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방문
결국 피디님의 웃음에 홀려 집대신 아파트 단지 내 공원 벤치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고 있다. 별 대화는 없었지만 피디님과 함께 있으면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다.
그렇게 편안한 정적이 흐르고 피디님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새벽의 고요함과 바람소리가 피디님의 잠긴 목소리와 잘 어울렸다.
“탄소씨는 요즘 힘든 거 없어요?”
뭔가 나를 다 알고 꿰뚫고 있는 것 같이 들렸다. 하지만 피디님의 표정은 여전히 큰 변화 없이 벤치에 앉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괜히 내가 혼자 찔려 그랬나보다.
하긴 선배가 나타난 후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뭐만 하면 마주칠까 노심초사하게 되고 태형이 눈치도 보이고. 미칠 지경이다. 하지만 피디님께 말씀드릴 문제는 아니다.
내가 처신 잘 하면 되니까. 그저 피디님은 좋은 동료고 친구니까.
‘아뇨 요즘 방송도 그렇고 다 좋아요“
“진짜?”
“왜요 저 많이 피곤해보여요?”
“그건 아닌데 그냥 뭔가 어색해진 것 같아서요”
“전 피디님 좋아요 편하고”
“......그래요? 난 글쎄”
피식 웃으며 다 마신 맥주캔을 찌그리는 피디님의 표정엔 약간은 허탈함이 섞여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런 피디님을 위로할 만한 정신이 없었다.
다 마신 캔과 안주들을 정리하려는데 피디님이 내 어깰 잡았다.
“다른 사람 때문에 힘든 건 내가 어찌 해줄 순 없지만”
“....”
“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 때문에 힘들어지면 그 땐 나한테 꼭 말해줘요
안그러면 나 엄청 섭섭해 할겁니다“
피디님은 작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내가 선배 때문에 힘들다는 건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엄청 무언가를 신경 쓰여 한다는 건 알아챈 듯 보였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피디님은 그제야 내 어깰 풀어주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내 손목을 잡아 일으켜주곤 쓰레기를 손에 쥐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렇게 아파트에 도착해 매일 그렇듯이 계단으로 향했다. 피디님이 먼저 집으로 들어가고 나도 집에 들어갔다. 늘 그렇듯 침대에 쓰러지듯 눕고 휴대전화를 보니 배터리가 없었다.
충전기를 꼽고 꺼진 휴대폰을 켜보니 밀려있던 문자 소리가 쏟아졌다. 하나하나 확인해보니 태형이 3개, 정국이 1개, 피디님 1개가 왔다.
살면서 남자 문자를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받아본 적은 없었는데 괜시리 뿌듯해졌다.
[태형 - 잘 들어갔어?]
[태형 - 뭐야 벌써 자? 먹보에다가 완전 잠만보네]
[태형 - 일어나서 보면 문자해 잘자고 좀 쉬어 다음부턴 화 안날게]
태형이의 문자는 온통 내 걱정으로 가득했다. 뭐하러 3통이나 보낸거야 미안하게. 답장을 못해준게 내심 마음에 걸려 자고 일어나 답장하려 했으나 그냥 문자를 보냈다.
[태형아 고마워 내 걱정 안 해도 돼 잘자]
그리고 정국이의 문자엔 다음 날 원고에 대한 코멘트와 태형이랑 잘 놀았냐며 다음번엔 자기랑 놀자는 문자가 와있었다.
[정국 - 이번에 원고 청취자 사연 코너 주제 뭘로 하면 좋을까 도저히 생각이 안나 새벽이라 이상한 생각만나고 좀 도와줘! 그리고 태형씨랑 잘 놀았어? 다음엔 나랑 한 잔하자!]
정국이는 참 나랑 같은 나이인데도 애가 순수하고 밝다. 난 맨날 우울하고 힘없는데. 정국이에겐 내일이나 시간되면 커피 한 잔 사주겠다고 문자를 보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피디님의 문자를 확인했다. 거의 매일 문자를 보내주시는 덕에 피디님 문자가 없으면 하루가 마무리 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피디님의 문자를 보니 역시나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작가 오늘도 수고했어요 잘자요]
늘 그렇듯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내고 사랑스러운 문자 5통을 받고 나니 선배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하루 평범한 나날이 지속되었다. 늘 그렇듯 정국이랑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원고를 확인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피디님과 같이 퇴근하고 스텝들 모르게 둘이서 술도 한 잔 하고
태형이랑 사이도 다시 예전처럼 많이 편해져서 지민씨와 같이 잘 지내고 있고 꿀FM도 예전 명성에 뒤처지지 않게 잘 나가고 있고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왠일인지 선배를 회사에서 며칠 동안 안 마주치니 확실히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는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웃기게도 평화로우면서 불안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꿀FM을 맡은 지도 벌써 3주가 넘었다. 여느 날처럼 집에서 원고를 쓰고 있는데 피디님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탄소씨 태형씨랑 지민씨한테 들었어요?”
“네? 아뇨 별 얘기 못 들었는데”
“이번에 콘서트 투어 때문에 한 3일 정도는 녹음분으로 방송 나갈 거 같아요
내일 녹음인데 힘들겠죠?”
“정말요? 큰일이네요 3일분을 쓸 수 있을지..”
