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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 없는 BGM ]



[ 가사 있는 BGM ]














[WINNER/강승윤/남태현] 회전목마 클리셰 | 인스티즈

[WINNER/강승윤/남태현] 회전목마 클리셰 | 인스티즈

[WINNER/강승윤/남태현] 회전목마 클리셰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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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NER/강승윤/남태현] 회전목마 클리셰 | 인스티즈


무자비한 녀석, 싱클레어











[WINNER/강승윤/남태현] 회전목마 클리셰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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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NER/강승윤/남태현] 회전목마 클리셰 | 인스티즈

[WINNER/강승윤/남태현] 회전목마 클리셰 | 인스티즈

[WINNER/강승윤/남태현] 회전목마 클리셰 | 인스티즈


나긋한 존재, 데미안




 * 스토리 이해가 어렵다면 밑에 해석을 한번 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 해석을 보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질문해주세요~







*****






 팔각형 미제 과자 상자 같은 모양의 방에 나는 가지런히 담겨 있다. 이런 나는 중심점에 고요히 자신을 정돈한다. 하지만 내 몸통에 들러붙은 코르셋은 나에게 불편함을 안겨준다. 얼기설기 엉킨 사람의 몸뚱어리처럼 코르셋 끈은 나를 압박한다. 나는 미로에 헤매는 인간 뭉치에게 폭력당한 미로와 같다. 익숙한 불편함의 고통은 만성적인 소화불량처럼 언제나 함께 한다. 그 익숙함과 함께 나는 스스로를 무미건조하게 정돈한다. 그리고 나에게 쥐어진 시간과 공간을 상기시킨다.



 이 공간은 8면 중에 4면에 문이 존재한다. 감시자처럼 신랄하게 나를 바라보는 문도 있고, 가해자만큼 못됐다는 소리를 들은, 운이 안 좋은 관망자처럼 존재하는 문도 있다. 문은 띄엄띄엄 존재했고 남은 4개의 벽에는 침대, 옷장, 책상, 책꽂이가 자리해 있다. 복층이라 기다란 벽과 천장이 만나기 직전인 지점에 창이 하나 있다. 침대와 책상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남겨진 옷장과 책꽂이도 마주하고 있다. 근데 우리는 마주하지 못한다. 4개의 문은 내가 열 수 없다. 내가 열려고 하면 문고리는 돌려지다가 만다. 하지만 저 문 밖에 둘은 자유롭게 이곳을 출입한다.



 우리는 셋이다. 나까지 포함해서 셋이다. 한 명은 무자비한 녀석이고 다른 한 명은 나긋한 존재다. 그리고 어그러진 틈새로 끼어든 내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짝이 맞지 않아 셋이 모두 존재한다. 나랑 무자비한 녀석만 남을 때면 무자비한 녀석은 나에게 폭력을 가한다. 나의 목숨만큼 소중한 타자기에 내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다. 내 손을 유리처럼 바스러지게 만들고 싶어 한다. 녀석이 내 코르셋의 끈을 무자비하게 당기면서, 숨통이 조여 내가 죽기 직전일 때, 나긋한 존재가 나타나 우리 사이를 떨어트려 놓는다. 그때 무자비한 녀석의 눈의 표면에 서리는 것은 끈끈한 분노와 투명한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랑 나긋한 존재 둘이만 있을 때, 나는 무자비한 녀석을 제거하려고 한다. 간단하다. 타자기에 정갈히 앉아 손가락을 나의 의사대로 놀리면 된다. 근데 제거하지 못한다. 제거하려고하면 나긋한 존재는 협박이 아닌 척을 하며 협박을 한다. 인간의 생명을 손쉽게 거두는 신처럼 무자비한 녀석을 삭제하려고 하면, 나긋한 존재는 비겁한 협박을 한다. 자신도 내 옆을 떠날 거라는 비겁한 요구에, 마찬가지로 비겁한 나는 무자비한 녀석을 제거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와 무자비한 녀석은 살아있다.











*****






 내가 잠들 때 나긋한 존재와 무자비한 녀석은 무언가를 속닥거린다. 그 밀회는 자장가처럼 평화로워서 내게 잔잔한 포근함을 쥐여 준다. 그래서 눈을 살포시 감게 된다. 잠과 의식이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시간에 무자비한 녀석은 내 코르셋의 끈을 가위로 자른다. 나긋한 녀석이 익숙하고 유려한 손놀림으로 새 코르셋 끈을 매듭짓는다. 항상 이 시간, 이 존재였다. 저 둘의 역할은 변함없었다. 이 둘은 내가 스스로 코르셋을 풀지 못하게 한다. 정반대인 둘은 의외로 죽이 잘 맞았고 공통분모도 존재했다. 내가 그 사실을 자각하기까지의 시간은 인간이 후회를 할 때처럼 늦은 편이다. 둘은 다른 듯 같았다. 둘은 서로를 해하지 않았다. 내가 작란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희미하다. 하얀 도화지에 뭉뚱그려진 파스텔처럼 명확한데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이곳에 있으면서 나는 저 둘과 공존을 했다. 나긋한 존재는 별로 나에게 겁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살갑게 굴며 나와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무자비한 녀석은 나를 겁낸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건들지 못하는 타자기 앞에 선 나를 무서워한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본질적 나약함만 바닥에 깔려있는 나 자체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나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거짓으로 곱게 치장한 나를 바라볼 때와 다르다. 그래서 거짓이란 자원의 시작점인, 일그러진 자존감의 시작인 타자기를 녀석은 싫어한다. 그 타자기를 녀석은 부실 수 없다. 그러니 타자기를 내가 놀리지 못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녀석의 염원이다. 내 손목을 아예 쓰지 못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 이유를 알지만 아는 척하지 않는다.



 아무튼 내가 책상에 앉아 타자기를 가벼운 손놀림으로 두드릴 때면 무자비하 녀석은 긴 천으로 내 손목과 자신의 손목을 연결한다. 자신이 불편해할 문장을 적으면 바로바로 손을 당긴다. 심한 경우에는 내 코르셋의 끈을 엉망으로 만들며 나를 이리저리 내팽개친다. 내던진다. 그 순간은 성인이 되어버린 주인에 의해 엉망으로 구석에 처박힌 인형이 된 기분이다. 그러면 무자비한 녀석의 호응에 적당히 응해주기 위해, 내 왼쪽 손목에 달린 천을 대충 쥐고 있던 나긋한 존재가 나를 고쳐 안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오르골을 틀고는 나에게 잠을 선사한다. 보통, 나긋한 존재는 내가 정신을 차릴 때 오르골과 함께 옆에 있고 무자비한 녀석은 없다.



 최근에도 이런 이유 있는 손찌검이 발생했다. 새벽의 안개처럼 흐릿한 정신 사이로 눈을 뜨니 당연하게 나긋한 존재가 있었다. 검푸른 시야의 초점이 내 손 끝에 걸려 잡히기 전에 내 귀는 예민하게 오르골 소리를 우선적으로 잡는다. 초점이 돌아오고 검푸른 어둠의 바다에서 벗어나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근데 특별하게도 무자비한 녀석도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과 나 사이에는 긴 천이 이어져 있었다. 내가 발버둥 치면 칠수록 매듭은 아프게 손목을 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과거의 경험은 학습이 되어 고통을 무서워하게 한다. 그 고통이 공포까지는 아니지만 애써 고통에 다가가고 싶어 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난 억지로 내 손에 묶인 긴 천을 풀려 하지 않고 무자비한 녀석을 조용히 관찰했다.



 무자비한 녀석은 침대에 등을 기댄 불편한 자세로 곤히 자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무자비한 녀석에게 평화라는 심성이 소담히 깃들어 있는 것만 같다. 내 왼손에 쉬이 잡히는 담요를 집어 펼쳤다. 무자비한 녀석에게 덮어주자 옆에서 오르골에만 시선을 두던 나긋한 존재는 무자비한 녀석에게 시선을 뒀다. 나긋한 존재는 나에게 오르골을 내밀며 무자비한 녀석을 옹호했다.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면 책임을 지라는 따분하고 뻔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던졌다.






"저 녀석이 그러면 내 아들인 거야?"






 홍차를 마시는 사람처럼 여유롭게 나긋한 존재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또 질문을 했다.






"그러면 데미안 너도 내 아들인가?"






