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연애
스물한번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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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정국 번외(과거) pt.4
가끔은 이런 생각을 했다. 내 방 벽에 걸린 누나의 그림처럼 내가 좋아하는 아미누나를 내 마음의 벽에 걸어두고 싶었다. 조금 더 못되게 굴면서 억지로라도 누나를 내 옆에 두고 그렇게 평생을 함께 있고 싶다는 상상을 하다 너무 여리고 착한 아미누나를 생각하며 내 자신을 책망하곤 한다. 가끔 나에게 매정하게 대하는 누나의 마음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닐거라고 기대를 해본다. 집에 가는 누나를 잡아두고 싶었지만, 누나를 돌려 세워 품에 안은채 아직은..아직은 안돼. 전정국. 을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이마에 짧은 입맞춤으로 내 욕심을 대신 했다. 놀란 아미누나의 표정을 보고 앞으로가 더 기대 되었다. 지금 이런일로 놀라긴 일러요 누나.
***
아침 일찍 할아버지께서 연락이 왔다. 당분간 학교에 가지 말고 집에서 꼼짝말라는 말을 하셨다. 쓸쓸함에 하루종일 켜둔 TV 때문에, 할아버지의 말씀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분명 좋은 사람이다. 보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학교의 불우한 학생들을 도우는 일부터, 사회에 공헌하는 일까지 여러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런 힘들덕분인지 할아버지는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중이셨고, 올곧은 시선들이 있는 반면 시기와 질투의 시선들 또한 있었기에 꽁꽁 숨겨왔던 보이지 않던 일들이 터졌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모든걸 털어 놓지 않으셨다. 하지만 눈치빠른 나는 어느정도 다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우리 가족이 이렇게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뒷거래들 때문이였다. 결국 일은 커져 인터넷 뉴스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연락하지 않았던 동기들 부터 시작해서 학교 페이스북 게시글까지 대학 이사장이신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물론, 내 이야기도 함께..
- 정국아
- 학교 안 와?
- 정국아.. 읽었으면 답장 좀 줘
- 내가 이상한 소릴 들었는데, 지금 어디야?
그 소문은 아미누나에게도 전해졌다. 딱히, 지금 이 상황이 무섭거나 두렵지 않다. 언젠가 터질 일들이 좀 일찍 터진 것 일뿐..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고, 모든것이 제자리로 돌아갈것이란걸 아는 나였기에 오히려 무덤덤한게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 할아버지는 잘해오셨고, 이런 일 하나쯤은 쉽게 정리할 수 있는 분이셨기에 걱정 따윈 없었다. 오히려 잘된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은 날 금수저 물고 태어난 그저 부잣집 도련님으로 보고 있겠지.. 창 밖에 뭐라도 건질까 서 있는 저 기자양반들처럼.. 하지만, 아미누나는 날 다르게 생각할거라 믿고 있다. 날 조금이나마 불쌍하게 여기며 걱정하고 있겠지, 당사자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 아미누나..
- 나 어떡해요?
- 무서워요.. 누나
내가 물고 태어난 것은 금수저가 아니라 그냥 금덩이 하나였다. 오랜 시간 걸쳐 참고 기다리며 금덩이를 갈고 닦아 어렵사리 금수저로 만든게 나였을 뿐. 애초에 나에게 금수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난 이것을 기회로 삶고 내 시나리오의 한장면으로 만들어 낼 것 이다. 난 대가를 지불받고 있는 중 이다.
***
두번째 일이다. 커다란 창문에 커텐을 치고 앉아 틈 사이로 아미누나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저 기자양반들은 지치지도 않나.. 기다려봤자 나오는 거라곤 없을텐데.. 시간낭비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인다. 그때, 멀리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아미누나가 보였다. 내 입가엔 미소가 절로 번졌다. 누나, 안타까운 사람들 틈에서 잘 피해 빨리 나한테 와요.
' 쾅쾅쾅 '
' 정국아.. '
' 전..정국 '
기자들이 하나 둘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들어갈 것 같았던 아미누나는 다시 나에게로 오고 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맞춰 내 심장도 함께 뛰고 있다. 문을 열어 주고 지친 척 쇼파로 터덜터덜 걸어가 풀썩 앉았다. 지금쯤, 아미누나는 날 엄청 걱정하고 있겠지?
