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전 새로 이사온 집은 아직 낮설기만 했다. 낮선 이웃들, 낮선 길들 속에서 나는 낮선 아저씨를 만났다. .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 있다. 내 위로 다섯살 차이나는 오빠가 한명 있는데, 워낙 오빠가 어른스럽고 나에겐 아빠같은 존재라서 뭐랄까...다섯살 이상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남자라면 누구든지 '아저씨' 로 분류되는 이상한 습관? 같은게 있다. "아저씨. 오늘은 일 안나가요?" "꼬맹이 넌 학교 안가냐." "어제부터 방학...아 꼬맹이 아니라고요!" "뭐래. 내눈엔 그냥 꼬맹이거든. 그럼 너도 나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던가" 처음에는 그냥 이웃집에 떡을 돌리러 갔을 뿐인데 초인종을 누르자 느릿하게 문을 연건 하얀 피부의 몸집이 왜소한 남자였다. 밝은 햇빛에 온 얼굴을 찌푸리고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서 있어서 저절로 움츠러들었지만 여기서 그냥 내빼면 더 이상한 새 이웃이 될거같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떡 접시를 내밀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첫 인사를 내뱉었다. 그러고보니 이 아저씨, 처음부터 나를 꼬맹이라고 불렀었다. "...넌 누구냐 꼬맹아." "여, 옆집에 새로 이사왔는데요...여기 떡..." 불퉁한 얼굴로 떡 접시를 받아들기에 나는 욕이나 내뱉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그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접시에 딱봐도 비싸보이는 마카롱이나 작은 쿠키들을 담아주었다. "아무래도 그냥 보내는건 예의가 아닌것같아서. 선물받은거니까 그렇게 부담스러워 안해도 돼." "가, 감사합니다!" "꼬맹이 단거 너무 많이 먹지말고. 잘가라." 쿨내나게 문을 닫으며 손을 훠이 흔들어보이는 그에 나는 솔직히 좀 황당하고 당황스럽기도했지만 우와. 짱 멋있어. 라는 생각이 좀 더 컸던거같다. 아. 그가 잘생긴 얼굴이라서 그런건가. 아무튼 그때부터 조금 옆집 아저씨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으로 나는 아침에 아저씨가 나가는 소릴 기다렸다가 함께 나간다던지, 가끔 엄마가 만들어놓은 반찬을 조금 싸들고 괜히 찾아간다던지하는 이상한 방법들로 아저씨에게 접근(?) 했다. 덕분에 나는 아저씨와 친해질수있었고 여러가지 아저씨에 대한것들을 알아낼수있었다. 아저씨의 이름은 민윤기, 스물 여섯살에 자기 말로는 나름 잘나가는 프로듀서란다. "그럼 아저씨가 프로듀싱한 노래가 뭐예요?" "야 꼬맹이. 너 자꾸 나 아저씨라고 부를래? 나 아직 스물 후반대다?" "아 그럼 아저씨도 여섯살밖에 차이 안나는 갓스물한테 꼬맹이라고 부르는것좀 그만 하죠?" "아니 니네 오빠랑 나랑 한살밖에 차이 안나거든?" "그러니까 아저씨죠...아 무슨 노래 프로듀싱 했냐니깐요...!" 끝까지 지지않고 내 머리에 딱밤을 먹이는 아저씨를 빼쭉빼쭉 째려보다 소리를 지르자 귀찮아 죽겠다는듯 아저씨는 손에 들고있던 사탕을 입안에 넣었다. "비밀이다 비밀. 그만 좀 물어봐라!" "그런게 어딨어요!" 끝까지 떽떽거리는 내가 귀찮고 짜증날법한데도 아저씨는 가끔 나를 흘겨만볼뿐 싫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어서 내가 더 따라다녔는지도 모른다. "아저씨. 아저씨는 담배 안펴요?" "왠 담배?" "아니, 우리 학교보면 음악하는 애들은 담배 많이 피길래. 아저씨는 안피나 해서." "안펴." "왜요?" "넌 참 별게 다 궁금하다. 귀찮아서 안핀다 귀찮아서." "그런것도 귀찮으면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어요?" "뭐. 내 집에 담배 냄새 배는것도 싫고 그것땜에 밖으로 나가는것도 귀찮아." 예전에 아저씨네 집에 한번 놀러간적이 있는데 깔끔할것같은 이미지완 다르게 되게 더러워서 놀란적이있다. 은근 섬세하고 예민한데 별로 깔끔하진않은가보다. "꼬맹아. 넌 학교 안가냐?" "아 방학이라니까요? 아저씨는 일 안해요?" "난 내가 내킬때만 작업해." "그럼 평생 안해요?" "이 쪼꼬맹이가 근데. 콱!" 주먹을 들어올려보이는 가녀린 손목에 내가 낄낄 비웃자 아저씨가 째려보면서 딱밤을 놨다. 어휴 하얗고 마른 저 몸에서 어떻게 그런 매운 딱밤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요즘에 살이 더 빠진것같아서 내심 걱정하고있었는데 괜찮은것 같기도하다. 아저씨가 남자로 느껴지기 시작한건 며칠전부터였다. 내가 늦게 끝난 과제에 밤 늦게 혼자 집에 오고 있었는데 자꾸만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오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울먹거리면서 뛰어가자 뒤에 사람도 같이 뛰어와서 거의 정신을 놓고 달렸는데 저 앞에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 내 얼굴에 잠시 놀란듯해보이던 아저씨가 곧 얼굴을 진짜로 무섭게 굳히고 나를 자신의 뒤로 당겨 세웠다. 나를 따라오던 사람은 멈칫하더니 다른 길로 곧 사라졌고 나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아저씨 앞에서 주저앉아버렸다. "으허어어엉...진짜 무서웠어요...." "그러게 누가 이 시간에 다니래! 