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키썸 - 심상치않아
아직도 얼떨떨, 아직도 나는 어버버거리며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괜히 머리만 긁적이며 네가 가는곳에 발걸음을 맞추고있었다. 너는 다시 무심한 그 표정으로 돌아와버렸다. 아까 너의 그 웃음들이 내가 꾼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지만 너는,
"어디갈래요. 그냥 내가 아는데로 갈래요?"
나에게로 시선을 돌릴때 마다 아까와 같은 표정들을 지어보였다. 흥미롭다는 그 표정. 나는 다시 그 표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혹여나 또 말을 더듬을까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너는 다시 또 웃음. 난 너의 그 입동굴이 너무나도 좋았다. 문득 옆을 올려다보자 너는 너의 성격처럼 올곧은자세로 길을 걷고있었다. 아, 물론 나와 발걸음을 맞춘채로.
도착한곳은 일본의 느낌이 나는 그런 선술집이었다. 뭘 먹을거냐며 물어오는 너에게 나는 메뉴판을 둘러보는척하다가 그냥 윤기씨가 먹던거.. 라고 답했고 너는 익숙하게 주문하고는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떻게 보면 서운할 일이지만 지금의 나로써는 다행이었다. 아까처럼 주위를 둘러보는척 널 힐끗힐끗 보지 않아도 됐으니까. 내가 저 사람 여자친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말도 안된다는걸 깨닫고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젓고야 말았다.
"뭐해요? 벌레있어요? 고개 도리도리 뭐야."
"아니..아니에요, 아무것도."
대화가 끝난 이후로도 너는 핸드폰이 아닌 나를 계속해서 쳐다봤다. 안절부절 가시방석에 앉은듯했다,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도 모르겠고, 혹여나 너와 눈이 마주칠까 하는 마음도 들었고 그냥.. 설레는것도 좀 있었고. 그러던 찰나 주문한 음식이 차례로 나왔고 너는 수저를 가지런히 내 앞에 놓았다. 감사합니다. 너는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먹어요. 라는 말도 덧붙히면서. 일본전통술로 보이는것도 나왔다. 이름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사케라는거에요. 일본술인데, 한번 먹어볼래요?"
"아아, 제가 근데 술을 잘 못해서.."
"그럼 더 좋은거고, 들어요."
너의 마지막 말에 나는 다시 롤러코스터를 탄 듯 울렁거렸다. 하마터면 손에 든 잔을 바닥에 떨어트릴뻔했다. 서로 번갈아 잔에 술을 따른 뒤 잔을 부딪히고 한모금 들이켰다. 맛있는지 뭔지는 모르겠고 그냥 쓰다. 으... 하며 작은 소리를 내자 너는 네 젓가락으로 안주거리를 내 입 앞까지 가져왔다. 아-. 나는 입을 벌렸고 들어오는 음식들을 꼭꼭 씹으며 다른 음식들을 뒤적거렸다. 맛있다. 혼잣말로 한 말에 너는 마치 작은 아이를 보는것처럼 흐뭇하게 나를 쳐다봤다. 나는 또 다시 말더듬이가 되었다.
"..왜, 왜요."
"쳐다보는것도 안되나?"
작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너는 또 다시 빙긋 웃었다.
시계침이 기울어가고 잔도 기울어가고 흐트러지는 정신 속에서 바라본 달도 기울어 가는듯 했다. 너도, 너도 기울어져간다.
BGM. 프라이머리 - 아끼지마
네가 건넨 냉수 한잔에 정신이 조금은 돌아온 듯 했다. 흐릿한듯하다가 다시 뚜렷하게 보이는 너는 턱을 괴고서는 살짝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섹시하다. 야해, 민윤기. 지금 처음으로 깨달았다. 선배들이 말하던 민윤기는 위험한 남자라는게 무슨 뜻인지. 너는 위험하다.
"술은 좀 깼어요? 너무 정신 없어보이길래.."
"고마, 고마워요-. 지금, 지금 몇시에요..?"
"12시 넘어가네요. 왜요?"
으응, 아무것도. 사실 통금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나는 손목의 셔츠를 걷어 시계를 보는 너의 모습에 취했을지도 모른다. 한참동안 너의 걷힌 팔목만 보고있었으니까. 너의 그 팔목은 얇은듯 하면서도 잔근육들이 자리잡고있었고 마냥 하얘보이는 듯 하면서도 핏줄이 곳곳에 적절히 자리잡고있었다.
"내 팔목 좋아해요? 자꾸 쳐다보네-."
"좋아할게 없어서 팔목을..! 좋아한다. 흐.."
너는 당황한듯 하면서도 이내 웃으며 손가락으로 내 볼을 몇번 튕기더니 쓸어냈다. 난 탄소씨 볼이 좋던데. 미치겠다. 진짜 위험하다. 정말로 이렇게 누군가를 격렬하게 원해본다는 느낌은 처음이다. 부담스럽겠지. 나는 너를 안지 어언 5개월이 되어가지만 너는 나를 고작 몇주전에 처음봤을테니까. 하지만 내 이성을 잡으려는 노력은 너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졌다.
"정신 놓을것같으면, 놔버려도돼요. 뒷감당은 내가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