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욤줄] White
하얗다.
이제는 물려버린 새하얀 도화지색 배경에 아무런 감흥없이 뻑뻑한 눈만 깜빡였다.
익숙해질만도한 고통은 도무지 익숙해지지않고 자꾸만 호흡을 곤란하게 한다.
그리 편하지는 않은 딱딱한 병원 침대는 마치 나 대신 울어주는 듯 삐걱대고, 똑똑 떨어지는 링거액은 괜시리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매번 눈을뜨면 장소는 달라도 이런 새하얀 배경이다.
눈동자 마저 물들여 버릴 것같은 눈부신 흰 천장을 응시하며 손가락만 꼼질거리고 있는데 똑,똑 명쾌한 노크소리에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도르륵 문 소리를 내며 눈에 익은 단발 머리의 간호사가 들어온다.
그리곤 내 옆에 다가섰을 때, 나는 습관처럼 손목을 슥 내밀었다.
항상 해왔으면서 뭘 새삼스레 인상을 찌푸리는지, 간호사는 꽤나 오래되어 변색된 피가 묻은 붕대를 풀고 새 붕대로 압박한다.
계속해서 봐왔는데, 이 사람은 별로 날 좋아하지 않는 것같다. 항상 굳은 표정으로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입 한 번 열지않고 해야 할 일만 묵묵히 하고 나가버린다.
하긴, 나라도 좋진 않았을 거같다. 허구한날 쇼크상태로 실려가는 자살중독자라니, 끔찍할만도 하지.
반면에, 나를 안쓰럽게 보는 부류들도 있다. 그래서 가끔 복도를 지나칠때면 따듯한 캔음료를 환자복 주머니에 넣어주거나, 동정심을 담은 눈빛으로 입꼬리를 올려 웃는 표정인양 나를 격려한다.
사실 어느쪽이든 이젠 별 감흥도 없다. 무뎌졌다고 할까. 나를 어떻게 보든 그건 그 사람의 쓸데없는 개인적인 감정일 뿐이다.
손목에 있는 상처의 존재 이유를 기억해내는 것도 지쳐버렸다.
왠지 이러면 누군가가 다가와 안아줄 거같은. 막연한 기대감과 충동에 사로잡혀 찔러넣는 것이다.
가끔은 환상을 보기도 한다. 정말로 누군가 꼬옥 감싸주는 그런 환상을. 진짜였으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그런 환상마저 희게 빛나 곧 알아차리고 만다. ..아무 색도 없는 밋밋하게 빛나는 흰색은 정말 쉽게 질린다.
문득 생각해 보건대, 이대로 죽는다면 그 환상은 어떻게 되는걸까. 나를 위해 슬피 울어줄까, 아니면 ...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건 마치 상사병같지 않은가?
하다 못해 환각에 집착하다니. 정신 병자가 맞긴 맞나보다 싶었다.
가만히 누워있다보니 쓸데없는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 언제쯤 내 정신병은 고쳐질까. 말만 번지르르하지 무능한 의사들이 밉게 느껴졌다. 그동안 내가 찔러왔던 상처의 잔상은 이미 수십개가 넘었고, 나날이 죽어가는 느낌이 든다.
기분이 두루뭉실한게 약 기운 때문일거라고 생각하며 또 가만히 눈을 감는다. 오늘도 그리운 꿈을 꿀 것같다.
**릴레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