간을 더 기다리다가 손도 대지 않은 자신의 몫을 개수대에 그대로 집어넣고 자리를 뜰 것이다. 나는 걸음을 옮겨 식탁의 맞은편에 앉는다. 이걸 사람이 먹을 수는 있는 걸까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접시 안의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했다. 그가 식사를 시작한다. 나도 식사를 시작한다.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이 간간히 들린다. 아침이고 흐리다. 오늘이 며칠인지는 모른다.
그가 오빠를 죽인 지 얼마나 지났는지, 나는 모른다.
느와르
김남준.
하고 작게 발음하면 기억은 순식간에 아주 오래전의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빠와 나 두 사람이 살기에 쓸모없이 크고 넓었던 집. 그때는 언제나 현관을 열면 전속력으로 달음질쳐 2층 내 방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뛰어 오를 때 쿵 쿵 쿵 쿵 하고 빈 집에 황량하게 울리는 소리도 끔찍해서 뒤꿈치를 가능한 한 높게 세웠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쓰지 않는 1층 욕실 문을 벌컥 열고 젖은 머리를 털며 나오는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치기 전까진.
계단 중간쯤에서 소스라치다 발을 세게 접질렸다. 눈앞에 번쩍 불이 일고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아파서 그랬다. 아니다. 이상해서 그랬다. 남자는 어느새 내 곁에서 몸을 낮추었다. 빠르게 부어오르는 발목 위로 투명한 물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
은색 머리에서, 은색 물방울이 생기는 건 아니구나, 당연히 아니겠지.
멍청한 생각을 하는 사이 접질린 부위를 건드리는 부드러운 손길에 어깨를 움츠렸다. 남자의 미세한 들숨과 날숨이 얼굴 근처에서 느껴졌다. 생전 들어가지도 않던 주방에서 오빠가 뛰쳐나와 놀란 나는 한 번 더 어깨를 떨었다. 부드러운 손길은 어느새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집인데 뭐가 그리 무서워서 뛰어 다니다 이렇게 사고를 치느냐고 오빠가 핀잔을 주며 키득거렸다. 좀체 표정 변화가 없는 오빠가 웃을 때 가장 잘 생겼다는 것은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비밀이 낯선 남자와 공유되고 있었다. 오빠는 그래도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 이쪽은 김남준. 당분간 같이 있을 거야. 괜찮지?
동의 따위 필요 없는 양해를 구하는 오빠의 뒤에서 남자가 슬쩍 고개를 숙였다. 걷지 못하는 나를 공주님 안듯 들어 올린 오빠에게 민망하다고 타박을 하면서도 오빠의 뒤편에 머쓱하게 서 있는 축축한 은색 머리칼 사이로 나를 뚫어지게 보는 진한 눈동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것이 김남준과 나의 최초의 발견. 이 감정은 끝끝내 발견되지 말았어야 했다.
오후가 되자 그가 나갈 채비를 했다.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목 끝까지 여민 검은 셔츠와 검은 바지, 검은색과 은색이 뒤섞이긴 했지만 깔끔하게 빗어 넘겨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웬일인지 그가 거울 모서리에서 먼지를 뽀얗게 맞은 검은 넥타이를 끄집어내었다. 셔츠 깃을 올리고 그 아래로 매듭을 만드는 손이 영 어설펐다. 넥타이는 제 모양을 찾지 못하고 자꾸만 구겨졌다. 턱은 치켜들고 입술은 슬쩍 깨문 채로 거울 속 자신을 내려다보며 한쪽 줄을 힘주어 잡아당기는 김남준의 앞에 끼어들었다. 그의 숨이 급속도로 딱딱해졌다. 타이를 빼앗아 목에 다시 둘렀다.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오빠는 나에게 종종 넥타이를 맡겼다. 좋은 남편 만나서 이렇게 아침마다 챙겨주려면 미리 연습해야지. 근엄하게 말하면서도 얼굴은 아이처럼 설레어 했다. 피가 반만 섞인 것. 어둠의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 오빠는 바깥의 사람들이 수군대는 모든 게 맞는 말이라고 했다. 너와 나는 부모가 네 명씩 있었고 지금은 모두 죽었지. 네가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 그러니까 우리는 닮았어. 닮은 사람들은, 서로 좋아할 자격이 있지. 오빠는 나에게만큼은 좋은 사람이려고 했다. 그러려고 했으므로 그런 사람이 맞았다.
