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속을 헤매던 소년들
06
벼랑에 내몰려 떨어지기 직전에 만난 사람이 하필 나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난 송민호라니. 그러나 넝마처럼 이리저리 뚫려 너덜해진 마음으로는 반감보단 아는 사람이라는 안도감이 더욱 짙게 스미는 것이 사실이었다. 종국에 어떻게 돼버린다 하더라도 좋다. 유일한 구명줄인 양 송민호에게 붙잡힌 손목에서 안온함이 퍼져나갔다. 모순인 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송민호는 말없이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중간중간 매서운 눈길로 내 상처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송민호의 손 끝에서 미미한 경련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엔 전혀 느껴볼 수 없었던 류의 것이었다. 원체 서슬 퍼런 눈이 더욱 서늘한 빛을 띠고 오랫동안 아물지 않을 것 같은 상처들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집에서 아주 먼 곳으로, 집 냄새가 나지 않는 곳으로 날 데려가는 송민호를 꽉 붙들고 있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갈 곳도, 잘 곳도 없는 날 어디론가 데려가는 송민호에게 이젠 고마움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 새끼가 뭔 짓 하기 전에 잘 도망쳤어. 몸이 아작난대도 그 새끼를 반 죽여버리던가, 그게 안되면 도망쳐야 되는 거 맞아."
송민호가 한숨을 푹 내쉬곤 말을 이었다가 이내 씨발, 하며 조악한 욕지기를 내뱉는다.
"그, 더 다친 데는 없냐. 그니까…"
내가 때려서 다친 곳 말고 말이야. 그 새끼가 또 다른 덴 안 건드렸냐고.
무안한 듯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말하는 꼴이 웃겼다. 아까부터 송민호를 좀먹어가던 당혹감의 근원을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미안함. 우습게도 송민호가 내게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토록 엉망으로 헝클어진 모습을 객관적으로 본 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채 공포에 허옇게 질린 모습을. 평소처럼의 무표정도 아니였고, 입을 다문 것도 아니었으니 아마 송민호는 내게서 낯설음을 느꼈을 것이다. 나를 함락시키려던 오기도, 망가뜨리려던 욕심도 눈 녹듯 사라졌겠지. 이미 제가 보고싶어하던 내 모습을, 공포에 굴복해 허덕이는 얼굴을 전부 보았으니.
송민호의 숨결이 목덜미께로 바스라진다. 벌겋게 짓무른 눈가가 아렸다. 온 몸을 얻어맞은 것처럼 욱신욱신한 통증이 증식하는 균처럼 퍼져나간다. 택시의 창가로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어룽어룽 어렸다. 서서히 명멸하는 빛. 마구잡이로 뻗쳐있는 푸석한 머리칼을 머뭇머뭇 단단한 손이 어설프게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투박한 감촉. 문득 잠이 쏟아졌다. 감각은 아득해진다. 까무룩 눈이 감겼다.
*
링겔이 꽂힌 팔 부근이 욱신거렸다. 수분기 없이 말라 비틀어진 몸이 볼품없었다. 수없이 분열하는 의식 새로 송민호의 난색이 스민 얼굴이 어른거렸다. 송민호는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주춤대는 목소리로 푹 자라고만 했다. 보호자 사인이 필요하다며 간호사가 채근하자 송민호는 말없이 제 이름을 써내려갔다. 웃기는 일이었다. 누구보다 날 내리깔고, 망가뜨리고, 부수지 못해 안달이던 송민호가 나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
준회 생각이 많이 났다. 평소처럼 단정한 글씨로 쓴 쪽지 한 장 남겨놓지 않고 새까만 물살을 헤쳐 물 밖으로 나아간. 준회가 더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서러웠다. 감당할 수 없는 박탈과 상실감이 물처럼 나를 뒤덮는다. 준회는 나를 버리지 못할 줄 알았다. 가족이기 때문에 나를 내칠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새아버지가 죽은 그 시점부터, 이미 준회가 내 곁에 있어줄 어떠한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것을. 준회가 언제든지 나를 버리고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바보같이 잊고 살았던 것이다. 바보같이.
