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 - Blood. Sexy
W. 지나가던 탄소
1
밤새 드라마를 복습하느라 뻐근한 눈을 몇번 비비고는 욕실로 들어섰다. 빨간 눈이 얼마나 무리해서 밤을 샌건지 알려주는 것만 같아서 눈을 감고 찬 물로 얼굴을 씻었다. 얼굴을 찬 물로 적시니 정신이 돌아오는 것만 같아서 머리를 풀고 몇번 빗고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옆으로 넘겼다. 귀 뒤에 꽂혀진 앞머리가 내려오지 않게 머리핀을 꽂은 뒤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한 뒤 방으로 들어와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언제 묻은건지 빨간 물감같은게 와이셔츠에 묻어있어서 다른 와이셔츠를 꺼내 입고 거울앞에 섰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학교로 걸어가는 중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다만 조금 피곤한 눈이 자꾸 감겨와서 빨리 학교를 향해 뛰어갔을 뿐.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도착한 학교에는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을 것만 같았다. 어두운 교실에 들어서서 가방을 걸고 책상에 머리를 대곤 잠에들었다. 피곤한 눈이 감기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바로 잠에 빠진 뒤 교실 문이 살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빨간 입술을 가진 남자아이. 김태형이 꿈속에 나왔다. 너무 생생해서 현실과 비교가 가지 않는 그런 꿈이었다. 나의 목으로 달려드는 김태형을 밀어내지 못한 채 그대로 김태형에게 물려버린 나는 정신을 잃은 채로 꿈이 끝이났다. 놀라 일어나보니 나의 목에 손을 대고 있는 김태형이 보였다. 신경질적으로 김태형의 손을 쳐버리고는 나의 목을 손으로 감쌌다.
"너, 대체 언제 온거야."
"니가 나를 불렀을때."
"뭐?"
"그렇게 겁먹지 마, 난 평범해."
슬쩍 웃으며 자기 자리로 걸어가는 김태형의 뒷모습을 넋놓고 바라봤다. 평범하다니, 도대체 어디가. 몇일전부터 김태형은 이상했다. 점심시간에는 친구들을 뒤로 한 채 매일 옥상으로 올라가서 내려오질 않았고, 하교길에는 김태형을 볼 수가 없을정도로 빠르게 없어지는 바람에 김태형을 보기가 어려웠다. 전혀 평범하지 않은 김태형의 태도에 의문감이 들었다. 무슨 말일까, 평범하다니. 여전히 새빨간 입술이 눈에 거슬렸다. 김태형은 비인간적이게도 섹시했다.
"그저 그랬다니까."
"뻥치지마 김태형, 너 가서 누나들만 잔뜩 보고 왔지!"
"음..아마?"
아, 치사하게! 몇일 동안 가족과 같이 휴가를 갔다왔다는 김태형의 주위로 김태형의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가서 뭐했는지, 재미있었는지. 의미없는 소리만 가득했던 친구들의 물음에 김태형을 웃음을 지으며 일일이 답해주었다. 김태형의 답을 듣고 장난인지 뭔지 김태형의 목에 헤드락을 거는 남학생을 나도 모르게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고, 남자아이의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게 이상한 듯 남자아이를 쳐다보던 김태형이 그 남학생의 시선을 따라서 나를 쳐다봤다. 자신의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나를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 웃어주는 김태형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여전히 김태형은 섹시했다. 인정하기 싫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건 기분이 더러웠다. 여전히, 김태형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2
김태형이 이상했다. 늘 웃고있던 입가는 어느새 축 쳐져있는지 오래였고, 옥상에서 시간을 보내던 점심시간마저 어느새 반에서 축쳐져 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어딘가 아파보여서 나도모르게 김태형의 입술을 바라봤다. 늘 빨갛던 김태형의 입술은, 여전히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대체 뭘 하길래 저렇게 빨간 입술을 가지고 있는건지. 신기했다.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누워있던 김태형의 입술에 손을 올린 채로 잠시 멈췄다. 따듯하다. 이상했다. 김태형의 입술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부드러운 김태형의 입술을 잠시 쓸다 손을 떨어트렸다. 반의 맨 뒤에 위치한 사물함으로 걸어가서 한국사책을 꺼내들었다. 기분탓이겠지. 고개를 저었다. 치마를 털고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야, 봤냐."
"당연하지, 쟤 뭐냐?"
"그러니까 뭔데 김태형한테 손을 대?"
"아, 열받아!"
반에서 들리는 소리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게 난 뭘까. 화장실에 걸어가 찬 물을 틀고는 손을 적셨다. 차가웠다. 얼굴에 손을 대고 머리를 쓸었다. 화장실을 나와 반으로 들어가자 언제 잠에 빠졌냐는 듯 눈을 멀쩡히 뜨고있는 김태형이 보였다. 나를 바라보고있는 김태형과 눈이 마주치자 어딘가 찝찝했다. 김태형은 입꼬리를 올려 웃고는 입을 벌렸다. 고맙다. 작게 들리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고마운건데 넌. 자리로 돌아가 책을 펼쳤다. 여기저기 난도질 되어있는 책을 보자마자 기가찼다. 유치해. 책을 들고 교실 뒤에 위치한 휴지통으로 걸어가 책을 던졌다. 휴지통 안으로 들어간 책이 펼쳐지자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쟤 부자라며, 책 한권 정도는 지 돈으로 사겠지. 거슬리는 소리에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여자아이들에게 걸어갔다.
"저거, 누가 한걸까?"
"그, 그걸 나한테 왜 물어!"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어서."
"...뭐?"
"이래서 뜬소문이 무서워, 내가 부자라는거 누가 그래."
"..."
"옥탑방에 전세내고 사는 부모님 밑에서, 잘도 부자가 나오겠네."
"..."
"행동조심해, 너."
팔목을 잡고 쏟아붓는 내가 무서웠는지 덜덜떠는 여자아이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하등해. 울음이 터져버린 여자아이를 뒤로한 채 나를 쳐다보고있는 김태형을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음짓는 김태형의 속이 궁금했다. 대체 어떤 아이인걸까, 김태형은.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에 이어폰을 꽂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몰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책상에 묻었다.
점심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