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머리.”
“응? 아 늦게 일어나서 제대로 못 말리고 나왔어.”
항상 생각하는 건데 넌 젖은 머리가 섹시해. 남이 들으면 낯부끄러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며 아까부터 덜 마른 내 머리를 빙빙 꼬았다. 내가 머리 상한다며 퉁명스럽게 창섭의 손을 툭 쳐내자 어깨를 으쓱이고는 이내 내 어깨에 팔을 둘러왔다.
창섭이는 빨리 걷는데도 불구하고 걸음이 느릿한 내게 일부러 발을 맞춰 걸으며 내 어깨에 둘렀던 팔의 손으로 내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내가 창섭이를 밉지 않게 살짝 째려보니 옆에서 개구진 목소리로 오늘 아침에 등교 준비를 하며 제게 있었던 일을 재잘댔고 간간히 나를 웃길법한 개그를 던졌다.
“아, 맞아. 나 오늘 주번이니까 기다려.”
“주번?”
“응. 왜? 네가 별로 탐탁지 않으면 그냥 째고.”
얘가 미쳤어. 손을 살짝 주먹을 말아 아프지 않게 창섭이의 왼쪽 팔을 쳤다.
한 학기나 지났는데 남들 다 아는 저의 담임선생님의 이상하고 괴짜 같은 성격을 저만 모른다. 분명 창섭이가 주번을 째면 무조건 잡고 늘어지며 별 이상한 걸로 딴지를 걸 것이 분명하다. 순간 오늘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한 민혁오빠와의 약속이 떠올랐고, 진짜 주번을 째려고 작정하기 일보직전인 창섭이를 말렸다.
“어차피 나 오늘 민혁오빠랑 약속 있어.”
“미쳤나봐.”
“뭘 미쳐, 미치긴.”
“당연히 날 기다려야지. 무슨 이민혁이야.”
“또 반말하는 거 봐라. 쨀 생각하지 말구 열심히 청소해. 그래야 예쁜 창섭이지.”
“까분다, 또.”
창섭이는 유독 민혁 오빠를 싫어했다. 둘은 친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완전 정반대였고, 그 때문인지 둘은 잘 맞지 않았다.
다정한 성격이지만 부당한 건 참지 못하고 화끈한 민혁오빠와 달리, 창섭이는 다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것이나 고양이를 좋아했다. 비유를 하자면 민혁 오빠는 외유내강, 창섭이는 외강내유랄까. 그래서인지 어떻게 보면 창섭이가 일방적으로 민혁오빠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민혁 오빠도 창섭이를 슬슬 건드리는 것이 있다. 어렸을 땐 나름 사이가 좋았던 것 같았는데…….
아마 우리가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나이인 열다섯, 오빠는 더 늦기 전에 군대를 가야겠다며 스물 셋에 군대를 갔다. 아마 그 즈음부터 둘 사이가 틀어졌던 것 같다. 전에는 8살이라는 나이차가 무색하게 둘은 잘 어울려 지냈지만 왜인지 모르게 오빠가 군대를 다녀온 뒤 항상 ‘형아, 형아’ 거리며 오빠를 잘 따르던 창섭이도, 창섭이 생각만 나면 선물을 사오던 민혁오빠도 서로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 거렸고 사이좋던 형제는 없어졌다.
중간에 내가 끼여 가끔 눈치 볼 때도 많았다. 같이 밥을 먹다가도 하나 남은 소세지 반찬으로 싸우면서 ‘넌 누가 먹는게 좋겠어?’ 라고 묻거나, 어린이 날이나 크리스마스 등 공휴일에 나에게 같은 시간, 각자 다른 약속을 잡아 매일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이씨 형제네 집에 놀러갈 때면 내게 고민 상담을 하시는 민혁 오빠, 창섭이의 어머니의 고민에 비하면 내 난처한 입장은 새발의 피였다.
01-2
“야, ○○○ 일어나.”
“우음…….”
“밥 안 먹어?”
“입 맛 없어…….”
