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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 박찬열이 너 찾는대. 너네 진짜 사귀는 거 아냐?"

 

방학식 끝나고 한참 소란스러운 시간, 제일 먼저 빠져나가던 애가 종달새가 되어 돌아온 걸 보니 종례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호출한 듯 싶었다.

 

"불알친구라고 몇 번을 말해."

"오오오~ 불알? 불알친구라 그랬냐?"

"닥쳐."

 

가방에 대충 교과서만 챙기며 무심하게 답을 하자 주변에 있던 애들이 오오거리며 반응을 한다. 어차피 반기계적인 반응들이다. 입학 첫 날부터 시도 때도 없이 박찬열에게 불려갔던 나는 학생들의 관심의 중심이었었지만 1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는 그저 심심풀이 땅콩 같은 장난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시답잖은 장난에 대충 웃어넘긴 나는 등에 가방을 걸쳐 매고 딴 반애들이랑 까불거리던 변백현의 뒷덜미를 잡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야야야, 나 넘어져!"

"시끄럽게도 나온다."

", 오세훈. 너 내가 반말하지 말랐지. ? 어디 감히 형한테"

"집으로 오래요."

 

옆에서 나불거리는 변백현 따위 가볍게 무시한 오세훈은 오늘도 동정인지 걱정인지 모를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는 김종인을 끌고 앞장 서 걸었다. 뭐야, 쟤네도 가? 호출인데.

 

"가자."

"...? 나도?"

 

차마 앞에서 개기지는 못하고 오세훈의 등 뒤에서 어퍼컷을 날리던 변백현이 한 발짝 앞서가다 자신을 뒤돌아보는 나에 놀란 건지 펀치를 날리던 동작 그대로 멈춰버렸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해보인 나는 다시 뒤돌아 앞의 두 장정을 따라 걸었다.

 

"..., 같이 가!"

 

 

--*-*-*--

 

 

"안녕하세요."

 

언제 봐도 적응되지 않는 넓이. 혼자 따로 나와서 사는 놈이 우리 가족보다 더 큰 집에 산다. 우리가 막 도착할 즈음 문을 나서는 가정부 아주머니께 목례를 하며 살짝 아는 체를 했다. 아주머니는 웃음으로 응대를 해주신 뒤 우리의 옆을 지나 현관을 빠져나가셨다. 웃는 눈 뒤로 보이는 미묘한 동정심. 직접 말한 적은 없어도 청소해주시는 분이니 눈치는 채고 계시겠지. 딱히 싫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 있는 정도?

 

"박찬열! 우리 왔어!"

 

변백현의 시끄러운 외침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문이 빼꼼 열리며 사복차림의 박찬열이 나타났다. 문에 체인을 건 채 연 그 녀석은 후드집업을 뒤집어쓰고 안경을 낀 채였다. 주변을 둘러보고 우리만 있는 것을 확인한 그 녀석은 그제야 문에 걸린 체인을 풀고 우리를 들여보내줬다.

 

", 술 있어요?"

"."

 

현관에 대충 신발을 벗고 가장 먼저 들어선 오세훈이 그 녀석에게 물었다. 그 녀석은 뭘 물어보냐는 듯이 대답을 하며 거실로 휘적휘적 걸어갔고 오세훈은 자연스레 주방으로 향했다.

 

"너넨 오자마자 술이냐."

"전 아니에요."

"왜 혼자 빠져나가!"

 

아직 6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라 조용하게 타박했더니 뒤에서 들어오던 김종인이 슬그머니 발뺌을 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분명 같이 먹을 게 뻔하다. 딴 건 다 멀쩡해서 꼭 술 먹을 때만 양아치처럼 퍼마시는 놈이니깐. 거실 소파에 널부러진 가방들을 정리해 내려놓는 사이 김종인은 변백현에게 허리를 한껏 굽히고 헤드락을 당하고 있었다. 변백현은 부엌 쪽을 보며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오세훈이 나타나기 직전에 김종인을 놔줬고 오세훈은 그런 변백현을 조용히 째려보다 바닥에 초록색 술병들을 놔뒀다.

