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9월 10일
음악실 청소를 다 끝내고, 도서관에서 서고정리를 하고있던 참이었어.
종이 친지도 몰랐고, 이 속도로 일하면 오늘은 조금 더 빨리 일을 끝낼 수 있겠다 싶어서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한아미!!"
"응?"
"민윤기 도련님이 찾으셔. 기숙사동 옥상으로 오라는데. 지금 바로."
사환 친구가 급하게 와서 빨리 가보라면서 전해주는 말을 듣고서야 종치고 도련님 반으로 오라고 했던 그 말이 생각났어.
또 목을 졸릴까 두려워서 바로 별관 옥상으로 올라갔지.
"지금이 몇시야?"
"죄송합니다...청소하다가 잊고 있었어요."
"청소?"
"네..."
"하지마."
"...?"
"청소. 그런거 하고다니지 말라고."
"사환의 업무가 청소인데.."
"넌 그냥 사환이 아니잖아. 내가 다른 사환들한테 시키기 전에, 너가 알아서 관둬."
"도련님..."
"그 도련님 소리도 차츰 고쳐나가."
민윤기 도련님이 옥상을 나가려고 해서 다급한 마음에 예의에 어긋나게 큰 소리를 내 버렸어.
"제발 그만해 주세요!!!!"
"..."
"하라는대로 하겠습니다. 전정국이랑 마주치지 말라고 하면 마주치지 않고, 도련님 눈에 띄지 말라고 하면 띄지 않을게요."
"하라는대로 할거면 그냥 내 곁에 있어."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그럼...그럼 그냥 일하게 해주세요."
"왜 그런 궂은 일을 하고 싶은 건데? 공부하라고 내가 시간을 만들어줬잖아."
"전..공부 안해요."
"해."
"그냥..그냥 하던일 하게 해주세요. 도련님...전정국은 절 좋아하지도 않구요. 애초에 전정국은 도련님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저를 가지고 전정국을 골탕먹이는 게 전혀 효과가 없을 거라는 뜻이예요."
"이러니까 더 놀려주고 싶잖아."
"..."
"그럼 내가 딱 하나, 제안한다."
"..."
"나랑 진심으로 사귀면,"
도련님이 두 손으로 나의 어깨를 잡았어.
"밖으로 나가게 해줄게."
"밖으로..나간다면..."
"자유를 주겠다고."
자유..?낯설었어. 그 단어가.
"저는,"
"너는."
"저는...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린다니?"
"졸업을, 졸업을 기다리겠습니다."
"전정국을 택한다 이건가."
"아니요.저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아요."
"..."
"그냥 쭉 TH에서 일하겠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쭉 여기서 일했으니까 계속 여기서 일할래요."
"일하는게 좋다는 말인가? 듣기로는 열악하다는데."
"..."
일하는게 좋냐는 도련님의 물음에 더 이상 답을 못했지.
사실 싫어. 근데...만약 내가 여기서 졸업하면..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환들은 사회에 나가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다시 TH로 돌아온다고 하더라구.
근데 만약에 그렇게 섣불리 나갔다 들어오게 되면, 특별히 경력을 인정받을 수도 없어서 나도 그냥 다른 선배사환들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다른 생각 말고 계속 TH에 남아서
시키는 거 하면서 살려고 했거든.
모두가 그럴 줄 알았어.
근데...전정국은 그렇지 않았지. 거기서 한번 흔들렸고, 도련님이라는 완전 다른 부류의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데서 또 한번 흔들렸어.
자꾸 내가 생각했던 뻔한 미래랑 어긋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진심으로 내 여친 해라."
"도련님..."
"전정국을 괴롭히려고 하는 의도가 아냐."
"..."
"너가 좋아서 그래."
"왜.."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냐."
그러고나서 가버렸어.
이건 진심이었을까...?
근데 왜 나를..? 삐쩍말라 볼품없고, 늘 같은 옷만 입는데다가 심지어 사환인 나를...?
도련님들의 한 때 치기인가 싶어 그냥..그의 장난감이 되기로 했어.
어쩔 수 없지. 난 시키는대로 하는 사환이고, 이 학교 주인의 아드님이 나에게 사귀자고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