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
누런 곰팡이에 좀먹어가는 벽지를 멍하니 눈에 담으며 진환이 웅얼거렸다. 쩍쩍 눌어붙어 다 떨어져가는 장판에 몸을 뉘인 채였다. 옆 방에서 나는 희미하고 역겨운 소리가 벽을 타고 스몄다. 이내 귓가를 극명하게 찔러오는 난잡한 소음. 인상을 찌푸릴 법도 한데 진환은 그저 물 속에 갇힌 듯 적체되어 있을 뿐이다. 아주, 느리게, 진환은 몸을 움직였다.
날카로운 비명. 여자의 교성. 역겨운 추삽질. 살과 살이 맞닿으며 내는 지긋지긋하고 역한 마찰음.
문득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을 게워내고 싶어진다. 진환은 낮게 콜록거렸다. 한여름인데도 목구멍에 모래 알갱이가 불어 닥친 듯 까끌까끌한 것이 웃겼다. 느적하게 눈을 감았다 뜬다. 역겨운 소리가 고막을 뭉근하게 찍어 올렸다. 한 번 더. 덤덤하게 기다란 눈꼬리가 접힌다. 살아 움직이는 것 하나 없는 작고 칙칙한 방을 온 눈에 가득 담는다. 한 번 더. 아주 느리게 눈이 감겼다. 진환은 제가 무력하게 몸을 맡긴 찐득한 장판 밑으로, 밑으로, 한도 없이 바닥 밑으로 가라앉는 상상을 한다. 작고 눅눅한 방이 더없이 커지고 커져 종국엔 저를 집어삼킨다.
진환은 눈을 뜨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들을 속으로 곱씹는다. 우주 속에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아, 지독한 침식이었다.
심해 속을 헤매던 소년들
01
눈을 뜬 것은 저녁때가 다 되어서였다. 불편한 자세로 바닥에서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얌전히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다. 낡아빠진 고물 선풍기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내 흔적이 남은 낡은 침대를 돌아본다. 무게에 눌린 이불이 움푹 파놓은 무덤처럼 깊어 보였다. 그것을 눈에 담자 문득 아득한 현기증이 일었다. 외부의 소음이 휘발해버린 공간. 적막이 들어찬 방 안이 웃기지도 않은 선풍기의 소음으로 마구 헝클어진다. 편도선 안쪽이 사포를 삼킨 것 마냥 거칠었다.
무중력 안을 유유히 부유하는 것 마냥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바닥에 놓인 작은 상과, 온기가 감도는 쌀밥과, 소소한 반찬들과, 그리고 자그맣게 놓인 메모. 아마 학교에 다녀온 준회가 잠들어 있던 나를 침대에 눕히고 선풍기를 틀었을 것이다. 혹여나 내가 옅은 잠에서 깨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조심스레 움직였겠지. 밥을 다 차려놓고선 정작 저 자신은 제대로 먹지도 않은 채 다시 집 밖을 나섰을 것이다.
준회는 공부를 하러 독서실에 가 있을 테다. 그게 아니라면 편의점이나, 주유소나, 또는 음식점에서 으레 그 웃는 둥 마는 둥한 어설픈 표정으로 손님들을 대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갔다올게. 같이 못 먹어줘서 미안해.’
미안해.
도대체 무엇이? 꼭 저처럼 단정하고 정갈한 세 글자가 콱콱 시야에 들어와 박힌다. 준회는 늘 내게 미안하다 했다. 입버릇처럼 쉽게 쉽게 꺼내어지던 말이었다. 준회의 목소리에선 늘 잔잔한 온기가 묻어나왔다. 사람의 목소리에선 온도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손을 뻗어 말소리를 움켜쥐면 따스한 잔재를 남긴 채 바스락 부서질 것만 같이.