 

"빈속에 먹어?"

", 안주 없어요?"

"밥 다 떨어졌는데. 안주도 없고."

 

거실 한편에서 다리를 쭉 뻗은 그 녀석이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을 하자 거실에는 침묵만이 맴돌았다.

 

"...빈 속인데 먹을까."

"속 버릴라. 기다려. 밥 해줄게."

"오오오, 오늘은 내가 됴리사!"

"조용히 해."

"재미없어."

"...반말하지 말랬지!"

"그럼 형 노릇 하랬잖아."

 

늘 똑같은 래퍼토리면서 질리지도 않나. 은근히 시끄러운 오세훈과 가끔 빼고 시끄러운 변백현이 떠드는 것을 들으면서 부엌 쪽 베란다로 나갔다. 대충 쌀 몇 바가지를 퍼서 나와 교복 셔츠를 걷어붙이고 씽크대에서 쌀을 씻기기 시작했다. 여러 번 쌀을 헹궈내고 밥솥에 쌀을 얹힌 후 반찬을 하려고 연 냉장고는 인스턴트 몇 개를 제외한 채 텅텅 비어있었다.

 

", 반찬 재료 없어?"

", 맞다."

"너 반찬도 없으면서 밥하라고 한 거냐?"

", ……."

 

왕왕거리면서 그 녀석을 쪼는 변백현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동생들의 소리 없는 원망이 선했다. 아마 그 녀석은 실없이 웃으면서 가만히 있겠지. 그나저나 반찬을 어떻게 한다……. 맨 밥에 술만 먹일 수도 없고.

 

", 김종인. 너네 형 지금 놀러 다니지 않냐? 고기 좀 사다 달라고 하면 안 돼?"

"왜 얘 형을 부려먹어."

"지금 알바 끝났을 시간이긴 한데……."

"잘됐네! 박찬열, 고기먹자, 고기!"

"그러던가. 도경수, 그냥 와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찬장까지 뒤져보던 나는 결국 아무 소득 없이 거실로 돌아왔다. 거실에선 이미 어디에서 묵혀지고 있던 과자를 찾아 안주삼아서 맥주병까지 딴 상태였다. 변백현은 김종인에게 찰싹 달라붙어 형에게 문자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고 오세훈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맥주를 물처럼 들이마실 뿐이었다. 주량만 좋아서는. 그 녀석은 그 옆에서 무념무상 상태로 과자만 집어먹고 있었다. 호출이 아니었나.

 

"형 온대요."

"오예!!! 고기다 고기!!!"

"먼지 날려. 앉아."

"."

 

그 후 형이 올 때까지 나는 밥하면서, 그 녀석은 tv보면서, 나머지 셋은 이리저리 엉켜 놀면서 각자 의미 없이 시간을 죽였다. 형이 막 도착했을 때쯤 밥도 알맞게 되었고 술에 안달 난 오세훈이 고기 구울 세팅을 초스피드로 끝낸 덕에 우리는 바로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혀이 으 처재?"

"?"

"형이 그 천재네요."

 

왠지 고등학생 사이가 아닌 애새끼들 틈 사이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각종 뒤치다꺼리를 하는 도중-고기 굽는 거라던가 쌈 싸주는 거 라던가 술 보충이라던가- 입 안에 쌈을 가득 넣은 변백현이 물었다. 얼떨결에 우리 틈 사이에 섞여 동생 챙기랴 오세훈 질문공세에 대답하랴 고기 구우랴 바빴던 형은 의외의 인물이 물어오자 당황한 듯 싶었다. 더군다나 제대로 된 발음도 아니었으니. 대충 번역해주고 형이 잠시 당황을 해서 멈춘 집게를 대신 집어 들었다.

 

"우리 형아 천재다!"

"종인아. 그만……."

