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요즘 콘서트다 뭐다 바빠서 너랑 연락도 잘 못하고 있다. 그래도 네 얼굴 최근 들어 좋아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래 탄소야 그 선배 일은 빨리 잊어.
너랑 그 사람 최대한 못 마주치도록 내가 다 막아줄테니까. 넌 그냥 지금처럼 열심히 방송 준비하고 잘 먹고 잘 자고 친구라도 좋으니까 내 옆에서 늘 그렇게 웃어줘.
지금 내 옆에서 오늘도 방송 잘 끝났다며 해맑게 웃는 너, 너랑 방송하는 이 시간이 내겐 제일 행복한 시간인 걸 넌 모르겠지. 아니 평생 모를꺼야. 근데 탄소야 요즘 들어 그게 너무 힘들어져.
니 얼굴 보면 자꾸 욕심이나. 아무렇지 않게 니 얼굴 만지고 손잡고 안아주는 거 같지만 사실 나 엄청 조심스러워. 어쩌다 니가 내 마음 알아챌까봐.
근데 넌 그저 날 친구로 생각하니까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까.근데 어쩌다 니가 아무렇지 않게 나 안아주고 손잡아 주면 나 그 날은 잠못잔다. 김탄소 바보야 알긴아냐.
그렇게 하루하루 힘들게 지내고 있는데 해외 스케줄이 잡히는 바람에 안 그래도 자주 못 만나는 너와 3일 동안이나 떨어지게 되었다.
섭섭한 마음에 해외로 떠나기 전 오랜만에 너랑 한 잔하려고 연락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 너. 처음엔 뭐 안 받을 수 있지 싶어 또 전화했지만 왜일까 전화를 받질 않는다.
걱정되는 마음에 문자도 해보고 전화도 다시 걸어봤지만 답이 없다. 무슨 일이 생긴건가.. 그렇다고 함부로 니 허락도 없이 너의 집에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 니 아파트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다리가 덜덜 떨리고 손톱은 닳아 없어질 정도로 물어뜯어 버렸다.
그저 피곤해서 일찍 잠든 거일 거라고, 잠시 휴대폰을 두고 마트라도 간 거일 거라고 애써 최면을 걸어가면서. 서둘러 도착한 아파트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벌써 시간이 8시인데 왜 아직도 연락이 안 되는 거냐고. 성큼성큼 걸어가 너의 아파트 건물 앞까지 다다랐다. 예전 너를 데려다주었던 그 새벽이 생각났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비상계단으로 올라가려는 두 남녀가 보였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그 두 사람을 보고 숨어버렸다.
그 두사람.. 너와 피디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다정하게 웃으며 한 손에는 찬거리가 들어있는 봉투를 또 한 손은 너의 어깨에 올라가 있었다.
나만 할 수 있는 어깨동무인 줄 알았는데 나만 허락한 스킨십일 줄 알았는데.. 그걸 알아챈 순간 병신같이 다리에 힘이 탁하고 풀려버렸다. 누가 보면 우스울 정도로 한심하게.
내가 아무리 등신 같아도 저 두 사람을 보고 아무 의심이 안 들 수는 없었다. 차라리 아주 바보였으면 그냥 하하 웃어넘겼을 텐데. 그냥 자연스럽게 무사히 웃고 있는 널 보고 집으로 갔을 텐데
맨날 멤버들에게 눈치 없다고 욕먹다가 꼭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른 내가 싫었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아파트 앞에 서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서있었다.
정말이지 그렇게 확실하게 이렇게나 빨리 우리 관계의 마침표가 찍힐 줄은 몰랐다. 아파트를 등지고 뒤돌아 나오면서 결국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로등이 고장나 거리는 어두웠고 내 얼굴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어둠 속을 걸어 나오면서 결국 갈 곳도 없이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힘이 풀린 몸을 겨우 일으켜 음악을 크게 들고 냉장고에 들어 있는 술을 모두 꺼내 입 안으로 잔을 비워냈다. 한 잔 두 잔 마시면 정신을 잃고 널 잊을 줄 알았다.
근데 평소 술에 그렇게 세지 않던 내가 오늘따라 마셔도 마셔도 취하기는 커녕 조금 전 봤던 니 얼굴이 니 목소리가 가슴에 쿡쿡 박혔다.
비상등에 비치던 너의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마저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나 그 순간에 멈춰버린 걸까. 정신을 차츰 잃어갈 쯤 전화가 울렸다. 흐릿한 눈으로 보니 너의 전화다.
이제 와 날 걱정하는 거야 김탄소. 이미 늦었네요.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으니 걱정스러운 너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너에게 화를 내버렸다. 니 목소릴 자꾸 들으면 너의 집으로 갈 것 같으니까.
그럼 정말로 너랑 나랑 끝날 거 같아서. 그건 또 두렵거든. 니 전활 끊고 다시 쏟아지는 눈물에 마음이 아파왔다. 이도저도 못하는 내가 미워서.
그 때 다시 전화가 울리고 전활 애써 무시하고 있는데 세 번째 울리는 소리에 결국 전화를 받으니 피디님이다. 피디님 참 좋은 분이지. 맞아 피디님은 좋은 분이다. 근데 그래도 싫다.
내가 아니면 김탄소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런 피디님의 전화에 억누르던 슬픔이 새어 나왔다. 미안해 탄소야 난 너랑 친구 못해. 결국 뱉어버렸다.
구질구질하게 술이나 퍼 마시고 널 울리면서까지. 그렇게 몇 년간의 설움을 고백하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짧은 번외 ; 김태형 번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