' 밖에 사람 있어요? '
' ..아니 '
' 휴- 얘기 다 들었어요?
밥.. 먹었어요? '
내 눈치를 살피는 아미누나에게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어봤다. '밖에 사람 있어요?' 내가 봐도 소름끼치는 연기였다. 나보다 더 놀란 표정의 누나는 확실했다. 날 걱정하고 있구나.. 나에 대한 얘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준 누나가 정말로 좋다. 좋아할 수 밖에 없다. '괜찮아?' 라고 묻는 누나의 목소리에 갑자기 가슴 속 무언가 뭉클해졌다. 누나, 나는 정말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렇게 누나가 왔잖아요. 이런 일 나한테 별 거 아니에요. 앞으로 이것보다 더한 일들이 많을거에요. 그런데, 누나는 괜찮아요?
***
누나는 내게 걱정의 말들을 늘어 놓았다. 난 눈물이 없다. 지난 과거 겪었던 일들에 단단해져서 인지 앞으로 울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다. 나도 지금 내가 왜 울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누나의 '괜찮아?' 라는 말에 어린애 처럼 누나에게 안겨 울기 시작했다. 누나의 미술학원 비상구에서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그때의 순수했던 내 감정은 지금쯤 새까맣게 타버린 욕망으로 변해버렸겠지.. 하지만, 아무렴 어땠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아미누나만 생각하고 싶다.
누나는 나에게 지금 돌고 있는 소문에 대해 쉽게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되물었다. 궁금하지 않냐고, 학교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고, 궁금하지 않으면 왜 왔냐고.. 누나의 대답은 날 한번 더 가슴 뛰게 만들었다.
' 걱정돼서.. 왔어 '
' 뭐가 걱정돼서 왔는데요?
대답해요. '
' 너.. 갑자기 연락 안돼서.. '
사람은 작은 것 하나에도 쾌락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나에게도 지금 이 순간 엄청난 쾌락이 전해졌다. 답이 정해져 있는 나의 질문에 누나는 정답을 말했다. 내가 연락이 안돼 걱정되어 왔다는 아미누나의 말이 날 기분좋은 쾌락으로 이끌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 감정은 똑같다. 난 아미누나 말고 다른 여자에게서 이런 사소한 말에 쾌락을 느낄 수 없을 것 이다.
누나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털어 놓았다. 내 이야기 하나하나 들을때 마다 누나의 표정은 날 더 걱정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듯 했다. 기분이 나쁘기 보단 오히려 고마웠다. 내가 아미누나의 시선 한 번 끌려도 했던 어릴 적 행동들이 지금은 이야기만 해도 누나와 눈을 맞추고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시나리오 역시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데, 괜찮지가 않아요. 누나..
누나가 생각하기에도 ..ㄴ.. '
' 괜찮을거야, 괜찮아. 정국아. 넌 잘못한게 없어. '
아무 감정없이 그저 내 뱉는 말에 누나는 진심을 다해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어떠한 짓을 해도 누나는 내편이 되어줄거라는 굳은 믿음이 생겼다. 누나가 말한거에요. 괜찮다고, 난 잘못한게 없다고.. 그 말에 꼭 책임을 가지고 날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어요.
***
집안꼴이 엉망이라며 밥은 먹었냐며 묻는 아미누나에게서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비춰졌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보다 날 더 걱정해주는 사람이 아미누나일지도 모른다. 밖에 나가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먹은 술과 지루함에 피웠던 담배는 누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보다 걱정으로 돌아왔다. 꽤 나쁘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씻고 나와 누나와 밥을 먹으러 향하는데 원래 괜찮았던 나지만, 좀 더 약한 모습을 누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 이렇게 약한 존재에요, 누나가 많이 위로해주고 걱정해주고 보듬어줘야 할 존재에요, 날 더 신경써주고 관심을 가져주세요. 라는 뜻으로 약한 척, 떨린 척 누나에게 손을 잡아도 돼냐고 물었다. 누나의 긍정적인 대답에 맞잡은 두손에 떨림이 전해졌다. 지금, 나만 행복한 거 아니죠 아미누나?
