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속을 헤매던 소년들
07
근 이주만에 학교엘 갔다. 늙은 담임 선생님은 내게 큰 관심을 쏟지 않았다. 푹 꺼져 볼품없이 마른 볼을 슥 훑어보곤 몸 관리 잘하라며 한 마디 툭 던질 뿐이었다. 준회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더이상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송민호는 제가 혼자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방 한칸을 내게 내주었다. 몸을 팔거나 하는 짓은 더이상 하지 말라며 무른 발음으로 다그치는 것과 비슷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송민호는 내게 잘 화를 내고 또 미안해하고 쩔쩔매기도 했다. 무감하고 딱딱하던 눈이 잔뜩 짓물려 있었다. 싸구려 동정 같은 것은 아니었다. 송민호가 나를 저의 집으로 데려온 날, 나는 처음으로 송민호가 나를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송민호의 집에서 지낸 지 며칠이 흘렀다. 송민호와는 같이 등교를 했다. 이상한 그림이었다.
"야 김진환. 너 어디 아팠어?"
김지원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내게 물었다. 놀라다가도 핼쓱해진 내 몰골이 맘에 들지 않는 건지 으레 그 뚱한 표정으로 아파도 밥은 좀 잘 챙겨먹으라며 질책 아닌 질책을 했다. 다감한 목소리로 귓가에 사르르 내려앉는 채근과 힐난. 김지원의 목소리를 듣자 그동안 버텨온 모든 것들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겪어왔던 모든 암담한 일들이 전부 꿈의 저편처럼 느껴졌다. 시덥잖은 장난과 농담들. 구겨진 교복과 때 탄 실내화.
내겐 한없이 그리운 것들이었다.
윤기라곤 없이 푸석해진 머리칼을 슥슥 넘겨주며 김지원은 학교 끝나고 무엇을 하냐며 내게 물어왔다. 입 밖으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하나. 말 한 마디 하는것도 힘겨워하는 몸을 가지고 내가 과연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무던한 일상을 김지원과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쓰라렸다.
평범한 남자애였다면.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사는 고등학생이었다면 나는 아무렇지 않게 김지원과 친해질 수 있었을까. 우리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교집합을 신기해하며 서로에게 좀 더 깊게 스며들 수 있었을까.
"너 나랑 주번인것도 몰랐지. 오늘 청소 끝나고 우리집 가자."
우리 엄마 요리 진짜 맛있거든. 엄마한테 너 얘기 가끔 했었는데 데려오랬어. 맛있는거 많이 먹이고 싶대.
김지원이 푸스스 웃으며 말했다. 뿌듯한 웃음을 머금은 낯이 눈가로 저몄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얘기를 조잘댔을 김지원을 생각하니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평범한 가정에 이방인처럼 뚝 떨어질 걱정보단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접해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이 더욱 컸다. 엄마라는 존재는 원래 어떤 존재인거야? 어떤 표정을 짓는거야? 너와는 어떤 대화를 나눠? 평범한 가정이라는 게, 엄마라는 게, 그리고 아빠라는 게 도대체 어떤 거야?
수도 없이 많은 먹먹한 질문들.
나는 그것들을 겪어보지 못해서 잘 몰라. 어떤 안정감인지, 어떠한 포용인지. 당연히 내가 받아와야 했던 것들이 얼마나 찬란한 것들인지.
"넌 웃는 게 예쁘니까 좀 웃고 다녀.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
가까이 있어도 늘 그리운 것들.
*
유리처럼 산란하게 반짝이는 김지원의 눈 속이 맑았다.
이끌리듯 따라간 김지원의 집에선 김지원의 엄마가 해 주시는 저녁밥을 먹고, 김지원의 손때가 묻어있는 방을 구경하고, 김지원의 흔적으로 가득한 책상을 둘러봤다. 시덥잖은 일들이었다. 시덥잖기에 눈물날만큼 특별한 일들이었다.
김지원이 살아온 집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깔끔하고 단정했다. 내가 평범한 부모님을 만나 자랐다면 이런 가정에서 지낼 수도 있었을까. 올곧고 바른 속내를 가지고 자력으로 남을 포용하고 위로해 줄 여유도 가질 수 있었을까. 너처럼 빛날 수 있었을까.
지원아. 나는 궁금해.
어쩌면 내가 너처럼 반짝일 수도 있었을까?
저녁이 되자 바람이 꽤 쌀쌀했다. 여름보단 가을에 가까워져 가는 날씨였다. 김지원은 따뜻한 우유를 탄 커피를 머그컵에 담아와 놀이터로 갔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친구와 얘기를 하며 텅 빈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한다 했다. 웃기게도 생긴거랑은 다르게 제법 여자애같은 취향이었다. 그렇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어둑어둑 저무는 하늘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찼다. 속에 응어리져 있던 묵힌 감정들이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듯 했다. 찬 바람을 맞고 있는데도 목이 아프지 않았다. 김지원이 건넨 커피 덕분인 것 같았다.
"여동생이랑 가끔 이렇게 나와서 얘기하곤 했거든."
