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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ON/준환] 네이키드 독스 09 | 인스티즈


09

The wise decision





김한빈의 전폭적인 도움에도 불구, 다 죽어 기울어가는 바비의 성적을 일으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바비는 연신 계속되는 집중력 부족, 책임감 결여, 그리고 차마 성적을 매길 수 없는 성적 등의 이유로 부모님이 학교에 소환되는 끔찍한 형벌에 처해졌다. 불행하게도 바비가 이번 학년 전체 낙제이며, 도무지 이 성적으로는 진급을 시켜줄 수 없다는 담임의 소견에 그 애의 부모님은 매우 격노한 상태였다. 다행히도 담임의 노력으로 이뤄낸, 이틀 안에 레포트를 다시 써오는 과제를 해온다면 성적을 다시 매겨 진급의 유무를 판별해주겠다는 타협안으로 그들의 대화는 간신히 종결됐다. 구준회와 가벼운 운동복을 챙겨 P.E(Physical Education) 수업을 가는 도중에 맞은편 복도 끝에서부터 잔뜩 고양된 목소리로 바비를 꾸짖고 계신 바비의 부모님과, 급작스럽게 불어온 세월의 바람을 직격으로 쳐맞은 것만 같이 잔뜩 쇠약해진 모습의 바비가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그 애의 부모님은 몹시 격분한 상태인 듯 했다. 




"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놈! 넌 도대체 하는 게 뭐냐?"

"안녕하세요, 아저씨."




구준회는 말릴 새도 없이 성큼 걸어가 바비의 부모님께 꾸벅 인사를 드렸다. 눈치없이 가족 싸움에 말려들까봐 괜히 걱정이 돼서 조마조마 하는 와중에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 것이 구준회란 것을 알아차린 바비의 부모님은 얼굴 표정을 싹 바꾸곤 기특하다는 듯 구준회에게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준회구나! 그동안 잘 지냈니? 부모님은 잘 계시고? 구준회는 쉽게 말을 받고는 다시 유창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네, 그럼요. 잘 지내시죠. 요즘 매립지 설계하고 계시죠? 언젠가 한 번 보고 싶네요. 분해율에 따라서 꽤 재밌는 분석 작업이 된다고 들었거든요. 




"오, 그럼. 언제든지 보러 오렴."




바비의 아버지 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그리고 옆에서 듣고 있던 나조차도 구준회가 이끌어 가는 유한 대화의 흐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경탄스런 얼굴로 구준회의 단단한 등짝을 바라보고 있던 와중에 바비의 아버지가 별안간 구준회에게 물어왔다. 근데 준회 너도 낙제했니? 




"아뇨."

"당연하지. 넌 똑바로 사는 애니까. 바비 이 멍청한 놈. 이제 너도 똑바로 살게 될거다!"




그는 다시금 자식의 한심함에 원통해하며 바비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거칠게 찍어내렸다. 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놈 같으니라고! 그가 음절 음절마다 임팩트를 주며 으르렁 댔으나 바비는 슬핏 미간만 찌푸린 채 성의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참. 바비, 네 철학 과목 출석 문제로 선생님이 찾는 것 같던데."




구준회가 마지막으로 슥 덧붙인 말에 아저씨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뭐? 출석 문제? 하고 되물었다. 바비가 한 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구준회는 어깨를 살짝 으쓱이며 다시 대꾸할 뿐이었다. 출석률이 너무 낮아서 간당간당하대. 한 번 찾아가 봐. 대수롭지 않게 일러주곤 충격에 빠진 바비의 부모님에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한 구준회는 내게 고갯짓을 하며 체육관으로 가자는 제스쳐를 취했다. 얼빠진 것처럼 일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멍하니 구경하던 나는 혹여나 불똥이 튈까 싶어 후다닥 구준회 쪽으로 몸을 숨겼다. 타인이든 지인이든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을 때는 피하는 것이 상책인 법이었다. 바비의 아버지는 머리 끝까지 차오른 원통함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구준회에게 작별인사를 남기곤 바비를 거칠게 잡아 끌어 반대쪽으로 사라져 갔다. 




