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소년
아홉수에 빠진 마음만큼은 소년인 29세 남고동창 일곱 남자의 될 것도 안되는 운 사나운 로맨스
김탄소(치환인물&여주) - 7명 다 각기 다른 여인들
-2월 8일 방탄남고 광복절 (부제 : 해방이다)-
"드디어 졸업이다!"
"겁나 좋아해 정호석"
"그러게. 그래도 난 좀 섭섭한데"
"김남준 넌 공부를 잘했으니까 그렇지"
"병신 그거랑 무슨 상관이냐"
"왜 나도 좋기만 하구만. 지긋지긋한 땀냄새랑도 안녕~"
"지긋지긋한 박지민이랑도 안녕!"
"아 뭐야"
"농담"
"근데 전정국은?"
"뭐 뻔하지 집에서 이제야 슬슬 기어 나오겠구만"
"곧 졸업식 시작인데"
"야 민윤기"
"왜"
"넌 건축학과네 불쌍한 놈"
"그러게 남자들 득실득실한텐데"
"익숙하고 좋구만"
"울지말고 말해 새끼야"
"지랄"
"어 저기 전정국 온다"
"석진아"
"왜? 너 아침 먹었어?"
"당연. 오늘 짜장면 니가 만들어주냐?"
"말도 안돼"
"잠 덜깼다 야야 빨리 강당가자"
"전정국 빨리와"
"야 학교한테 인사라도 한 번 하고 가자"
"오글거려"
"닥치고 하나 둘 셋!"
"진짜 안녕이다 방탄고 안녕!!"
"안녕!!!!!!"
".....안녕"
-김남준-
김검사와 점심식사를 끝내고 돌아온 검찰청은 아까 시끌벅적하던 음식점과는 달리 그야말로 적막했고 삭막했다. 검찰청에 다다를수록 김검사의 경직된 옷차림과 그에 따른 지위가 새삼 나에게 뚜렷이 느껴졌다. 분명 아까까진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고 농담 하나에도 귀엽게 반응하던 평범한 스물아홉 여자였던 탄소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역시. 근데 아까부터 걸음걸이에 맞춰 살짝살짝 올라가는 김검사의 치마가 내 눈에 계속 거슬렸다. 문을 열고 옆에서 걸으며 슬쩍 눈치를 주려던 찰나, 앞만 보고 걷던 김검사가 나를 향해 휙 돌아 멈춰섰다. 마치 내가 잔소리를 할 거 라는 걸 알았다는 듯이. 하이힐을 신고도 키가 나보다 훨 작은 탄소를 내려다보았다. 깔끔하게 묶은 검은 긴 머리가 3월의 찬바람에 흔들렸다.
“김검사”
“예 김검사”
“오늘 정퇴근이야?”
“별일 없으면 아마 그럴 거 같은데, 왜?”
“아니 뭐.. 나랑 같이 퇴근 할래?”
아까까진 내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을 하더니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지며 고갤 숙이는 모습에 귀여워 소리없는 웃음이 터졌다. 그런 내 모습을 잠깐 본건지 손으로 내 팔을 툭 치며 웃지말라고 하는데 그 모습마저 귀여워서 계속 웃는 날 보더니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쉬곤 다시 말을 이어갔다.
“같이.. 가자”
탄소의 같이 가자는 소심한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최근 들어 많이 외롭긴 해도 너와 이렇게 미묘한 관계가 될 줄은 몰랐는데. 우습지만 오래전부터 과거는 과거일뿐 현재에 엮지 말자라는 나의 신념 때문일까 좋으면서도 불안한,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주저되지만 니가 은근 좋아지는 거. 솔직히 인정하기 싫었다. 그 때도 그랬었지. 니가 먼저 좋아하고 니가 먼저 데이트 신청하고. 요즘 자꾸만 다가오는 니가 내심 좋으면서도 구차했던 과거가 자꾸만 떠올랐다. 하지만 이젠 그냥 솔직하기로 했다. 나중에 또 너와 틀어질까 두려우면서도 니가 너무 귀여우니까 그냥 받아들여야지 뭐 어쩌겠어. 더군다나 같은 직장동료니까 불편해지면 손해지. 내 눈을 보지 못하는 너에게 살짝 허릴 숙여 눈을 맞췄다.
“어디로 갈래? 저녁 먹으러?”