주문을 외우는 듯 시를 읊는 국어 선생님의 수업에 나도 모르게 팔까지 베며 자버렸다. 누군가 깨우는 인기척이 들어 일어나자 반에는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고 내 옆엔 바로 옆 반에서 온 듯 한 창섭이가 있었다. 창섭이는 들어올 때마다 존재감 터트리면서 오는데 언제 왔는지도 몰랐던 걸 보니 아주 푹 잔 듯 했다.
원래 잠에서 막 깨고 난 뒤 적어도 두 시간은 입맛이 없는 터라 오늘도 안 먹으려고 들었던 고개를 다시 팔에 파 묻었다.
“오늘 급식 찜닭.”
“가자.”
창섭의 입에서 닭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고민도 하지 않고 의자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뗐다. 더군다나 찜닭이라니, 내 인생 음식.
늦지 말고 얼른 가자고 찡찡대며 창섭의 팔소매를 이끌자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 식성이 어디 가겠어, 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아침 등교 때와 같이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사이 마주치는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집중 되었지만 지난 몇 년간 받아왔던 시선이라 익숙해져 신경 쓰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속 내려가다 보니 급식실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을 이십분 밖에 남겨놓지 않은 덕분인지 줄은 꽤 길지 않아 수월하게 급식을 받았지만 늦게 간 터라 찜닭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급식을 주시는 아주머니께 없는 애교를 부리며 더 달라고 찡찡댔지만 통하지 않았고, 울상을 지으며 급식실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내 앞에 마주 앉은 창섭이는 삐죽 나온 내 입이 웃긴지 눈을 접어가며 웃었다. 나는 숟가락을 집어 들곤 밥을 한 술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 맛있냐.”
“웅. 당연하지.”
“많이 먹어.”
“꼭 네가 사주는 것처럼 말한다.”
“그럼 사주는 것 대신, 내 거 줄게.”
이제 많이 먹으라고 말해도 되지? 라고 말하며 제 식판에 있던 찜닭을 숟가락으로 가득 퍼서 내 식판 위에 올려주었고, 창섭이의 식판엔 아무 반찬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굳이 창섭이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먹던 걸 계속 했다.
창섭이는 오늘 뿐 아니라 내가 급식을 잘 먹는다 싶으면 오늘처럼 종종 제 반찬을 줬다. 밥을 계속 먹는데 창섭이는 아예 식판을 옆으로 밀어버린 뒤 왼쪽 손으로 턱을 괴곤 내가 먹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넌 안 먹어?”
“별로. 맛 없어 보여.”
창섭이는 내 식성과 비슷하다.
물론, 찜닭도 매우 좋아한다.
01-3
오늘따라 길어진 종례가 끝난 뒤, 밖에서 오래 기다렸을 민혁 오빠가 생각나서 급히 교문으로 뛰어나가니 교문 한 구석에 오빠가 자그마치 10년동안 돈을 모아 산 검은색 세단이 있었다.
나는 입에 미소를 띄우며 오빠의 차로 달려갔다. 오빠가 차 안에서 나를 발견했는지 차에서 내려 뛰지마, 천천히 걸어야지. 라고 말하며 내 가방을 대신 들어준 뒤 차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천천히 와도 되는데, 왜 뛰어.”
“미안해. 나 좀 늦었지…….”
“늦는 건 괜찮은데, 다치는 건 안 돼.”
친히 조수석 문을 열어 준 오빠는 내가 조수석에 타자 문을 살살 닫아주며 다시 운전석에 탔다. 오빠가 차에 앉는 걸 확인하곤 안전벨트를 메며 창 밖을 보니 창섭이 우릴 발견하고는 눈이 똥그래져선 차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 창섭이다.”
“가자.”
오빠는 창밖을 잠깐 힐끗 보더니 가차 없이 엑셀을 밟았다. 나는 당황하여 다시 창밖의 창섭이를 보았고, 창섭이는 급히 사라지는 차를 뚫어질 듯 쳐다보며 가만히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조용하게 우리 둘만 있어야지.”
“그래두…….”