그 생각을 하자 눈 앞은 순식간에 흐려진다. 퇴색하는 빛.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다. 일을 하기엔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돈을 벌 수도 없다. 준회에게 기생충처럼 붙어 약을 살 돈을 받아먹을 수도 없다. 능력도, 머리도 없는 추악하고 괴물같은 몸뚱이. 엄마 말대로 몸이라도 팔아야 하는 걸까. 둔통이 밀려왔다.
새하얀 시트 위로 꾸물꾸물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감이 밀려 들어왔다. 캄캄한 어둠 밖에는 보이지 않아 그것이 눈물겨웠다.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 깊은 진창을 헤매야 하는가. 앞길 하나 보이지 않는 이 깊고 진득한 어둠 속에서.
속 깊은 곳이 쓰라렸다. 일렁이는 물빛이 눈 앞을 몇번이고 어른거렸다. 뻐끔뻐끔. 목젖 안으로 컥컥 간헐적인 기침을 밀어넣었다. 텁텁함.
숨을 쉬고 싶었다.
*
송민호는 내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며칠동안 학교를 마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왔다. 한낮의 기온은 아직까지도 뜨거웠다. 송민호는 뛰어라도 오는건지 호흡은 항상 거칠었고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을 때도 있었다. 안 그런척 짐짓 병실 앞에선 걸음을 늦추거나 큼큼 헛기침을 하며 불규칙한 숨을 찬찬히 먹기도 했지만 고요한 병원 내에서는 문 밖에의 소음 쯤이야 쉽게 잡아낼 수 있다는 걸 송민호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손에 붕대 풀었네."
"으응."
깨어진 화분의 파편들은 칼날처럼 첨예했다. 얇은 손바닥의 표피를 가르고 들어와 제법 깊은 생채기를 남겼던 터라 완전히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했다. 바늘로 꿰멜만큼 꽤 깊은 상처였다. 흉터가 깊게 질 것 같다 했다. 욱신욱신한 감각이 손바닥 위에 눌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괜히 손바닥을 한 번 쫙 폈다 다시 움킨다. 잡히는 것은 없었다.
송민호의 커다란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뭇 안쓰러운 시선이 손바닥의 바늘자국과, 발등의 생채기들과, 부어오른 뺨 등을 매만지기도 했다. 낯선 눈빛이었다. 어쩌면 야트막한 동정심과, 보호심에서부터 비롯된 미묘한 혼합물 같기도 했다. 송민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잘 지었다. 혼란하게 엉키는 시선.
매끈한 뺨으로 에어컨의 바람이 마찰해 늘러붙었던 열기가 마모될 때까지 송민호는 아무 말도 없이 내 옆에 앉아 자리를 지키곤 했다.
"여기. 교복."
조금은 서툴게 다림질 되어 빳빳해진 교복을 내미는 손이 단단했다. 이게 뭔가 싶어 눈을 치켜뜨자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무심하게 던져지는 말. 집에 가기 싫다며. 교복은 집에 놔두고 나왔을 거 아냐.
"…퇴원하면 학교 나오라고."
건네어지는 교복을 멀건히 시야에 가둔다. 망망히 내리깐 눈 안으로 단을 따라 반듯하게 펴진 교복이 가득 고였다. 욱신욱신한 손바닥으로 송민호가 건넨 교복을 받아 들었다. 바깥의 열기를 머금지도 않은 건지 서늘한 교복의 면이 뜨끈한 상처를 감싸왔다. 옅은 숨을 내뿜는다. 송민호가 미지근한 미소를 지었다.
