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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아. 나를 좋아해?
물론이지!
좋아한다고 말해 줘.
응?
나, 좋아한다며.
으응.. 좋아해! 진기형아 좋아합니다!
한번만 더.
너무너무 좋아해! … …형아, 울어?
아아니. 하품한건데.









Medusa
더 위험해도 나만의 널 지킬거야



































005.





태민은 회오리치며 배수구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핏물을 응시했다. 퉤, 세면대 안에 빨간 핏덩어리가 튀었다. 기분나쁘게 끈적이는 입가를 헹구고 태민은 대충 욕실 안을 정리했다. 오늘은 또 무슨일로 맞았더라.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는 폭행은 이제 익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처음엔 그 대단한 제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는 예의 웃는 얼굴로 내가 왜, 하고 지나쳐버렸다. 개새끼. 태민은 저를 괴롭히는 소위 일진 무리들 보다 제 형이 더 미웠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혼자 나가버린 것 같은, 이제는 미쳐버린 그 사람. 


"아, 이젠 인간의 틀도 벗어났나."


실없이 웃어버린 태민은 제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고 침대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신나게 얻어맞은 몸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시작된 원인모를 왕따는 그가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졌다. 짐작이 가는 이유도 없었다. 단지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항상 조용히 앉아만 있어 그게 우스워보였나 보다, 하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태민아. 형이 맛있는거 사왔어."


언제 돌아왔는지 모를 진기가 태민의 이름을 부른다. 태민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민은 진기에게 항상 어리고 귀여운 철부지 동생이어야 했다. 그의 부름에 반드시 나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보고싶지 않은 진기의 '다른 면'을 봐야만 했기 때문에, 태민은 그저 조용히 맞춰 줄 뿐이었다.


"어어, 초콜릿."


짝, 식탁 위에 널려있는 주전부리 사이에 제가 좋아하는 초콜릿이 보여 손을 뻗던 태민은 갑작스레 느껴진 아픔에 놀라 제 형을 쳐다봤다. 발갛게 달아오른 손등이 쓰라렸다.


"그건 형 거잖아."


종현이가 사준거란 말야. 웃으며 말한 진기는 낼름 제 몫으로 그 초콜릿과 몇가지 자잘한 것들은 챙겨다 방으로 쏙 사라졌다. 태민은 멍하니 부은 손등을 쓰다듬다 그냥 빈 손으로 방에 돌아왔다. 지금 뭘 먹었다간 다 올려버릴 것 같았다. 진기는 항상 저런 식이었다. 마냥 형만 쫓던 어릴땐 괜찮았지만, 태민이 나이가 먹어갈 수록 진기는 태민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고시원에 들어간다며 짐을 싸들고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진기는 종현과 태민이 접점이 있을때마다 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꼭 안부를 묻는 양 종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종현이한테 가까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계속 반복되는 말에 태민은 결국 두 손을 들어버렸다. 일방적으로 종현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종현도 태민에게 연락을
하지 않게 되자, 태민에게 걸려오던 진기의 전화도 멈추었다. 태민은 아직도 진기가 저를 감시하고 있던 건지, 아니면 종현을 감시하고 있던건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제 형이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렴, 상식을 벗어난 사람이니까.

태민은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다가, 곧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메신저에 들어가 이리저리 뒤져보다 기범의 이름을 누른다. 


[형 머해영] 

[잘준비.]

[아..]
 
[?]

[그냥 심심해서영]


분명 메세지 옆에 쓰여있던 1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답은 없었다. 그 이후로도 제 주소록을 뒤적여보던 태민은 도저히 연락할 사람이 없어 한숨을 쉬고 협탁 위에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정말이지 암울한 인간관계였다. 


[내일 볼래?]


기범에게 온 메세지였다. 태민은 잘못봤나 싶어 눈을 깜빡였다. 기범이 먼저 약속을 잡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무슨 바람이 분거졍?^^;;;]

[소개시켜주고싶은사람이있어.]


태민은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 사람이요? 태민은 소리없이 입을 벙긋대며 허공에 기범이 있는 양 되물었다. 형이 내가 모르는 아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차마 기범이 기분 나쁠까 싶어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하고 그냥 답장을 쓴다.


[ㅇㅇ좋아영]

[너 편할때 우리집으로 와.]


