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ryn Hill(로린힐)-Can't take my eyes off you
가뜩이나 좁은 무대 위에 다 큰 남자들이 몰려나와 두서없이 부대껴가며 비트에 맞춰 노랫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관객석은 이미 한 덩어리로 뭉쳐져 쏟아지는 화려한 조명과 음악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환호했다. 파도처럼 덮쳐오는 열기를 받아 먹은 다 큰 래퍼들은 보다 신나게 날뛰었다. 앵콜곡의 시작, 공연의 막바지였다.
분위기는 좋지만 자꾸 앞쪽으로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괴로웠다. 저릿한 팔을 한 번 털고 다시 카메라를 쥐었다. 배려 아닌 배려로 무대 바로 앞 비교적 편안한 구석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나를 용케 찾은 윤기 선배가 내쪽으로 다가와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척하며 뷰파인더에 손가락을 깊숙히 들이밀고선 브이자를 그렸다. 마시라는 물을 왜 머리에 들이부어서 그야말로 생쥐꼴인 선배를 향해 공연 중반부터 내 옆에 서있던 여자가 몸을 비틀며 온갖 찬사를 날려댔다. 그 바람에 겨우 잡은 중심을 다시 잃어버렸다. 나이들고 이것도 참 못할 짓이야.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했다. 고막을 왕왕 울려대는 여자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진심이다. 섹시해요 슈가오빠 사랑해요 슈가오빠 날가져요 슈가오빠 아아악 남준아아 김남주운
…
마지막 한마디와 고개를 들던 순간이 맞물린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윤기선배가 뻗은 팔에 걸린 넓은 어깨가 넘어질 듯 말 듯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덩실거리는 두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잘들 논다. 나도 모르게 비아냥대는데 순간 조명이 하얗게 바뀌었다. 윤기 선배는 그 사이 다른 동료들 무리로 사라지고 혼자 남은 김남준씨가 제자리에서 현란한 조명을 온 몸으로 맞으며 랩을 읊었다. 빨간 스냅백과 가무잡잡한 피부와 땀에 젖은 목선이 차례대로 번쩍번쩍 빛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렌즈 속엔 이제 그와 나 둘 뿐이었다. 쉼없이 떠들어대던 그의 입술이 별안간 꾹 다물렸다. 셔터를 누르던 손을 멈추었다.
- 내가 그쪽 좋아하는 게 장난이라고 누가 그래요.
1초, 2초, 3초.
눈이 부신듯 찡그리며 내리깐 시선이, 냉랭한 표정만 남긴채 나를 등지고 올라가버린 무대에서 단 한번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던 시선이, 이상하게도 흔들거렸다.
- 우습게 보는 건 오히려 당신 아니야?
옆에 있던 여자가 힘차게 뻗은 손이 렌즈를 가로지르며 그의 눈과 코를 가렸다. 아래로 살짝 보이는 슬쩍 깨문 입술에 가슴이 찌릿거렸다. 분명 저기선 내가 제대로 보일리가 없고 그렇다면 이 모든 게 나의 착각일 확률이 높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내리고 그를 마주보아야 할 것만 같았다. 답답해.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을 대신해줄 단어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함성이 클럽 안을 가득 메웠다. 공연은 끝났다.
카메라를 내렸다. 그대로 돌아선 나는 출입문을 향해 걸었다.
헤쳐도 헤쳐도 자꾸 나타나는 사람들에게 한껏 인상을 써대며 겨우 클럽 바깥 지상으로 올라왔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한숨을 깊게 쉬었다. 엉망진창이야. 그냥 작업실에 처박혀서 일이나 할 일이지 여긴 뭣하러 와서 또, 이렇게. 멍청하게 혼잣말을 내뱉다가 괜히 또 서러워졌다. 아무도 나에게 못되게 굴지 않았는데 나 혼자 지레짐작하고 먼저 밀어내고 어째서 이 모양일까. 그러니까 애초에 그자식은 왜 가만히 잘 사는 사람을,
이미 부풀대로 부풀어 올랐다. 일단 집에 가자. 이 상태론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자동으로 터질 거야.
“으억”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팔꿈치를 붙들렸다.
“무슨 여자가, 헉, 이렇게, 우사인 볼트야 뭐야, 흐어”
하루 종일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 는다. 한참이나 숨을 몰아 쉬다 겨우 굽히고 있던 허리를 편 김남준씨가 땀으로 범벅인 얼굴을 제 손으로 대충 닦아내었다. 그 와중에도 나를 붙든 한 손에는 힘을 꾹 주고 있다.
“…놔요 이거”
“싫어요.”
“…”
“놔주면 또 도망갈 거잖아.”
“김남준씨”
“나 클로징 멘트도 제대로 못하고 지금 튀어나왔어요. 돌아가면 윤기형한테 가루가 되도록 까일거야.”