 나긋한 존재의 눈이 창공처럼 허해서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시신경은 선단처럼 날카롭게 무자비한 녀석에게 시선을 둔 나긋한 존재에게 던져졌다. 파열음, 상처 그 무엇도 현실로 일어나지 않지만 나의 시선은 진실로 날카롭게 녀석의 정서에 박혀 상처를 내고 있다. 시선과 달리 청각은 담요에 덮인 무자비한 녀석에게 가 있었다. 하지만 귀는 움직이지 않아서 내가 어디에 청각을 곤두세우는지 나긋한 존재는 눈으로 볼 수가 없다. 명확히 알 수 없다. 나의 청각은 기어이 담요에 덮인 영혼을 엿본다. 담요를 덮은 녀석의 숨이 부정맥처럼 불규칙한 흐름을 구현했다.



 자는 척이 어설픈 이유는 녀석이 어리기 때문인 걸까, 녀석이 내가 만든 존재라서 그런 걸까.











*****






 나긋한 존재의 이름은 데미안이다. 데미안의 이름은 묵직한 기름 맛이 있는 고기가 입에 들어 온 거 같은 기분을 나에게 건네주곤 한다. 데미안은 애증과 같은 관계다. 애증과 ‘같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완전한 애증이라기에는 이 감성은 다 익지 않았다. 설익은 애증은 완벽한 애증이 아니다.



 무자비한 존재와의 관계는 정의 내리기 어렵다. 아, 무자비한 존재에게도 이름이 있다. 싱클레어라는 불완전하고 민감성을 속성으로 지닌 이름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구현한 존재기도 했다. 불완전하고 민감하며 어그러지는 게 싱클레어였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잘 따른다. 하지만 둘이 몸싸움을 할 때도 있다. 데미안은 가만히 있는데 싱클레어가 목을 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싸움을 말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와 항시 함께 하는 코르셋의 끈을 나 스스로 가위로 잘라버리면 된다. 그리고 문을 열고 도망치려는 시도를 하면 된다. 싸움을 말리기 위한 의도만으로 그럴 경우에는 둘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내가 그리 행동하면 이 둘은 초식동물을 잡으려는 맹수마냥 나를 붙잡는다. 내가 그 행위를 할 때마다 싸움을 말리기 위함이 아니라, 진심으로 도망친다는 걸 그 둘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번 이 포획의 순간에 싱클레어의 눈은 습하다. 데미안의 눈은 모래처럼 꺼칫거린다.



 내가 그들의 흐름을 역행하는 일이 없다면 그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아까 말했던 사건-내가 소나기 같은, 정신없는 폭력을 싱클레어에게 당하고 정신을 잃었던 사건- 이후에도 둘은 싸웠다. 둘이 싸우는 이유는 나와 나의 타자기 때문뿐이다. 다른 이유로 싸울 때는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둘이 싸울 때의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건 하나의 진리, 순리인가보다. 개인적 공간이 없는 이 팔각형의 세상에 우리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독립적 차원인 거 같다. 내가 한 말을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마치 나처럼.



 둘이 싸우는 동안 입을 통해 토해낸 단어의 나열을 난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그들이 싸울 때마다 나는 이 공간을 탈출하려고 시도하고 그 시도는 매번 실패한다는 것뿐이다. 최근에 평소처럼 붙잡혔을 때 평소와 다른 생각을 했다. 당연한 것인데 너무 당연해서 보지 못 했던 것, 맹점을 자각했다. 나의 코르셋 끈을 자르는 건 싱클레어다. 나의 코르셋 끈을 매듭짓는 건 데미안이다. 데미안은 나를 붙잡을 때 무덤덤한 표정이다. 싱클레어는 날 붙잡을 때 눈이 노을처럼 붉어진다. 하나의 물음이 불길과 항상 함께하는 연기처럼 생각에 피어오른다.



 나를 여기에 못 벗어나게 하는 건 과연 싱클레어였을까?











*****






 하나의 자각은 많은 것을 바꾼다. 그것은 이 한 줌의 공간의 공기를 바꾼다. 그리고 내가 아무렇지 않게 대하던 생명 같은 존재 둘에 대한 인식도 바꾼다. 평소와 다름없는 공간은 그대로이면서 많은 것이 바뀌어 있다.



 나긋한 데미안은 나를 다루는 법을 안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내가 스스로 타자기를 망가뜨리는 것이었을 거다. 내가 이리 추측을 하려면 정당한 근거가 다수의 사람이 인정할 만큼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되어보지 못한 타자는 나의 근거를 보며 심증뿐이라고 단정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되어본다면 이 심증이 신뢰도가 높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데미안의 목적은 타자기를 삭제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데미안이 안 보였다. 아직 문 밖에서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전히 무자비한 싱클레어는 내 옆에 붙어있다. 코르셋 끈은 답답하게 나를 조이고 있지만 엉망이지는 않다. 내 신체의 일부처럼 밀착해서 감싸져 있다. 몸통은 코르셋과 섞여 있다면, 오른손은 탯줄처럼 무자비한 녀석과 연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녀석의 오른손에 앙증맞게 묶 여 있다. 원래는 타자기 앞에 앉아 있을 때만 매던 줄이었는데 요즘 들어 자주 사용한다. 그게 불편하면서도 편안하다. 몸은 불편하고 마음은 안정감이 생긴다. 몸은 아픈데 녀석에게 내가 절대적이라는 점이 확실하게 보이기 때문에 정서는 안온한 리듬이 된다.



 녀석은 답지 않게 나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내가 방 한가운데에 자신을 정돈하고 책상에 앉아 남은 기억들을 갈무리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내가 모든 정돈을 마치고 몸을 의자에 깊게 기대고 피아노를 치듯 타자기에 손을 올리자 녀석은 나의 움직임에 맞춰 행동한다. 연결된 기나긴 천이 팽팽해지지 않기 위해서 녀석은 나를 따라온다. 그리고 타자기에 올린 나의 손에 시선을 두고 말한다.






"너는 왜 나를 죽이고 싶어 해?"






 패기 있게 말했지만, 저 말을 뱉은 후에 싱클레어는 몸을 떤다. 추위를 타는 사람처럼 떤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싱클레어를 올려다보며 녀석의 팔목을 잡았다. 안심한 표정이 싱클레어의 얼굴에 덧그려진다. 손에 힘을 주어 녀석의 팔목을 당겼다. 팔목에 전해지는 고통에 얼굴에 비친 안심은 당혹감에 침식당한다. 나는 의자에 일어서서 힘을 주어 앞으로 걸었다. 나의 발걸음에 꼭 맞는 걸음으로 녀석은 나와 마주보며 뒷걸음질 친다. 결국 녀석의 정강이가 침대에 다다랐다. 오감을 모두 정성스레 가다듬어 싱클레어를 향해 곤두세운다. 그리고 부탁을 방자한 명령으로 녀석을 내 침대에 앉게 했다. 녀석은 눈치를 보며 침대에 누웠다. 녀석 답지 않은 행동에 나도 나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 자식을 쓰다듬는 어미처럼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녀석의 눈이 커지다가 손길을 거부한다. 펼쳐져 있던 이불을 헤집어 얼굴을 덮고 나와의 시선을 차단한다.



 그래도 피할 수 없을 텐데. 왜냐면 이건 내가 만든 것이니까. 이 생명은 내가 창조한 것이니까. 싱클레어는 내가 만들었으니까.



 일부러 이불을 거두지 않는다. 스스로 이불을 내리고 나와 시선을 나눌 것이 클리셰 범벅의 이야기처럼 지겨운 전개니까. 예지몽을 꾼 것처럼 나의 예측에 꼭 들어맞는 행동을 하는 녀석이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녀석의 기질을 무자비한 것으로 설정한 의미가 없다는 걸 인지한다. 설정이 어떻든 간에 창조주인 나에게 완벽히 독립할 순 없다. 결국 열심히 움직이는 회전목마는 제자리에 돌아온다.



 내려진 이불 사이로 물기가 반짝거리는 싱클레어의 눈이 보인다. 눈으로 말하는 녀석의 언어를 난 해석할 수 없다. 그것이 분노, 원망, 아쉬움이나 희망 같은 것이라 예측만 해본다. 그런데 그 예측에 자신감은 없다. 나는 그만큼 녀석을 모른다. 녀석의 몸에 손을 대지는 않고 침대 밑에 드리워진 이불을 쥐어 당겼다. 녀석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만든다. 시선은 계속 맞춘다. 그건 짐승을 다루는 사육사 같은 흐름이다. 심통 난 어린아이를 달레는 것처럼 답지 않게 나긋하게 녀석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낸다. 말간 눈동자와 초점이 맞추면서 나는 가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가증스러운 친절 범벅의 표정과 어울리는, 상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한다.






“내가 널 만들었어. 그러면 너는 내 아들일까?”