"넌 오늘부터 외출금지야! 햇빛하고 작별 인사나 해 둬라!"




괄괄한 목소리로 경고성 짙은 말을 내뱉는 그의 목소리가 복도 전체를 왕왕 울렸다. 도축을 앞두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축 쳐진 채 아저씨에게 질질 끌려가는 바비가 안타까워 옅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와는 전혀 상반되게 구준회의 입술 새로는 경쾌한 휘파람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





나는 체육에 있어서만큼은 정말로 젬병이었고, 당연히 구준회는 그런 나를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나를 도와주거나 배려해주거나 따위의 일들을 할 위인이 되지 못했다. 오늘도 역시 팀을 나눠서 농구를 하게 됐는데, 하필이면 구준회와는 다른 팀이 됐고 예상했던대로 녀석은 별 볼일도 없는 나를 전담마크함으로써 모든 이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피구를 하던 여자애들 몇 명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들려오자 녀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벼운 미소로 그녀들에게 화답하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신체조건이나 운동신경이나, 어느 하나도 내가 구준회보다 뛰어난 것이 없었기에 나는 그저 부득부득 이를 갈며 구준회를 피하기에만 급급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약 20분 간의 곤혹스러운 농구경기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남은 거라고는 텁텁한 열등감 정도가 전부인, 그야말로 엿같은 체육시간이었다. 


원체 몸이 땀이 많은 편이라 운동을 즐기지는 않지만서도 유일하게 체육 시간 중 가장 기분이 좋은 부분을 골라보자면 바로 이 시간이다. 다 같이 우르르 수돗가로 몰려가 바짝 오른 열을 식히고 시덥잖은 농담을 하며 낄낄거리는 순간. 농구 경기에서 최악의 플레이를 했든 혹은 최고의 플레이를 했든 하등 상관이 없는 소속감과 동질감이 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Is it cool?"




구준회는 땀에 절은 티셔츠를 훌렁 벗어제끼고 차가운 물로 대충 세수를 했다. 구준회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그 애의 어깨와 팔뚝의 완만한 근육들이 햇빛에 의해 음영이 졌고, 그 때문인지 그 굴곡이 더욱 선명함을 더했다. 멍하니 구준회의 훤히 드러난 맨살에 정신을 팔고 있으려니 구준회가 씩 웃으며 물어왔다. 어때. 멋있어? 나는 황급히 시선을 떨구며 바보처럼 오, 전혀. 하고 대답했다. 녀석의 몸을 한참동안이나 찬찬히 뜯어본 것을 들킨 것이 몹시 수치스러웠다. 찬물로 겨우겨우 식힌 뺨으로 다시금 열기가 홧홧하게 도는 것이 느껴졌다. 


구준회와 함께 가방에 챙겨왔던 수건과 찬 물을 꺼내들고 농구 코트 밖의 딱딱한 의자에 걸터 앉으려는데, 저 멀리 학교의 북관 건물에서부터 한 손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걸쳐 쥔 채 느릿하게 걸어오는 인영이 보였다. 바비였다. 답지않게 살풋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 여느 때와는 다르게 조금 험악해 보이기 까지 했다. 아마 아까 부모님과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꽤나 큰 타격을 입은 듯 했다. 잠깐 사이에 몇 년은 훌쩍 나이를 먹은 것 같은 초췌한 얼굴이 바비의 충격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바비에게 두어번 흔들어 보였다. 




"Oh, poor failed student."




불쌍한 낙제생. 바비를 발견한 구준회가 비아냥거리듯 툭 내뱉었다. 잠시 멈칫하던 나는 구준회에게 의문스럽게 물었다. 너 근데 아까는 왜 그런거야? 그러자 구준회가 되물었다. 내가 뭘? 




"You just… didn't need to, I guess."




