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na Del ray Blue Jeans'
랩몬스터는 당황한 눈치도 아니였고, 오히려 뻔뻔한 얼굴이였다. 자리에 앉음으로써 인해 분위기를 호전시키려는 알 수 없는 노력들. 그리고 나로하여금 조금 압박감이 들었다.
슈가는 코를 씰룩이며 내 손에 깍지를 낀 자신의 손에 힘을 더욱 실었다. 왠지 자꾸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슈가의 각성상태만 머릿속에 되뇌였다. 아까 말하지 못했지만, 능력이 있다.
진은 아마도 예언의 능력을 발동하고 있을 것이다. 각성상태는 0퍼센트. 눈을 감았다. 슈가가 손을 움직였다. 눈을 감았다. 랩몬스터, 지민 그리고 슈가, 나. 네 사람은 침묵을 지켰다.
아, 참. 지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불멸의 기사께서 여왕을 곧 만나러간다고 했어. 꼭 자기 주인닮아서 상식밖의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슈가가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한숨을 쉬었다. 랩몬스터의 움직임이 보였다. 바깥은 바람이 불었다. 곧 중저음을 가진 랩몬스터의 목울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심장이 망가졌다고 하는 그의 간파능력은,
"심장이 망가졌으니까 좀 힘들텐데."
솔직히 말해서 무서웠다. 꼭 지칭대상을 찝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넌지시 말하는게 더 무서웠다. 아무말없이 깍지를 끼고있던 손을 푸니, 슈가의 몸이 잔잔하게 떨렸다.
쓸데없는 걱정한다고 대꾸했다. 랩몬스터는 푸스스, 웃음을 지으며 입으로 딱- 하는 소리를 냈다. 곧 지민도 입을 열었다. 어릿광대라는 별명을 누가 붙여줬는지 정말 거지같다고.
자꾸만 엇나가는 주제에 머릿속만 복잡해지는 기분이다. 욕짓거리를 한바가지 씌우고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이윽고 내 마음을 읽었는지 슈가가 바닥을 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할말이 뭐냐고. 그러자 갑자기 내 앞에 쨍그랑- 소리를 내며 진이 타주었던 커피잔이 깨져버렸다. 무릎을 긁어버린 기분에 멍 하니 말도 못 잇고 있자, 뒤늦게 슈가가 소리를 질렀다.
뭔 짓꺼리를 꾸미고있는거야? 워워, 진정해. 우린 아무짓도 안했어. 지민의 당황스러운 목소리 속에 장난끼가 숨어져있다. 오른손으로 긁혀버린 무릎을 감싸자 물컹, 한 느낌이 난다.
"얼마 전 위원회에서 전보가 내려왔다."
"100년만에 늙은 망태기들이 나타났군."
위원회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보수적이고 깐깐하다. 게다가 100년전, 내 라카로에 엄격한 심사와 더불어 그 전날 죽어버렸기에 나에대한 평가를 지독하게도 낮춰버렸다.
늙은 망태기라는 단어에 지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도 그건 동감한다며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는게 느껴졌다. 가만히 쳐다보다가 발을 질끈 밟아버리니 악-! 소리를 지른다.
어릿광대따위는 그저 하찮다. 나는 웃기지도 않은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몸이고, 슈가는 '여왕의 사제'였다. 반면에 지민은 '어릿광대'를, 진은 '혼탁의 예언가'.
그리고 랩몬스터, 니 새끼는.
"그 망태기들이 꽤 흥미로운 제안을 했어."
"뭔데."
"이번이 너와 내가 맞붙는 몇 번째 대결이지?"
보기만해도 화가 치솟는다. 랩몬스터는 쉭쉭- 거리는 목소리를 일부러 낼 때가 있었다.
가려진 왕자. 그것이 랩몬스터의 닉네임이였다.
"작년이 12번째였어."
존댓말따위 버려둔지 오래인 슈가가 대신 대답했다.
"원로께서 이 무의미한 싸움을 그만두라고 하셨다."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하고 있군."