“정국씨한테는 연락해놓긴 했는데 아마 둘이선 버거울 거 같긴해요”
“그럼 어떡하죠? 일단 정국이랑 제가 만나서 쓸 수 있는데 까진 써볼께요”
“내가 도와줄게요 지금 어디에요?”
“지금요? 집인데요”
“딱 기다려요 나 지금 밑에서 올라갑니다”
“네? 지금요? 안돼요 저 지금 세수만 하고 얼굴이 말이 아닌데..”
“그럼 지금이 2시니까 3시에 갈게요 그럼 그렇게 알고 그 때 봐요”
“피디, 피디님!!”
수화기 너머 피디님의 얼굴이 예상됬다. 분명 날 놀리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겠지? 하여튼. 도와주러 오신다는데 거절 할 수도 없고. 그리고 나도 피디님이 편하고 좋으니까 괜찮겠지?
분명 바빠지는데도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피디님 이 능구렁이 같으니.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를 보며 멍하니 앉아있는데 벌써 시간이 2시 5분이다. 안돼 빨리 서둘러야 한다.
방 청소도 하고 세수도 하고 화장 해야하나? 미쳐버리겠네. 옆에 있는 거울 앞에 서보니 옷 꼬라지도 말이 아니다. 침착하자 김탄소.
우선 거실로 나가 빗자루질을 하고 탁자도 닦고 밀린 설거지도 해결했다. 작은 방, 큰 방 청소를 하고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려던 참에 시계를 보니 2시 30분이다.
샤워는 고사하고 머리라도 감자는 마음으로 머리를 얼른 감고 옷도 깨끗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 입었다. 5분정도 남은 걸 보고 집 안을 한번 스윽 둘러보는데 속옷이 떡하니 건조대에 걸려 있었다.
아차 싶은 마음으로 아직 누가 보지도 않았는데 새빨개진 얼굴로 황급히 속옷을 옷장에 넣었다. 옷장에 넣자마자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칼 같이 찾아 오셨네.
머리카락을 한 번 손으로 빗고 문을 열어보니 피디님이 웃으며 서 있었다. 한 쪽 어깨엔 노트북가방이 걸려있고 양 손가득 간식거리와 식재료들을 사들고 날 보고 있었다.
얼른 봉지 하나를 나눠 쥐고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했다.
“같은 구조 일텐데 이상하게 더 넓어 보이네요”
“가구가 별로 없어서 그런가봐요”
“깨끗하다”
“거실에 앉으실래요?”
“뭐야 우리 작가 나 온다고 청소 열심히 했나보네요”
“워, 원래도 나름 깨끗해요..”
“알았어요 이거 좋아할 지 모르겠네 아무거나 사왔어요”
“다 좋아해요 우와..”
“아직도 애기입맛이네”
그런데 두 개의 봉지 중 하나는 간식거리 또 하나는 채소랑 고기가 들어있었다 뭐지?
“이건 뭐에요?”
피디님은 기다렸다는 듯 주방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내 어깰 툭 치며 말했다.
“저번에 김치찌개 기억나죠? 까먹은 척 해도 소용없어요”
아.. 피디님과 첫 미팅 날 퇴근하던 길에 나와 마주치고 갔던 음식점에서 내가 흘리듯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재료를 사오신 것이다. 완전 똑똑하시네 피디님.
기억해주고 있다는 게 내심 기쁘면서도 부담감이 느껴졌다. 요리 너무 오랜만에 하는데 큰일났다.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피디님의 얼굴을 보니 엄청 기대하고 있는 표정이다.
결국 잠시 후 나는 칼을 들고 채소를 썰고 있다. 오 김탄소 아직 죽지 않았네 좋아 이대로만 하자. 도마 옆 가스레인지에선 찌개를 끓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피디님은 아까까진 계속 주방 식탁에 앉아 날 지켜보다가 내가 부담스럽다며 거실로 쫒아냈다. 티비를 보고 계신건가? 아니다 조용한데 어디에 계신거지?
거실엔 없고 노트북과 잡동사니가 있는 작은 방에 가도 없고 화장실에 노크를 해도 인기척이 없다. 마지막으로 내 방에 들어가보니 아무리 친하다 해도 차마 침대에 올라가진 못하겠고
피곤은 하니까 김치찌개를 기다리는 동안 침대에 머리만 올려두고 깜빡 잠이 든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가까이 다가가 베개를 뉘어주려고 피디님의 머릴 살짝 드니까 피디님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찌개는 잘 만들고 있어요?”
가까운 거리, 낮은 목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런 내 손목을 잡고 날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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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께서 달아주시는 이쁜 댓글들 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엄청 힐링하고 있어요
늘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읽어주시는 분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하나하나 답답글 달아드리고 싶지만 못 달아드리는 제 마음 이해해주세요
암호닉 = 사랑 |
〈!--StartFragment--> 김남준 민윤기 봄 현지 늉기 노래 들레 디즈니 짱구 브이 꾸울 윤아얌 하늘 꿀만두 예워아이니 단거 카누 알라 민트 초딩입맛 양념 애기무당 작가님1호팬 꿀귀 모즈 가온 태태야 명언 레몬 눈설 은 뽀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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