내 생각에 넌 그럴 필요가 없었어. 조금 머뭇거리는 어투에 구준회가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내게 시선을 박아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걸. 내 말은 그러니까, 아까 굳이 바비 부모님 앞에서 철학 과목 출석 문제를 꺼낼 필요가 없었다고. 따지고 보자면 A+인 바비의 P.E 성적 얘기를 꺼내는 게 바비에게는 좀 더 도움이 되었을 거란 얘기지. 내 말에 구준회는 미묘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글쎄. 난 사실을 말한 것 뿐인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천진한 말투가 갑갑해져 나는 조금 단호한 어투로 또박또박 끊어 대답했다. 




"You don't have to do that."




넌 그러지 않아도 돼. 굳이 남을 깔아뭉개고 내리깔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너한테는 비교 같은게 필요 없으니까.  


그 말을 남기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툭툭 바지를 털었다. 손바닥으로 텁텁한 먼지가 배어나왔다. 어느새 꽤 가까워진 바비가 필터를 맥없이 한번 빨아들이곤 바닥에 툭 내던져 발로 비비며 불씨를 꺼트리고 있었다. 바비는 거의 사형선고라도 받은 듯이 잔뜩 피폐해진 몰골이었다. 괜시리 바람결에 힘없이 흔들리는 그 애의 강아지같이 포슬포슬한 머릿결마저 처연해 보여 덩달아 눈썹이 축 쳐졌다. 




"What's wrong with him?"




바비가 터벅터벅 걸어오며 내게 물었다. 잘 빠진 턱을 주억거리며 내 뒤를 고갯짓하면서였다. 뒤를 돌아보자니 구준회가 조금은 심란한 표정으로 내 뒤통수에 시선을 박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잘 모르겠다고 대꾸했다. 바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니가 알던 바비는 오늘 여기에서 죽었어. 외출금지에, 파티 금지에, 당연히 대마나 마리화나도 금지거든. 이제 나를 잊도록 해, 친구. 내가 바비의 어깨를 도닥이자 바비가 땅이 꺼져라 푹 한숨을 내쉬었다. 




"Right. Fucking grounded."




젠장할 외출금지. 바비가 처참하게 난도질 당한 것만 같은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





"This is really fucking crazy."




딜런과 구준회, 그리고 나는 지금 바비의 집 대문을 넘는 중이었다. 미친 짓이라고 아무리 바득바득 우겨봐도 구준회는 평온한 표정으로 계획을 실행시켜 나갈 뿐이었고, 딜런은 담을 넘는 제 모습이 닌자 같지 않냐며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이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좆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주장해 봤으나 내게 돌아오는 대답은 가차없었다. 안들키면 되지 뭐가 문제야? 구준회와의 대화는 거의 벽과의 대화나 마찬가지란 사실을 잊고 있었던 내 자신이 한심했다. 여길 따라오는 게 아니었는데.


커다란 철제 대문을 키가 큰 딜런과 구준회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넘고 나니 이젠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들키지 않고 1층의 창문을 타고 올라가 2층에 위치해 있는 바비의 방 창문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도 낑낑거리며 대문을 넘었던 탓에 가랑이 사이가 찢어지는 듯한 얼얼한 통증이 일었다. 신경질적으로 푸슬푸슬한 머리털을 쓸어넘기며 내가 투덜거렸다. 애초에 너희 둘만 왔어도 됐을텐데. 왜 굳이 나까지 데려온 건데? 그러자 이번엔 딜런이 친절히 대답했다. 왜냐고? 우린 친구니까. 원래 이런건 여럿이서 해야 멋있는 거야. 




"Fuck that."




나는 그웬이 딜런에게만 유달리 까칠해지는 이유를 알 것도 같은 기분을 느끼며 딜런에게 친절히 가운데 손가락을 선사해 주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평화로워 보이는 바비의 집 안으로 침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외출금지라는 형벌에 처해진 바비를 구출하기 위해서. 오늘은 에스더의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날이라 아침까지 열릴 예정인 파티가 있었고, 구준회와 딜런은 쓸데없이 투철한 의리로 똘똘 뭉쳐 바비 구출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약이나 파티가 없다면 정말로 바비가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예측 때문이었다. 나는 그저 옆에서 얌전히 얘기를 들어줬을 뿐인데 이 둘에게 붙잡혀 여기까지, 결국 바비의 방 바로 코 앞까지 오게 되었다 이거다. 




