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달의 빛에 의지한 채, 찾아온 호수엔 그저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에 연연하지 않고 나는 치맛자락을 붙잡은 상태로 풀썩- 호수의 앞에 주저앉아 멍하니 일렁이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빛은 언제쯤 나오려나. 빛을 만날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부르며 버선을 벗어 던지곤 호수에 발음 담구었다.
"..앗- 차가워."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감탄사가 호수에 퍼져 낮게 울렸다. 싸하게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에 몸을 부르르- 한 번 떨곤 첨벙이며 발장난하니 몸이 노곤해져 낮에 일어났던 끔찍한 일들은 잠시 잊고 지긋이 눈을 감았다. 감은 눈은 온통 어두컴컴하기만하다.
하백의 신부 01
(부제: 호수의 빛)
"또 왔네."
감은 두 눈에 빛이 스며들어옴과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 싱긋- 웃곤 눈을 감은 채, 나 역시 인사를 건내었다.
"응 또 왔어. 반갑지?"
"반갑기는 무슨."
감은 눈을 뜨곤 호수의 한 가운데 붕- 떠있는 하얀 빛을 밉지 않게끔 째려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람도 아닌 빛과 말하려고 밤마다 어두운 산길을 매일 다녀온다 말하면 난 분명 제정신이 아니란 말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 나와 같은 사람보다 저 빛이 나에겐 숨통이 트이는 유일한 길인걸.
"뭘 째려봐."
"사람도 아닌게 아주 밥맛이야."
"그러는 너는 밥맛보러 매일 여기와?"
"...씨-"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길 하려고 찾아왔나."
그 말에 잠시 빛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곤 힘 없이 말을 꺼내었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제 어미에게 구박받은 일과 오라버니에게 맞은 이야기를 아무렇지않게 말하였다. 그리고 빛은 아무 말없이 또 들어주고.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 고개를 푹- 떨구곤 '..나 시집은 못갈 것 같아.'라며 말을 꺼내자 빛은 '왜?'라며 되물어온다.
"이거 보여?"
치맛자락을 슬쩍- 붙잡아 걷어올리니 하얀 속치마를 적신 붉은 피가 보였다. 그에 잠시 빛은 일렁이며 나에게 물었다.
"피잖아. 어디 다쳤어?"
"아니. 다친거 아니야."
"..그럼 무엇인데?"
"..."
푹 숙인 고개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다시금 낮의 끔찍한 일들이 머리속에 깊이 박힌다.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치는 나와 그런 나의 입을 틀어막으며 제 몸을 탐했던 손길. 그리고 밖에서 저를 바라보던 무심한 눈길. 아무렇지 않은 척 눈물을 닦곤 고개를 들어 빛을 바라보았다.
"오늘 오라버니에게 겁탈을 당하였어."
"...뭐?"
"...그런데 그때 어머니가 갑자기 들어오셨어."
"..."
"그런데 웃긴게 무엇인줄 알아?"
허탈하게 웃으며 빛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그냥 나가시더라고...그래도 말리실 줄 알았는데."
"...나 더럽지?"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푹- 숙이니 항상 호수 위에서만 떠다니던 빛이 제 앞에 다가와 주위를 동그랗게 돈다. 마치 무언의 위로인듯 주위를 한참 일렁이며 빛을 말했다.
"넌 더럽지 않아."
"말이라도 고마워."
"..말 뿐이라 생각해?"
"...그럼 나 좀 데리고 도망가줄래?"
"..."
"푸핫- 거봐. 같이 도망도 못가는데, 무슨."
"가자."
"..어?"
"가자고, 내가 사는 세계로."
멍하니 점점 더 일렁이는 빛을 바라보다 픽- 웃으며 사람도 아닌 빛이 어떻게 날 데려가냐며 핀잔을 주니 빛은 아무렇지 않게 '빛이 아니라 신이야.' 라며 나에게 말한다.
"뭐? 신? 말이되는 소리를 해."
눈을 크게 뜨며 앞에 두둥실 떠있는 빛에게 말이되는 소리냐며 빈정대니 빛은 기분이 상한 것인지 다시금 호수 위로 날아간다.
"왜 말이 안되는데."
"신이 한가롭게 밤마다 여기 나타날리 없잖아."
"한가로운 일이 아니니까."
"어?"
멍청하게 되묻자 빛은 다시 나의 눈앞까지 날아와 크게 일렁인다. 일렁이는 모습이 어쩐지 화를 내는 것 같다면 기분 탓일까.
"너 만나러 오는게 어째서 한가로운 일이야."
"...그래, 그럼 너가 신이라고 치자. 그럼 무슨 신인데?"
"하백."
"하백? 물의 신?"
"응. 그러니까 매일 이 호수 위에서만 나타난거야."
"너가 하백이라는 증거는?"
나의 물음에 일렁이던 빛이 잠시 멈추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뭐야. 거짓말이라는게 들통날까봐 사라진거야? 갑자기 사라진 빛에 어이가 없어 멍하니 호수 위를 바라보니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고 호수에 뛰어들어봐.'
귓가에 바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위를 두리번 거리니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어디 있는거야.
'어서. 증거를 보여달라며.'
재촉하는 빛의 목소리에 잠시 망설이던 나는 거짓이든 아니든 눈을 감곤 호수에 뛰어들었다.
숨이 막혔다. 하지만 발버둥치지 않았다.
빛을 믿어서일까, 아님 이대로 죽길 바래서일까.
그렇게 정신이 혼미해질 때 즈음, 입술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져왔고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온 한 마디.
'나의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해.'
볼을 쓸어내리는 따뜻한 감촉에 힘겹게 눈을 떴다.잠시 흐릿한 형체에 두어번 눈을 감았다 뜨니 처음보는 낯선 남자가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웃으며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네었다.
"나의 신부가 된 기분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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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그조바순희입니다! 처음 연재하는거라 많이 떨리고 허접해도 너그럽게 넘어가주세요ㅎㅎ 원래 연재할 계획은 없었지만 몇몇 분들이 고맙게도 글잡으로 가라고 권유해주셔서 이렇게 오게되었네요! 어..아무튼 재미있게 읽으셨길 바라고 다음편은 이번주 내로 올리겠습니다. 좋은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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