*
살기 위해선 일을 해야 했다. 약은 바닥을 보인 채로 줄어들어 가고 있었다. 성장을 멈춘 몸은 자꾸만 말라가는데 그 와중에도 속을 갉아먹으며 용적을 부풀려 가는 병이 웃겼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병은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째깍째깍 움직이는 시계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내겐 흘러가는 초침 하나하나가 두려움이었고 조바심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매번 수술을 권했다. 자칫하면 금세 암으로 변이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질척하고 끈적한 공포심. 세상의 끝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돈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당장 지낼 작은 방조차 없었다.
송민호가 학교에 간 사이 퇴원 수속을 밟았다. 냉기가 감도는 병원 밖을 나서자 작열하는 햇빛에 숨통이 턱 막혔다. 생각나는 곳은 한 곳 밖에 없었다. 어차피 자존심이고 뭐고 돈에 허덕이는 삶 앞에선 전부 버려야 할 것들이었다. 빠른 시간에 많은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었다. 붉은 등이 켜지기까지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자박이는 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비참함에 짓뭉개지는 속은 금세 무뎌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날이 저물지도 않았는데 싸구려 립스틱을 바르고 젖무덤을 훤히 드러낸 여자들이 골목에 줄줄이 앉아있었다. 기시감. 어릴 적부터 엄마를 따라다니며 수없이도 보아왔던 광경이었다. 지나가는 남자들의 팔을 붙잡고 아양을 떨며 끌어당기는 여자들. 비음과 교성이 뒤섞인 목소리. 깔깔대며 흘리는 쉬운 웃음들. 엄마와 같은 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일까. 속이 문드러진다. 엄마와 같은 삶. 그리고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앳된 얼굴로, 그것도 영업 시간도 아닌 때에 사창가를 걷고 있으려니 등허리께로 가파른 시선들이 내리꽂힌다. 이 거리엔 많고 많은 가게들 중에서도 네임벨류가 높은 가게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수없이 많은 상류층들이 오가는 곳이라 그녀들은 단 한 줌의 시선만으로도 목표물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그녀들의 먹잇감이 아니란 것을 그녀들은 단숨에 알아보았다. 쟤는 밑 대주러 온 거네. 년도 아니면서 년인 척 뒤 대주는 거지. 저런 애들은 오래 못 해먹어.
얇은 머리카락처럼 잔뜩 엉킨 말소리들이 열기를 머금어 뜨뜻해진 아스팔트 바닥으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숨길 생각도 없는건지 웃음기와 함께 흩어지는 저속한 대화에 목울대 안 쪽이 아려왔다. 저들을 비웃을 수 없다. 욕할 수도 없다. 나는 저들과 비슷한 류의 삶을 살고 있었다. 오히려 더 지저분하고 너덜너덜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자 명치 끝이 깊게 울렁였다.
"야. 너 미쳤어?"
가게 안으로 들어서려는 내 팔목을 순간 거친 악력이 콱 잡아챘다. 커다랗고 단단한 손. 미미한 현기증이 일었다. 익숙한 목소리. 송민호였다.
"퇴원 수속도 네 맘대로 해 버리고 그냥 가는 게 어딨냐. 잘 데도 없다면서. 그래놓고 기껏 오는데가 이런데야?"
송민호라면 학교에 있을 시간이었다. 위력적으로 찌푸려진 미간과 살벌하게 내리깐 눈매가 당혹감과 울분을 잔뜩 머금고 있는 채였다. 급하게 달려오기라도 한 건지 피붓결을 따라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예상치 못한 등장에 등골이 선득해졌다.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붙잡힌 팔목에서부터 뼈마디 하나하나까지 스며드는 한기. 한 치의 여백도 허락하지 않을 듯한 날 선 송민호의 감정이 주변의 기류로 스며들고 있었다.