끈을 빠르고 정확하게 꼬아 그의 목에 맞게 조였다. 단단하게 채워진 첫 번째 셔츠 단추를 노려보며 손에 힘을 줄수록 셔츠 깃에 주름이 졌다. 길게 뻗은 목 언저리에서 맥박 튀는 감각이 손가락에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밀착되었다. 그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내가 오빠를 왜 죽였냐며 악을 쓰고 팔뚝을 물어뜯어도 그는 우두커니 서서 내 행동이 끝나길 기다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로. 비겁하게. 나는 그를 괴롭게 만들고 싶어졌다. 빨간 구두를 신은 분노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격렬하게 춤추기 시작했다. 제대로 조합하지도 못하고 짓이기듯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비틀거렸다. 남준의 턱부근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가 여기서 힘을 풀지 않으면 당신이 죽을까”
“...”
“아니면 나보다 힘이 센 당신이 먼저 나를 죽일까”
“...”
그러나 나는 금세 도끼를 들어 구두를 신은 분노의 다리를 직접 잘라 내고 만다.
“...매일 그렇게 차려 입을 거면, 타이 매는 법 정도는 기억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춤은, 멈춘다.
뒤돌아 방으로 향하면서 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어본 게 언제였는지 생각한다. 침대 아래 무릎을 모으고 앉아 여전히 떨리는 손을 쥐었다 폈다. 손바닥에 손톱 눌린 자국이 선명했다. 그의 목에도 자국이 남았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닮은 걸까. 만약 닮은 거라면 우리는 서로,
아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바깥에서 쿨럭이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살짝 가무잡잡한 피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검은 수트, 투명하지만 어쩐지 속내가 들여다보이지 않는 검정 뿔테 안경, 검고, 묵묵한 그 사람은 늘 오빠의 곁에 있었다. 오빠를 형님 또는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가장 조용했다.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대화의 주제와 상관없이 오빠는 그에게 늘 집중했고 그와 함께일 때 가장 편안해보였다. 그러나계절이 몇 바퀴를 돌도록 나는 여전히 그가 불편했다. 함께 살면서도 아주 가끔 마주칠 뿐이었다. 시선이 부딪히면 먼저 피하는 것은 언제나 그쪽이었다. 못마땅하다고, 아마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랬던 그가 처음으로 나를 오래오래 똑바로 바라보던 날, 그날 밤엔 비가 많이 내렸다. 자다 깨서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오빠가 거실 바닥에 엎드려 일어날 줄을 몰랐다. 며칠간 휴가를 간다고 했던 그가 거짓말처럼 오빠의 곁에 서있었다. 한손에는 늘 들고 다니던 브리프 백 대신 작은 총이 들려있었다. 굳어버린 내 앞에 어느새 다가온 그가 최면을 걸 듯 나를 바라보며, 잠깐만, 하고 작게 말했다. 땀에 젖은 얼굴이 간절했다. 현관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뒷목에 강하고 아찔한 통증이 일었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스파이, 킬러, 잠입, 처리, 같은 블랙 필름에서나 읊조리던 단어들이 실제로 나열되어 있는 삶이 나와 아주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미리 알았다고 해도 나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기가 들어 몸을 살짝 떨며 커튼을 걷고 나왔다. 식탁 위에는 메모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길쭉하고 서늘한 필체였다.
「 도망쳐요 」
나는 현관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서 손잡이를 돌려 보았다. 쉽게 열린 문틈으로 안개 자욱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 밑에 숨겨둔 상자를 열었다. 똑같은 필체 똑같은 문구의 메모지가 수북했다. 이 집으로 날 데려온 지 얼마 지나고부터 그는 이 메모를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밤이 되면 돌아왔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메모지의 장수를 세어보면 내가 얼마 동안이나 이 곳에 머물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늘 받은 메모지를 상자에 넣은 뒤 뚜껑을 덮었다. 침대 깊숙이 밀어 넣은 이 상자가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침대에 다시 누웠다. 가능하다면 깊게 잠들고 싶었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꿈에 오빠가 나왔다. 나는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울었다. 말했다. 울었다. 오빠는 나를 향해 웃기만 했다. 잔인하게도.
둔탁한 소음에 놀라 잠에서 깼다. 눈앞이 온통 캄캄했다. 몇 시쯤 되었을까. 소원대로 오래도 잤구나. 잠시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쾅 하고 뭔가가 떨어져 부딪히는 소리가 다시 한 번 크게 울렸다. 숨죽이며 커튼 앞으로 다가갔다. 어둠이 익숙해진 시야에 거실 바닥에서 꾸물거리는 검은 인영이 보였다. 괴로운 신음소리가 아주 작지만 선명하게 느껴졌다. 스위치를 올렸다. 재킷과 넥타이가 저만치 널부러져 있고 남준이 몸을 둥그렇게 말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자신의 입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 더러운 것들이 잔뜩 묻은 셔츠 왼쪽이 지나치게 젖어있었다. 방바닥이 붉게 쓸린 자국들로 가득했다.