발을 질질 끌며 걸어와 상 앞에 앉았다. 눅눅하고 텁텁한 기류. 퀘퀘한 습기가 전신을 에워쌌다. 반질반질한 숟가락으로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쌀밥을 한 숟갈 퍼 입 안에 욱여넣었다. 퍽퍽하게 씹히는 맨밥이 여느 때처럼 정성스러워 이내 사방이 답답해진다. 준회는 제가 만든 밥을 챙겨먹지도 못한 채로 일을 하러 나갔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빗장뼈 아래가 아릿하게 울었다. 돌연 신물이 올라와 위벽을 할퀴고 지나간다. 목 끝이 팽팽했다.
정작 너한테 미안해야 할 것은 언제나 나였다.
"미친년. 밥이 넘어가니, 너는?"
첨예한 유리 조각을 마구 뭉쳐놓은 듯한 목소리가 귓가를 콱콱 찍어 내린다. 유려한 몸의 실루엣이 다 드러나는 옷을 아슬하게 걸친 여자가 다 무너져가는 낡은 방문에 기댄 채로 천박하게 새빨간 입술을 놀려댔다. 잠시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마주한다. 시선의 온도와 무게. 나는 애써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없이 다시 입 안에 잔뜩 쑤셔 넣은 밥을 묵묵히 삼키어낸다. 말로 하지 않아도 그녀의 온 몸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혐오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알기에. 무관심을 곱씹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나는 안다.
"나가서 몸이라도 팔지 그러니. 예전처럼."
그녀가 서슴없이 구사하는 언사는 폭행에 가까울 정도로 거칠고 질이 낮다. 아주 잠깐, 밥을 크게 푸던 손을 주춤거렸으나 그것뿐이다. 대답이 어떻든 그녀의 화만 돋굴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문득 신체 어딘가를 마구 난도질당하듯 깊은 곳 어딘가가 욱신거렸다.
여자는 잠시간 나를 노려보다 유유히 걸음을 옮겨 집 밖으로 향했다. 아마 또다시 웃음과 몸을 팔러 나가는 것일 테다. 또각또각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구두소리가 서서히 멀어져갔다. 무의식중에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안도감이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은 지긋지긋했음에도 그랬다. 극명한 혐오감을 내비치는 그녀와의 시간들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끝도 없을 만큼의 광대한 고독을 곱씹으리라.
여자는 몸을 팔았다. 사창가에선 꽤나 유명했다고 했다. 하룻밤의 부주의로 인해 태어난 나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좁은 집에 갇히듯 해서 자랐다. 조금 더 커서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적, 그녀는 덜 여문 내 몸과 젖살이 빠지지 않은 말간 얼굴을 돈벌이로 쓰기 시작했다. 낯선 남자의 다리 사이에서 입을 놀리고 고개를 수그리던 나의 유년. 역한 정액과 까슬한 음모. 원치 않는 웃음으로 범벅이 되어있던 나를 나는 기억한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머리가 좀 더 자라자 하루가 다르게 뼈마디가 툭툭 불거져 나올 정도로 온 몸의 살이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추잡한 냄새가 나는 정액을 더는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목구멍이 아팠고 거칠어졌다. 쉴 새 없이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다. 건조하고 버석한 구강 안 쪽으로 검붉은 핏물이 배어나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야들야들한 소년이 아닌 제법 남자 태가 나는 이목구비와 볼품없이 마른 몸. 사내들은 빠르게 흥미를 잃어갔다.
그 해 여름, 나는 내 속을 갉아먹던 행위들을 그만둘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나는 원체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본디 성격이 폐쇄적이고 조용한 탓도 있었으나, 몸을 판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철저한 고립. 나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거대한 꽃처럼 피어올랐던 고독감. 지독하게 곱씹어야 했던 외로움.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있었다. 내가 지금껏 그려왔던 삶의 궤적에서 어떠한 애정 어린 관심이나 사랑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했던가. 부모의 사랑, 혹은 친구들 간의 끈끈한 유대 같은 것이. 겪어본 적이 없으니 욕심조차 없었다. 나는 그랬다.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어 낼 수 없을 정도의 고립이라고 해도 나는 어느새 그런 것들에 지긋지긋하리만큼 무뎌지고 익숙해져 있었다.
―니가 김진환이야? 후장 돈 주고 판다던?
좆나 역겹다, 너.