"……."

"그리고 데미안도 내가 만들었으니까, 너랑 데미안은 형제일까?"

"아니야."






 싱클레어가 가만히 있다가 대꾸를 한다. 불쾌감이 가득한 얼굴은 울분과 함께 알록달록 꾸며진다. 무자비한 녀석은 나긋한 존재가 형제가 아니라 단정한 걸까, 내 아들이 아님을 부정한 걸까. 그 단정과 부정이 단정치 못하고 부정해서 실소를 한 조각 흘리고 싶지만 참는다. 막힘없이 더 비참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들려준다.






"너랑 데미안은 형제일 수도 있어."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만든 존재니까."

"그럴 리가 없어."

"어째서? 내가 만들었어. 저 종이 뭉텅이에 명확히 써져있어. 너도 데미안도."






 녀석은 억울함을 볼에 한 아름 물고 있는 어린아이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표정이 나와의 거리를 좁혀온다. 침대에 뉘어있던 상체를 일으킨 녀석은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한다. 울음 때문에 철분기가 서린 목소리로 녀석은 아니라고 도리질을 친다.



 그게 답지 않은 행동이라 누군가에게는 귀여울 수 있는데 그 누군가가 나는 아니다. 원치 않는 순간에 받아들인 직설적인 존재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게 설사 자식이라도. 내 배에 품은 적이 없는 내 손으로 만든 자식. 그게 내 눈 앞에 숨을 쉬고 생명을 영위하고 있다. 싱클레어는 손을 뻗어 내 목을 감쌌다. 비명 같은 어조로 말을 토해낸다.






"아니야, 네가 아니라 내가 만들었어. 데미안은 내가 만든 거야."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필요가 있기 때문에 만드는 거야. 싱클레어, 사실대로 말해봐. 너한테 데미안이 필요했어? 처음에 데미안이 필요했던 건 네가 아니라 나였잖아."

"나도 그걸 너한테 묻고 싶었어. 왜? 대체 왜 데미안이 필요했던 거야? 그건 필수적으로 필요한 순간이 아니었잖아. 데미안이 굳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내가 있었잖아. 이미 내가 있는데, 왜 데미안이 필요했던 거야? 그리고 왜 그런 애를 내가 만들게 만들었어? 난 그때만 해도 데미안이 필요하지 않았어. 근데 네가 나한테 걔가 필요하다고 부여해버렸어. 날 그렇게 만들었어. 내가 데미안의 역할을 하면 됐잖아. 꼭 나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면서까지 한 명이 더 필요한 건 아니잖아."

"결국 지금 넌 인정하거네. 내가 데미안을 만들었고 너한테 데미안이 필요 없다는 거 방금 다 말했잖아."

"그래, 그렇지. 하지만 너의 꼭두각시가 되어 만들긴 했어도, 결국 싱클레어는 내가 만들었어. 네 의도로 탄생되었더라도 싱클레어는 내가 창조했다고. 그러니 순수하게 네 손으로만 만든 건 나뿐이야. 결국 너에게 진실로 소속된 진짜는 나야. 난 그렇게 믿을래."






 뜨끈한 물에 의해 퍼져버린 휴지 같은 축축한 소리를, 제가 원할 때까지 뽑던 녀석은 내 목을 감싸던 손을 거둔다. 두 눈은 꼭 감아 혼돈의 검은색으로 덮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아 고요를 귓구멍에 우겨 넣는다.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면서 녀석의 손목은 높은 위치로 갔고, 녀석의 손목과 이어진 나의 오른 손목이 당겨진다. 녀석의 몸짓에 따라간 내 오른팔 덕분에 나의 모습은 애매해졌다. 마치 내가 녀석에게 무언가를 받고 싶어 손길을 뻗은 것처럼 보이는 자세다. 그 애매한 자세처럼 어중간한 대화만 이어질 것 같아 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포기했다. 꼼지락 거리며 면사포를 쓰듯 이불을 머리 위에 덮은 싱클레어는 여전히 두 눈과 귀를 닫고 몸을 웅크리려 했다. 녀석이 웅크릴수록 녀석과 이어진 내 손목은 아프다. 탯줄처럼 이어진 생명의 맥박이 손목에 매달린 것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손을 뻗었다. 면사포처럼 녀석을 치장하는 이불을 얼굴이 보일 수 있게 여며줬다. 이불로 포장된 녀석을 이불 포장 채로 곱게 안았다. 품어진 것에게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애정 어릴 수 있는 동작에 애정은 남기지 않은 채 영혼 없이 말을 했다.






"네가 데미안을 만든 게 맞는 거라 해도, 근본이라는 것을 바라보면, 데미안은 온전히 너 혼자 만든 건 아니야. 네가 만들었다는 건 내가 만들었다는 거니까. 근데 넌 내 아들이야. 그리고 아들인 너와 내가 데미안을 만들었어. 그러면 데미안은 내 아들이면서 너의 아들인 걸 거야."

"..."

"그러면 데미안은 나의 손자일까, 아들일까"






 품에 담긴 육신이 흔들린다. 하지만 이불을 흐트러뜨리기도 전에 녀석을 옭아맨 나의 팔에 힘을 줬다. 포장은 아직도 유효했다.






"우린 지금 몸을 하나도 섞지 않고 혐오스러운 근친을 행하는 걸까?"

"..."

"넌 이 질문들의 답을 알고 싶어?"

"..."

"난 알고 싶지 않아서 다 삭제하고 싶은데."






 두 귀에 고요만은 담아내지 못하고 나의 말소리도 담아내 버린 가냘픈 정신의 주인이 혼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몸은 떨리지 않지만 정신은 엉망진창이 되어 품에 담긴 육체의 맥박이 가팔라진다. 그 난잡한 정신의 주인을 품에 안은 나는 오히려 차분함이 감정의 밑바닥에서 차오른다. 품을 통해 온전히 전해지는 상대의 감성에 나는 충만해진다. 이곳을 탈출하려는 나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던 맹수는 지금 여린 초식동물처럼 떨고 있다. 이 순간만큼은 초식동물의 목덜미를 물어버린 맹수의 희열을 느낀다.



 이런, 너는 여전히 불완전해서 이리도 숨기는 게 불가능 하구나. 너도 알고 있구나. 알고 싶지 않은데 알고 있구나, 우리가 꿈같은 곳에 갇혀 진흙탕을 헤엄치고 있는 것을. 그 질 낮은 물에서 뻐끔거리는 썩은 물고기라는 걸. 근데 그거 알아? 우리가 이렇게 더럽고 폐쇄적이어도 사람들은 우리를 욕할 자격이 없어. 그들도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거든. 인간은 다 똑같아.



 그리고 인간이 만든 인간도 똑같아.











*****






 갑작스럽지만 쓸데없는 친절이 필요한 순간, 그게 나에게 주어진 현재의 화제다. 그 친절의 방향성은 나를 위한 것이다. 나는 나라는 사람의 주변뿐만 아니라 나 자체를 정돈할 필요가 있다.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밝혀야 한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여러 번의 손짓으로 털어내는 것처럼 나 자신을 어루만지는 시간이 왔다. 나를 어루만지기 위해 나를 분해한다. 나라는 사람을 서술한다. 그러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친절하게 설명한다. 나를 정의한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내가 글이란 걸 쓰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내가 의식이라는 것을 손에 쥐기 시작한 나이부터 종이는 항상 내 옆에 있었다. 종이는 연필과 마찰할수록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그 소리는 일종의 나무의 비명같이 들렸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명을 싫어한다. 하지만 비명을 부정적으로만 정의 내릴 수 없다. 그래서 그 비명은 오히려 나에게 긍정적인 정서를 안겨줬고, 글을 쓰고 또 쓰는 작업에 열중하게 하는 방아쇠다. 격렬하게 연필을 뭉갤수록 나무는 처연하게 비명을 지른다. 비명에 열중하는 법에 접촉한 이후로 글쓰기를 하나의 업으로 삼았다. 글을 쓰고 지우고 삭제하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을 내 손으로 만드는 것에 내가 생존함을 증명했다. 결국 글이란 걸 써야지만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규명할 수 있는 가여운 것이 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즐겁고, 숙명적이며 유일한 존재의 이유인 나의 업은 거대한 책임감의 해류에 휩쓸리고 오염돼버렸다. 원치 않는 순간 앞을 가로막은, 자연적 흐름 같은 장애물은 쓸데없게 큰 부피감을 나에게 밀어 넣으며 숨을 쉬기 어렵게 했다. 어쩌면 하나의 업보일 수도 있었다. 무미건조하고 죄책감 없이 삭제했던 존재들이 나에게 가했던 복수, 칼부림일 수도 있다.