“…”
“…이거 생색내는 거 아니고, 후, 어차피 나 없어도 공연 마무리는 잘 되니까 내가 무책임한 사람인 것도 아니에요.”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어요.”
“내가 설명 안 해줘도 , 다 알아요?”
“뭐요?”
“모르잖아. 내가 당신 얼마나 좋아하는지.”
미간을 좁힌 채로 그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보는 건 아주 오래간만이다. 난데없이 가슴이 뛰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흔드는데 후두둑 눈 아래로 눈물이 떨어졌다. 김남준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클럽 바깥으로 하나둘씩 나온 사람들이 우리를 흘깃대며 스쳐지나갔다. 다급히 얼굴을 가리고서 그에게서 물러나려는데 김남준씨가 내 팔을 쥔 손에 힘을 풀지 않은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끌려가면서 속으로 계속 외쳤다. 최악. 진심으로 최악의 상황이다.
커다란 나무 주변 바닥으로 담배꽁초와 음료수 캔만 가득 널부러진, 사람은 한 명도 없는 클럽 뒤 공터까지 와서도 나는 정신이 없었다. 술도 안 마셨는데 잔뜩 취한 기분이야. 눈물은 여전히 멈추질 않았다. 김남준씨의 시선이 느껴졌다. 절로 딸려오는 한숨도 선명했다. 체념한 듯 늘어뜨리고 있었던 팔에 다시 힘을 줬다. 도대체 무슨 고집인지 그는 여전히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왜 그렇게 우는건데요.”
“…”
“많이 좋아해요,”
“…”
“그동안 연락 못 한거, 정식으로 말 못한거 진짜 미안해요.”
“…”
“끝까지 아무 말 안 할 거예요?..., 억!!!”
무방비 상태에서 가슴팍을 세게 맞은 김남준씨가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에게 날린 주먹을 쥔 채로 외쳤다. 보면 되게 눈치 없어.
“이렇게 엉망인 상태로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고요!!”
“아으으윽”
“…괘,괜찮아요 김남준씨?!”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아예 쪼그려 앉은 김남준씨가 계속 앓는 소리를 냈다. 급소를 건드렸나?! 일단 일으켜세워보려 어깨를 쿡쿡 찌르는데 꼼짝도 안한다. 덜컥 겁이나서 그 앞에 같이 쪼그려앉았다. 얼굴 좀 들어봐요. 병원가야 되는거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호들갑을 떠는데 김남준씨가 갑자기 고개를 확 들었다. 그사람의 눈동자속에 비친 내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는 잠시 일시정지 상태였다. 너무나 멀쩡한 김남준씨가 버릇인듯 자연스럽게 턱을 괴었다.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서 이미 완벽히 그의 것이 되어버린 내가 만든 반지가 날 놀리듯 반짝였다. 시선을 피할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보고만 있는데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눈물 그쳤죠, 내 덕에.”
사악하기 그지없는 저 눈웃음이, 그동안 아주 조금 보고 싶긴 했었다.
“…지금 나랑 장난해요?”
“네 방금 이건 장난.”
“하,”
“그리고 지금부터 할 말은 안 장난.”
“진짜,”
그리고 다시 거두어진 웃음 아래 진지한 입술이, 설레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나랑 사귑시다.”
달밤 아래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쪼그려 앉아 듣는 고백이, 나쁘지 않았다.
“아, 이젠 사랑해줘요, 좀.”
덩치는 커다래가지고 칭얼거리는 가무잡잡한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다 나는 고개를 길게 내밀었다. 얼마 가지 않아 몽글하고 따뜻한 감촉이 입술에 닿았다. 흡, 하고 들이키는 숨이 느껴졌다.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도장 찍듯이 꾸욱 내리눌렀다 떼었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김남준씨가 벙찐 얼굴로 엉덩방아를 세게 찧었다.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표정이 우는 듯 웃는 듯 괴상했다.
...촉새는 일단 무릎을 꿇습니다.
이, 이게 얼마만이죠? 픽츄럽 중하편 업로드 날짜를 확인했더니 무려 3,3개월......게다가 연재하기로 한 이상한 연애는....(먼산을 바라본다)
바빴다는 핑계는....대지 않겠습니다...모두 제가 게으른 탓ㅠㅠ아니 애초에 저의 이 쓰잘데기 없는 푸념을 읽어주실 분들이 계시긴 할까....
말줄임표가 난무하는 답답한 사담이네요. 일단 픽츄럽이 마무리 되긴 했는데 뭔가 개운치 않으시죠? 저 역시 그래요.
조만간 꽁냥꽁냥한 뒷이야기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으헝 너무 면목이 없어요 진짜로..
암호닉 신청해주신
충전기 님, 꾸기 님, 벨 님, 나무 님, 코코몽 님, 목도리 님, 모니 님, 콩 님, 고딕 님, 화양연화 님, 설날 님, 팥빵 님, 김남준 님, 모찌 님, ㅠㅠ님, 잊잉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