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으면 6개월, 길어봤자 8개월입니다 '
사형선고를 받은 그날, 나는 울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였을뿐.
슬픔보다는 억울함이 더 컸던 것 같다.
19년간 오로지 대학을 위해서만 달려왔는데,
하고싶은것들을 모두 미뤄두고 공부만 해왔던 내가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난 내 자신을 놓기로 했다.
얼마 안남은 기간동안 뭐든 해보자
19년간의 내 자신이 감히 엄두도 못냈던 일들을.
죽은 후에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
" 거기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 민윤기 '
단정하게 입은 교복마이 위에 명찰이 오늘따라 유독 눈에 더 띈다.
한달동안 느꼈던 거지만.
이름 하난 참 예뻐
내가 걸릴때마다 봤던 무표정이 처음에는 꽤나 무서워서 쫄았었지만,
한달이나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사이에 저 표정에 면역이 생긴건지,
이젠 무섭지도 않았다.
" 반 번호 이름 "
아니, 오히려 딱달라붙는 교복을 입은 내게
눈길한번 주지 않는 선도부장님을 골려주고 싶었다고 해야하나.
" 내 이름 몰라? "
항상 다른말은 하지 않고 대답만 했었는데,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은 나 자신도 신기하다.
" 이제 알법도 한데 "
" 나는 알거든, 선도부장님 이름 "
민윤기도 이런 내가 신기했던건지,
항상 내리깔던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본다.
"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
" 이름이 남자치곤 꽤 예뻐? "
예상치 못하게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민윤기에 살짝 당황할 뻔 했지만.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알 수 없는 눈빛을 한 민윤기와 눈을 마주친지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 김ㅇㅇ! "
겨우 눈을 피하고 고개를 돌리니
에이씨, 체육이었다.
" 오늘도 걸렸구나! 오늘은 안되겠다. 선도부실로 와 반성문쓰고가라 "
" 아 귀찮게 생겼네 "
뒤를 돌아 막 발걸음을 떼려는데,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뭔데 "
신기하게도 민윤기의 목소리였다.
항상 반번호이름, 이것밖에 듣지 못했었는데.
" 뭐가? "
" 뭔데, 내 이름이 "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묻는 민윤기에,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잠깐동안 멍하니 있다가 민윤기 앞으로 다가가서는,
햇살에 반짝이는 명찰을 한번 쓱보고나서 눈을마주치며 말했다.
" 민윤기 "
그리고는 다시 뒤를돌아 선도부실로 향했다.
-
있다가 반성문을 검사하러 오겠다며 체육이 나간지도 십분째,
이미 반성문은 다 쓴지 오래이다.
'죄송합니다'
딱 다섯글자를 썼다.
아, 뭔가 뿌듯해.
예전같았으면 절대 상상도 못했을 일들이 이렇게 재밌을줄이야
뭔가 제대로 반항하는것 같달까.
죽을날이 정해져있기 전에 나도 한번쯤은 엇나가볼걸, 싶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해보는게 어디야
부모님을 위해, 학교 선생님들을 위해
정작 나를 위해 살지 않았던 내가 후회된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민윤기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 눈빛, 그 무표정
자꾸 생각할때마다 숨을 들이키고는 내쉬지를 못하고 있다
떨려서.
이제 민윤기 생각은 그만하자, 라고 생각할때쯤
선도부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이겠지 싶어 반성문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어깨를 잡는 손을따라 고개를 들어보니 민윤기였다.
어깨를 눌러 그자리에 그대로 다시 앉게 하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까와 똑같은 무표정이었는데, 어딘가 달랐다.
뭐랄까, 화나있다고 해야하나.
" 뭐야 "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다가 내 얼굴 옆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약간 숨차있는 듯한 숨소리가 귀 옆에서 느껴져,
아까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 김ㅇㅇ "
낮은 목소리가 나를 더 굳어지게 만들었다.
"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
" 먹히기 전에 "
-
잘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