잔인하게도.
그의 곁에 주저앉아 목 끝까지 잠긴 셔츠 단추를 빠르게 풀어 내렸다. 멋대로 떨리는 손이 자꾸만 어긋나서 아예 잡아 뜯듯이 셔츠 깃을 벌리는데 그가 내 손목을 붙들었다. 땀과 먼지와 고통으로 탁해진 검은 눈동자가 나를 가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르튼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목소리는 그의 상태만큼이나 형편없었다.
“저리가요”
“말하지 마요.”
“가라고 ,윽..!..흐...”
“이대로 죽고 싶어서 그래요?”
손을 뿌리치고 셔츠를 어깨 아래로 완전히 끌어 내렸다. 수건에 물을 적셔와 엉망인 가슴팍을 닦아냈다. 수건은 금세 검붉게 물들었다. 상대는 심장을 겨누었을까. 왼쪽 쇄골 아래 대각선으로 깊고 길게 그어진 상처가 꿈틀대며 새로운 피를 토해내었다. 아마도 그가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헤집느라 뚜껑이 활짝 열린 채로 바닥을 뒹구는 구급상자에서 거즈를 가져다 상처에 덮고 그 위로 손바닥을 내리눌렀다. 악물린 잇새로 쇳소리 같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가슴 어딘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으나 나는 애써 모른 체하며 일정한 간격으로 상처 부위를 지혈했다. 끈적이는 붉은기가 얇은 천 조각으로부터 퍼져 나와 손바닥을 뜨겁게 간질였다. 반복되는 압박으로 서서히 피가 멎어갈 즈음 남준은 더 이상 소리 칠 여력도 없는지 상체를 늘어뜨려 벽에 기대었다. 몸을 낮추어 그의 등을 끌어안듯 양팔로 감싸 올리고 붕대를 당겨 감았다. 붕대가 어깨를 가로질러 가슴으로 한 바퀴씩 감겨질 때마다 무겁고 습한 신음이 귓바퀴에 닿았다가 움찔대며 떨어졌다.
제대로 부축할 자신도 없고 당장은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방에서 이불을 끌어다 깨끗한 쪽에 펼친 뒤 그를 눕히고 두꺼운 모포를 덮어주었다. 목 위로 한껏 당겨 올려도 발밑으로 한참이나 남던 이불과 모포가 그의 위아래에서는 여유라곤 없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와중에 신기했다. 이렇게나 커다란 사람이 자신의 통증을 호소하는 법도 하나 모른 채 잘게 떨고 있었다. 정신이 없으면서도 나를 외면하기 위해 고개를 모로 튼 남준의 긴 목덜미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다시 구급상자를 뒤져 진통제를 꺼냈다. 목 아래에 팔을 집어넣어 상체를 반쯤 일으켰다.
“입 벌려 봐요.”
평소라면 우습지도 않아하며 나를 밀어내고 긴 다리를 휘적대며 저만치 가버렸을 그가 내 말 한 마디에 반사적으로 입술에 틈을 만들었다. 알약을 집어넣고 물을 먹여주었다. 그러나 제대로 넘어가지 못하고 바튼 기침과 함께 모두 쏟아져 나왔다. 남준의 일그러진 얼굴이 통증을 고스란히 토해내고 있어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알약을 하나 더 까내어 이번에는 내 입에 넣고 으깬 다음 물을 머금었다. 겨우 기침이 잦아든 남준의 상체를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빠르게 남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빈틈없이 맞추었다. 억지로 내 품에 안겨진 등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혀끝에서 씁쓸하게 맴돌던 알약 조각을 그의 입 안 깊숙이 밀어 넣으며 물을 함께 넘겨주었다. 남준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잠시 입술을 떼었다. 말라붙다 못해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남준의 입술 옆으로 미처 넘기지 못한 물줄기가 흘렀다. 아까와는 다르게 초점을 되찾은 눈동자가 나를 향해 크게 뜨여있었다. 다시 한 모금을 머금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빠르게 눈을 피했다. 찹 하고 물기어린 것들끼리 마주치는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서서히 물을 삼켜내던 남준의 내리깐 눈꺼풀에 조금씩 경련이 일었다. 입 속에 든 것을 모두 넘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호스를 연결하듯 그저 맞물려있던 입술과 입술을 이제 그만 떼어내야 했다.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동시에 남준이 한쪽 팔꿈치를 바닥에 지탱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물러난 만큼 다가온 그의 신음어린 숨이 나를 잡아 세웠다.