김지원을 닮은 여동생을 상상하자 슬핏 웃음이 스쳤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떴다. 잔잔한 목소리와 맞물리는 하늘. 평화로운 고요가 사방으로 묽게 저며졌다.
"진환이 너랑 웃는게 많이 닮았어."
비스름하게 웃으며 말하는 김지원의 옆 얼굴로 잔류처럼 떠돌던 노을이 슬쩍 비치다 이내 비껴갔다. 완연한 저녁의 어둠이 내려앉는 중이었다. 김지원의 여동생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했다. 김지원과 똑같이 빛을 잔뜩 머금고 있을까. 새하얗게 웃는 낯이 사랑스러울까. 언젠가는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속이 찌르르 울렸다. 낯선 감정이었다. 미래를 기대한다는 것.
내게 다가올 시간들은 언제나 공포스러웠고 괴기스러울만큼 난폭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물 속이었음에 그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이었음에 그랬다. 빛나는 미래를 약속하고 그것을 기대한다는 것이 벅찼다. 마음 속 어딘가가 마구 부풀어 오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널 보면 동생 생각이 많이 나."
내 얼굴에서 동생을 읽는 김지원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김지원과는 한참을 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더없는 평화감이 나를 감쌌다. 우리는 가끔 웃었고, 시덥잖은 농담을 하며 반 여자애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누구와 누가 사귀다가 헤어진 이야기와, 부모님 몰래 집에 있는 양주를 마시고 물을 넣어놨다가 들켜 혼이 난 애의 이야기도 했다. 너무 사소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잔잔함. 눈물이 날 듯 눈 앞이 아득해졌다.
김지원과 함께 있을 때면 꼭 우리가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김지원은 제가 건넸던 머그컵을 다시 양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게 조심해서 잘 가라며 흔드는 손에 머그컵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답지 않게 핑크빛을 띤 머그컵이 새삼 귀여웠다. 아마 여동생의 것일 것이다. 굳이 여동생의 컵이 아니더라도 제법 잘 어울렸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입꼬리가 자꾸만 말려 올라갔다. 잇새로 비식비식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나는 김지원을 향해 손등을 펄럭거렸다. 김지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집 안으로 사라졌다. 점멸하는 빛. 눈가의 여린 살을 두 손으로 훑어냈다. 모든 게 꿈결 같았다. 늘상 버석하게 건조했던 목 안이 축축하고 뜨뜻한 열기로 가득 차올랐다. 커피의 쌉쌀한 향이 입 안에 잔재처럼 남아있는 채였다.
아무도 없이 한적한 놀이터로 다시 향하는 맥빠진 걸음걸음마다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속이 뜨거웠다.
"실실 쳐 웃는 꼴을 보니까 어지간히도 좋았나 보네."
적요를 찢어발기며 귓전으로 굴러들어오는 나직한 목소리. 텅 빈 놀이터 앞에, 누르스름하게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로 한 남자가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매캐하고 알싸한 연기가 스물스물 발 밑으로 밀려들어왔다. 빳빳한 교복과 짧게 헝클어진 흑색의 머리칼.
송민호였다.
"너 김지원한테도 몸 파냐?"
툭. 바닥으로 힘없이 추락한 담배를 꾹 즈려밟은 송민호가 매섭게 날이 선 목소리를 냈다. 다물린 입새를 타고 흘러나오는 억눌린 음성이 밑바닥을 부유하듯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짙은 혐오감. 뜬구름 같이 허황된 김지원과의 시간들을 전부 사그라뜨리는 목소리였다.
"얼마 주디 김지원 그 새끼가? 오천원?"
잔혹한 언행은 화살이 되어 온 몸을 콱콱 꿰뚫는다. 척추 끝에서부터 시린 한기가 몸을 타고 기어올라왔다. 머릿속이 마구 헤집어졌다. 순식간에 수치심과 모욕감에 점철된 속 깊은 곳이 열기로 확확 끓어올랐다.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는 송민호의 입술이 미웠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잔인함. 먹먹한 통증.
송민호의 심기가 잔뜩 뒤틀려 있는 이유를 나는 알지 못했다. 송민호의 눈이 이때까지는 차마 볼 수 없었던 울분으로 잔뜩 젖어 있었다. 까마득하리만큼 지독히도 새카만 눈이었다. 어쩌면 처음에 죽을듯이 나를 괴롭히고 깔아뭉갰던 그때보다도 더욱 스산한 시선이었다. 등골이 선뜩해져 올 정도의 냉혹함. 망막을 내찌르기라도 할 듯 짐승같이 형형한, 무서울 정도로 직설적인 눈매에 저항조차 못하고 찢어발겨진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뻐끔거렸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질 않았다. 못된 말만 하는 송민호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짙은 환멸. 속이 쓰라렸다.
희끄무레하게 젖어든 가로등 불빛 아래에 자리한 송민호가 다시 한 번 입을 뗐다. 핏기 없이 질린 입술이 딱딱하게 움직였다.
"니네 엄마도 너처럼 이리저리 웃음 흘리고 다니면서 몸 굴렸냐?"