집 밖을 나섰을땐 행복함도 잠시 나와 아미누나 사이의 걸림돌 김태형이 등장했다. 아미누나의 이름을 부르며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김태형의 시선은 자연스레 맞잡은 아미누나와 내 손으로 향해 있었다. 뭔가 모를 쟁취감에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억지로 꾹 참았다. 날 향해 인사도 안하냐고 묻는 김태형에게 아미누나 앞이니 바르게 인사했다. 아미누나만 없었으면 넌 그저 지나가는 개미새끼보다 못한 취급을 해줬을거다. 김태형과 아미누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김태형의 연락을 아미누나가 씹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거 같은데, 배터리가 없던 뭐던 간에 그 시간에 나와 함께 있던 아미누나 생각에 괜히 우쭐해졌다. 얼굴봤으니 됐다는 말과 함께 등을 돌린 김태형에게 아미누나는 소리쳤다. 때를 놓칠까 '아미누나..'라며 애처롭게 부르니 누나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날 선택했다. 김태형이 아닌 전정국을..
오랫만에 제대로 먹는 밥이라 허겁지겁 먹고 있을때, 아미누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젠 이렇게 누나와 마주보며 밥을 먹는 일은 큰 일도 아니였다. 여전히 설레는 건 큰일이지만.. 그냥 밥만 먹기가 그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문득, 아직도 날 모르는 눈치의 아미누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 아미누나, 누나는 이상형이 뭐에요? '
' ..이상형? 그런거 생각해본 적 없는데.. '
누나의 기억력은 정말 최악이다. 난 항상 누나 뒤에서 지켜보며, 누나의 행동, 말, 버릇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는데.. 아미누나는 자신이 꺼낸 말 조차도 기억 못하고 있다.
' 에이- 이상형 없는 사람이 어딨어! 외모라던가.. 성격이라던가.. '
' 글쎄.. 외모는 모르겠는데.. '
' 그럼, 성격은? '
' 성격? 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 '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아 점점 실망감이 커졌다. 누나 이상형 딱 하나잖아요. 간단한건데..
' 아.. 잘해주는..사람.. 여자들은 이상형이 막 바뀌기도 하나봐요? '
' 응? 뭔소리야? '
누나 이상형, 미술하는 사람이잖아요.. 나, 누나 때문에 미술하는 남자 전정국.
***
시간이 좀 더 흘러 할아버지께서 이제 다시 학교에 나와도 된다는 연락을 주셨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죄 없는 대학총장이 뒤집어 쓰게 되었지만.. 불쌍함도 잠시, 보여지는 TV에 다시 모습을 내민 할아버지의 선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나에게 가끔 무섭게 다가올때가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에게 대가를 지불해주는 사람이 할아버지인걸, 난 할아버지가 금새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학교에 왔을때 수근대는 시선들쯤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까지 내가 불쌍하고 상처받은 피해자인 척 할 필요는 없었다. 잔디밭에 아미누나의 다리를 베고 누워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대가를 하나하나 받는 일만큼 뿌듯한 건 없을 것 같다. 눈을 감고 살포시 뜨니 바로 위에 아미누나의 얼굴이 있었다. 누나 위로 비추고 있는 햇살과 구름이 어우러져 정말 한폭의 그림 같았다. 내 방에 걸어두고 싶을만큼 아름다웠다.
저 걸림돌은 어딜가든 신경쓰인다. 난 그렇게 아미누나라는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고 있을때, 내 얼굴 위로 커다란 무언가가 덮혀졌다. 김태형의 가디건이였다. 향에 민감한 편인 나는 김태형의 향수냄새 조차도 싫다. 뭐냐고 물으니 김태형의 입에선 '아미, 짧은거 입었잖아.' 라는 말이 나왔다. 순간 내 시선이 아미누나의 다리로 향해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까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잘 베고 누워있었는데 내 시선 가득 아미누나의 다리를 담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순간, 수정이누나가 내 편을 들며 김태형에게 윽박지름으로 인해 정신이 차려졌다.
' 야 김태형 아미랑 정국이랑 잘 어울리지 않냐? '
' 뭐? '
' 딱 봐라, 저 순수함 넘치는 둘의 케미! 굿굿하다 굿굿해 '
수정이 누나의 말에 입꼬리가 귀까지 걸릴 정도로 올라갔다. 빨개진 얼굴을 신경도 쓸 틈 없이 신이났다. 옆에서 똥씹은 듯 굳어지는 김태형의 표정을 보니 날아갈듯이 기분이 좋았다.