"13번째로 맞는 이번 해를 끝으로 두고 싶어하셨어."
코웃음을 쳤다. 위원장 원로는 나와 먼 친척이지만 따지고보면 그렇게 영향도 없는 '인간'과 사랑에 빠진 멍청한 뱀파이어일 뿐이였다.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같다.
랩몬스터는 원로를 이해하는 몇 안되는 뱀파이어였다. 난 굳이 그를 이해하고 싶지않아했고, 슈가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려진 왕자는 마른세수를 벅벅 하며 두툼한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 해를 마지막으로, 우승자를 완전히 끝내라고 명령하셨어. 아마 이번해의 우승전적이 여왕과 나 사이의 큰 가로막이 될 것 같다. 게다가 영향력 또한 이번 해를 큰 기준으로 삼겠지.
왕자는 허리춤에 손을 갖다댄 채 웃음을 자잘히 터뜨렸다. 아마 곤두서고 있는 나의 각성상태를 뒤늦게 알아차린 탓이겠지. 미간을 찌푸리고 랩몬스터를 노려보자 어꺠를 으쓱인다.
누구맘대로 끝내고말고를 결정하지? 이건 모두 너의 부모가 자초한 일 아닌가, 멍청한 놈. 끝내려면 니 놈의 종족이 모조리 멸시를 당해하는 법이 정석 아닌가?
"여왕이라고 막말이 좀 쩌네."
어릿광대가 음산하게 속삭였다. 어릿광대의 말을 듣던 슈가가 으르렁, 거렸다.
아무리 여왕이여도 왕자를 욕하면 안되지 않아? 닥쳐, 광대새끼. 거친언행을 일삼는 슈가가 지민의 입을 봉쇄했다.
"모든건 여왕이 결정한다."
그가 이로 으득, 소리를 냈다. 더 이상 말하면 목을 따버리겠다는 징조이기도 했다. 다행히 지민은 입이 쑥 들어간채 침묵을 지켰고, 이어 랩몬스터가 말을 마저 이었다.
아무리 너라도 우리 싸움은 너무 무의미해. 더군다나 라카로를 죽인건 우리가 아니야. 의심은 하고있었겠지만 목을 물어뜯을때 잇모양이 난 절대로 아니거든. 게다가, 원로께서는...
쉭- 하는 소리를 내며 랩몬스터는 즐거워했다. 다음 원로를 우리 둘 중 한 명으로 하겠다고 선포하셨다. 당연히 그 싸움의 테스트물은 너가 내가 찾기 시작할 '라카로'겠지.
드디어 그 망할 늙은이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귀로 분명히 들었는데도 믿겨지지 않아서 슈가의 손목을 꽉 부여잡았다. 그의 숨이 탁, 하고 멈춰섰다. 지민이 웃었다.
괜찮아. 슈가가 속삭였다. 그와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눈빛으로 말했다. 나를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 다운 걸까. 슈가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슈가의 능력은, 남과 입을 통하지 않아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랩몬스터는 하, 하고 한숨과 웃음을 동시에 터뜨렸다. 결국 여왕의 몫이라 이거군. 끌끌 웃음을 차더니, 다리를 반대로 꼬며 입을 열었다.
오늘 날짜는 1월 20일이다. 12개월이 남았군. 2월 24일 쯔음에 위원회에서 공식으로 우리 둘을 초청할 계획이라고 했어. 그 때 원로께서 자세히 설명해 줄 것이다.
어릿광대는 가만히 듣다가 이제 다 이야기는 전했다며 발랄하게 중얼거렸다. 분위기와 장소, 때를 거스르고 행동하는 그의 행동은 걷잡을 수 없는 황당함을 불러일으킨다.
갑자기 확, 하고 불꽃이 일었다. 랩몬스터가 라이터로 촛불을 킨 탓이였다. 덕분에 그와 지민의 면상떼기가 두 눈에 박혔고, 못 본 기간동안 랩몬스터의 얼굴은 더더욱 냉정해있었다.