 내 말을 듣거나 보는 사람들은 고개가 톱니바퀴가 어그러지듯 슬며시 틀어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미친 걸지도 모른다. 나는 미쳐서 나 혼자 착각하고 환각에 취해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난해한 이 환상이 최소한 나에게는 진실이다. 난 나의 진실을 마주하고 여며 쥘 의사와 권리가 있다.



 이 팔각형의 미제 과자 상자 같은 공간에 갇히게 된 건 내가 휘두른 죄책감 없는 난도질이 되돌아온 것이다. 이 미제 과자 상자 같은 희한한 공간에 나 자신이 제약된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 공간은 항시 지나치게 깔끔히 정돈되어 있고, 내가 항상 옆에 두던 타자기가 공손히 존재하며, 내가 쓰던 문자의 나열 속 존재들이 내 옆에 구현되어 살아 숨 쉰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래,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원래 내가 만든 소설 속 존재로만 존재해야 했다. 근데 주제넘게도 그들은 내 옆에서 살아 숨 쉰다. 나에게 손을 뻗고, 나에게 화를 내고, 나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나에게 빈다.



 나는 결국 내가 만든 소설 속, 세계에 들어와 내가 만든 존재들과 부대끼는 것이다. 가엽게도 말이다. 나도, 그들도.



 이 공간 속의 흐름은 기묘해서 싸움이란 것이 빈번했다. 나 자신도 나를 제어하지 못 해서 이리저리 손톱을 세우며 달려든다. 나는 주로 싱클레어와 싸웠고, 나와 싸우지 않는 데미안은 가끔 싱클레어와 싸웠다. 이 방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싸움들이었다. 그래서 햇빛만큼은 화창하게 들어오는 말쑥한 공간은 어색하게 더렵혀진다. 우리의 싸움의 결과물이다. 주로 서로의 목에 애달프게 손길을 뻗어 망설임과 죄책감 없이 움켜쥐는 것이 익숙한 싸움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목은 파스텔을 덧바른 것처럼 항상 보랏빛이 돌았다. 하지만 가끔은 데미안이 내 목을 잡을 때도 있다. 항상 나는 그 순간에 자는 척을 했다. 나는 숨이 막히게 되어 지면서 희미하게 안개가 서리는 시선 사이로 분노에 가득 찬 유리알 같은 눈을 보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척을 했다. 어쩌면 그건 싸움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대항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 원망을 보듬어 살피고 싶은 마음 따위가 없었으니까.



 이 싸움의 근원이 무엇이냐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비명을 미친 듯이 지르며 발작을 일으키다가 지친 몸으로 답을 하고 싶다. 그래야지 이 싸움의 근원에 대해 밀착도가 높게 묘사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다. 저 존재 둘은 내가 만든 것들이다. 연필을 쥐느라 생긴 굳은살만 있는 내 손으로 타자기를 놀려 만든 존재들이다. 저 둘은 나를 엄마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묘사했던 밀회 같은 둘의 속삭임에서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나를 엄마라고 지칭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엄마 따위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에게 그 둘은 내가 만들려는 종이 속의 흥미로운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엄마 노릇을 할 준비 따위 없던 내게 크나큰 짐 덩어리가 그들이다.



 이런 내가 그 둘은 그리도 싫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미라고 맹신하는 내가 둘을 부정한다는 게 맘에 안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둘은 내 태도가 맘에 안 들었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마음에 안 들었다. 근데 애석하게도 내가 어미라 맹신해서 나를 싫어하지는 못했다. 애증 같은 관계였다, 결국 우리 모두는. 그러니 친절한 척하거나 위협을 가하며 나를 벼랑 끝에 내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고 그 둘이 달가웠을까?



 나는 처음에는 데미안이 좋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책상에 곱게 쌓여있는 저 종이 뭉텅이를 들이밀고 싶다. 거기에 묘사된 데미안이 내 옆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설명하겠다. 내가 손을 놀려 탄생시킨 데미안은 결국 내가 원하는 하나의 이상이었으니, 그 이상이 내 눈앞에 존재한다면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마치 예수를 맞이한 모세같이 되지 않겠는가. 심지어 내가 만든 존재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데미안에 대한 설정은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인간은 결국 완전하지 못하다. 불완전의 조각들이 맞춰가 균형이라는 완전을 만드는 것이 이 세상의 인간이다. 결국 데미안은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이었다. 인간은 아무리 열심히 손을 놀려도 인간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나란 인간은 이상적 존재를 만들려 노력했지만, 결국 데미안은 인간 비슷한 무언가 이었다.



 나는 싱클레어는 싫었다. 과거형이라는 거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나랑 똑같은 존재라서 가감 없이 감정을 드러내 버리니까. 굳이 내가 나랑 똑같은 존재를 좋아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인간은 원래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싫어하는 법. 그래서 저 둘이 나오는 책을 출판하려 할 때도 내 본명이 아닌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출판하려 했다. 이 거북한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출판은 불가능해 보인다만. 부족하고 서툴고 현실적인 나랑 똑같은 존재. 그런 존재가 더욱 거슬리는 게 이기적이게도 사실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나쁘다 볼 것이다. 그러면 나는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만약 나와 똑같은 기질을 갖고 태어나 나와 똑같은 환경을 살아갔다고 했을 때 나의 선택, 생각과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이 이해가 어렵다면 질문을 간단하게 만들어 보겠다.



 너라고 내가 됐을 때, 다를 것 같아?



 아무튼, 나는 저 둘이 싫고 싫었다. 누군가를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순간에 책임을 지려 하면 모든 게 싫은 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거북스러운 공간에 타자기가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데미안의 오르골을 부수고 싶어 던졌는데 여전히 오르골의 회전목마는 잘 돌아간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점은 결국 내가 둘을 창조한 존재라 내가 손을 어찌 놀리느냐에 따라 둘의 결말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절대적인 존재는 물고기의 아가미를 앗아갈 수 있다. 그리고 둘의 절대적 존재는 나다.











*****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대양 한가운데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어지럽게 생각하고 있다. 품에는 싱클레어가 가엽게 몸을 떨고 있다. 영혼 없는 손길을 보낸다. 마치 자식을 품에 안은 부모처럼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이불 채로 등을 쓰다듬는다. 문자 자체로는 따스하나 어투 자체에는 영혼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싱클레어는 다가오는 파도에 먹힌 육신이 절여지듯 감동한다. 그래서 그 감동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 주문 같은 문장에 녀석은 바다에 삼켜진 인간처럼 간절함을 내비친다. 문장을 되풀이 하면서 나는 이 문장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상기한다. 그리고 목소리로는 구현하지 않고 속으로만 완벽한 문장을 만든다.



 너는 괜찮을 거야. 데미안은 모르겠지만.



 몸을 떠는 싱클레어를 그리도 안고 달랜지가 어느 정도 됐는지 모른다. 그저 초록색의 문의 마찰음을 최소화 하면서 조심스레 데미안이 들어올 때까지 안고 있었다. 데미안과 눈이 마주쳤고 데미안은 펜촉이 없는 만년필 같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는다. 이불 포장 채 옭아매던 싱클레어를 내 두 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었다. 팔을 풂과 동시에 싱클레어는 간절히 손을 뻗는다. 그 간절함이 엉망진창으로 크레파스를 덧칠한 것처럼 격렬해서 붙잡힌 팔에 피가 통하기가 어렵다. 그 저릿한 고통에도 나는 데미안을 향한 시선을 거두어 싱클레어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다가오는 데미안도 내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이런 나와 데미안의 중간에 싱클레어는 불안함을 온 몸으로 표출하며 내 팔을 흔들었다. 자신을 바라봐 달라는 몸짓. 그 애처로운 몸짓을 멈추게 한 것은 내가 아닌 나긋한 데미안 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 옆에 앉아 싱클레어가 나에게 뻗은 팔을 잡는다. 그리고 간결한 한 호흡의 한 마디로 모든 걸 갈무리한다.






“괜찮아. 곧 다 끝날 거야.”






 싱클레어를 바라보며 말하던 데미안은 동공을 굴려 나를 스치듯 바라본다. 데미안의 문장을 머릿속으로 이해하면서, 네가 생각한 끝은 뭐냐고 묻고 싶다. 하지만 물어봤자 나의 결정이 바뀌는 건 아니라서 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졸림에 잠식된 눈을 반만 뜨고 오늘은 다 같이 밤에 이 방에 존재하자는 말만 했다. 오늘은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나만을 위한, 나의 이기심을 위한 약속이다. 그 약속을 지킬 것인가를 물어보자 싱클레어는 몸을 웅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안은 답을 하지 않는다. 답을 하지 않았어도 데미안은 남을 것이라고 본다. 절대자의 명령에 반하는 인간은 없다. 부모에게 미움 받고 싶은 자식은 없다.











