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고 장보고
뒤늦게 집을 나선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를 내려갔다. 어느 새 피디님은 성큼성큼 걸어가 자신의 차 앞에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피디님의 차를 탄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괜히 피디님의 차를 타고 영화를 보러 간다는 그 자체가 어색하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피디님은 차에 기대어 피곤한지 눈을 감고 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놀래켜주고 싶었지만 왠지 되려 당할 것 같아 피디님을 톡톡 쳤다.
“피디님 이제 출발해요”
“왔어요? 빨리 타요”
뒷자석에 앉을까 잠깐 고민도 했지만 그건 너무 오바인 것 같아서 앞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피디님을 슬쩍 관찰했다. 차에 타 시동을 걸고 핸들을 잡은 손이 자연스러웠다.
차 운전 하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설레였다. 뭔가 의외의 모습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별 대화 없이 운전을 하는 그 모습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무슨 영화를 보기로 했더라..
궁금해졌지만 말없이 운전하는 그 모습이 좋아서 그냥 가만히 앉아 영화관에 도착할 때까지 창밖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피디님을 보던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니 피디님은 신호에 걸린 틈을 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해요?”
“네? 별 생각 없는데..”
“난 좋은데 우리 작가랑 영화도 보러가고”
“저도 좋아요”
좋다는 말을 하는데 단지 영화가 좋다는 말인데 피디님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떨렸다.
피디님은 내 대답에 기분 좋다는 듯 웃으며 파란 신호로 바뀌자 다시 엔진을 바꾸고 영화관을 향해 출발했다. 십분 쯤 지나고 영화관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오는 영화관의 시끌시끌한 분위기에 기분이 좋았다. 달달한 냄새가 가득하고 무슨 영화를 보면 좋을 지 고민하는 친한 친구, 연인들로 가득한 분위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혼자가 아니라 내 옆에 피디님도 있고. 피디님은 나보고 잠깐 앉아있으라고 말한 후 매표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까 피디님이 찾아보던 상영 시간표를 보니 영화는 ‘샌 안드레아스’.
요즘 광고도 하는 것 같던데 확실히 점유율도 높은 편이고 인기가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괜히 오늘따라 혼자 기다리기 싫어 피디님 옆으로 가자 피디님은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어디 앉을래요? 여기가 좋은 거 같은데”
“두 줄 더 뒤로 가요 사람들 별로 없는 곳으로”
“그래요”
피디님은 내 대답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표를 끊고 상영관으로 갔다. 피디님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먹을 걸 사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피디님도 영화 보면서 먹는 거 싫어하는 구나.
상영관에 들어가 광고를 보며 피디님께 살짝 물어봤다.
“피디님 영화 보면서 뭐 먹는 거 싫어하죠?”
“그렇기도 하고 여기서 뭐 먹으면 배부르잖아요”
배부르다고? 하긴 영화관 팝콘이 양이 많긴 하지. 근데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게 어때서요?”
앞만 보고 대답하던 피디님은 고개를 스윽 돌리더니 무방비 상태로 피디님을 보며 말하던 내 얼굴에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마침 광고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하려는 타이밍이라
영화관은 쥐죽은 듯 조용했고 오프닝 글씨만 보일 정도로 어두운 분위기의 상영관이라 피디님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영화 끝나고 집 가서 또 맛있는 거 해줘요”
제대로 찍혔다. 김치찌개 생각보다 괜찮았나 보네. 부족한 요리 실력이 부담스럽지만 내 요리가 그래도 먹을 만 했다는 것 같아 힘이 났다.
그리고 가까워진 얼굴이 다행히 영화관의 어둠 때문에 아까 집에서 보단 덜 부끄러워 얼른 고갤 스크린으로 돌리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피디님도 피식 웃곤 스크린으로 고갤 돌렸다.
영화가 시작하고 한 참을 말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재난영화라 그런지 액션도 크고 스케일도 크고 보는 재미는 확실했다. 미국영화는 보면 눈이 즐거운 건 보장되어 있으니까.
역시나 해외 재난 영화답게 가족애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오랜만에 보는 영화라 나름 즐겁게 감상하고 있는데 문득 피디님의 옆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피디님도 집중해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또 한참 멍하니 보다가 아차하며 다시 스크린으로 고갤 돌렸다.
영화가 끝이 나고 피디님과 잠깐 카페에 들렀다. 스툴에 앉아 원고 내용으로 뭘 쓸지 고민하고 있는데 피디님이 음료를 들고 내 옆에 앉았다.
“영화 어땠어요?”
“뭐 재난 영화는 거기서 거기니까 스케일 크고 가족애로 마무리
나쁘진 않았어요 눈은 즐거웠으니까”
“그건 그래요. 자 그럼 이거 마시는 대신 다음엔 나랑 심야 영화 어때요?”