"Alright. Then how could we climb up?"




딜런이 마디가 툭툭 불거져 나온 손을 슥슥 비벼대며 물었다. 어찌어찌 힘겹게 담을 넘어 건물의 외벽까지 도착은 했으나 2층의 창문까지는 어떻게 올라가냐는 것이 질문의 의도였다. 구준회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배수관이 여기 있잖아. 타고 올라가는 일은 간단하지. 그러고 보니 구준회는 바비네 집보다 조금 더 높아 보이는 우리 집의 배수관도 스스럼없이 타고 올라오곤 했으니 아마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팔 힘이 좋고 운동신경이 뛰어나며 키가 큰 구준회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일 뿐, 내게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 될 것이 틀림이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건 불가능해. 나는 포기하겠어. 그러자 딜런이 별안간 진지하게 내 어깨를 콱 부여잡고 눈을 맞추며 완고한 어투로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넌 할 수 있어, 제이. 너의 한계를 시험해보자고. 용기를 가진 자가 승리한다. 몰라?


딜런은 지금 이 상황을 히어로 영화의 한 장면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비급 영화의 한심한 대사같은 문장들을 진중하게 내뱉는 딜런을 바라보며 구준회가 옆에서 낄낄거렸고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 저을 뿐이었다. 망할 놈들. 




"Let's do it."




구준회는 그 말만을 남기곤 가볍게 점프해 배수관의 한 중간을 단단히 붙잡고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1층과 2층 사이의 중간에 얕은 지붕이 있는 집의 구조 덕분인지 구준회는 10초도 채 걸리지 않고 지붕에 올라가 걸터앉는 것에 가볍게 성공했다. 간단하지? 이제 바비만 구해오면 돼. 그러자 영웅 놀이에 잔뜩 도취되어 있던 딜런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구준회가 했던 것처럼 배수관을 타고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니 꽤나 높아 보였던 것이 막상 딜런과 구준회가 가볍게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니까 할 만하겠다 싶었다. 딜런이 두번째로 지붕 위에 올라가 신나게 세레머니를 하는 것을 다붓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굳은 결심을 하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조심스레 배수관을 붙잡고 지붕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Look at him!"




딜런이 킬킬거렸다. 180이 훌쩍 넘는 장신인 녀석들이 가볍게 점프를 한다면 손 끝에 금방이라도 닿을 법한 지붕까지 쉽게 도달하지 못하고 낑낑거리며 용을 쓰는 내 모습이 그 웃음의 이유였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비웃음이나 쏟아내고 있는 딜런의 얄미운 상판에 주먹이라도 한 방 날려주고 싶은 욕구가 간절하게 일었다. 구준회가 가볍게 웃으며 딜런을 제치고 내 쪽으로 몸을 숙여 아등바등 힘이 단단히 들어간 내 팔목을 콱 붙잡았다. 그리 따뜻한 날씨가 아니었는데도 맞닿은 살결의 온기가 뜨끈했다. 구준회가 조금 힘을 주어 잡아당기자 근력이라곤 없는, 형편없이 무른 몸뚱이가 맥없이 지붕 쪽으로 딸려갔다. 실로 감탄할 만한 힘이었다. 구준회가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겨우 지붕 위로 올라오자니 내가 마치 구준회의 품에 안기다시피 한 꼴이 되어 있었다. 이상야릇한 포즈에 움칠, 떨며 그 품에서 빠져나오려 몸을 뒤틀려는 순간 구준회가 내 허리께를 단단한 팔로 휘감고 목 언저리에 푹 고개를 파묻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다급하게 허둥거리며 묻자 구준회가 뜨거운 숨결을 목덜미에 박아 넣으며 웅얼거렸다. 




"Let me guess. You dabbed a perfume, right?"