“김검사 좋을 대로”
“그게 뭐야. 어렵게 말 꺼내놓고. 따로 하고 싶은 게 뭔데”
“그냥 뭐.. 몰라 아무거나”
모르긴 뭘 몰라. 얼굴에 다 써 있구만. 하여튼 그 때나 지금이나 귀엽긴 엄청 귀엽다니까.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감추고 싶은데 못 감추는 거.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솔직한 모습. 그런 솔직한 니 모습 때문에 좋으면서도 힘들었지만. 대답대신 너와 눈을 맞추던 허릴 피고 걸음을 옮기니 니가 졸졸 따라왔다.
“가자”
“어?”
“가자고 우리집”
“...진짜?”
“나 이사했는데 궁금하다며. 얼굴에 써 놓고 있구만 뭘”
“아, 아니거든?”
“이젠 좀 솔직해도 됩니다. 한 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됐거든요. 뭐 필요한 건 없어?”
필요한 거? 글쎄 딱히 생각해둔 건 없는데. 사실 집들이다 뭐다 귀찮아서 부랄친구 6명을 불러 한 번 놀았던 거 말고는 남을 집에 초대한 적은 아직 없다. 고민하는 척하며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다가 사무실 문 앞에서 딱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니가 나를 놀란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그런 너의 모습에 필요한 게 딱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좋아. 귀여우니까 자꾸 놀리고 싶잖아.
“생각났다”
“뭔데? 뭐야 그 표정은”
자꾸만 새어나오는 웃음을 결국 참지 못하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내 표정에 수상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탄소의 모습에 손가락으로 미간에 잡힌 주름을 살짝 누르며 말했다.
“사랑이 담긴”
“어?”
“진한 뽀뽀”
“뭐?”
어이없다는 듯 탄소가 웃음을 터트렸다. 순간 약 7년전 캠퍼스에서 날향해 웃어주던 니 모습이 겹쳐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귀엽고 예쁘다. 근데 살짝 기분 나쁜데?
“어어 나 농담 아닌데?”
“하여튼 진짜 변태”
“키스도 아니고 뽀뽀인데? 와 치사하다”
“그래 나 치사하다”
“아 맞다. 축하해 김검사”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너에게 말했다.
“응? 뭐가?”
“이사 온 집에 처음 오는 여자가 김검사 너야. 그러니까 그정돈 해줄 거라 믿고 있을게”
“아 참, 그거 오늘 찢어질 지도 몰라. 보기 싫다”
저 치마 빨리 찢어버리든가 해야지. 너무 짧다고. 물론 오늘 저녁 우리집에서.
-김태형-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아저씨”
“슬기야 인사드려. 슬기랑 놀아주러 오신 언니”
“안녕하세여”
“안녕 슬기야! 아, 진짜 귀엽다”
지나치게 명량한 여자의 목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사실 별로 못 미더운 것도 있지만. 슬쩍 날 보며 눈을 찡긋하는 탄소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부담스럽게시리. 그래도 슬기가 방긋방긋 웃으며 좋아하니까 그래. 잘된 일이야 잘된 일..
*이틀 전*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를..♪♫
평소 시끄럽고 삐리리릭거리던 삭막한 전자음이 아닌 밝고 귀여운 알람 소리에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 이 노랜 병아리반 천사들과 늘 아침마다 부르던 노래인데. 실눈을 뜨고 머리를 몇 번 쓸어 넘기고 정신을 차리니 그제야 침대 바로 옆에서 춤을 추고 있는 작은 인형이 보였다. 짧은 머리를 열심히 찰랑거리며 체조를 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슬기야”
“선생님!”
“슬기 언제 일어났어요?”
“슬기 어어엄처엉 빠리 이러나여”
“슬기가 그럼 이거 노래 틀었어요?”
“네! 선생님이랑 유치원가면 매일 부르자나여”
으쌰으쌰 열심히 노래에 맞춰 아침체조를 하는 귀여운 인형을 보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침대에서 내려가 열심히 체조를 하는 작은 천사를 꽉 껴안으니 슬기가 꺄르르 소리 내어 웃었다. 내 품 속에서도 노래에 맞춰 체조를 하는 모습에 힘을 줘서 더 꽉 껴안으니 그제야 헤헤 웃으며 가만가만 숨을 고르는 슬기였다. 사실 어제 처음 우리 집에 데려왔을 때 걱정을 많이 했었다. 너무 낯설어하면 어쩌나 싶어 집으로 가던 길에 과자와 장난감, 책을 잔뜩 사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원장선생님께서 이것저것 챙겨주셨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직접 마트에 데려가 슬기가 마음에 들어 하는 걸로 골랐다. 확실히 여자아이라 그런지 빨강색, 분홍색의 이불, 베개커버가 주를 이었다. 항상 우리집엔 남자 혼자 사는 집답게 어둡고 단조로운 색의 가구들만 가득했는데 이젠 드문드문 작은 핑크색과 빨간색의 이불, 컵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슬기야 배 안고파? 밥 먹어야지”
“배 쪼끔 고파여”
“그럼 밥 먹자 세수부터 해야지”
“네!”