*****






 결국 밤이란 게 찾아왔다. 누군가가 이 공간의 천장 부분에 천을 하나 덮어 빛을 막은 것처럼 밤이 마중을 왔다. 싱클레어는 내 침대에 담백하고 고요하게 잠을 잔다. 내가 그에게 나의 침대에 자도 된다고 했기 때문에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잠에 취해 있다. 항상 느끼지만 잠결의 순간에는 싱클레어는 깨끗해 보인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경계의 저편에 있는 생명 같았다. 정말 저것이 생명인지도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존재면서.



 데미안은 주인을 지키는 충성스러운 개처럼 침대 옆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눈을 감고 있다 표현하는 이유는 정신은 또렷한 상태에서 눈만 감은 것인지, 꿈의 세계에 정신을 가라앉히고 잠이든 건지 내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데 데미안이 꿈의 세계를 유영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나의 결정을 바꿀 수 없는 요소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저 둘을 명화를 감상하는 고객처럼 바라본다. 싱클레어와 이어져 있던 천은 풀어져 침대 옆에 하늘거림을 적나라하게 보이며 뒹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감상하는 자세 그대로 소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내며, 서서히 뒷걸음질 쳐서 반대편 책상으로 다가갔다.



 지금 이 현재의 순간에도 타자기는 말끔하게 책상 위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옆에 고장 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 했던 오르골이 자리하고 있다. 오르골의 태엽을 한 바퀴 돌리자 음악이 파동에 따라 소리를 흘리고 오르골의 회전목마가 돈다. 소리를 죽이며 의자를 끌었고, 그 의자에 앉아 자세를 정돈한 후에 타자기를 나에게 밀착시킨다. 양손을 곱게 올리고 매끄럽게 종이를 끼운다. 결말에 다다른 글의 마지막을 써야하는 순간은 이리도 은밀하고 사근 거린다. 글을 하나 끝마친 다는 것은 그들을 내 손에서 떠나보낸다는 의미다. 그래서 섭섭한 마음도 들지만 매혹적인 순간이 다가옴에 쾌락도 느낀다. 허무함과 쾌락의 조화는 생각보다 몽롱하다.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온몸을 씻은 후, 서늘한 바람에 몸을 말리는 청량함을 움직임으로 구현한 것 같아서 좋다. 오르골 소리에 맞춰 능숙하게 손가락은 타자기 위를 춤춘다. 다만 이 손가락 춤을 방해하는 불청객 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잠에 취한 것이라서 그런 건지, 오랜 시간의 침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잠긴 목소리는 묵직하게 깔려 내 손목을 감싸서 굳게 만든다. 그래서 다급하게 글을 썼다. 맞춤법은 틀리지 않는다. 맞춤법이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 써야 하니까.



 나의 다급함을 보고도 데미안은 화를 내거나 격렬한 반항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천천히 다가올 뿐이다. 그 느릿함에 안심이 되면서 상대가 나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뒤에 일렁거리는 인기척을 무시하고 마지막 문장을 머릿속에 정돈한다. 정돈하기 위해 고민을 하자 뒤에 선 상대는 나의 긴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내 고개는 뒤로 젖혀졌고 두 눈에 데미안의 모습이 차오른다. 머리카락을 잡은 녀석의 손아귀 힘이 강해지지만 나의 머리를 쥐어뜯지는 않는다. 눈으로 대화를 나누려는 존재와 마주하며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해석하지 못할 눈의 언어를 해석하려 시도하지 않는다. 절대 다가가지 못하는 영역도 존재한다. 그게 바로 나한테는 데미안과 싱클레어다. 내가 만들고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



 천장이 배경인 시야 속에서 데미안이 보여도 눈앞의 데미안을 생각 하지 않는다. 내가 쓴 글 속의 데미안을 생각하며 문장을 다듬을 뿐이다.






“안녕, 엄마”

“굉장히 불쾌한 문장이네.”

“불쾌하라고 하는 말이야.”

“그러면 나도 너에게 얼마든지 불쾌한 말을 해도 되려나?”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거 아니잖아.”

“응”

“...”

“잘 가, 데미안.”






 잘 가라는 말을 하고 웃음이 나온다. 나의 웃음을 그대로 보고 있는 데미안은 파동이 하나도 없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고개를 꺾고 데미안의 눈을 피하지 않은 상태로 손을 뻗는다. 데미안은 이미 알았던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나의 얼굴과 가까워진다. 손에 데미안의 머리가 닿는다.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어 줬다. 뼈대의 느낌과 머리카락의 건조함이 같이 느껴진다. 마지막에 이 정도의 선물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한 행동이다. 천천히 결 좋은, 마른 낙엽 같은 촉감의 머리를 쓰다듬고 팔을 내려 문장을 마저 썼다. 마지막까지 데미안의 눈을 바라봤다. 녀석의 입에 어떤 유언이 나올까 궁금했다. 나긋한 존재는 나의 궁금증에 부흥 하듯 천천히 입을 땠다.






“싱클레어는 어떻게 돼?”






 마지막까지 데미안은 데미안다웠다. 끝까지 싱클레어를 챙기니.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쓰려던 순간을 정지시키고 말이란 걸 했다. 그 말을 하고 녀석의 답을 듣기도 전에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게 데미안은 삭제돼버렸다. 살해됐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너처럼 될 수도.”






 난 끝까지 무책임한 문장을 뱉는 것 밖에 못했다. 녀석을 죽이면서도.











*****






 그 이후로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기억이 몽롱하다. 미친 사람처럼 웃었던 거 같기도 하고 울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기억에 없다. 기억을 데미안과 함께 삭제했던 걸까.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방 한가운데에 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주변으로 나의 정신이 부서져 있다. 낯선 무언가를 바라볼 때처럼 호기심과 공포를 모두 느끼며 싱클레어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표정에 답지 않은 청순함이 스며있어 웃음이 나왔다. 근데 목이 쉬어 웃음이 나오지 않고 기괴한 소리만 나온다. 이런 내 상태를 보고 놀라, 침대에 내려와 주인을 기다리는 애달픈 것 마냥 낑낑거린다. 손을 뻗어 녀석의 마른 어깨를 잡고 바닥에 붙어 있던 몸을 일으키려 노력한다. 몸은 중력의 힘에 극심한 영향을 받아 휘청거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길을 잃었지만 계속 발걸음을 재촉하는 미아 같은 행태의 내가 이 팔각형의 미제 과자 상자 같은 공간에 분해되어 있다. 불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녀석은 나를 본다. 그 표정이 계기가 되어 토기가 올라와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한다. 싱클레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더니 어색하게 나에게 팔을 뻗는다. 처음에는 내 어깨에 불안정하게 자신의 두 손을 올렸다. 그 후에 나의 등으로 손을 흐르게 두고, 내 어깨에 제 이마를 대고는 등 가운데에 손을 두고는 규칙적으로 토닥인다. 녀석은 나를 안고 달랜다. 내가 하던 행동을 똑같이 구현한다. 나와 달리 영혼이 충만하게 넘치는 행동이다. 진심이 구현된 행동의 언어다.






“그러지 마. 그럴수록 내가 더러운 게 너무 명백해지잖아.”






 내 말에도 녀석은 계속 나를 안고 있다. 사실 이 행동의 의도가 나를 위로하는 것뿐인지 잘 모르겠다. 녀석은 내 어깨에 기대에 제 머리를 비비면서 위로 받고 싶어 하는 행위를 했으니까. 마치 어린 생명이 몸을 웅크리고 품을 파고드는 것처럼 녀석은 점점 세게 나를 안는다. 그런 녀석을 보며 눈에 무언가 나올 것 같은데 나오지 않는다. 눈물조차 주어지기 아까운 나에게 나 스스로 내리는 일말의 양심인가 싶어서 자신이 간사하다 생각한다. 그렇게 유화 물감과 수채화 물감이 섞인 듯 매스껍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불안정함과 함께 안정도 찾아온다. 그 이유가 적음의 힘으로만 볼 수 있는지, 어색하게 감싸는 마른 팔 때문인 건지 모른다. 그냥 다 모르고 싶다.



 나는 결국 내 품에 파고드는 것의 등에 내 팔을 얹어 상대를 품에 받아들인다.