' 수정이누나가 봐도 그래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였구나..
진짜 잘 어울리죠, 아미누나랑 나. '
' 헐.. 너네 뭐야? 사귐? 아님.. 너 아미 좋아해? '
' 네. 고백도 했는데, 이게 차인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
이렇게 하나 둘 내 편을 만들어가는 건 쉽다. 수정이누나는 나의 당돌한 모습에 '헐'을 외치며 김태형과 아미누나를 번갈아보며 눈치를 살폈다. 남들 눈엔 난 그저 철없는 새내기로 보일테지만 난 하나하나 예민하게 모든걸 꿰뚫고 있다. 수정이누나도 김태형과 아미누나 사이를 알고 있겠지, 지금 나의 말에 당황을 한 아미누나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김태형. 난 다 알고 있다.
김태형의 못마땅한 표정을 줄곧 해오며 나에게 새내기, 공부 안하냐는 말을 또박또박 힘을주어 내뱉었다. 나보고 꺼지란 소리겠지만, 가볍게 무시해야겠다. 아미누나랑 있는게 더 좋다고 말하자 김태형은 더 똥 씹은 표정을 하며 아미 생각은 안하냐고 물었다. 내가 지금 김태형 너한테 엿먹이는 중인데 아미누나 생각을 왜 해야하는건지 어이가 없었다. '아미누나도 싫지 않을걸요? 맞죠 누나?' 라는 나의 말에 김태형의 표정은 부글부글 끓어 오른 붉은 얼굴에 마른 세수를 몇번이나 했고 여전히 눈치보고 있는 수정이누나와 당황한 아미누나의 얼굴이 날 더 스릴넘치게 만들었다. 누가 짯는지 내 시나리오는 전개부터 절정까지 완벽하다. 분명, 결말도 완벽할 것 이다.
**
눈치만 보던 수정이 누나의 입에서 뜬금없는 이야기가 나왔다. 전국 대학 미술 공모전에 대한 이야기 였다.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공모전에 대해서는 어렸을적 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지금 할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는 디자인 회사부터 미술계에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공모전 수상 경력이 있고, 수상만하면 인생은 탄탄대로라는 말을 줄 곧 들어왔다. 어린시절 할아버지는 여러가지 미술작품을 나에게 보여주며 이건 어떠냐, 라고 물어보신적이 있었는데 대충 훑어보고 괜찮다 싶은 작품을 몇개 고르면 그 작품이 당선이되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작품보는 안목이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 아미, 너 이번에도 나갈꺼지? '
' ..해봐야지, 한번.. '
미술학원에서부터 전시회에 꼭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아미누나 역시 공모전에 나간다고 한다. 이번에도? 매년 마다 나갔었나 보다. 내가 몰랐던 아미누나의 생활에 조금 질투가 났다. 고등학교 내내 어머니를 도와 공부에 열중하던때라 할아버지와 작품을 감상할 시간이 없어서인지 공모전에 참가한 아미누나의 작품을 보지 못했다. 누나도 역시 탄탄대로의 삶을 지향하고 있는 듯 했다. 누나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누나의 공모전 작품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누나를 닮아 얼마나 아름답고 예쁜 작품인지..
' 나도 해봐야겠다. '
' 김태형 너도? '
걸림돌 김태형도 공모전에 나간다고 한다. 김태형 작품은 안봐도 뻔하다. 넌 무조건 예선부터 탈락이다. 내가 싫어하니까..
' 정국이 너는? 참가 안 해? '
' 네.. '
' 왜? 1학년들은 무조건 달려들고 보던데.. '
' 공모전 심사.. 이사장님도 하세요.. '
이사장님이신 할아버지 때문에 공모전에 참가 못하는 나를 어쩌면 애처롭게 볼 수 있다. 미술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한번쯤 도전해본다는 공모전. 거기서 입상을 하게 된다면 자신을 한단계 아니, 최상까지 높힐 수 있는 그런 좋은 기회이다. 나에겐 그런 기회 조차 없다. 공모전에 참가하자마자 뜨거운 시선들이 나에게 쏠릴게 분명했고, 혹시나 내 작품이 입상을 하는 순간엔 이런저런 헛소문이 퍼질게 뻔했다. 애초부터 나갈생각조차 없었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수정이누나는 날 양심적인 애라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상관 없었다. 관심조차 없었고, 공모전 따위 없어도 내 인생은 탄탄대로 였다. 그 동안에 만들어 놓았던 금수저가 곧 빛을 낼 날이 올테니까..
