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다툼 下
그렇게 윤기는 답장이 없었다
분명 어두워진 밤에 보냈는데 새벽이 지나가도
별이지고 달이지고 해가 뜰때까지 답장이 없었다
바보같이 난 잠 못들면서 기다렸다
윤기의 연락을
문자를 막상 보내고 나니
후회가 잔뜩 밀려 들었다
무슨 말이든 좋으니까
욕을 해도 좋으니까
물론 니가 그런 말을 나에게 할리 없지만
그렇게 기다렸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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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고 너랑 떨어지기 싫다고 해주길 내심 바랬는지도 모른다
아니 솔직히 같이 있자고 말해주길 바랬다
제발
윤기에겐 내 마음이 닿질 않았나보다
오늘 하루가 아직 어제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정말 우리 이렇게 헤어지는거야..?
정신을 차리려 세수도 열심히 하고 밥도 열심히 먹었지만
세수하며 보이는 수건에도 '저 색깔 민윤기가 좋아하는 색인데'
반찬 하나를 만들어도 '저거 윤기가 별로라면서 딴 거 만들어 달라고 투정 부렸었는데'
다 너와의 추억에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도 니 향기가 난다
내 모든 생활이 모든 물건이
다 너가 생각나 미칠 거 같아 윤기야
제발 나만 이렇게 간절한 거 아니라고 해줘
너도 나처럼 내 생각한다고 말해줘 제발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 팬미팅으로 인해 하루가 바쁘게 시작되었다
잠이 깨지도 않았는데 메이크업을 받고
옷을 갈아입고 정신을 차리려 뺨을 세게 두드려보았다
이상하게 머리가 무겁고 손이 굳어 있었다
어제 그 문자 때문인지
가슴이 답답하고 시야가 흐려졌다
멤버들의 목소리도 멀어지는 것 같았다
"형 왜그렇게 멍해요 어디 아파요?"
"어? 아니 괜찮아"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애써 접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어제 탄소의 문자를 받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많이 망설였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왜이러지 싶었고 당장 탄소를 만나러 가려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미 예견된 일처럼 마음이 저려왔다
날 다 이해해주고 기다려주는 일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란 걸 난 눈치채지 못했다
매일매일 날 기다리는 모습이 당연해져서
익숙해져서 고마움을 몰랐다
일에 미쳐사는 날 이해해달라는 그 흔한 말 한마디도
난 탄소에게 말한 적 없음에도
묵묵히 날 안아주고 뒤에서 지켜줬다
안되겠다 오늘은 가야겠다
이렇게 소중한 널 놓칠 순 없었다
4년간 너가 질린 적 단 한번도 없었고
딴 여자를 좋아해본적도 절대 맹세코 단 한번도 없다
제발 조금만 기다려줘
우리가 이렇게 멀어질 순 없잖아 아가씨
다 내 잘못이니까 아가씨는 그냥 기다려줘 오늘만
결국 바보같이 난 민윤기를 보기 위해
작업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일부러 없는 시간에 가려고 일찍 집에서 나왔다
어떻게 하루도 못가냐 김탄소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널 좋아하는데
민윤기 바보야
지금 워커홀릭 민윤기는 미운데
4년동안 날 사랑해준 민윤기는 좋아
그래서 가는거야 민윤기 알아둬
작업실 분명히 어제도 왔었는데
묘하게 낯설었다 정말 묘하게도
일을 막 끝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책상에 남아 있었다
이 볼펜 쓰지말라니까 말 안들어
이 공책은 내가 사준거네
공책은 늘 내가 사주는 것만 쓰는 너
그런 사소한 것에도 웃음이 났다
나 진짜 미쳤나봐
근데 공책에 무언가 쓰여있었다
작사한건가
아니다 낙서처럼 휘갈겨있는데..
[아가씨 이런 말하면 나 어떡해
답답하네
내가 다 잘못했어
익숙함
무서운 것
두려운 것
고마운 것
아가씨 보고싶다
벌써]
고갤 돌려보니 한쪽 귀퉁이 벽면에는
온통 내 사진들로 가득했다
언젠 좋아하는 포스터를 붙인다고 했으면서
소파위엔 내가 사다준 것들로만 가득 차있었다
목베게, 담요, 비타민 등등
너나 나나 진짜 바보커플이다 그치
누가보면 비웃겠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윤기야
그전에 나한테 와줘 이번엔 니가 먼저 와줘
스케줄이 끝난 지금 급하게 너의 집 앞으로 달려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불러봐도 대답 없는 너
문을 아무리 두드려봐도
전활 해도 너의 집이 맞는지 수백번을 확인해봐도
넌 나오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이 차가워졌다
분명 니 향기가 나는데
너가 없어 탄소야
할 수 없이 도착한 작업실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이 울적했다
도대체 어딨는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문을 열어보니
안도의 웃음이 얼굴에 번졌다
소파에 기대 잠들어 있는 너
탁자 위엔 뭘 또 가져온건지
바리바리 챙겨온 너
왜그래 아가씨
진짜 미안해지잖아 참을 수 없게 해
날 왜 맨날 나쁜 사람 만들고 그래
한참을 너의 손을 잡았다 너의 머리카락을 만졌다하며
변태같지만 너를 느끼고 있었다
꿈은 아니겠지 꿈은 아닐꺼야
누군가 날 만지는 손길에 눈이 떠졌다
눈 뜨자마자 보이는 사람이
그토록 보고싶던 너란 걸 알아챈 순간
눈물이 번졌다
"이제서야 왔네 나한테"
"미안해"
"그래그래
기다리느라 혼났네 오늘 스케줄은 잘 마쳤어?"
이렇게 널 다시 봐서 좋다
평소처럼 말 건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가씨"
"응?"
"....키스해도 돼?
재회기념으로"
말은 거창하게 해놓고 왜 고개 숙이는 거야
능구렁이
"오늘만큼은"
오늘만큼은 좋아
너가 뭘하든 다 좋아
내 눈앞에 내 옆에만 있어줘
아가씨 할말 참 많았는데
아가씨 앞에 서니까 너무 떨려서 다 잊어버렸어
바보같이
근데 아가씨 오늘따라 더 이쁘네
하긴 이렇게 이쁘니까 4년동안 안 질리지
싸우는 거 길게 못 쓰겠어요 나도 싸우는 거 싫어서 그래도 싸우는 것도 아주 나쁘진 않죠? 화해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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