*****






 싱클레어는 나를 부축하고 싶어 했지만 그 손길을 물렸다. 녀석과 더 이상 몸을 부둥켜안지 않는다. 녀석을 내 몸에서 분리시키고 타자기가 있는 책상에 다가갔다. 다시 앉은 의자에는 타자기가 여전히 곱게 존재한다. 타자기에 붙어 있는 종이를 바라봤다. 싱클레어에게 답을 바라지는 않지만 물었다.






“다시 글을 쓸까? 저 종이를 내가 먹어버리고 다시 데미안을 살릴까?”

“....”

“새로운 글을 써서 데미안을 살리면 우리는 행복할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다시 살린 데미안이 우리가 알던 데미안일까?”

“...난 잘 몰라.”

“내가 데미안을 살리면 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까?”

“괜찮아.”

“....뭐?”

“내가 죽어도 괜찮아.”






 고개를 돌려 싱클레어를 바라봤다. 가만히 있는 줄 알았던 녀석은 침대로 비척비척 걸어가고 있다. 다시 두 눈에 어둠을 담고, 정신을 꿈의 바다에 부유하기 위해, 잠을 청하려는 모습이다.






“엄마 편할 대로 해. 죽어도 원망 안 해. 엄마가 우리를 만들었잖아.”






 싱클레어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저 말을 한다. 그리고 침대에 몸을 깊게 파고들며 등을 보이며 자려 한다. 그게 답지 않게 안쓰러워서 울음이 터질 거 같다. 답지 않은 껍데기는 그 껍데기를 입은 사람을 더 초라하게 만들고 그걸 목격한 사람에게 극한의 감성을 선사한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다가간다. 침대에 누워 있는 여린 것과 그 여린 것의 발악의 산물인 기다란 천을 봤다. 비척거리는 빗물 같은 발걸음으로 침대에 다가가 천을 줍고 뒷모습에 대고 소리친다.






“우리 내일 다시 생각해보자.”

“.....”

“안 죽일게.”






 이미 다 소모되어 껍데기만 남아버린 지친 몸으로 같은 침대에 몸을 구겨 넣어 본다. 싱클레어의 손목에 천을 감았다. 내 손목도 감았다. 우리는 다시 연결되었다. 연결된 상태에서 싱클레어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녀석의 애처로운 형상이 보였고, 상대의 감겨진 눈꺼풀에 축축한 감정이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천이 연결된 손으로 녀석의 머리로 손을 뻗는다.






“미안해”

“미안하면.”

“...”

“버리지 말아줘.”

“....”

“지금 이렇게 태연한척해도.”

“...”

“사실, 무섭단 말이야.”

“...”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버려지는 게 무서워.”






 감겨진 녀석의 눈이 결국에 뜨지 않는다. 한참을 그 얼굴을 바라보다 나도 눈을 감아버린다. 손의 감각에 신경을 쏟는다. 누군가와 비슷한 마른 낙엽 같은 촉감의 싱클레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몇 번을 쓰다듬고 엉킨 천을 따라가 녀석의 손을 쥐어본다. 손에는 바스락 거리는 감정도 같이 잡힌다. 잠결에 무언가를 읊듯 마지막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싱클레어는 몸을 웅크리고 나에게 밀착해왔다. 나는 내 품에 녀석을 안았다.






“비극적이게도 내가 너희의 어미였어.”











[WINNER/강승윤/남태현] 회전목마 클리셰 | 인스티즈

[WINNER/강승윤/남태현] 회전목마 클리셰 | 인스티즈

[WINNER/강승윤/남태현] 회전목마 클리셰 | 인스티즈













내용 이해를 위한 해석

<회전목마 클리셰>를 해석하기에 앞서 이 짤막한 글의 시작점이었던 <데미안>과 <케빈에 대하여>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작품. 화자는 싱클레어. 싱클레어가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데미안이라는 인물에게 받은 영향에 대해 이야기 하는 소설. 소설 속에 나오는 데미안이라는 인물은 불안정한 존재였던 싱클레어가 정신적으로 성장하기에 도움을 주는 인물. 싱클레어에게 크나큰 정신적 지주다.



<데미안>은 사실 썩 잘 읽히는 소설은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오래된 판본을 읽었다보니,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 읽기 어렵다는 편견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만. 하지만 번역을 떠나서 내용 자체가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가 중점이 아니고, 개인의 정신의 성장에 대해 설명하는 추상적인 내용이다 보니, 읽기가 힘들 수 있는 소설입니다. 심적 성장이다보니 해석에 대해서도 분분한 편인데, 가장 지지를 받고 있는 해석은,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싱클레어가 만든 허상의 존재라는 해석입니다. 즉, 데미안은 실제로 있던 인물이 아닌, 싱클레어가 혼자 만든 인물이며, 싱클레어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격을 형상화 한 존재라는 것. 사춘기 시절 불온전 했던 싱클레어가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만든 이상적 존재, 신기루와 같은 존재가 데미안 입니다.



그리고 작가였던 헤르만 헤세는 필명을 싱클레어로 했던 점을 봤을 때, 싱클레어와 자신을 어느 정도 동일시 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간단히 정리해보면,작가 헤르만 헤세 = 싱클레어


작가 = 헤르만 헤세 = 싱클레어 = 불온전한 존재〈o:p>〈/o:p>

데미안 = 완전한 존재, 이상적 존재 = 허상의 존재


이렇게 볼 수 있겠죠.



작가(헤르만 헤세), 싱클레어, 데미안이라는 캐릭터를 모티브로 해서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소설 속 서술자 '나' = 작가 = 헤르만 헤세

승윤 = 불온전한 존재 = 무자비한 녀석 = 싱클레어

태현 = 이상적 존재 = 나긋한 존재 = 데미안


이렇게 캐릭터를 부여해서 <회전목마 클리셰>를 쓰게 됐습니다.






*****



<케빈에 대하여>는 갑갑한 내용의 영화입니다. 꿈이 많았던 여성이 자식으로 인해 인생이 처참해지는 내용이죠. 무차별적인 아들의 정신적 폭행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 이유는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죠. 그저 아들이 왜 엄마라는 존재를 싫어하는지에 대해 추측만 해볼 뿐이죠. 엄마에게 아들은 원치 않았던 임신으로 잉태한 존재였다는 것을 아들이 엄마를 싫어하는 이유로 추정합니다만 그게 명확한 답이라고 말은 못하죠. 이 영화는 끝까지 갑갑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느낌이에요. 보는 사람이 속이 타들어가고 말라버리는 기분이죠.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제가 애용하는 영화 관련 어플에서 본 한줄평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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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하는 아들과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척하는 엄마 사이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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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줄평으로 <회전목마 클리셰>의 주제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세부 내용에 대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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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형 미제 과자 상자 같은 방의 의미



 글의 도입부는 작가인 '나'가 갇혀버린 공간에 대한 묘사로 시작됩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드러나지만, 이 공간은 주인공이 작가다 보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창조된 세계입니다. 현실 세계는 아니고 소설 속 존재들의 세계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소설을 무자비하게 쓰는 과정에서 소설 속 인물들에게 신차럼 무자비하게 군림하는 '나'의 업보가 쌓이면서 '나'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차원에 갇히게 됩니다. 이 공간을 글의 도입부에는 팔각형 미제 과자 상자 같은 방이라고 서술합니다.

 이 방에는 4개의 문이 있는데 이 문에 대한 묘사는 두 가지로 갈립니다.

〈!--[if !supportEmptyParas]--> -감시자처럼 신랄하게 나를 바라보는 문도 있고, 가해자만큼 못됐다는 소리를 들은, 운이 안 좋은 관망자처럼 존재하는 문도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감시자 같거나, 관망자 같은 문이 있다고 묘사합니다. 4개 중 2개의 문이 감시자 같은 문인데, 글에서 설명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 문에서는 싱클레어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나머지 2개의 문이 관망자 같은 문인데 여기는 반대로 데미안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문에 대한 묘사는 두 인물의 성격, 포지션에 대한 묘사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싱클레어는 '나'라는 인물이 떠날까 봐 감시를 하는 캐릭터고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나'에게 집착하는 것을 관망하는 사람이라는 걸 묘사하고 싶어서 넣었던 문장입니다.