눈꼬리에 주렁주렁 그 악독함을 달고 다니겠다는 것을 미리 예고하는 것처럼. 난 그 모습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슈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려버려서 그만 눈을 크게 뜨고말았다.
100년전 너가 울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나.
가려진 왕자가 쉭쉭, 거리며 속삭였다. 듣지마. 슈가가 덩달아 말했다. 꽤 네가 사랑했던 라카로라고 생각했는데 죽이고나서 너의 반응을 보니 꽤 재밌던데?
여왕, 듣지마. 랩몬스터는 살짝 엇나가는 목소리가 더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이름이 뭐였다고 했지? 그 놈의 주둥아리를 떼버리고 싶었지만 절로 정적되는 숨소리에,
순간적으로 각성을 넘어설뻔했다. 윤기, 아니 슈가가 나를 자신의 품으로 쓰러뜨려 내 머리를 자신의 손바닥으로 감싸고, 꽈악 안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슈가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슈가의 입이 바로 내 귀 옆에서 움직였다. 그의 숨겨진 분노한 목소리와 근육의 움직임,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키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행동 모두가 몸 속으로 파고들었다.
"듣지마."
슈가가 말했다. 듣지말라고. 나와 랩몬스터는 비정상적으로 붉은 입술이였지만, 슈가는 애초부터 뱀파이어가 아니였던 것을 인증하듯이 적절한 붉은색이였다.
언뜻 손바닥에서 온기가 느껴져 움찔거렸다. 랩몬스터는 흥미로워하며 여왕을 미친듯이 좋아한다고, 끅끅 웃어댔다. 잠자코 그들을 노려보던 슈가는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아무것도 듣지마. 곧이어 치고들어온 랩몬스터의 말에 정신이 번뜩 떠졌다. 일어나려고했지만 세게 붙잡는 슈가의 악력에 금방 포기하고 입을 삐죽였다.
그럼 다음달에 봐. 한동안 또 몇 번 부딪히겠어? 라카로도 잘 찾고- 랩몬스터의 목소리와 지민의 인사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을 단번에 받았다. 주먹을 꽉쥐니 슈가가 손바닥으로 감쌌다.
진에게 인사를 건네고 새벽이 푸르슴하게 밝아오는 거리를 걸었다. 뛰기엔 너무나 에너지소모가 컸고, 뭔가 그냥 걷고싶었다. 새벽공기가 매우 차가웠다. 언뜻보이는 인간들.
옷을 여러개로 겹쳐입은 채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들과 다르게 얇은 옷만 걸친 우리를 흘끔바라보던 그들은 슈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피했다. 아마 살벌하게 변해있을 것이다.
뭐라고 생각하던간에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새끼에게 들은 말들이 너무 한꺼번에 다가와서, 머리가 아파 미칠것 같았다. 신호등이 켜지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며 멍 때렸다.
내 어깨를 감싼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큰 슈가는 나와 얼굴을 마주하자 씨익 웃었다.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웃는 모습을 가장 좋아하고 있던걸 눈치챈걸까.
그만 우울해 있어. 내키진 않지만, 라카로를 찾아야하잖아. 100년만인데 마지막 대결이라며.
무시할 수 없는 위원회이다. 늙은이 원로는 우리 둘 중 한 명을 원로로 정하겠다고 멋대로 선포했다. 라카로를 찾아야하는 100년만에. 100년 전 잃었던 나의 라카로를.
"슈가."
"...난 슈가보다 민윤기가 더 좋은데."
"...이름집착."
"한 번만 불러줘."
윤기야.
그러자 슈가가 웃었다. 응, 왜.
"이번이 마지막인데 어떻게 될지 불안해."
"...불안하다고?"
"응."
"으이그, 잘할꺼야."
"어?"
"이번엔 너가 이겨야지. 내가 괜히 닉네임이 그딴거겠냐."
"아, 그거."
"난 너한테 목숨건 놈이잖아."
슈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머리카락을 눌러앉는 그의 손바닥이 왠지모르게 따뜻하다. 신호등의 파란불이 켜졌다.
