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一 切 唯 心 造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쏘크라테스
1
산 속에 봉황이 있는 것이 참으로 기이하구나
8년 후
"잡아, 어서 잡아! 종인아!"
"니가 이쪽으로 몰아야지! 더 뛰라고!"
지금 뭘 하느냐고 묻는다면.
"잡았다! 잡았다!"
내 가족들과 먹을 꿩을 잡고 있다.
꿩의 목을 낚아 챈 나는 종인이에게 보란듯이 보여주었다. 맨날 뜀박질 못한다고 개 지랄을 하더니만, 종인이는 놀란 듯 하다가 나보다 더 기쁜듯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종인이는 내 쪽으로 오더니 가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단도를 꺼내 들어 단숨에 꿩의 목에 흠집을 내었다. 오늘 저녁은 꿩고기구나, 군침이 절로 넘어갔다. 나는 종인이에게 꿩을 쥐어주고는 이때가 아니면 하지 못할 허세를 부렸다.
"야, 멋지지 않냐. 내가 단번에 잡은 거 봤어?"
"요거 하나 잡았다고 유세는. 니가 좀 더 빨리 뛰었으면 아까 전에는 잡았을껄."
"내 꿩다리 너한테 줄려고 했는데."
"멋있었어, 진짜로. 역시 꿩은 너가 세상 제일로 잘 잡는 것 같다."
그래, 이 맛이지. 꿩 먹을 때 까지는 놀려 먹을 수 있겠단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종인이는 흐트러진 짐을 정리하고는 꿩을 등 뒤로 들쳐매었다.
"그만 가자, 대장이 뭐라 하겠어."
"너 먼저 가있어. 모퉁이만 찍고 다시 올게."
"그럼 빨리 와."
종인이는 내게 인사를 하곤 산 아래로 내려가 갓길 쪽으로 들어갔다. 저 갓길을 지나면 우리 집, 우리 가족, 설나비단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 하나가 나온다. 설나비단은 우리 도적단의 이름으로 겨울 나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 대장이 꼭 겨울에 다니는 나비를 닮았다고 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불리우는 이름인데, 중심지에서는 꽤 유명한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설나비단에 소속되어 있다. 내가 12살 때 도적단을 꾸리려던 대장에게 발견되어 8년을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늘 대장에게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다.
종인이는 나보다 한 살이 어린 동생이다. 친족은 아니지만, 이 설나비단에서 내 또래는 종인이 하나 뿐이라 늘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 종인이는 대장장이인 김씨 아저씨의 둘째 아들이다. 첫째 아들은 일찍이 독립하여 약초학을 공부하러 산 속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아직 행방은 알지 못한다.
나는 깊은 산 속으로 발 걸음을 옮겼다. 요즘 산 속에서 다른 도적단이 도적질을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매일 수차례씩 순찰을 돌고 있다. 대장은 내게 쓸 때 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대장의 일을 조금만 더 덜어주고 싶었다. 대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던지 할 수 있었다. 나는 보폭을 크게 움직였다. 아직 썩지 않은 나뭇잎들이 바닥에 널려 어디가 구멍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빨리 모퉁이만 돌고 와야겠단 생각에 옆을 보았을 때,
나는 붉은 봉황을 보았다. 아니, 사람형태를 한 붉은 봉황을 보았다.
"봉, 봉황?"
붉은 비단 도포를 입은 남자가 보였다. 검은색 신을 신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남자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내 쪽을 바라보았고, 나도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남자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곧 바닥에서 일어나 내게 뛰어왔다. 갑자기 달려드는 남자에 놀라 나는 뒤로 발걸음질을 쳤다.
"누, 누구시오!"
"나 좀 구해줘, 길을 잃었다고!"
봉황인 척 하는 사람이야, 뭐야! 붉은 도포를 입은 사내가 나를 바라보자 정말 반갑다는 듯이 뛰어왔다. 눈도 커다란 것이 정말 봉황같은 생김새를 한 사내였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 제대로 뛰어오는 그를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렇게 사내와 나는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나를 덮치듯 엎어진 사내의 몰골을 보아하니 꽤 오랫동안 산 속에서 길을 잃은 꼴이었다. 큰 키 때문에 무거운 무게. 나는 숨을 멈추고 말았다.
"흐어어어, 나 진짜 산 속에서 죽는 거 아닌가 생각했어! 왜 이제야 온 것이야!"
"저, 저기 괘, 괜찮으신지. 일단 모, 몸 좀 일으키시는 게."
사내는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고, 나 또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울먹이던 눈에서 뭔가 빛이 반짝이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계집애야? 아님 사내새끼야?"
"초, 초면에 무슨 말이오!"
"곱상하게 생긴게 꼭 계집애 같아서 그렇다."
"계, 계집이라니."
"하여튼 반갑다. 찬열이라고 한다. 우리 통성명은 해야지. 그나저나 이 거지같은 산에서 나가는 길 좀 알려줘라."
참으로 희한한 사내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