슬기 세수를 도와주려고 욕실에 같이 들어가니 슬기가 나도 혼자 할 수 있다며 열심히 우기는 바람에 문 밖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키가 작아 세면대에 올라가지도 못하면서. 처음엔 열심히 손을 올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안된다는 걸 알곤 헤헤 웃으며 내게 다가와 소매를 잡아 당겼다. 김슬기 요 고집쟁이. 그렇게 슬기를 번쩍 들어 올려 세수를 시키고 아침밥을 챙겨주었다. 다행히 요리는 못하지만 스스로 챙겨먹던 습관이 되어있어서 밥을 하고 간단하게 햄을 굽고 계란말이를 해서 밥을 차려주니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이 귀여워 넋을 놓고 지켜보다 왜 선생님은 밥을 안 먹냐며 핀잔을 주는 슬기의 모습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밥을 먹었다. 지금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다. 순탄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 밖의 문제가 생겼다.
“슬기야 유치원 가자”
“시러여 슬기 집에 이쓸꺼에요”
“왜요 친구들이랑 체조도 하고 그네도 타고 책도 읽고..”
“...무서워여”
슬기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베베 꼬며 말했다. 그런 슬기의 모습에 아차 싶었다. 확실히 슬기가 어제부터 친구들과 서먹서먹하더니 아예 말도 안하고 책만 괜히 넘기고 그런 모습을 보였었는데. 큰일났네. 그렇다고 내가 슬기 때문에 출근을 안 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해바라기반 천사들이랑도 놀아줘야 하는데.
“슬기야 선생님은 유치원 가야해요”
“선생님..”
결국 한참을 슬기와 얘기해봤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원장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원장선생님은 아무래도 슬기가 충격으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어떡하죠 라는 말에 한동안은 집에서 슬기를 돌봐줄 누군가를 찾아야 할 것 같다고 하셨지만 막상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한 사람이 생각났다. 아냐 안돼 너무 귀찮아질꺼야. 하지만.. 슬기를 위해서.. 그래도 그건 좀.. 아냐 밝은 애니까 좋을 지도 몰라 저번에 스쳐 듣기론 유아교육과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니면 어쩌지
결국 큰 맘 먹고 탄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우와 아저씨가 먼저 왠일이에요? 수화기 너머의 지나치게 밝고 명량한 목소리에 정신이 아찔했다. 귀 터지겠네. 그렇다. 이 아인 우리집 옆옆집 이웃 스무살 꼬마 아가씨다. 이사 온 첫 날부터 날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감당이 안될 정도로 날 귀찮게 군다. 벌써 그 애가 열아홉살 때부터 날 쫒아다녔으니 벌써 그 역사가 일년은 족히 넘어간다. 스무살이 되면 남자도 생기고 달라질 줄 알았던 내 착각과는 달리 더 자유로워진 탓에 나와 더 자주 마주치곤 했다.
'아저씨 오늘도 어디가요?'
'유치원'
'엄청 무뚝뚝하면서 애기들 잘 돌볼 수나 있어요?'
'남이사. 빨리 학교가 고3이면서'
'내 걱정해주는 거에요? 우와 신난다'
'....먼저 가'
'아저씨 그럼 나중에 봐요!'
'그래'
'아 참. 아저씨! 저 유교과에 원서 썼어요! 화이팅 한번 해줘요'
'...화이팅'
'와아!!'
그런 그녀가 정말 유교과 학생이 되어 지금 내 앞에서 슬기를 꼭 끌어안고 우리집 현관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내가 저 아일 우리집에 들일만큼 슬기를 사랑한다는 걸 누군가는 알아주겠거니 하면서. 그래 유교과학생이니까 괜찮겠지. 이제부터 정말 시끄러워 지겠다. 슬기야 선생님 살려줘
너무 오랜만이라 죄송해요 독자님들! 원래 남준-지민 순서인데 지민이꺼는 다음화에 올릴께요!ㅠㅠ 독자님들 오늘 글잡 무료데이라면서요? 오오 좋아요
작가인 저도 좋고 독자님들은 더더 행복한 날이겠네요 밀린 글들 재밌게 읽으시고 개학인 독자님들은 일찍 주무세요! 다음날을 위하여 화이팅!! 오늘도 감사합니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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