심장이 꾸역꾸역 목구멍을 타고 입 밖으로 구역질처럼 터져 나올 것 같다. 소문이란 것은 고약하고 지독하기 짝이 없어서, 용적을 부풀려, 그리고 조금씩 덧대어져 발 밑으로 넘실넘실 고여 오기 시작했다.
어느 쉬는 시간이었나. 얼굴도 모르는 남자가 찾아와 저급한 말들을 쏟아낸 것이. 그 뒤를 따르는 몇몇도 함께였다. 모두의 시선이 등으로 할퀴듯 쏟아졌다. 무슨 말부터, 어떻게, 어떤 표정으로 꺼내야 하지? 변명을 해야 해? 그것도 아니면 용서를 빌어야 하나? 입을 다물라고 다그쳐야 해? 사시나무 떨리듯 동공이 크게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역겨운 점액질같이 끈적이는 진득한 목소리가 나를 더욱 벼랑으로 몰아넣었다.
난 내 주변에 몸 파는 호모새끼가 있는 게 마음에 안 들거든.
나는 입을 꾹 닫고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릴 뿐이다. 주변을 돌고 돌던 더럽고 추잡한 소문들이 기정사실화 되는 순간이었다. 문득 목구멍이 홧홧하게 달았다.
송민호라고 했다. 삐뚤하게 달린 명찰을 희뜩한 눈으로 읽어 내려갈 적엔 이미 후미진 체육창고의 뒤에서 이유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구타당한 후였다. 기다란 손가락 끝에 가파르게 매달린 담배에서부터 피어오르는 희붐한 연기를 멍하게 풀린 동공으로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울음을 삼켰었나, 아니면 허탈하게 웃었었나. 기억은 여러 겹상으로 흔들린다.
다만 송민호 뿐만이 아니라, 입가에 어스름한 비웃음을 잔뜩 안고 나를 둘러쌌던 이들을 나는 기억했다. 송민호와 어울려 다니는 질이 나쁘고 끈질긴. 나를 한심하게 내리깔아보던 비스름한 시선들.
아무도 없이 고요한 시멘트 바닥에 엎어진 채로 두어 번 켈록거렸다. 몸을 들썩이는 것조차 벅찰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무력함이 기병대처럼 온 몸을 짓밟고 지나갔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몸 안으로 새된 비명이 가득 차오르지만 그 뿐이다. 입가로 색색이는 바람이 흘렀다.
그 때였다. 열리지 않을 것처럼 굳게 닫혀있던 체육창고의 문이 갑작스레 슬쩍 갈라졌다. 창살 같은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괜찮아?
여럿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폭력을 당할 때 옆에서 잔뜩 인상을 구기던 남자애였다. 김지원. 단정한 이름. 반듯한 입술과 곧은 눈썹. 어울리지도 않게 자그마한 입술을 어물어물하더니 무심하게 툭. 던져지는 연고. 나는 눈을 멀뚱히 치켜떴다. 눈꺼풀이 덜덜 떨리는 것이 볼품없었다.
―송민호는 뭐든 금방 질려 해.
머뭇머뭇 낮은 목소리가 와르르 쏟아진다.
―조금만 지나면 너한테도 금방 흥미를 잃을 거야. 점심시간인데 웬만하면 뒤처리 대충 하고 나와서 밥 먹어.
눈 앞에서 처참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력을 목격한 사람치고는 상당히 무덤덤한 말투였다. 어둑한 창고 속에서 도드라지는 또렷한 시선. 그 애가 하는 말들의 의중을 나는 알 길이 없다. 허나 나는 성의 없이 더러운 바닥으로 던져진 연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꼼꼼히 운동화를 챙겨 신은 두 발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그마한 연고. 그것이 아주 사소하고 희미하긴 했으나, 나를 향한 호의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속에서부터 무한히 들끓어 오르는 갈증을 느꼈다. 끔찍하리만큼 갈급한 갈증.
잃고 살았던 것. 알지 못했던 것. 겪어본 적이 없어 갈구할 수도 없었던 것.
아, 그제야 목이 타오르듯 바싹 말라왔다. 갈증으로 인한 끔찍한 고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