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리 전원일기 3. ― 에이레드 매치
하라는 농사일은 안 하고 매번 땡땡이나 쳤다가 저희집으로 기어들어와 에어컨 바람을 쐬며 노닥거리는 성열과 우현이 늘 불만이었던 성규는 제가 만들어놓은 수박화채를 게걸스럽게 퍼먹고 있는 둘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보나마나 저것들 울림천에 내려가 실컷 놀다 왔을테지. 그리고 조만간 백문이 불여일견, 곧 이모네 농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거남이 형이 우리집으로 쳐 들어와서 저것들 귀를 질질 끌고 갈 것이다 싶은 생각에 성규는 혼자 끅끅 거리며 웃었다. 그런 성규를 명수가 바라보다가 '이 형 뭐야. 이상해'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다시 내 첫사랑을 너에게 바친다 라는 만화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나저나 이성열."
"왜?"
"다른 사돈총각은 언제 온데냐?"
"아. 이호원?"
"이름이 호원이었어? 맨날 아쎄이 호! 유세이 야! 이러고 다녀서 이름도 몰랐네."
"어이구. 형이 웬일이래. 이호원을 다 찾게. 아마 조만간 올껄? 요새 무 종자 좋은거 찾으러 다닌다고 꽤 바쁠걸."
"무 종자 찾으러 다니는건 겉으로 그러는거고 어디가서 1997년 흉내나 내고 다니는거 아닌가 몰라."
"사돈총각. 그게 뭔 소리임?"
"사돈총각 그거 몰랐음? 다른 사돈총각 웬 고리짝 마이마이 가지고 다니던데?"
"헐."
"뭐 그러는 댁도 에이레드 씨디 모으는 취미 가지는거 보면 썩 정상은 아닌듯. 푸하하하하하!"
"야! 이성열!"
성규의 한 마디에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진 우현이 명수의 뒤에 숨어있던 성열을 발견하고는 등짝 스매시를 시속 200km로 날리기 시작했다. 괜시리 억울해진 성열이 '아니 숨는다고 숨었는데!' 라며 절규했지만 그 기럭지가 어디 가려진다고 가려지랴. 작업 장화 속에도 깔창을 서너개 깔아대는 우현과 달리 훤칠한 180cm가 넘는 당당한 위너 성열은 그저 삼선슬리퍼를 찍찍 끌고 다녔기에 아마 그것이 불만이었던 우현은 이것이 기회다 싶어 부스터를 잔뜩 달고는 불꽃 스매시를 성열의 등짝으로 꽂아댔다. 우현의 여파로 성열이 자신의 아래 깔려있던 명수의 등짝에다가 2차 스매시를 날렸고 참다참다 못한 명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 아파! 때리지마! 씨댕아!" 라고 외치며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나저나 명수 쟤는 덥지도 않데냐?"
"저 사돈총각은 왜?"
"우리 남 사돈총각은 한때 수재소리 들었다더니 그것도 모르나봐."
"김 사돈총각 뭐가 어쩌고 어째?"
"에이레드 씨디 모으는 시간에 상식책 좀 보지 그래?"
"야 김성규!"
"어쭈. 김성규? 91년생 쪼렙이 89년생한테 덤벼?"
"나 참. 나도 빠른 91이거든?"
성규와 우현의 2라운드가 벌어지자 아무래도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무서웠던 성열은 슬금슬금 명수의 방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일전에도 괜시리 성규와 우현의 사이에서 화해를 중재하려다 헛다리 짚고 자빠지는 바람에 의도치 않은 쌍코피가 터져 십분이나 넘게 코피를 줄줄 흘린 적이 있었다. 그 트라우마로 인해 성열은 이번 성규와 우현의 매치에서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녀왔습니다ㅇ..... 으악!"
"너 죽었.... 어. 성종이 왔냐?"
"이... 이게 뭐에요? 웬 배게?"
"야 이성종. 너는 니네 사촌형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악!"
"사돈총각은 대체 금쪽같은 내 사촌동생한테 야 이성종이라니! 성종아. 너 매일 이런 취급 받으면서 사니?"
"아... 아니 그게...."
레몬 사탕을 춉춉대며 빨고 들어오던 성종은 갑자기 자신에게 닥친 이 시츄에이션이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기껏 읍내에 하나밖에 없는 댄스교실가서 강습을 받고 왔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역시 생각이 많을땐 레몬사탕이지...☆ 라고 느끼는 성종이었다. 아무래도 이런 분위기였다가는 오늘 저녁 밥상에서 제대로 밥도 못 먹을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에 성종은 '형들 형들!' 이라며 성규와 우현을 불렀고 누가봐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썩소로 '스마일~'을 외쳤다. 이내 성규와 우현은 배를 잡고 마룻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댔다. 형들이 갑자기 한 마음으로 굴러대는 이유를 알 턱이 없는 성종이 여전히 한껏 업 된 목소리로 '오늘 배운거 춰 볼게요.' 라며 티비에서 인피니티라는 그룹이 '넌 나의 두번째!' 라며 줄곧 외쳐대는 은하수 플레이어로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천천히 너의 두 볼에 부비부비부비니 손 꼭 잡고 부비부비부비너만 보면 나는 간지러그댈 보면 나는 룰루랄라 ♬
노래까지 불러가며 춤에 심취한 성종. 아까보다 더 박장대소하며 바닥을 데굴데굴 16배속으로 굴러대는 성규. 그리고 시뻘건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우현.
하필이면 성종이 춤을 추고 있는 노래는 좀 전까지 우현과 성규가 박터지게 싸운 그 걸그룹. 에이레드의 신곡 부비부비부비였을 줄이야.
*
이번편은 생각보다 농사이야기가 없어요. 잠깐 쉬어가는 그런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마 다음편쯔음 해서 아쎄이! 그분이 등장하실 듯 하네영.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당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