너 향수 뿌리는구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전에 말을 내뱉을 때마다 목덜미의 맨 살결을 자극하는 구준회의 뜨거운 숨이 지나치게 간질거려 몸을 파르륵 떨며 버둥거렸다. 이거 놔. 간지러워! 구준회가 의아하다는 듯 다시 내 몸을 감고 있는 팔뚝에 힘을 주고 더 가까이 몸을 밀착시켰다. 이상하네. 향수보단 비누 냄새 같기도 하고. 허옇게 드러난 목덜미에 구준회가 고개를 묻고 웅얼거리는 탓에 자꾸 뜨거운 호흡이 피붓결을 간지럽혔고, 기묘한 감각에 움찔움찔 몸이 경련했다. 온 몸으로 진하게 느껴지는 구준회 특유의 자극적인 체취에 정신이 아뜩해졌다. 그러자 옆에서 그 꼴을 다붓히 바라보고 있던 딜런이 비죽거렸다. 오, 왕자와 공주의 해피엔딩 뺨치는군. 그만 좀 껴안고 있지 그래?




"I do not use perfume, OK? Let me out."




향수를 쓰지 않는다고 겨우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나서야 구준회는 나를 붙잡고 있던 팔에 힘을 풀었다. 갑작스런 접촉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얼굴 뿐만이 아니라 온 몸의 혈관이 팽창하며 피가 뱅뱅 빠르게 도는 것이 느껴졌다. 손 끝 발 끝까지 저릿저릿한 감각에 휘청이며 구준회의 품에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심장이 쇠망치로 두드려 맞기라도 하는 듯이 거칠게 쿵쾅거리는 중이었다. 혹시나 구준회에게 붙잡혀 있을 때 잔뜩 밀착되어 있던 가슴께로 박동소리가 느껴지진 않았을 지 걱정이 될 만큼 온 몸을 찌릿찌릿 울리는 고동이었다. 미약한 현기증이 일었다. 차오르는 들숨을 겨우겨우 바드득 뱉어내자니 구준회가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You have a lovely sweet scent, J."




너한테서 좋은 향기가 나. 


나는 간신히 몸을 진정시키고 짐짓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여자애들도 아니고 향수를 도대체 왜 뿌리겠어? 그러자 구준회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오, 그게 네 체취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묘한 향이야, 친구. 구준회와 내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딜런은 입술을 비죽이며 대답했다. 듣자하니 너네 후각세포가 나보다 월등히 발달됐나보다. 난 존나 부엌에서 나는 애플파이 냄새 밖에 못 맡겠는걸. 




"Anyway, we should keep watch on the Bobby's movements."




냄새고 나발이고, 우린 바비의 동태를 살펴야만 해. 딜런이 또다시 임무를 원만하게 수행해 나가는 스파이라도 된 마냥 벽에 바짝 몸을 붙이고 바비의 방 창문 쪽을 슬며시 살폈다. 불행하게도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는 상태라 안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딜런이 고개를 쭉 빼고 조심스레 눈치를 보다 창문에 손을 뻗는 순간, 갑작스레 방 안에서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멍청이 같은 놈! 이 와중에도 티비가 보고 싶은 거냐? 티비고 뭐고 네가 진급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전부 내다 버릴 테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




분노가 끓어오르는 목소리에 조심스레 창문가로 접근하던 딜런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펄쩍 뛰었다. 와 씨발 깜짝이야. 딜런의 욕지거리에 뒤이어 바비의 방 안에서부터는 정말로 티비를 방 밖으로 옮기기라도 하는 건지 연신 우당탕 거리는 소음이 새어나오는 중이었다. 딜런이 제 가슴께를 한 손으로 붙잡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후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불쌍한 바비. 저러다 정말 죽는 건 아닌가 몰라. 이거야말로 고문이지. 만약에 우리가 바비를 빼내려는 걸 들키기라도 한다면 바비네 아저씨가 저 티비로 우리들 머리통을 박살낼 것이 분명해. 딜런이 소근소근 낮게 속삭였다. 여전히 창 안쪽에서는 씨근덕대며 노여움을 곱씹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넌 왜 준회처럼 못되는거냐? 도대체 왜? 그 애를 좀 봐. 얼마나 예의 바르고 똑똑하고 성실해? 넌 왜 걔처럼… 그리고 왜 나는…"