“오늘 뭐 먹을까?”
“…….”
찜닭 기가 막히게 잘하는 곳 찾아냈는데, 거기 가자. 오빠는 말 없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입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고,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점심에도 먹어서 별로 안 끌렸지만 간만에 만난 오빠이기 때문에 토 달고 싶지 않았다. 나의 고3 생활도, 오빠의 회사생활도 바빠서 잘 못 만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차에서 한동안 나눴다. 스트레스 때문에 밥도, 간식도 많이 먹어 살이 뒤룩뒤룩 찐 나에 비해, 오빠는 밥도 잘 챙겨먹지 못했는지 안 그래도 마른 얼굴이 더 갸름해지고 수척해졌다.
“말단사원 이래도 너무 굴리는 거 아니야?”
“응? 왜?”
“얼굴이 말이 아니야.”
“……못생겼다는 거지?”
오빠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니 벌써 가게에 다 왔고, 오빠는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 는 운전 실력으로 멋지게 주차를 시켰다.
내가 오오- 하며 감탄사를 내뱉으니 오빠는 큰 손을 내 머리 위에 올려놓으며 쓰다듬었다. 차에서 내리니 여느 찜닭 집과는 다르게 우아하고 큰 가게였다. 가게 안에 들어가니 오늘 점심시간에도 맡았던 매콤한 찜닭 냄새가 솔솔 났다. 냄새를 맡으니 속이 더부룩했다. 오빠는 자리에 앉아 찜닭 2인분과 밥을 시켰고, 나는 물수건과 수저를 오빠 앞에 내려 놨다.
“○○○ 벌써 숙녀가 다 됐어. 꼬마였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적 얘기야 또.”
“우리 애기, 다섯 살 때 막 오빠랑 결혼한다고 했던 거 기억나?”
“……그런 말 한 적 없어!”
내가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피하자 오빠가 두 손으로 내 볼을 잡더니 다시 눈을 똑바로 쳐다보게 하였다. 오빠가 잡고있는 볼이 후끈해지며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오빠는 다시 응큼한 미소를 지으며 “너 어렸을 때 어른 되면 오빠랑 결혼하기로 약속했잖아. 벌써 잊은 거야?” 라고 하며 또 놀렸고 나는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손을 들어 내 볼에 있는 오빠의 손을 띄어내려 하자 가게 아주머니가 대낮부터 불 타 오르네~ 라면서 밑반찬을 놓고 갔다.
“스물일곱이나 먹은 아저씨가 학생한테 뭐하는 짓이야!”
“뭐?”
“철컹철컹, 몰라?”
내가 수갑 차는 흉내를 내자 오빠는 목젖을 드러내고 눈가를 찡긋거리며 웃었다. 어느새 음식이 준비가 되었고, 오빠는 내 앞 접시에 닭다리와 감자까지 듬뿍 퍼 주었다.
아까부터 속이 더부룩했던 나는 의도치 않게 음식을 깨작거리며 먹었고, 오빠는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럴 만도 한 게 닭이라면 사족도 못 쓰고 접시에 얼굴마저 파묻으며 먹는 나였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고 오빠는 당면마저 듬뿍 퍼서 접시에 담아주었다.
“왜 그래, 너답지 않게.”
“아니…… 다 먹을 거야. 걱정 마!”
“먹는 거 앞에선 걱정 안 해.”
나는 젓가락으로 오빠를 찌르는 척을 하며 접시 안에 담긴 찜닭을 억지로 꾸역꾸역 먹었다.
“아까 보니까, 치마가 많이 짧아졌더라?”
“살 쪄서 그래!”
“화장도 좀 진해졌어.”
“못 생겼으니까 화장이라도 좀 해야지!”
“그리고 요즘 전화를 안 받아.”
“그건…….”
“그러면서 창섭이랑은 카톡도 하고.”
오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고 나는 심히 찔려하며 눈을 어디다 둘지 모르고 있었다. 요새 못 받은 전화는 독서실에 새벽까지 있어서 받지 못했던 거고, 창섭이와 연락도 그렇게 자주하는 편도 아니었다. 매일 학교에서 보니까.