***
공모전 준비를 하면서 아미누나와 만날 시간이 없어졌다. 그냥 시간을 주고 싶었다 누나에게.. 노력을 한 사람에게는 큰 포상이 있을거란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말 처럼 공모전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누나에게도 큰 포상이 있을거다. 하루는 참고 참다 기다리지 못해 화방으로 아미누나를 보러 갔다. 물감 범벅이된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누나의 모습은 고등학교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중학교 시절 매일 뒤에서 봐왔던 누나의 모습이 아닌 정면의 아미누나 모습이 내 두눈에 담겨 심장이 시큰거릴정도로 설렜다.
' 누나, 이번 공모전에 목숨을 걸으셨다는 소문이 자자하시던데.. '
' 잘해야지.. 4학년은 이걸로 미래가 결정된다더라.. '
' 미래요? '
' 응.. 졸업한 선배도 공모전에서 입상하고 엄청 좋은 디자인팀 들어갔어.. '
' 누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
' 당연한 소릴하냐 너는.. '
' 그렇게 될거에요. 누나는, 잘하니까. '
난 다 알고 있다. 공모전에 4학년인 누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누나의 표정엔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날 걱정해주는 모습과는 또 다른 표정의 모습이였다. 날 지금까지 이렇게 독하게 버티게 해준 당사자가 내 앞에서 힘든 표정을 하고 있는 일만큼 가슴 아픈 일은 없다. 한편으론 이렇게 걱정을 하는 누나가 이상했다. 다 잘될건데, 누나는 할 수 있는데.. 왜 걱정을 이렇게 하는건지, 작품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는지 살짝 본 누나의 작품은 내 눈에 그저 완벽해보였다. 누나는 잘될거다. 내가 좋아하니까..
***
작품을 마무리하고 누나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 자꾸만 걱정이 가득한 아미누나의 표정이 신경이 쓰였다. 그 걱정을 빨리 덜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일은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더 큰 상이 올거란 걸 누나도 알았으면 좋겠다.
' 아미누나, 공모전 입상하면 어떡할거에요? '
' 어떡하긴 뭘 어떡해, 하면 하는거지.. '
아미누나 얼굴에 나 지금 굉장히 걱정이 돼요. 라고 써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모습이 그저 귀여워 보였다. 입상할 거 같다고 힘을 불어주는 나의 말에 누나는 오히려 더 퉁명스럽게 그걸 어찌아냐고 대답했다. '난 누나를 잘 아니까, 확실해요!' 라는 나의 말에 사람일은 모르는거라며 또 금새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나와 나란히 걷고 있다.
' 사람일은 모르는거니까 입상할거에요. 누나는.. '
' 말이라도 고마워. '
살짝 미소지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누나에게 나는 더 큰 욕심이 생겨 누나에게 소원을 들어달라고 말했다. 입상하면 소원을 들어 달라고.. 누나가 소원 안들어준다고 해도 어차피 그 소원은 이루어지게 되있으니까, 하지만 누나 의지로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더 좋을 거 같아 어린애처럼 징징거리는 내 모습에 알겠다고 누나가 대답했다. 사람이 한 번 뱉은 말에는 책임이 가해진다. 뱉은 말을 실행하지 않았을땐 그에 따른 처벌이 따르기도 한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아미누나의 마음이지만, 난 확신한다. 내 소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을거라고, 아미누나도 어쩔 수 없는 탄탄대로의 삶을 원한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
그 날 저녁 우리 가족은 오랫만에 단란하게 가족식사를 했다. 비록 가족이라고 말할 사람은 할아버지, 어머니뿐이였지만.. 할아버지 입에선 요번 S디자인팀 신입사원과 어머니의 화양고 이사장 취임식 얘기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만큼 어머니와 나를 믿고 계셨다. 작은아버지가 화양고를 운영하시면서 할아버지에게는 더 많은 의심의 눈초리로 인해 이번 사건이 터진거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그당시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작은아버지에게 학교를 맡기셨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하셨다. 어머니에게 화양고를 넘겨주시고 나에게 제대로된 경영수업을 받으라고 제안을 해오셨다. 드디어 내가 갈고 닦은 금수저가 힘을 발휘할때가 되었다.