잠시 말문이 막히는 듯 그의 목소리가 머뭇거렸다. 구준회는 제 이름이 언급된 것이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코를 찡긋거렸다. 옅은 미소가 감도는 얼굴로 구준회가 창문 안쪽에서부터 나는 소음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아저씨가 티비와 라디오 등등을 1층 거실로 치우는 중인지 전자 기기들이 서로 마찰해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무거운 티비와 라디오를 들고 계단으로 쿵쿵 발을 구르며 내려가는 아저씨의 발소리가 들렸다. 지금이야. 구준회가 속삭이며 창문을 드르륵 열어 제꼈다. 블라인드를 확 제끼자 마치 감옥에 몇 년 동안 수감되어 있던 것마냥 파리하게 질린 바비의 몰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딜런과 내가 반갑게 바비의 이름을 부르며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바비가 힘없이 푸스스 웃어보였다. 꼭 안아주며 위로라도 해 줘야 할 것만 같이 맥빠진 모습이었다. 


딜런이 웃기다는 듯 낄낄거렸다. 보통 사람들은 약을 많이 하면 몰골이 더 초췌해지던데. 바비 너는 어째 약을 안하니까 더 초췌해지는 것 같은걸. 그러자 바비가 잔뜩 갈린 목소리로 낮게 대답했다. 맞아. 정말 죽을 것 같아. 담배라도 한 대 피고 싶은데 전부 압수당했지 뭐야. 잠깐 티비 틀었다가 티비도, 라디오도 전부 뺏겼어. 내게 남은거라곤 이 형편없는 노트북과 과제 더미라고. 




"Alright. Cheer up, buddy."




그런 바비가 정말 불쌍해 보였는지 딜런이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힘내라고, 바비. 내가 널 위해 최고급 수경재배 대마를 직접 말아주지. 딜런은 항시 제 뒷주머니에 대기중인 소량의 대마 잎을 꺼내들더니 바비의 과제를 위한 자료일 것이 분명한 종이 쪼가리를 조금 찢어내 돌돌 말아 수제 대마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바비가 조금은 흡족한 듯 미미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한없이 안쓰러운 몰골이었다. 




"Let's go."




딜런이 건넨 어설프게 제작된 대마초를 만지작대던 바비에게 구준회가 별안간 툭 내뱉은 말이었다. 바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어딜? 그러자 구준회가 씩 웃으며 답했다. 오늘 파티가 있어. 여기서 20분도 안 걸리는 거리야, 친구. 그러자 바비가 곤란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난 못가는 거 알잖아. 외출금지 당했어. 




"Don't be such a fucking vagina. This is gonna be special."




병신같이 굴지 마. 특별한 파티가 될 거라구. 구준회가 말을 이었다. 이번 파티는 올 만한 가치가 있을 거야. 날 믿어. 바비가 여전히 머뭇거리며 고민하자 구준회가 갑갑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바비를 타일렀다. 일이라는 건 원래 정해진 대로 돌아가기 마련이야, 바비. 이런 지루한 과제 따위를 붙잡고 앉아만 있을거야? 즐거운 파티를 눈 앞에 놔두고?




"Fuck it?"

"Fuck it."




바비가 파티란 말에 홀린듯이 멍하게 구준회를 바라보다 망망히 입을 뗐다. 때려칠까? 그러자 구준회와 딜런이 동시에 대답했다. 때려쳐. 




"Right. Let's go then."




바비가 생기가 도는 눈을 반짝이며 제가 만지작대고 있던 종이 뭉치를 챙겨들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내가 그 자료들은 왜 들고가는 건데? 하고 의아하게 묻자 바비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대마 만들려면 종이 필요하잖아. 


내 생각에 넌 아마 이번 해에 진급하기는 실패한 것 같다. 내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바비가 아무렴 좋다는 듯 흐들흐들 웃으며 답했다. 좆까라 그래. 파티다!