여자애가 진짜 겁도없이!" "과제가, 늦게 끝나서...흐윽..." "에휴...내가 이러니 마음을 놓을수가 없지..." 어느새 내 앞에 쪼그려앉아 내 눈물을 닦아주는 아저씨의 다정한 손길에 나는 쪽팔린줄도 모르고 더 울었고 결국은 퉁퉁 부은 눈으로 집에 들어가야만했다. 그 뒤로부터 나는 늦게 집에 들어가는 날이면 아저씨와 통화하면서 집에 가는 버릇이 생겼고 아저씨는 그런 날마다 정류장까지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걸어가는 길은 평소보다 훨씬 더 무섭지않았고 훨씬 더 짧았다. 괜히 아저씨 얼굴 한번 더 보고싶어 학교에서 빨리 집에 돌아오길 며칠째.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저 예쁜 여자에 내 눈을 의심해야했다. "...저거 한수진 아니야...?"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톱 여가수 한수진이 지금 아저씨 집앞에서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고있었다. 아니. 일방적으로 한수진이 애원하고 아저씨가 쫒아내려는듯한 그런 느낌? 이게 뭐냐...? "윤기씨. 진짜 한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될까? 응?" "나는 내 곡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도둑하고는 일 안해. 그러니까 좀 꺼져. 귀찮으니까." "아이, 윤기씨. 옛 정을 봐서라도 제발...나 윤기씨 노래 아니면 이번에 망할꺼같아서 그래!" "그건 댁 사정이고. 아 좀 꺼지라니까?!" "너는 옛 애인한테 어쩜 이러니?!" "누가...!" 와...한수진이 그랬어?? 아니, 그보다 아저씨가 저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 아니...한수진이랑 민윤기랑 뭐...???? 충격적인 얘기에 내가 멍하니 엘레베이터 앞에 서있자 내 존재를 알아챈듯 한수진이 재빨리 선글라스를 끼고는 아무런 일도 없던 척 도도하게 엘레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 "...언제 왔냐." "...방금요." "다...들었냐?" "...마지막 부분은?" 내 대답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아저씨가 다급하게 내 어깨를 붙잡고 주절주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쟤하고는 아무 사이 아니야. 그냥 가수랑 피디의 관계라고." "..." "그마저도 저 년이 내 곡 훔쳐서 쓴 뒤로는 아니지만...오해하지마." "...아저씨." "어?" "...나한테 왜 이렇게 구구절절 변명해요? 우리 아무사이 아니잖아요." "..." "...저 먼저 들어가볼께요." 내가 말해놓고도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뒤를 돌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아저씨의 목소리에 우뚝 발걸음이 멈춰졌다. "진짜...너랑 나랑 아무사이 아니냐?" "..." "진짜로?" "..." "나는 너랑 꽤 가깝다고 생각했는데...아니였어?" "...그럼. 우리 사이는 무슨 사인데요? 냉정하게 따지고보면 그냥 옆집사는 이웃일 뿐이잖아요." 내 말에 아저씨는 후우 낮은 한숨을 쉬며 내 어께를 꾸욱 눌러잡았다. "잘들어라 꼬맹아." "..." "남자는, 아니. 적어도 나는. 아무 여자나 정류장까지 데리러가서 집까지 모셔오지않아." "..." "나는, 아무 여자나 일하는 시간에 자꾸 전화하는데도 화 한번 안내고 들어주지 않아." "...아저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아무 여자나 맨날 올때까지 걱정돼서 밖에서 기다리고 서있지않아." "..." "너니까 그런거야." "아저씨 나는..." "솔직히 너 꼬맹이였던적 단 한번도 없어. 나한텐 늘 여자였고 앞으로도 그럴꺼야. 니가 나를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뭔가 너무 빠르게 휘몰아치고 지나간듯한 느낌에 내가 멍하니 눈만 깜빡이자 아저씨가 뜷어져라 나를 바라보던 눈을 떨구고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이런 식으로 고백하게 될줄은 몰랐다...들어가라." 힘없이 터덜터덜 뒤돌아가는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내 발이 움직였다. 뒤에서 폭 아저씨를 끌어안자 놀라 뻣뻣하게 굳은 몸이 느껴졌다. "왜 내 대답은 듣지도않고 가요." "..." "고마워요. 난 그런줄도 몰랐네. 아저씨가 하도 내색을 안하니까." "..." "나도 이런식으로 고백할줄은 몰랐는데." "야...너..." "나도 좋아요. 아저씨. 진짜로." "..." "...아까 한수진은 잊어줄께요. 못본걸로 치지 뭐." "...와 진짜..." 보지않아도 아저씨의 표정이 느껴진다. 괜시리 부끄러워져서 등에 얼굴을 묻었다. 곧 아저씨의 손이 내 팔을 풀고 돌아섰다. "근데 한가지 맘에 안드는게 있어." "...?" "예전부터 말해주고싶었는데." "오빠해봐. 오빠." -------------------------------------------------------- 첨엔 아무생각없이 쓴거라 글이 두서없네요.... 민군주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민빠답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만보면 소재가 떠올라ㅠㅠㅠㅠㅠㅠㅠ민피디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