“생각 해볼께요”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길 하며 음료를 다 마시고 다시 피디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려 했다. 벌써 시간이 8시가 넘었네. 피디님 때문에 늦은 점심마저 긴장한 탓에 적게 먹었더니 배가 조금 고팠다.
“이제 우리 작가 집으로 가서 저녁 먹으면 되는 거죠?”
“저녁은 시켜 먹는 게 어때요? 아니 요리에 부담 느끼는 건 아닌데 딱히 재료도 없고..”
“이번엔 내가 해줄게요”
“네?”
피디님의 대답에 안전벨트를 매다 말고 놀라 되물었다. 피디님의 요리라고? 사실 점심 때 요리 하면서 내심 피디님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또 어떤 요릴 잘 하는지 궁금하긴 했다.
근데 이렇게 갑자기 요리를 해주겠다는 말을 듣게 되다니. 태형이의 라면말고는 누구에게 음식을 얻어먹은 적이 없었는데. 기대되는 마음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빨리 마트로 가자고 말했다.
그렇게 기분좋게 마트로 달려가 장바구니를 들고 이리저리 코너들을 돌아다녔다.
“피디님 근데 뭐 만드실 거에요?”
“글쎄요 뭐 만들까”
고민하는 듯 보이더니 어느 새 장바구니엔 야채와 고기가 가득했다. 특히 고기가. 물론 나도 고길 좋아하는 육식공룡이지만 피디님도 고기를 좋아하는 구나 싶어서
나도 고기 좋아하는데 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릴 들었는지 내 어깰 톡 건드리며 살찌겠네 라고 말했다.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장을 보고 계산대로 가는데 제육볶음 시식코너가 보였다.
맛있어 보였지만 피디님의 요리가 궁금헤 참고 집에 가려는데 피디님이 날 잡고 시식 코너로 향했다.
“우리 이거 한번 먹어보고 가요”
“좋아요”
“이거 맛있다”
다정하게 제육 볶음을 종이컵에 담아 나눠 먹고 있는데 시식코너의 아주머니께서 피디님과 나의 모습이 좋아보였는지 우릴 보고 말을 걸었다.
“신혼부부인가 봐요 잘 어울리네”
“네?”
아주머니의 말씀에 화들짝 놀라 먹던 제육볶음을 떨어트릴 뻔했다. 피디님도 당황하셨는지 종이컵을 잠시 내려놓고 살짝 웃어보였다. 아니라고 말하려던 찰나 피디님이 먼저 대답했다.
“아뇨 아니에요”
아니라는 말에 기분이 이상했다. 아닌 거 맞는데 분명히 아닌데 그저 친한 직장동료에 불과한 거 맞는데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나 혼자 피디님께 심술부리는 건가. 왜 섭섭한 걸까.
사실 그 이유를 알면서 계속 회피했다. 편하기만 했는데 언제부턴가 떨리기 시작했다. 인정하기 싫은 감정이었다. 몇 년전 선배를 만났을 때 같은 감정이 고갤 드는 게 싫어서.
또 배신당할까봐. 손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어, 총각 정말이야?”
“네 결혼한 건 아니고
애인이에요“
“뭐야 그럼 신혼부부 비슷한 거 맞구만”
“그런가요?”
능글맞게 웃으며 아주머니께 애인이라고 말하는 피디님의 목소리가 내 귀에 맴돌았다. 피디님도 막상 말을 꺼내고 보니 쑥스러웠는지 쓰고 있던 후드 모자를 벗고 머리를 만지작 거렸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아까까진 그렇게 맛있다고 열심히 입에 우물거리던 제육볶음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머님은 호탕하게 웃으시며 얼굴이 빨개진 날 보시더니 아가씨 부끄러워 말고 많이 먹어요 라고 말씀하셨다. 피디님의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모습에 장난치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냥 난 내 마음대로 이해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아주머니께 괜히 감사해졌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이거 두 개 주세요”
"그래 아가씨랑 총각 보기 좋아 둘이 나눠 먹어요"
이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디님의 갑작스런 고백이 진심이길 간절히 바라며. 내가 받아들인 감정이 부디 제발 착각이 아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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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합니다. 댓글들 다 읽어보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요 글 쓰면 독자님들 덕에 힐링합니다.
항상 꿀FM 읽고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글 더 잘 쓰도록 노력할께요
암호닉 = 사랑 |
〈!--StartFragment--> 김남준 민윤기 봄 현지 늉기 노래 들레 디즈니 짱구 브이 꾸울 윤아얌 하늘 꿀만두 예워아이니 단거 카누 알라 민트 초딩입맛 양념 애기무당 작가님1호팬 꿀귀 모즈 가온 태태야 명언 레몬 눈설 은 뽀로롱 범블비 누텔라 린봄 알비노포비 츄파춥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