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글쎄 절때로 있을 수 없다니까 - ”
“아니, 있을 수 있어. 아니 있다니까 ! ”
새벽 2시. 남들은 감수성이 깊어지는 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동네 호프집에서 목청을 높여 싸우고 있다.
그 중대한 싸움의 주제는 ‘남자와 여자가 친구로 존재할 수 있는가’ 였고.
전자는 아랑이, 후자는 나.
둘 중 누구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2시간째 자신이 옳다고 우기고 있다.
“있다니까, 진짜 있다고 -!"
"아니 - 절때로 없어. 너만봐도 그래. 민윤기랑 니가 단순히 친구라고 생각하냐?“
“그럼. 나랑 민윤기가 친구지. 우리가 연인이라도 된다는 거야?”
“친구 좋아하네. 내가 봤을 땐 너네 절때로 친구아냐. 누가봐도 연인이지.”
말도 안되는 소리. 나랑 민윤기가 연인이란다.
민윤기는 나와 10년지기 친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까지 같이 붙어다닌 지긋지긋한 인연이랄까.
주변에선 나와 민윤기가 커플이라고 한다. 하지만 절때, 절때 나는 민윤기랑 그런 사이가 아니다. 민윤기는 나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나온 절친한 친.구 일 뿐이다. 물론 윤기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랑이는 중학교때 나와 같은 반이 되어 고등학교까지 친하게 지낸 친구다.
나와 민윤기의 사이를 지켜봐 왔던 제3자 이기도 하고.
그런 아랑이가 나와 민윤기보고 연인이란다. 어이가 없다. 대체 어딜 봐서 나와 민윤기가 연인이라는 거야.
“ 들어 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같아. 너보다 공부도 훨씬 잘한 민윤기가 왜 너랑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지원했을 거라고 생각해? 너랑 절친한 친구라서? 아니. 민윤기가 ㅇㅇㅇ을 좋아하기 때문이지. 거기다 대학에 와서 그 많은 선배들과 동기들이 민윤기 좋다고 따라다녔어. 하지만 민윤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 왜? 민윤기는 ㅇㅇㅇ을 좋아하기 때문이지. 이래도 너네가 친구라고? 대답해봐 ㅇㅇㅇ.”
테이블 위에 소주와 맥주병이 가득 올려져 있는 걸 보니 둘이서 꽤나 마신 것 같다.
아무래도 아랑이가 취한게 분명해.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릴 하다니..
그런데 저 말을 듣고도 왜 나는 대답을 못하는거야.
민윤기가 날 좋아한다니..
민윤기를 처음 봤을땐 그냥 나보다 하얗고 마른 남자애였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생때까지 내 옆에서 민윤기는 어느새 키도 자랐고 남자처럼 변했다.
어쩌다 보니 내 옆엔 항상 민윤기가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 서로 각자의 길을 걸어갈 줄 알았다.
윤기는 나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붙었고 얼마 뒤엔 드디어 제대를 한다.
휴가 나와서도 항상 나를 먼저 만났다. 우리가 연인일까?
아니 우리는 친구다. 나와 민윤기는 친구다.
민윤기가 날 좋아한다, 눈치없는 ㅇㅇㅇ 때문에 민윤기가 너무 불쌍하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아랑이는 어느새 취해 테이블위에 쓰러져 있었고, 민윤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 테이블에 남은 소맥을 원샷 한 나도 곧 이어 테이블위로 쓰러졌던 것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