라카로를 찾기 시작했다. 슈가는 수소문을 듣고, 여기저기를 먼저 가본 뒤에야 나에게 돌아와 알려주었다. 이번엔 25번가를 가보자, 34번가도 있다더라.
라카로는 대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에 살지 않는다. 라카로의 여러조건들 중 가장 첫번째는, 갖고있는 음침함과 검은 분위기였다. 매끈한 피부와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라카로를 단련시키는 것은 나의 몫이였다. 슈가는 벌써 12번이나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매번 실패를 해도 다음날 멀쩡한 얼굴을 들고와서는 다른곳을 가보자며 이끌었다.
여자던 남자던 상관없었다. 나의 부모와 랩몬스터의 부모가 점찍었던 라카로는 여자였다. 책에서 언뜻 본 적이 있었다. 뱀파이어는 존재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는 그 책에서.
나의 부모의 흔들린 사진과, 랩몬스터의 부모사진이 단체로 찍혀 논란이 되었던 사진이였다. 인간들은 진짜로 뱀파이어가 있냐며 불안에 떨어했던 사진이였기에,
그 여자의 정면사진을 구할 수 있었다. 하얀 얼굴에, 무쌍이였다. 작은 얼굴과 날카로운 입술선을 가진 여자였다. 쫙 찢어진 눈매, 그리고 고운 콧대를 가진 전형적인 미녀였다.
슈가는 그 사진을 봐도 내가 더 아름답다며 끌끌 웃음을 찼다. 헛소리한다며 머리를 쥐어박았지만, 사진으로도 나오는 그 암흑적인 분위기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었다.
또 고단한 1년이 될 것이다. 100년을 숨죽이고 살았던 만큼 힘 또한 비축하고 응용시키기에 바빴다. 얼굴을 손바닥에 감싸고 찾지못할때마다 내가 무능력한 물체가 같았다.
그럴때마다 슈가가 나를 달랬다. 내일은 꼭 찾을꺼라고. 제발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훌훌 털어냈지만 항상 그 날 밤은 술을 걸치고 말았다.
침대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랩몬스터와 진의 집에서의 조우를 한지 2주가 지났다. 매번 술에 꼴아 골골 거리면, 슈가는 말 없이 나를 데리고 침대에 눕혔다.
맨 정신으로 슈가와 관계를 맺은 적이 까마득했다. 어제는 너무나 거하게 취하는 바람에 슈가의 목덜미를 물어버렸는데, 그 뒤로 암전을 맛보았다.
깨어나보니 걸쳐져있는 것은 오직 이불뿐이였고, 붉으스름한 자국들이 군데군데 찍혀있었다. 심지어 도드라져보이는 목덜미는 싯푸른 멍까지 든 상태였다.
"일어났어?"
쓸데없이 다정하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슈가는 미소를 씩 지으며 문에 몸을 기댄 상태로 나를 멀찍이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도 가보자. 그가 말했다. 오늘은 좀 찾을 것 같기도해. 마지막 동네거든.
어느덧 마지막 동네까지 도달했다.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 인간과 뱀파이어는 공존한다.
* 같은 공간에 존재하며, 인간과 뱀파이어는 서로 그 경계선을 넘나들 수 없다.
* 그 선을 꺾는 대표예가 '라카로'이다.
* 3편에서 나왔던 첫 이야기의 주인공은 슈가이다.
* 랩몬스터 - 가려진 왕자
'나' - 여왕
슈가 - 여왕의 사제
지민 - 어릿광대
진 - 혼탁의 예언가
? - 불멸의 기사
? - 라카로
? - 돌아온 탕자
* 암호닉 *
태아가 님 / 전정국 오빠 님 / 태형됴아 님 / 초딩입맛 님 / 그레이 님 / 김남준 님 / 봄날의 너 님 / 설탕맛 님
오늘도 정말 감사합니다:D 암호닉은 받고있어요~
즐겁게봐주셔서 저야 감사할 따름입니다^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