역겨운 년.
머리속이 새하얗게 암전된다. 송민호의 말이 파도가 되어 나를 뒤덮었다. 익사의 기억.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네 말에 빠져 죽어야만 할까. 아무런 저항조차 못하고. 이렇게 무기력하게.
*
아래에서부터 찢어질듯한 통증이 온 몸을 장악했다. 무참하게 짓밟히는 속내. 난도질 당하는 듯한 아랫배의 통증. 톱으로 가랑이 사이가 썰리는 듯 했다. 울음도, 비명도 입 밖으로 차마 터져나오지 않았다. 날카로운 고통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잘게 썰어 조각조각을 내고 있었다.
"김지원이랑은 재미 좋디?"
송민호는 내 머리칼을 콱 붙잡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을 씹어뱉었다. 살갗이 팽팽히 당기어질 만큼 꺾여진 목덜미가 욱신거렸다. 딱딱한 이로 콱 깨물고 있던 입 안의 여린 살들이 너덜너덜해져 핏물이 입 안에 고이고 있었다. 비린내 나는 침을 어거지로 삼켜냈다.
무엇이 송민호를 다시 화나게 하고 난폭하게 만든 기폭제가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어서 더욱 아프고 서러웠다. 영문도 모른 채 송민호의 밑에 깔려 비명을 삼키는 내 모습이 끔찍했다. 온 몸이 조각나고 있었다. 뼈마디 하나하나가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전신으로 밀려들어오는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에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송민호는 정복욕과 소유욕으로 번들거리는 포식자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김지원의 집에서 멀지 않은 저의 집까지 거칠게 내 머리채를 끌고 들어온 송민호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내동댕이 치고 깔아뭉갰다. 찢어발기듯 옷을 벗겨내 억지로 다리를 벌리고 저를 쑤셔박았다. 눈 앞이 처참하게 뭉개졌다. 입 안엔 아직도 커피향이 남아있는 채였다.
"지금까지 그 새끼한테 얼마나 대줬어."
바닥에 쓸린 뺨으로 눈물이 스몄다. 도를 넘는 고통으로 인해 줄줄 새어나오는 묽은 침도 함께였다. 억억 목구멍 바로 앞으로 토기가 넘실거렸다. 억울함과 분함이 먹먹하게 뭉쳐 목젖을 콱 틀어막고 있었다. 잠시나마 송민호에게 가졌던 고마움과 그에 대한 안온함이 산산히 부서진다.
송민호가 건네었던 교복이 마구잡이로 망가지고 있었다. 빳빳하고 단정했던 옷깃이 무식한 손아귀에 의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바싹 메마르고 비좁은 구멍을 쑤셔박는 송민호의 단단한 몸을 손으로 밀치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마른 손목이 힘없이 너울거렸다. 몸을 가르고 들어오는 느낌에 뼛속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스몄다. 생살을 찢어내는 날카로운 감각. 화하게 번지는 통증에 몸이 튀었다. 처음 느껴보는 극한의 고통이었다. 공포는 끝없이 갱신하며 나를 무너뜨리고 무너뜨린다.
시야에 해마라도 낀 듯 세상이 부얬다. 맥없이 꺾이는 고개가 바닥에 쾅쾅 부딪쳤다. 왱왱 알 수 없는 소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아, 흐윽. 헉.
억눌린 비명이 새어나왔다. 역겨운 이물감에 자꾸만 헛구역질이 났다. 뱃 속 깊숙히 쳐박히는 살덩이가 뜨거웠다. 전등이 점등하듯 눈 앞이 이내 깜깜해졌다.
*
눈을 뜬 건 꼬박 하루가 지나서였다. 아랫척추 끝에서부터 끔찍한 둔통이 일었다. 우악스럽게 벌려졌던 다리는 온통 멍 든 채였다. 죽어가는 새끼 짐승처럼 신음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역한 토기가 울렁이며 명치께를 자극했다. 시야가 자꾸만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쓰러지듯 누워있던 곳은 송민호의 침대였다. 어지럽게 흩어진 침대 옆의 탁자엔 처음 보는 액수의 수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송민호의 돈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때서야 잔뜩 억눌렸던 비명이 목구멍을 비집고 꾸역꾸역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폭력적인 행위였다. 대체 너는 어디까지 나를 밀어넣고 무참하게 짓밟을 거야. 얼마나 더 나를 비참함 속에 빠져 질식하도록 그렇게.
송민호가 두고 간 돈을 앞에 두고 나는 한참을 꺽꺽 소리 내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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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하고 나니까 생각보다 많이 바빠서 빨리 찾아오질 못했네요 ㅠ_ㅠ 항상 댓글 달아주시고 힘을 주시는 독자분들 정말 감사합니당 ㅎ_ㅎ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어요!♡ 어제 너무 달렸더니 숙취가... 스고이네요... 흑.... 조금 일찍 줄이겠습니다 ㅠㅠㅠㅠㅠ 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하고 탸당해요 ♡>▽<♡ 더 좋은 글로 찾아오도록 노력할게요! 다들 좋은 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