' 정국아, 할애비는 니 애미랑 너 밖에 없는거 알고있지? '
' 그럼요, 할아버지. 항상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
' 잘 컸구나.. 할애비가 너 볼때마다 니 애비가 자꾸 생각나 기대가 커지는구나.. '
' 아버님, 우리 정국이 잘 할거에요. 지금까지도 잘해왔잖아요. '
' 그렇지.. 이제부터 학교보단 경영에 더 관심갖고 잘해보자구나 '
' 네. 할아버지. '
***
이제는 부담스럽지 않은 그런 제안들로 가득했던 가족식사는 끝이나고, 할아버지는 오랫만에 날 차에 태워 어디론가 향하셨다. 차안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은아버지를 조심하라는 말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질타를 받아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라는 할아버지의 조언으로 한 번 더 나는 그렇게 독해져갔다. 도착한 곳은 큰 체육관이였다. 문을 열고 불이켜지는 순간 이 곳에 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작품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다. 내일 있을 공모전 예선 심사 준비가 끝마친 상태였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옛날 생각이 나지 않냐며 다시 실력을 발휘해 보라며 나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며, 나의 작품 보는 안목에 힘을 불어 넣어 주셨다.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일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가고 있다. 이 많은 작품들 중에서 내 눈에는 단 두가지의 작품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에 살짝 보았던 아미누나의 작품과 아미누나가 그려진 작품, 발걸음을 옮겨 아미누나가 그려진 작품 앞에 섰다. 내가 미술학원에 처음 왔을때 보았던 화방에 앉아 앞치마를 두르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미누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림에서 아미누나가 튀어져 나올 것 같이 생동감이 있는 그림이였다. 시선을 옮겨 그림 끝에 적혀진 참가자 이름을 확인했다. 김태형. 입가에 미소라기 보단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한순간 그림이 재수없어 보였다. 당장 그림을 바닥에 던지고 짓밟고 싶었다. 하지만, 생동감 있는 그림 속 아미누나의 모습에 그러진 못했다. 그림에 있는 아미누나의 얼굴을 살살 쓰다듬으며 한참을 감상했다.
' 그 작품이 마음에 들었나보구나.. '
' ... '
' 고놈, 아주 푹 빠졌구만. '
' ..아니요, 할아버지. 이런 추잡한 작품은 처음이라.. '
자존심이 상했다. 그림 속 아미누나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을때 할아버지께서 말을 걸어 오셨다. 작품이 마음에 들었냐고.. 난 작품이 아닌 아미누나를 떠올리며 빠져있었던거다. 푹빠졌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끝으로 등을 돌리려 할때 김태형이란 이름 밑에 적힌 작은 글이 눈에 들어왔다.
- 김태형의 20대에 가장 소중(중요)한 것.. 김아미
글씨를 확인하자마자 그림을 거칠게 손으로 툭 내던지듯 바닥으로 떨구었다. 이런 추잡한 작품은 태어나서 처음이였다.
보통의 말
녀러분..제가요..
왜 1일1글을 안쓰냐면요..
제가 밤잠이 없는데여..
요 몇일 수면유도제를 먹어서 잠을 푹 잣는데여..
글이 자꾸 늦는거 같아서 오늘은 잠 안자구 올려여..
내용이 자꾸 산으로 가는거 같은데여..
죄송해여..
나쁜남자는 태태가 아닌 정국이에여..(스포)
독자분들이 정국이 이럴 줄 몰랏다며 소름돋는다고 하시는데여..
아직 소름돋기엔..후후훗(의미심장)
기다려주신분들 제가 매니 사랑해여..
저 댓글 하나하나 읽으면서 기분 좋은 날들 보내구 있어여..
왜 자꾸 쩜쩜 찍나면여..미안해서여..핳
암튼!
정국이 번외 다음편 마무리하고 후딱후딱 완결내야쥬??????
제가 독자님들 정~말 싸랑해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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