아니 저 진심 치매인듯^^.... 맨날 홈에 올리고 글잡에 바로 올리는 것을 까먹어서... 볼일 보고 들어온 뒤에서야 아 맞다! 하면서 글 올립니다... 뎨둉....^^

아 그리고 연재에 대해 공지드릴 것이 있는데... 독자분들이 얼만큼 되는지 제가 감을 잘 못잡겠어서 따로 뭐 공지사항 글을 만드는 건 좀 그런 것 같구 그냥 여기에다 소소하게 알려드릴 거시,,, 있다면,,,,^^ 

네독 자체가 글이 좀... 드라마 스킨스를 배경으로 한 거고 원작 드라마 자체도 영국 청소년들의 비행과 방황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약, 폭력, 방탕하고 난잡한 파티 등등의 이야기가 계속 그려질 수 밖에 없어서요ㅠㅠ 생각을 조금 해 봤는데 아마 이제 인티 글잡에서 연재하는 것 보다는 홈과 블로그에서 연재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닷 @uㅅu@ 홈은 하던대로 글을 계속 제때 연재할 거구요, 블로그에서는 서이공개로 해서 밀린 연재분을 연재하는 걸로... 하겠습니당 T▽T 글잡 안녕.... 인티 안녕.... 10편부터는 홈과 블로그에서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여! 홈과 블로그 좌표를 원하시는 분은 메일 적어주시면 따로 슬쩍 알려드리겠슴당.. 사실 구글에 잘 서치해보면 나오지만여..ㅎ 혹시나 못찾으신다면 메일을 적어주세요!

그럼 다음 편에서 마나요 여러분~ 그동안 글잡에서의 연재... 넘나 즐거웠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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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홈에서 봐유!
8년 전
정새벽
♡@uvu@♡
8년 전
독자2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뿌득인데 이제 블로그 서이 걸 때가 된 것 같네요ㅠㅠㅠㅠㅠㅠ받아주실거라 믿어요(소금소금)
8년 전
정새벽
당연하져 뿌득이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넘나 애정하는 것ㅠㅠㅠㅠㅠ 앞으로는 블로그에도 많이 업뎃할게요!♡
8년 전
독자3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홈에서 봐요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정새벽
긴말 안할게요 애정합니당♡@uvu@♡
8년 전
독자4
앗 혹시 지근계시면 좌표받을수있을까요? 글을계속읽고싶어서ㅠㅠㅠㅠ
(이메일은 본인/글쓴이/운영진만 확인 가능) 일로부탁드려요!

8년 전
독자5
저두요~ 블로그좌표쪔..!! 알렺주세요.!! (이메일은 본인/글쓴이/운영진만 확인 가능) 입니닷!!
8년 전
독자6
늦었지만 좌표...받을수 있을까요!! (이메일은 본인/글쓴이/운영진만 확인 가능)
입니다 !!!

8년 전
독자7
늦었지만 블로그 좌표좀부탁드려요ㅠㅠ엉엉 계시나요? 뒤늦게빠져서..ㅎㅎ (이메일은 본인/글쓴이/운영진만 확인 가능)
8년 전
비회원239.19
늦어서죄송하지만..ㅜ블로그좌표가르쳐주실수있나요?......
8년 전
비회원135.82
너무 뒷북이지만 [email protected] 너무 보고싶습니다ㅜㅜ
7년 전
비회원76.203
너무너무 보고싶어요ㅜㅜㅜㅜ
6년 전
비회원.
작가님..... 잘 계시나요... 다음 편이 너무 궁금해서 몇 날 며칠을 네이키드 독스에 절여져서 살아가고 있는 1인입니다..... 그냥... 진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요 이미 너덜너덜하지만 그래도... 그냥...네에...ㅜㅜ 언젠가 네이키드 독스 완결편을 읽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거예요 그냥 일기장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이런 사람도 있구나,,,ㅎㅎ,, 너무 아무말이나 했네요... 사람이 기대를 하면 그만큼 상처도 2배로 받더라구요... 아무도 상처 안 줬는데ㅜㅜㅜ하 걍 너무너무 늦게 발견한 제 탓이겠죠.... 암튼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요 뿅!
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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