*명칭 [ 무자비한 녀석, 나긋한 존재 ]

이것도 두 인물에 대한 포지션을 보여주기 위해 글 초반에 많이 썼던 지칭 표현입니다. 싱클레어에게는 무자비한 녀석이라고, 데미안에게는 나긋한 존재라고 '나'는 부릅니다. '무자비' 라던가 '나긋한' 이라는 단어는 각 캐릭터의 성격을 말하고 싶어서 붙인 단어입니다. 이거는 충분히 추측이 가능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칭에서 궁극적으로 신경 썼던 부분은 '무자비'와 '나긋한'이 아니라 '녀석'과 '존재'라는 표현이었습니다. 화자인 '나'는 싱클레어는 '녀석', 데미안에게는 '존재'라고 지칭하는 것을 바꾼 적이 없습니다. 



'녀석'이라는 단어는 남자를 낮게 보거나 남자아이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사전적 정의에도 드러났다시피 남자인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반면에 존재라는 것은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니어도 존재라고 지칭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에게도 존재라고 지칭할 수 있지만, 인간이 아닌 물건에게도 존재라고 지칭할 수 있습니다. 싱클레어나 데미안이나 둘 다 '나'라는 존재가 타자기를 놀려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들인 건 똑같습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주인공이 싱클레어는 인간으로 인정을 했고 데미안은 인간으로 인정을 하지 못했음을 드러내고 싶어서 계속 저렇게 '녀석'과 '존재'라고 지칭을 하는 걸로 묘사 했습니다.






*주인공 '나'에게 코르셋의 의미

 부모러서 가지게 되는 책임감, 압박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장치입니다. 미제 과자 상자 같은 방에 발을 들일 때는 몰랐지만,  '나'라는 존재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자신을 어머니로 보는 것을 알아채고 불편해합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창조한 존재기 때문에 어머니라고 지칭을 합니다. 둘 중에서도 특히 싱클레어가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감정이 커서, 주인공에게 어머니로써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데미안은 소설가인 내가 소설을 쓰면서,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든다는 설정으로 창조된 캐릭터기 때문에 '나' 혼자서 만든 존재가 아닙니다. '나'와 싱클레어가 같이 만든 존재죠. 그러다 보니 데미안은 싱클레어에 비해 주인공에 대한 의존도가 낮고 어머니인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적습니다. 데미안 에게는 어머니인 주인공만 중요하진 않고 싱클레어도 같이 중요하기 때문에 주인공에 대한 의존도가 싱클레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미안이 주인공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if !supportEmptyParas]--> 〈!--[endif]--> 〈o:p>〈/o:p>

나의 코르셋 끈을 자르는 건 싱클레어다. 나의 코르셋 끈을 매듭짓는 건 데미안이다. 데미안은 나를 붙잡을 때 무덤덤한 표정이다. 싱클레어는 날 붙잡을 때 눈이 노을처럼 붉어진다. 하나의 물음이 불길과 항상 함께하는 연기처럼 생각에 피어오른다. 나를 여기에 못 벗어나게 하는 건 과연 싱클레어였을까? -

〈!--[if !supportEmptyParas]--> 〈!--[endif]--> 〈o:p>〈/o:p>

이 글에 나온 부분 중 일부분을 가져와 봤는데, 코르셋 끈을 매듭짓는 것이 데미안이라는 부분에서 데미안도 주인공에게 의존을 한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보내기 싫기 때문에 항상 코르셋을 묶는 역할을 데미안이 하는 거죠. 데미안이 자신에게 의존한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주인공은 싱클레어에게는 배타적 태도를, 데미안에게는 호의적 태도를 보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자신이 갇힌 공간을 벗어나려는 시도만 하고, 데미안과 싱클레어를 소설 속에서 삭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데미안조차도 자신에게 의존하고 자신에게  무자비한 행동을 했음을 자각하고 주인공은 데미안을 삭제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타자기



 주인공이 자신의 목숨만큼 소중하다고 한 타자기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건드리지 못 합니다. 그 타자기로 둘이 창조되고 소멸할 수 있기 때문에 적용되는 이 세계만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팔각형의 미제 과자 상자 같은 방에서 이 타자기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주인공뿐입니다. 어쩌니저쩌니해도 주인공은 작가기 때문에 소설을 끝맺으려 합니다. 그리고 현재 쓰고 있는 글이 바로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 속에서 두 인물의 성격, 기질, 행동, 기억 같은 것을 어떻게 서술하느냐에 따라, 바로바로 실제 그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소설 속의 싱클레어가 죽는다면, '나'의 옆에서 살아 숨쉬는 싱클레어도 죽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싱클레어는 타자기를 싫어합니다. 데미안은 그것이 절대적인 영역이라서 건드일 수 없다는 걸 자각하고 반대로 무념무상의 태도를 보입니다. 싱클레어는 그래도 타자기가 싫어서 주인공의 손목과 자신의 손목을 천으로 이어 주인공이 글을 쓸 때 맘에 들지 않는 문장을 쓰면 잡아당깁니다. 그 문장을 완성시키지 말라는 의미로 잡아 당기는 것입니다.



 데미안은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서는 제약을 가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자신이 물리적으로 손을 댈 수 없는 물건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타자기를 만질 수 있는 주인공을 회유하면 타자기를 이 세계에서 영구적으로 없앨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주인공을 구슬려 타자기를 주인공 스스로 버리게 만드려고 했습니다. 코르셋을 통해 주인공이 이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데미안을 삭제하게 되는 대참사가 발생합니다.






*오르골의 의미



데미안이 주인공을 위해 준 선물입니다. 회전목마 모양인데 태엽을 감으면 회전목마가 돌아가는 형태. 여러가지 모양이 있지만 회전목마 모양이라고 설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회전목마 자체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회전목마처럼, '나', 싱클레어, 데미안의 관계는 변함없이 애증의 관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이던 데미안이던 싱클레어던 지금의 관계에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와버린다는 걸 암시하는 거기도 하고요. 그래서 중간에 주인공이 오르골을 던져버려도 고장 나지 않고 멀쩡합니다. 절대 그 관계가 바뀌지 못한다는 걸 끝없이 보여주고, 상기하려고 만든 장치입니다.






*싱클레어의 폭력 이유



 이건 앞서 말한 <케빈에 대하여>와 같은 맥락입니다.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식의 발악이 폭력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왜 자신을 책임지지 않고 버리려고 하느냐를 '나'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마지막에 싱클레어는 주인공에게 자신을 죽여도 된다고 말하는데, 이 죽여도 된다는 말은, 체념, 포기의 정서가 들어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데미안은 앞서 말했다시피 주인공 혼자 만들었다고 보긴 어렵고 주인공과 싱클레어가 같이 만든 존재입니다. 혼자가 아닌, 같이 만든 존재인 데미안을 삭제해 버렸으니 싱클레어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자식을 살해하는 걸 목격한 기분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데미안도 삭제했는데 나라고 삭제 못하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래서 포기의 감정으로 그렇게 얌전하게 침대에 들어간 겁니다. 상대에게 애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 어머니로써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 겁니다.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나'와 관련해서만 싸우는 이유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사이가 좋아 보입니다. 둘은 서로 다른듯 공통점이 많았다고 글 중간에 표현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완전한 데미안이라도 싱클레어가 만든 존재기 때문에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잘 따랐다는 걸 추측해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주인공이라는 존재는 싱클레어에게 유일한 부모였던 반면 데미안의 입장에서 주인공이 유일한 부모는 아닙니다. 데미안의 입장에서 싱클레어는 아버지의 포지션이고 주인공이 어머니의 포지션이다 보니 둘 다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싱클레어가 자기 자신(싱클레어)을 보살피지 않으면서 않으면서 주인공에 집착하는 것이 건강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물론 데미안에게도 '나'는 중요합니다. 엄마니까요. 하지만 싱클레어도 중요합니다. 아버지이면서 자신이 보살펴야 할 존재가 싱클레어라고 판단한거죠.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관계는 애매모호하면서 묘한 편입니다. 싱클레어가 자기 보호를 위해 만든 완벽한 존재 같은 느낌. 즉, 싱클레어는 자기자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 하지만 그 역할을 데미안이 대신하는 느낌. 이렇게 데미안의 보호를 받으면서 싱클레어는 은근 데미안을 질투합니다. 주인공인 '나'는 자신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 인격을 데미안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완벽할지언정 인간인지라 한계가 있지만.) 그리고 '나'가 데미안을 이상적 존재라고 바라보는 것을 알고 싱클레어는 질투합니다. 글 중간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나도 그걸 너한테 묻고 싶었어. 왜? 대체 왜 데미안이 필요했던 거야? 그건 필수적으로 필요한 순간이 아니었잖아. 데미안이 굳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내가 있었잖아. 이미 내가 있는데, 왜 데미안이 필요했던 거야? 그리고 왜 그런 애를 내가 만들게 만들었어? 난 그때만 해도 데미안이 필요하지 않았어. 근데 네가 나한테 걔가 필요하다고 부여해버렸어. 날 그렇게 만들었어. 내가 데미안의 역할을 하면 됐잖아. 꼭 나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면서까지 한 명이 더 필요한 건 아니잖아."