 

형은 취해서 자신에게 안기는 김종인을 어쩌지도 못하고 입을 우걱대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변백현의 눈을 애써 피했다. 오세훈은 여전히 그 상황을 노려보고 있었고 침묵의 난리 통에 그대로인 건 계속 고기를 굽는 나와 나한테 기대어 그저 계속 입에 고기를 집어넣으며 자신의 갈 길을 가는 그 녀석 뿐이었다.

 

", 벌써 대학합격이라면서요."

"그렇긴 하지……."

"우리 형아 공부 잘한다아!"

"종인아;;"

"김종인, 형 힘드시잖아. 일로와."

"안 그래도 되는"

"괜찮아요."

 

, 저 기회주의자……. 속으로 오세훈의 처세술에 감탄하고 있을 때쯤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신경 안 쓰는 듯 하더니 그래도 신경은 쓰이긴 한 듯 싶었다.

 

", 멋대로 말 놔도 돼요?"

", 뭐 어때. 고작 한 살 가지고."

", 형 짱짱!"

"하하……."

"그럼 이 기회에 서열정리 제대로 하자! 오세훈 너 나한테 반말 찍찍 대지마!"

 

또 그 소린가 싶어 한심하게 변백현을 쳐다보는 그 찰나 예상을 깨고 작게 대답하는 오세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당황하는 것은 오히려 질문했던 변백현이었고 변백현은 말을 더듬으며 어? , , 그래... 하고 도로 밥에 얼굴을 파묻었다. 오세훈은 변백현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드디어 자신에게 넘어온 김종인을 살뜰히 챙길 뿐이었다.

 

"경수야, 이제 내가 할게."

 

오세훈을 수상하게 바라보던 형은 고개를 살래살래 젓다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말없이 그 손에 고기집게를 건넜다.

 

"...친해 보이는 수준이 딱 니가 말했던 대로네."

"?"

"아냐, 아무것도."

 

친해 보이는 수준? 전에 얘네랑 친하냐고 물어봤을 때 말하는 건가. 슬쩍 고개를 돌려 녀석들을 둘러보다 여전히 내 어깨에 기대에 tv를 보는 그 녀석을 쳐다봤지만 입으로 고기를 우겨넣으며 마이웨이일 뿐이었다. 뭔 상관인가 싶어 다시 앞을 쳐다 본 나는 애새끼들에게서 해방된 것을 감사하며 열심히 공짜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간간이 형과 더 얘기해 본 결과 역시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술을 더 사온 것부터가 형이니. 어느새 취해서 나가떨어진 변백현과 둘만의 세상이 펼쳐진 17살짜리들 때문에 생각보다 형과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중간 중간 옆의 그 녀석이 반응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그 녀석이 나에게 신경을 쓰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

 

 

"종인아, 가자. 엄마 걱정하시겠다."

"으응……."

 

아예 오세훈의 다리를 베고 누워서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대도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김종인을 준면형은 단 말 한마디로 단잠에서 깨워냈다. 오세훈이 눈을 빛내며 자신이 업을 생각에 엉덩이를 들썩였지만 준면형은 간단하게 김종인을 들쳐 매고 현관으로 향했다. 오세훈은 당황한 듯 주변을 떠나지 않고 알짱거리면서 현관에 다다랐고 나는 퍼질러 자고 있는 변백현을 처리할 궁리를 하다가 형을 불러 세웠다.

 

"."

"?"

"형이 변백현 업어요. 김종인은 오세훈한테 맡기고."

". 그럴까?"

 

쉽게 수긍하는 형의 모습에 오세훈은 얼굴에 퍼지려는 웃음을 참으면서 나에게 고맙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난 그냥 변백현 처리하려고 한 건데.

 

", 근데 경수야. 넌 애들한테 성 붙이고 이름 불러? 나한텐 안 그러잖아."

"……."

"별 뜻 없어. 그냥 궁금해서. 형 갈게."

".“

 

성을 붗이고 부른다... 딱히 고민해본 분제는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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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경수랑 찬열이가 하는것을 준면이가 봤나봐여... 도와주려고 친하냐고도 물어보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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