작년까지만 해도 매일 밥도 먹고, 못 보는 날엔 전화도 자주 했는데 오빠가 취업에 성공 한 뒤 만나는 횟수도, 전화하는 횟수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앞으로 자주 할게요~”
“말만 그러지, 또.”
“정말루, 약속!”
오빠의 손을 부러 가져가며 내 손에 맞춰 끼워 약속하는 모양을 했다. 오빠는 늦었다며 이제 집에 갈 준비를 하자고 했고, 결국 접시에 고기를 반 정도를 남겨 놓곤 나왔다.
오빠는 계속 잘 못 먹는 나를 걱정하더니 결국 편의점에서 초콜릿과 군것질 거리를 몇 개 사와서 내 가방 안에 넣어주었다. 밖은 벌써 컴컴했고, 옆을 돌아보면 은은한 달빛에 비춰지는 오빠의 옆모습이 보였다. 창문을 살짝 열어 밤냄새를 맡았고 오빠는 감기 걸린다며 창문을 닫았다.
오빠는 항상 내게 다정했다. 물론 친한 동생으로서만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고, 나는 이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다.
“다 왔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 그냥. 나 그럼 가볼게!”
“응, 조심히 들어가구.”
“오빠야말로!”
오빠를 잃고 싶지 않았다.
01-4
“오늘 ○○○랑 뭐했냐?”
“알 필요 없잖아.”
집에 들어오니 창섭이가 티비를 보고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창섭이가 티비를 끄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 한 뒤 다시 들어가려 했고 다시 창섭이의 목소리가 내 발을 멈추게 했다.
“오늘 뭐 먹었냐.”
“○○가 좋아하는 거, 찜닭.”
“오늘 그거, 학교에서 점심으로 나랑 먹었는데.”
순간 누가 세게 뒤통수를 때린 듯 머리가 얼얼했고, 멍해졌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잘 먹지 못하고 깨작깨작 거리기만 했던 ○○가 떠올랐고 웃음만 나왔다.
“그것도 몰랐어?”
“…….”
“하긴, 알 턱이 없지. 하루 반나절 같이 있는 나랑, 일주일에 한번 얼굴 볼까 말까한 너랑 같냐.”
“닥쳐.”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방문을 쾅 닫으며 들어왔다.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풀었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옷도 다 벗지 못한 채 침대 위에 누웠고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왜 때문이지. 왜 더 가까워지지 못할까. 왜 나는 못 보는 너의 모습을 이창섭은 보는 걸까. 너무 분해. 침대 위에 있던 핸드폰을 들어 ○○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도 다시 학교 다닐까? 너랑.] - 10:32 pm
+) 분량 조절 fail... OTL....
오랜만이여 여러분.. ㅠㅠ 저 없는동안 바람 피셨던 분들 다 돌아와 -.- !!!!!!!!!!!!!!
제가 11일에 오기로 했는데.. 못와서 뎨동해여.. 저 그날 팬싸...^^ 갔거든요 ㅎ
꺄륵꺄륵 사실 너무 빨리 지나가서 기억도 잘 안 나지만 같이 간 친구가 찍어준 사진 보고 기억을 더듬고 있답니당ㅋㅋ 비공개라서 분위기도 좋아써용
팬싸 다녀와서 학교니 뭐니 하느라구 또 늦었네요ㅠㅅㅠ
그나저나 새로운 건 맘에 드시려나 모르겠어요.. 맘에 안 드시는 부분은 댓글로 말해주세욥 참고하고 싶으니까용..!!
사랑해 이민혁 이창섭!!!!!!!!!!!!! (와장창)
※ 암호닉 받아욥! 전에 받았던 암호닉은 리셋합니당♡
저번에 암호닉 하셨던 독자님들은 같은 암호닉이면 제가 더 반가울 거 같아용ㅋㅋ 강요하는 거 아니에염..ㅠㅠ 비회원분들도 받습니당!
사랑해요 여러분! ㅎㅅ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