굳이 왜 데미안을 만들었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데미안의 역할을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며 자기한테 데미안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데 필요하게 만들었다며 속에 있던 질투를 내비칩니다. 말하자면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나'라는 존재 때문에 싸운다는 것은, 엄마를 두고 아빠와 아들이 싸우는 모습이기도 하고, 엄마를 두고 형제 둘이서 싸우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둘이 싸우는 이유는 간단하죠. '나'라는 존재가 그들에게 엄마기 때문입니다. 싱클레어한테는 '나'라는 존재가 아내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사실 글 속에서는 연인에게 느끼는 감정을 '나'와 싱클레어가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포지션이 아빠, 엄마인 거지, 거기에는 이성에게 느끼는 사랑은 없습니다.






*세 명의 캐릭터 간의 관계



부모 자식이라는 묘사로 이미 앞서 설명을 많이 했습니다. 근데 중간에 표현하듯 근친을 하고 그런 행위는 실제로는 없습니다. 표현상, 근친 같다고 하는 거죠. 싱클레어는 '나'를 엄마로 느끼는데, 이런 싱클레어와 주인공이 같이 데미안을 만들어 버려서, 그 애매한 관계를 근친 같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글 속의 세계는 '나'가 소설로 누군가를 만들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소설에서 없애버리면 소멸하는 차원입니다. 그렇게 캐릭터를 제작하는 삭제하는 세상. 그래서 '나'한테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그저 게임 캐릭터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소설 속 인물들은 주인공이 자신을 만든 창조주이자 어미로 느낍니다.


"네가 데미안을 만든 게 맞는 거라 해도, 근본이라는 것을 바라보면, 데미안은 온전히 너 혼자 만든 건 아니야. 네가 만들었다는 건 내가 만들었다는 거니까. 근데 넌 내 아들이야. 그리고 아들인 너와 내가 데미안을 만들었어. 그러면 데미안은 내 아들이면서 너의 아들인 걸 거야. 그러면 데미안은 나의 손자일까, 아들일까. 우린 지금 몸을 하나도 섞지 않고 혐오스러운 근친을 행하는 걸까? 넌 이 질문들의 답을 알고 싶어? 난 알고 싶지 않아서 다 삭제하고 싶은데."



주인공은 이 복잡한 관계를 근친이라 표현할 정도로 싫어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다 삭제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엄마의 역할을 하는 것도 싫고, 이 복잡한 관계도 싫다는 걸 분명하게 표현하는 부분입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 둘 다 '나'가 만든 존재라는 의미에서, 나와 둘의 관계는 엄마와 아들입니다. 그리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는 형제가 됩니다. 하지만 데미안이, 싱클레어와 주인공이 같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면,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아들도 됩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데미안은 손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 애매모호하고 역겨운 근친 같은 행태가 지긋지긋한 거죠.





 


*데미안을 삭제한 후에 싱클레어를 삭제하지 않은 이유



데미안을 삭제하기 전까지는 주인공은 기세등등한 태도를 보입니다. 어차피 가상의 인물이라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죄책감이 없을 거라는 마음이었죠. 거기다가 데미안이 자신에게 가한 압박들에 대해 반항을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실제로 데미안을 삭제한 후에는 자기혐오가 강하게 올라옵니다. 가상이어도 자기가 두 발 디디고 있는 공간이며 그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를 죽인거니까요. 자기혐오를 거치는 과정에서 인정을 하게 됩니다. 싱클레어도 데미안도 자신과 공간을 공유한 존재들이자 자신이 창조한 자식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 그래서 결국 데미안을 삭제한 후에 싱클레어를 죽이지 않습니다.






*결국 데미안은 영원히 삭제되는 것인가?



이건 열린 결말이라면 열린 결말입니다. 각자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될 거 같아요. 하지만 다시 데미안을 살린다고 해도 서로의 목을 조르는 애증의 관계를 벗어나기가 어려워서, 오히려 데미안이 없는 상태에서 주인공이 싱클레어를 아들로서 케어하는 게 더 좋은 결말일 수 있습니다. 데미안이 다시 살아난다고 하면 초반에는 호전되는 듯 보이다가, 결국 셋 다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최악의 경우 미친 주인공이 둘을 삭제해 버리고 자신도 삭제해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데미안은 완벽한 존재지만 '나'와 싱클레어의 관계를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데미안은 자신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지만 도달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근친같이 꼬여버린 관계의 시작점이라 속에 화가 끓어오르게 만듭니다. 싱클레어 입장에서는 형제 같으면서 친구 같은 애매모호함. 거기다가, 묘하게 느끼게 되는 질투를 느끼게 하는 게 데미안 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데미안을 살리고 그들의 관계가 정돈되고 말끔해져 잘 지낸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죠. 이번에 마지막 장면을 수정했는데, 수정한 부분에서 주인공이 싱클레어를 자식으로써 인정하는 행동이 많이 보이니까요. 결국 각자 생각하기 나름인 거 같습니다.






*'나'와 싱클레어를 잇던 천.



초반에는 싱클레어가 '나'에게 억지로 맸던 천이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스스로 묶어 싱클레어와 연결한 천을 말하는 겁니다. 이거는 탯줄같은 의미로 쓴 거예요. 엄마와 아들과의 연결을 의미하는 거죠. 처음에는 아들이 엄마에게 더 절박했기에 싱클레어가 '나'에게 매게 했던 거고, 마지막에는 데미안을 죽인 후에 후회를 하면서 아들인 싱클레어를 갈구하는 엄마로써의 '나'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주인공이 자발적으로 맵니다. 천에 대한 묘사 중에서 '탯줄 같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떠먹여드릴려고 아예 대놓고 표현한 거긴 한데, 제 글이 가독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지나쳐버렸을 수도 있어요.






* 추가된 부분 ( 결말 부분 )에 대한 설명



 회전목마 클리셰 완전 수정본은, 문장을 가다듬는데 주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초반에 수정 작업을 시작 할 때는 문장을 새로 추가하더라도 큰 스토리 흐름이나 설정은 바뀌지 않게 수정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 부분이 조금, 아주 조금 달라졌습니다. 싱클레어의 대사가 추가 됐고, 주인공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손목과 싱클레어의 손목을 천으로 이어지게 매듭짓는 장면, 주인공과 싱클레어가 마주 보는 장면, 마지막에 주인공의 품에 파고드는 싱클레어와 그런 싱클레어를 안아주는 장면이 추가됐습니다. 이런 장면을 추가 한 이유는 제가 결국 이 글을 쓰면서 잡았던 주제에 그게 더 적합하다 생각 했기 때문입니다. 


“미안하면 버리지 말아줘. 지금 이렇게 태연한척해도, 사실 무섭단 말이야.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버려지는 게 무서워.”


버려지는 공포에 대해서 표현하고 싶어서 추가한 문장 입니다. 삭제된다는 건 죽는다는 걸 의미하는데,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죽이면서까지 버려진다는 게 자식한테는 더 무서운 공포라는 걸 표현하려고 만든 문장인데 이게 잘 전달 됐는지 모르겠네요. 천을 서로 잇는 장면에 대한 설명은 위에 있고, 싱클레어를 안아주는 장면은 마치 엄마가 아이를 껴안아주는 것과 같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넣은 장면입니다. 모성애에 대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글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가? 주제가 뭔가?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저는 모성애가 생기는 것, 생기지 않는 것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됐고, 이런 저의 가치관을 표현 한 게 <회전목마 클리셰>인거죠.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게 된 생명은 나에게 걸림돌이 되고, 그 생명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된다는 걸 표현하려고 하기도 했고요. 이외에도 제 가치관이 많이 묻어나 있는 글이에요.






* 개인적 감상



 정말 혼을 불사른 기분이에요. 이건 이제 수정 안할거예요..... 내가 기운이 딸려요. 기운이....

근데 제일 뿌듯한 거 같긴 해요. 특이 중편이었던 부분은 문장을 많이 갈아 엎다보니 만족하는 중!

하면서 어차피 취미로 글쓰는 건데 왜 이렇게 목을 매달고 있나 싶기는 한데 뿌듯하니까 됐어요.



















THE END

  

inspired by

[demian]

[we need to talk about ke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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