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부 센빠이 민윤기
w. 뷔타오백
농구부 센빠이 민윤기
학교에서 제일 버금가는 동아리를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농구부였다. 자칭(이라 쓰고 타칭이라고도 읽는) 이 학교의 삼대 동아리는 방송부, 봉사부, 농구부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원 조건은 오로지 '남학생'만 된다는 것에 여러 여학생들이 통곡을 했더란다. 그 이유는 바로 농구부에서 핵간지 센빠이를 맡고 있는 민윤기 때문. 입학식 날, 민윤기가 떴다는 소리를 듣고 여러 신입생들이 눈을 돌렸다. 열심히 연설 중이시던 교장선생님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많은 인파로 인해 결국 그를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그 후로 옆 학교와의 농구 시합에서 난 처음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내뱉은 단어는 다름 아닌 미친. 사람이야? 진짜로, 요정인 줄 알았다. 아니 요정도 비교하기 아깝다. 남신이다. 그때부터 나는 민윤기를 찬양하는 빠순이가 되었다. 민윤기를 지지하는 팬덤에서는 말한다. 그를 부를 땐 이름을 함부로 내뱉지 아니할 것, 통칭은 오로지 민군주님만 허용되었다. 애석하게도 내 귀에 들려온 소문은 민군주님이 존나게 철벽이란 소식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내 이를 악물고서라도 이 사람을 꼬시고야 말겠다. 농구부에 들어가 1학년 주장을 맡게 되었다는 남사친 김태형을 붙잡고 늘어져 농구부 매니저라는 직책을 만들어 달라 애걸복걸했다. 우연인지, 행운인지 농구부 부장이 흔쾌히 허락했다는 말과 함께 눈물이 흘렀다. 하, 이제 민군주님과 같은 공간 안에서 숨 쉴 수 있다니... 오디션에서 조용필 모창까지 하며 힘겹게 붙었던 봉사부를 때려치우는 게 좀 아까웠지만, 농구부 매니저라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자리를 두고 봉사부 따위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동아리 시간은 매주 수요일 7교시에 있었다. 매일매일 동아리 시간이 있게 만들어 달라고 교장선생님께 건의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잘했어 내 인내심아... 후... 그렇게 첫 동아리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농구부실의 문고리를 잡았다. 두근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문고리를 돌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아아, 남신... 남신이 보여.... 하고 감탄할 때, "쟤 뭐야, 씨발." 나를 가리키며 말하는 민윤기가 있었다. "얘 누가 데려왔어." 민윤기는 짜증 난다는 듯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후, 눈을 내리깔며 차가운 말을 툭 내뱉었다. 얼차려 자세를 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김태형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야." 꼬았던 다리를 가볍게 풀며 일어선 민윤기가 점점 김태형의 곁으로 다가갔다. 나 때문에 괜히 봉변이라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발만 동동 굴렸다. 이 상황에 농구부 주장은 어디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점점 애가 탔지만 지켜보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쟤 뭐냐고 내가 물었잖아, 태형아." "농구부 매니저입니다. 제ㄱ," 퍽. 말릴 새도 없이 머리를 그대로 가격했다. 옆으로 돌아간 김태형의 얼굴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결국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야!!!!!" 미친. 돌았나 봐. 큰일 났다. 곳곳에서 수군대는 농구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살짝 겁이 났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소리쳤다. "니가 뭔데 애, 애를 때리지 마세요!" 아, 망했다. 원래하려던 말은 '니가 뭔데 애를 때려!'였으나, 뒤돌아 어이없다는 듯이 날 바라보고 있는 민윤기의 모습을 보니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눈빛에 잼바르듯이 발려버렸다. 군주님 눈빛 허윽, 침묵이 이어지고나서야 든 생각은, ....아 나 진짜 쫑났구나, 봉사부도 때려치웠는데 난 이제 어떻게 살지. 그래. 자퇴, 자퇴가 답이다. 자퇴서는 어디서 받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민윤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어느 나라 말이야 대체?" 바람 빠진 웃음도, 냉소도 아니었다. 진짜 말 그대로 입동굴을 보이며 환하게 웃는 민윤기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요상한 이 상황에 어리둥절해 있다가 곧바로 알아차렸다. 아, 나 속았구나. "훠우! 농구부 매니저의 입성을 축하하는 환영 몰카 대성공~" 옆을 보니 깐족거리며 웃고 있는 김태형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저, 저새끼.. 맞는 연기까지 하면서 몰카를 하다니 참 명치를 세게 맞을 아이일세, 허허. 동아리 시간이 끝나면 저놈의 갈비뼈를 제일 먼저 내리치리라, 생각했다. "아, 근데 여기 부장 선배가 매니저 허락하셨다는데, 어디 계신지..." "부장?" "네..., 감사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요." "그거 난데?" "네?" "자, 맘껏 고마워해. 부장 여기 있다." 자신의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민윤기가 보였다. 정말이지 성스러웠다. "아아,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도 잘 부탁해, 매니저님." 악수를 청하는 민윤기의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아 흔들었다. 손잡았다. 손. 손! 민군주님의 손!!!!! 평생 이 손을 씻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막상 농구부에 들어가 보니 매니저가 하는 일이라곤 물과 음료수 사 오기, 인원 파악하기, 경기 일정 체크하기 등등. 딱히 하는 일은 없었지만 동아리 시간마다 농구부원들의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은총스러웠다. 농구부에서 매니저를, 그것도 여자가 들어갔다는 소문이 아직 퍼지지 않은 모양이다. 혹시나 얘기가 샐까, 친구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봉사부실 문 앞까지 갔다가 도로 발을 돌려 농구부실로 후다닥 들어가야 했다. 언젠가는 들킬 일이지만 그래도 학기 초라는 점에서 애들에게 미움을 사기는 싫었다. 애초에 이런 일을 자초한 건 나였지만, 뒷감당할 용기는 없었나 보다. 며칠 전, 옆 고등학교의 농구부에서 연락이 왔다. 농구 시합을 하자는 통보였다. 재빠르게 달력에 체크를 하며 농구 부원들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별 사항은 없으니, 일단 물어보겠다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부장님! 이번 경기 일정이요." "아, 벌써 4월이네." "○○고랑 경기 잡혔더라구요. 아, 그리고 부장님 이것도!"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 거야?" "네??" "회사도 아니고 그게 뭐야. 부장님, 부장님." "아..., 네." 워. 이젠 민윤기와 나누는 사소한 말 하나하나가 떨린다. 분명 혼내는 것 같은 상황임에도 민윤기의 말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그런 목소리였다. 정말이지 녹음해놓고 자장가로 삼으며 잠을 자도 좋을 목소리였다. 크, 내가 생각해도 존나 적절한 비유였다. 그럼 내가 대체 뭐라 불러야 하는 거지. 민군주님..? 내 생각엔 이게 딱 적당한 호칭인 것 같다. 그렇고말고. 와이셔츠에 그 흔하디 흔한 교복 넥타이만 맸음에도 온몸에서 간지가 뿜어져 나오는 민윤기를 감상하느라 넋을 놓고 있었을 때, 따악-. "선배라 불러." 딱밤을 맞았다. 아주 가볍게. 아프지 않았다. "더 편해지면," "오빠라 부르고." 이쯤 되면 민윤기의 팔을 붙잡고 말하고 싶다. 어깨 위에 존나게 무거운 짐 있다고. 멋짐. 시발. ##안냐세여 그냥 제가 보고싶어서 쓰는 센빠이 윤기....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헣 엄청 짧아서... 다음편은 두배로 올리는 걸로~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