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꽃이 피는 가학심
조금 빠르게 소파에 앉아있는 내 앞으로 와 앉아 나를 올려다본다.
그러다가 손을 들어 내 이마에 가볍게 가져다 댄다.
잠깐 머물고 가는 손에 미열이 흐르는 착각이 들었다.
"아가. 열 난다. 너무 울어서 그래."
내 얼굴을 쓰다듬어주는게 좋았다.
깨질듯한 소중한 것을 만지듯이 쓰다듬는 그 손이 좋았다.
"왜 또 울었어? 나 없어서?"
끄덕이려던 고개를 그냥 왠지 고개를 저어야 할 것 같아 좌우로 저었다.
"그럼 왜 울었어? 응? 아가 많이 아파?"
이번에도 도리도리.
"운 이유를 말해줘야 알지. 열나는 것도 몰랐어? 이리 와."
양팔을 벌려 자기 품에 안기라는 그 행동이 너무나도 좋아서 온몸이 아픈 것도 잊고 폭- 안겼다.
이런 건 나한테만 해주는 거 맞지, 열아?
김준면 선생님이랑은 안 하지?
그럼 됐어. 내가 너랑 더 많은 추억이 있으니까 괜찮아.
안긴 나를 토닥이더니 품에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
"땀 많이 났다. 샤워하고 올래? 목소리 안 나와?"
대답 없는 내가 걱정이 된 건지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아냐. 억지로 대답하지마. 오늘은 그냥 푹 쉬어. 약 찾아서 가져올게 누워있어."
다시 김준면 의사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나간다는 생각에 약을 가지러 가려는 찬열이의 옷깃을 잡았다.
나도 모르게 잡아버렸다.
당황해서 바로 놓았지만 그 잠깐 사이를 느꼈는지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내 앞에 앉는다.
"아가. 오늘 이상해.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아까보다 진지한 얼굴에 침이 바싹바싹 말랐다.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으니 내 손을 잡는다.
"왜 그래? 왜 이렇게 풀 죽어 있어? 혹시 너한테 김준면의사선생님이 뭐라고 했어?"
그 말에도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둘이 함께 있는 게 보기 싫었어.
나도 이런 내가 이해가 안 되는데 둘이 있는 게 싫다고 하면 날 이상하게 볼 것 같아 대답하지 않았다.
"나한테 뭘 숨기는 거야?"
그 말에 자연스레 고개가 올라갔다.
"난 네 눈빛 하나 손짓 하나에도 무얼 의미하는지 다 알아. 넌 모르겠지만, 나 네가 움직이는 행동 하나하나 자세히 다 봐. 너가 발끝을 서로 톡톡 칠 때는 부끄러울 때 하는 행동.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때 손톱을 물어뜯고. 참을 때 깨무는 입술. 난 다 알아."
언제나 그랬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행동했다.
나도 모르는 습관을 찬열이는 알았고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을 찬열이는 언제나 앞서 행동했다.
"아가.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뭘 숨기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너가 힘든 건 보여. 말 한마디 안 했는데 네 행동 하나하나가 지금 애처로워.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시선이 계속 내게만 머물어."
나도 모르겠는데.
지금 이 감정이 뭔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걱정되니까 말해봐. 뭐라고 말해도 다 들어줄게. 내가 말했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아가 말은 잘 듣는다고."
"....으..으허헝..흐..으아앙-.."
찬열이의 말이 가슴 깊이 새겨지는 것 같아서.
자기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말처럼 들려서.
든든한 내 편이 생긴 것 같아서 안도감에 그냥 펑펑 울어버렸다.
"뭐가 그리 속상해. 울지마 아가."
똑똑-
한창 울고 있는데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려 울다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김준면의사선생님이 문 앞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를 눈빛이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았다.
시선을 마주하다가 결국 먼저 시선을 돌린 건 나였다.
"찬열아, 잠깐 나 좀 볼래요?"
문에 기댄 채 눈짓을 보낸다.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찬열이한테.
내가 이렇게 울고 있는 거 다 보이면서.
찬열이는 김준면의사선생님을 바라보다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내 옆에 있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더니 문 밖으로 나갔다.
문에 서있던 김준면 의사선생님은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뭐야. 이게 지금 무슨 일이야.
저 웃음이 왜 나를 비웃는 것만 같을까.
그리고 대체 왜 난 지금 이 방안에 혼자 남겨진 걸까.
이런 거 싫어, 찬열아.
나를 혼자 두지 마.
이 넓은 방안에 나를 이렇게 놓고 가지마.
의사선생님이 아닌 내 말을 들어줘.
나를 좀 봐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