입맞춤.
욕실 문을 열고 나오던 김남준을 처음 본 날부터 간절히 욕망해온 단어. 그러나 그와 나 사이에 절대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 되었던 단어. 매순간을 어느 유행가의 제목처럼, 원하고 원망하던, 그 단어가,
우리를 덮치고 말았다.
느릿하게 문지르며 겹쳐오는 입술이 뜨겁고 거칠었다. 머릿속이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것만 같아 주먹을 꼭 쥐었다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팔을 뻗어 맨 어깨를 밀어내었다. 그대로 밀려나 바닥에 누운 남준이 지지 않고 내 목과 어깨 사이를 붙든 뒤 힘주어 잡아당겼다. 그의 위로 포개어진 내가 혹시나 상처를 건드릴까 바르작대자 입술을 더 깊숙이 감쳐물고 혀를 얽었다. 강하게 훑고 깨물어내는 입 안의 감각과는 다르게 목덜미에서부터 미끄러지듯 올라온 커다란 손바닥이 내 볼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눈 아래가 시큰해졌다.
“꿈,”
“...”
“일까.”
잠시 떼어낸 입술이 작게 움직인다. 그 움직임이 내 입술 위를 스칠 만큼 우리는 가까이에서 서로를 보고 있었다. 남준이 다시 혀를 내어 입술 사이를 간질이다가 잠시 힘겨운 숨을 깊이 내쉬었다. 손길이 목 아래를 스쳐 등허리를 감싸 안았다. 허스키한 음성이 나에게로 온통 쏟아져 내렸다.
“온통 네 냄새가 나.”
“...”
“견딜 수가 없어,”
“...”
“이 와중에 행복하다니, 말이 돼?”
하 하고 처음으로 들어보는 웃음소리가 공중에 허탈하게 퍼졌다. 그가 몸을 모로 틀었다. 괴로운 듯 눈썹을 잔뜩 찡그렸지만 마주 보고 누운 그대로 자세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상처 벌어지면 안되는데. 속삭이며 땀에 젖은 그의 이마를 닦아냈다. 내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다시 키스해왔다. 갈증 난 사람처럼 다급하고 간절하게, 나의 감각을 자신의 몸 속으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화답하듯 입을 열었다. 잠시 지나지 않아 볼에 축축한 것이 닿아왔다. 눈을 떴다. 처음부터 감지 않았던 그의 진한 눈동자에 물기가 일렁였다.
“나를 용서하지 마.”
그 물기는 나의 것이기도 했다. 나는 흐느끼며 대답했다.
“용서 안 해.”
“...응.”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용서하기 전까지, 절대, 먼저, 죽지, 마.”
“.....응.”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서로의 입에 숨을 불어넣고 여린 살결을 쓰다듬으며 다시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기다리지 않기도 하며 흘러가는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혼자 거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핏자국은 흔적도 없이 지워져 있었고, 두꺼운 모포가 한 겹 더 나를 감싸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거울에 내가 매어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넥타이가 걸려 있었다.
식탁 위에는 메시지 대신 간단한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현관 문고리를 잡았다.
문은 밖에서 잠겨 있는 듯, 아무리 해도 열리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고 한참을 덜걱이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나는 김남준에게 완벽하게 가두어졌다.
엄지 아래 뭉툭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닿은 입술이 천천히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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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폭설(piano ver.) - 네스티요나
느와르noir 는 프랑스어로 검은색, 또는 필름 누아르 라는 범죄 및 폭력 등을 소재로 도덕적 모호함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 장르를 통칭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저 검은색이 엄청나게 잘 어울리는 김블랙에게 초점을 맞추고 끄적였습니다.
이야기가 좀 불친절하지요? 게다가 길고 지루하기까지 한 문장들까지...
제 욕심이 한가득 들어간 글이라 읽어주시는 분들께 부담스러울까 마음을 졸이며 짧게 인사 마칩니다.
자주 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한가득. 더 열심히 쓸게요.
암호닉 신청해주신 충전기 님, 꾸기 님, 벨 님, 나무 님, 코코몽 님, 목도리 님, 모니 님, 콩 님, 고딕 님 온 마음 다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암호닉 신청은 댓글에 남겨주시면 감사히 확인하고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