뭔가 답이 좀 늦게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태민은 넹, 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며 화면을 껐다. 










[내가 너희 집으로 갈]


민호의 방에 웅크려 앉아 태민과 채팅을 하고있던 기범은 딱 손을 멈추고 멍하게 화면을 응시했다. 내가, 방금 뭐라고 쓴거지. 기범은 쿵쾅대는 가슴께를 부여잡고 급하게 썼던 내용을 지웠다. 손이 달달 떨려온다.


[너 편할때 우리집으로 와.]


간신히 쓴 메세지를 전송하고 기범은 들고있던 핸드폰을 침대위로 던져버렸다. 몰아치는 격한 호흡에 잔기침이 나왔다. 태민이네 집은, 그 사람 집이잖아. 몰려오는 기억이, 떠오르는 그 웃는 얼굴이 괴로웠다.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이 양 눈이 뜨거워진다. 몇 년이 흘러도 지옥같던 시간은 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그의 앞에 버티고 서서 눈을 뜰 때마다 그를 짓눌러왔다. 이젠 그만 할 때도 됐잖아. 기범의 가련한 애원소리는 묻힌지 오래였다.


"…울지 마."


아아, 따스한 손이 제 등을 토닥인다. 귓가에 대고 끊임없이 괜찮아, 괜찮아, 하고 속삭인다. 기범은 민호의 목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쏟았다. 아파, 민호야, 나 아파… 


"이제 괜찮아, 기범아. 네 앞에 있는건 나잖아."


민호는 진심으로 기범을 지켜주고 싶었다. 너무 작고 여려서 잔잔한 바람에도 아파하는 이 나비소년을 제 손안에 담아 지켜주고 싶었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하니. 기범의 상처를 지지는 꼴이 될까 묻지도 못하고 그저 그렇게 등을 토닥여 준다.












* * *












이진기. 태민이는 아직 아기잖아. 열한살이면 다 컸어. 그만해.


으아앙, 결국 눈물이 터졌다. 진기는 제가 아끼던 인형을 끌어안고 그 귀를 침으로 흥건하게 만들어버린 동생을 노려봤다. 너는 뒤늦게 나타나서 내 모든걸 앗아가. 네가 가져간 그 곰인형, 내가 처음으로 받은 생일선물이란 말야… 진기는 훌쩍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제 방으로 다다다 달려들어가 문을 걸어잠궜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저를 따라오기는 커녕 그 자리에서 쯧쯧 혀를 차기만 했다. 

행복한 세 식구 사이에서 진기는 자신이 불청객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바람에 항상 타인의 손에 맡겨져 응석 한 번 부리지 못하고 자란 진기는 태민의 탄생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걱정이 되지 않았는데, 태민이는 걱정이 되는 거야? 나는 보지 않아도 상관 없지만 쟤는 안돼? 나는 필요 없는 존재고 저건 필요한 존재란 말이야? 아직 충분히 어렸던 진기는 부모님의 따스한 관심과 사랑이 절실했지만 그들은 태민에게만 애정을 쏟았다. 


다른 애들은 주말에 가족끼리 놀이공원에 간대…


굳게 닫힌 문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한 말은 끝내 그 안을 멤돌며 진기를 압박해왔다. 나는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직장을 다니느라 자신의 자식에겐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 그런데 말야, 학교를 다녀보니 아니었어. 


나만 그런거였어…


나만, 외톨이었어. 나만 눈썰매장에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 애들은 90점만 맞아도 칭찬을 듣고 다같이 외식을 한대. 나는 왜 백점을 맞아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거야? 내가 받은 95점짜리 시험지는 엄마의 손에 찢겨 나갔잖아, 그런데 다른 애들이 받은 95점짜리 시험지는 곱게 접혀서 추억 상자에 들어간대.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그렇게.

친구들이랑 놀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해서, 공부만 했어. 친구도 없이 그렇게 매일매일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서, 점심 시간에도 교과서를 펴놓고 있어. 집에 있는 시간 내내 필기 노트를 읽고, 쓰고, 외워. 그렇게 해서 사랑받을 수 있다면 나는 계속 해. 

그런데, 나는 내가 지금 사랑받고 있는지 모르겠어.

