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연애담 P "좋아해, 사귀자."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게 맞나? 모르겠다, 맞겠지 뭐…. * 이건 무슨 상황이지, 지금? 뜨악한 표정을 짓고 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는 네 특유의 초롱초롱하고 동그란 그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얼른 답을 해 주길 바라는, 주인이 산책 나가자고 하는 소리만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약간 축 처졌지만 희망에 찬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 좋은 날에? * * * 때는 시험이 끝나고 난 교문 앞이었다. 우리 학교는 실업계 고등학교였고, 덕분에 시험 성적을 개의치 않아하는 아이들은 바쁘게 어딘가로 놀러가기 위해 끼리끼리 모여서 우르르, 기하급수적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백현은 이리저리 그 아이들 틈에 이리저리 치일 뿐이었다. 같이 가자면서 왜 이리 안 와? 백현이 신경질을 내며 땅을 콩 발로 찼다. 흙먼지가 풀썩 일어났다 다시 가라앉았다. 오기만 해 봐라, 애들이 어깨로 치고 간 만큼 때려 줄 테다. 백현이 이를 바득바득 밉지 않게 갈았다. "백현아!" 도경수다. 저 망할 놈의 자식은 또 분명히 성적을 위해 교무실을 왔다갔다 했을 것이다. 백현은 경수를 흘겼다. 경수는 그런 백현의 볼을 약하게 꼬집으며 많이 기다렸어? 라며 픽 웃었다. 백현은 특유의 말투로 투덜거렸다. 그것이 그들의 현 주소, 애인 사이다. 연애담 고백은 경수가 먼저 했습니다. 시험이 몇 주 안 남은 시점이었죠. 저희는 늘 똑같이 학교에서 같이 붙어 다니고, 밥도 같이 먹고, 옷도 갈아입고... 하여튼, 잘 지냈던 사이였어요. 그런데 정말 뜬금없이 경수가 진지하게 절 쳐다보더니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좋아해, 사귀자.' 그랬었던 것 같아요. 왜 난 이게 기억이 잘 안 나냐... 경수야, 도와 줘. - 네, 제가 도경수고요... 고백도 제가 한 게 맞습니다. 맞는데... 근데 더 웃긴 건 이게 저희 둘 다 처음으로 고백을 받고 고백을 하고.. 그냥 아예 둘 다 연애를 아예 안 해 봤었거든요. 저희는 공학이라곤 초등학교 밖에 나온 적이 없거든요... (그런 얘길 왜 해? 눈물 나게...) 그리고 전 개인적으로 되게 억울하네요, 지금. 전 나름 고민 정말 많이 한 거거든요, 얘가 받아줄까? 하고. 워낙에 저를 너무 편하게 생각하니까 그만큼 성공률도 적을 것 같아서 진짜 장난 아니게 고민 많이 했는데, 얘가 글쎄 뭐랬냐면요. '내 어디가 좋아?' 이러더라고요. (야, 내가 언제 그랬어?) 씁, 그랬었어. 말 일단 좀 들어 봐. 하여튼 그랬어요. 그 때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솔직히 그 때 심경을 고백하자면 전 그거 되게 자신 있었거든요? (얘 이러고서 얘기 안 해 줬어요. 진짜 나쁜 놈 아녜요?) 일단 얘기는 안 했었어요. 너무 얘한테 목 매는 거 티 내기 싫어서. 뭐, 이쯤 하면 된 거예요? - 으, 너 집 가서 두고 보자. 아니, 그냥 우리 집 오지 마. (아, 왜!?) 내 마음이야. 이거 끝나면 그냥 너네 집으로 꺼져. 당분간 우리 집 올 생각 하지 마. 알겠어? 아... 하여튼, 말씀드릴 건 경수가 그렇게 어이없는 고백을 하고 제가 좋다고 해서 사귀게 되었는데, 그 다음에 얘가 한 짓을 얘기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웃긴 거 진짜 많거든요. 시험 때 얘긴데요…. * 시험 둘째 날이었다. 그 날은 백현이 제일 싫어하고, 또 제일 못 하는 과목인 수학의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경수에게 수학이 싫다며 토로를 했더니 경수가 빙그레 웃으며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이동 반으로 향한 게 전부였다. 도경수 나쁜 놈. 백현이 중얼거리며 회계 시험지의 빈 공간에 끄적였다. 다음 시간이 수학 시험이구나.. 아, 싫어, 싫어. 백현은 자리에 엎드렸다. 이내 종이 치고 쉬는 시간이 되자 교실은 언제 시험을 봤냐는 듯 왁자해졌다. 백현은 부스스 일어나 쉬는 시간인 것을 확인하곤 머리를 감싸 쥐며 다시 엎드렸다. 이번에 수학 50점도 못 넘으면 용돈 끊길 각오 하랬는데, 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수학을 씹고 있는 와중에 제 어깨를 툭툭 치는 손길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백현아, 피곤해?" 경수였다. 경수는 쉬는 시간 동안 백현의 옆에 앉아 이런 저런 말들을 해 주었다. 수학 그렇게 어렵게 안 나올 거니까 너무 걱정 말라는 둥, 내가 좀 가르쳐 줄까? 라는 둥... 이리 저리 백현의 속을 더욱 불편하게 긁기만 하자 백현이 신경질을 내며 그냥 너희 반으로 가면 안 될까, 하자 경수가 픽 웃으며 백현의 손을 잡더니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이거 먹고 시험 잘 봐, 알겠지?" 그건 다름 아닌 백현이 제일 좋아라 하는 크런키 초콜릿이었다. 백현은 뒤를 돌아다 보았지만 이미 경수는 갔는지 없었다. 존나 빠르네, 새끼가. 백현은 그 자리에서 초콜릿을 까 먹으며 신나게 경수를 씹었다. 도경수, 이, 나쁜, 새끼. 근데 좋다. 스멀스멀 제 몸을 타고 오르는 달콤한 기분에 백현은 혼자 웃었다. 어, 시험 종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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