"네가, 여기에 왜…"
드문드문 바보처럼 문장을 형성하지 못한 단어들이 맥락조차 없이 허무하게 흩어진다. 일거에 송민호의 사나운 눈매로 지독한 열기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몸을 팔 거였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송민호의 눈 안에서 무엇인가 절명한다. 황망히 스러지는 눈. 가지런한 눈썹이 어그러진다. 팔목을 붙잡은 송민호의 커다란 손이 미미하게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이 화가 나는 건지 알 수 없다. 너도 마찬가지였잖아. 네가 원하는 게 이거였잖아. 너도 똑같이 나를 망치려고 했었잖아. 나를 때리고, 나를 내리누르고, 언제든지 버리려고 했었잖아.
"그동안 이렇게 살았냐, 너? 역겹게 모르는 남자들한테 뒤 대주면서?"
잔혹한 언행에 가슴께가 가파르게 파르락거렸다. 역겹다. 맞는 말이었다. 내 삶은 항상 이래왔다. 이런 식으로 역겨웠다. 숨을 가까스로 삼킨다. 목구멍이 답답했다.
"무섭다고 뛰쳐나왔을 땐 언제고. 씨발 지금까지 뒷구멍이 근질거려서 어떻게 살았냐?"
말해봐. 대답이라도 해 보라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주먹이 되어 가슴께로 쿵쿵 부딪힌다. 당장 속을 야금야금 갉아먹어가는 병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라면 약을 살 돈이 있어야 했다. 돈을 벌 방법으로 몸을 파는 것 밖에 생각해내지 못하는 머리가 웃겼다. 그토록 증오하는 엄마와 같은 삶을 살겠구나. 그게 내가 생각하던 가장 역겨운 삶이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돈이 아주 많이 필요해."
일순 송민호의 몸이 움칠 떨린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공기 중으로 주춤거리는 송민호의 손 끝이 느껴졌다. 송민호에겐 덧없는 이야기겠지. 무지개처럼 금방이라도 부서질 허황된 이야기일 것이다. 부족함 없이 살아온 탓에 얻고 싶은 것은 금방 얻었을 것이고, 원하는 것이 생기면 당장 손에 넣었을 것이다. 그건 송민호의 삶이었다. 나는 당장에 방치하면 죽음에 이를수도 있는 병을 잔뜩 움킨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내게는 삶의 전체가 달린 문제였다. 필사적일 수 밖에 없다. 더럽고 추잡한 삶이라도 삶이었다.
미간을 잔뜩 어그러뜨린 송민호는 마디가 툭툭 불거진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께를 꾹꾹 내리눌렀다.
"너는 평생을 살아도 나를 알 수 없을거야."
내 발로 기어가지 않는 이상 아무도 나를 받아들이지 않아. 나를 감싸고, 나를 껴안고, 나를 위로해주는 곳은 없어. 나는 불순물이야. 어디에도 낄 수 없어. 어디에도 누울 수 없어. 나는 오롯히 홀로 죽어가고 있는거야.
"…너는 나를 이해 못 해."
깨질 듯 위태로운 목소리. 시선이 교차한다. 송민호의 매서운 눈동자가 얕게 물너울쳤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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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드디어 전체적인 플롯과 완결을 전부 구상했어요~ 회차를 나누어 보니 12화~15화 정도가 될 것 같네요ㅠ_ㅠ 물론 조금씩 추가되고 덧붙여지는 내용이 있을테니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구요! 결말을 대강만 구상해 두었었는데 제대로 탄탄하게 짜 놓으니 이제 한시름 놓이네요 휴 @T▽T@ 다들 개학, 개강 하셨나요? 전 오늘 개강... 주륵.... o<-< 빨리 종강했으면 좋겠네여 ㅎ 저번화에 댓글 달아주신 [뿌글렛]님, [뿌장]님, [지난질주]님, 그리고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구 탸당함미당 ♡>▽<♡ 다음 화는 금방 또 올 것 같아요! 열심히 세이브 분량 써놓겠습니다ㅎ_ㅎ! 그럼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