훌쩍, 방 구석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진기는 고개를 제 무릎에 묻고 숨을 죽였다. 더 오래 울었다가는 다 큰 녀석이 시끄럽게 운다며 매를 들 아버지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조그만 몸통이 들썩였지만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속으로 끙끙대며 참아낸 눈물은 고스란히 아이의 속을 갉아낸다. 생채기에 뒤덮힌 마음은 끝내 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괴물을 낳았나봐. 

애 듣는다.

들으라고 해. 쟤는 정상이 아니야. 어떻게 지가 키우던 새를 그렇게…

그만 둬. 말한다고 뭐가 달라져? 태민이라도 제대로 키우자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괴물을 낳았는지. 진즉에 지워버렸어야 했어. 

우리 태민이는, 저렇게 자라지 않게 해야지. 


아아, 진기는 귀를 틀어막았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참고 또 참아도 호흡은 거칠어져 왔다. 작은 손이 달달 떨려왔지만 그 누구도 잡아주지 않았다. 그 곁에, 아무도 없었기에.










* * *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15세 이후에 시작되며, 18세 이상에게만 그 진단이 가능하다. 15세 이전의 아이들은 저마다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어 부모 혹은 선생의 꾸준한 관심과 지도가 있다면 쉽게 고칠 수 있으므로 인격장애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진기는 읽고있던 심리학 책을 덮어버렸다. 이젠 아무렴 상관 없어. 진기는 몸을 일으켜 종현이 준 초콜릿을 들고 침대에 길게 누웠다. 살살 그 껍질을 쓰다듬으며 미소짓는다. 

종현아, 계속 나를 봐 줘. 나를 좋아해 줘. 사랑해 줘. 나는 너를 갖기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으니…















---

사실 애정에 목마른 진기여씁니다ㅠㅠ 
종현이에게 집착하게 되는 이유가 있었던..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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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진기가 그런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군요ㅠㅠㅠ 조금만 진기에게 관심을 더 가져주었다면 기범이한테도 아무 일 없었을 수도 있었을지 모를텐데ㅠㅠㅠ다음편 너무 기대가되요!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2
허류ㅠㅠㅠㅠ진기가 종혀니한테집착하는 이유가잇엇네ㅠㅠㅠㅠ진기부모님나빠요ㅠㅠㅠㅠㅠ다음편도 기다릴게요♥
11년 전
독자3
결국 진기를 좋아하는 인물은 하나도 없는 건가요ㅠㅠ 종현이가 그런 진기를 예쁘게 치유해줬음 하는데 잔뜩 꼬인 관계때문에 어떻게 나아갈지 모르겠어요...저한텐 진기가 제일 정이 가는 캐릭터예요
11년 전
독자4
기범이가 민호때문에 행복해졌으면 좋겠네요ㅜㅜ진기는 어렸을때 아픔이 있군요ㅜㅜ종현이한테 집착하는 이유가 사랑에 목말라서라니 안쓰럽네요ㅜㅜ진기도 행복해지길 바라면서 다음편 기다릴께요!
11년 전
독자5
헐 어제 봤던부분이에요 저 어제 ㅇㅈ에서.... 핳 진기가 종현이한테 사랑받고 행복해질수 있을까오ㅠㅠㅠ 다음편 기다릴게요!
11년 전
독자6
진기도 불쌍한 캐릭터네요...ㅠㅠ 진기 부모님 나빠요ㅠㅠㅠㅠㅠㅠㅠ종현이가 진기를, 민호가 기범이를 치유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다정한 민호라니ㅠㅠㅠㅠ제 취향 직격타... 너무 좋아요ㅠㅠㅠㅠ
11년 전
독자7
뒤를 하나도 예상을 못하겠어요.... 진짜ㅠㅠㅠ 간만에 재밌는글 만난거같아요ㅠㅠㅠㅜㅠㅠㅠ
11년 전
독자8
진기야ㅜㅠㅠㅜㅜㅜㅠㅠㅜㅜ내가 다시널 착하게 키워줄게ㅠㅠㅠㅠㅠㅠㅠㅠ다들 잘 상처가 아물면좋겟다ㅠㅠㅠ
11년 전
독자9
ㅠㅠㅠㅠ진기........어떻게요ㅠㅠㅠㅠㅠㅠㅠㅠ엉엉엉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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