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몰랐을까. 너무 피곤해서, 요즘 주변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지않았다고해도, 목소리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을텐데. 내가 건내는 영수증을 받았던 손도, 낯설지가않았을텐데 왜, 몰라본것일까.
" 왜 그래. 괜찮아? "
" ...괜찮아요. "
소란스러움에, 그의 고개가 자연스레 우리쪽으로 향했다.
" ... "
" ... "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꼬리를 들어올려 환하게 웃었다. 꿈에서 봤던, 그날 길거리에서 잠깐 스쳐보았던, 그 미소가. 먼저 시선을 피한건 나였다. 여전히 그가 나를 쳐다보고있는게 느껴졌지만 나는 애써 모른척했다. 애초에 눈 따윈 마주치지않은것처럼. 빠르게 직원실로 들어와 가쁜 호흡을 진정시켰다. 그는 도대체 뭘까.
뭐길래 자꾸, 나를-
그는 카페문이 닫을때까지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율무차가 담겼던 컵은 비워진지 오래였고, 그는 가만히 앉아있는게 지겨울법도한데 휴대폰 하나조차 들여다보지않았다. 애처롭게도 오늘 마감은 내 담당이었다. 다른 알바생들은 퇴근한지오래였고, 나도 어서 퇴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옷을 갈아입고 기계 전원들을 내렸다. 내가 퇴근 준비를 하는 그 순간가지도 그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너무 움직임없이 앉아있는탓에 나도 그의 존재를 깜빡하고있었다. 어떡하지, 문 닫아야하는데. 손님이니까 아무리 얼굴보기 불편하더라도 일단 말은해야겠다싶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 .... "
아니, 다가가려했다. 방금까지 가만히 앉아있던 그가 내 마음이라도 읽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놀란 마음에 뒷걸음질조차 하지 못하였다.
" 율무차, "
" ... "
" 잘 마셨어요. "
그리고는 뒤를돌아 카페를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너무 크지도,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적당히 벌어진 그의 등을. 꿈에서 보았던 그 뒷모습을. 머리가 아팠다. 어지러웠다. 꿈에서 깬 뒤 찾아왔던 두통과는 차원이 다르게 아팠다. 아무도 없는 카페 바닥위로 주저앉아버렸다. 확신했다. 그는 정말로, 나를 찾아왔다. 잊지말고 기다려달라 애원하던 그가 맞았다. 나는...
그래서 무섭다.
앞으로 닥칠 나의 운명이, 인연들이.
그 후로 그는 카페를 매일 찾아왔다. 찾아오는 날마다 율무차를 주문했고, 매일 똑같은 자리에 앉아 그렇게 앉아있었다. 여자 알바생들은 처음엔 그에게 호감의 눈빛을 보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매일 찾아와 가만히 앉아있기만하는 그가 이젠 이상한거같다며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한가지 달라진점이 있었다. 이젠 꿈에 그가 나오지 않는다는것이었다. 대신, 이렇게 매일매일 카페에 찾아와 하루종일 나를 본다. 그때처럼 말을 걸지도않았고, 움직이지않고, 가끔가다 눈이 마주치면 그날처럼 따뜻하게 웃어주는게 다였다. 그냥 그렇게 그냥 하염없이 나를 쳐다만보다 카페를 나가곤 했다. 나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처음에만 놀랐을뿐, 이젠 그러려니 했다.
보름이 지났다. 오늘도 여진히 그는 앉아있었고, 내가 마감을 담당하는날이기도했다. 평소처럼 그냥 알아서 나가겠지, 하며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왠일로 그는 저번보다 먼저 일어나 카페를 나갔다. 무슨일 있나, 라고 생각하기도 잠시였고 이내 생각을 거두며 남은일을 정리했다.
정리가 끝난뒤 내부에 전원을 모두 끄고, 카페 문을 잠궜다. 제대로 잠겼나 한번 확인 한 뒤 열쇠를 가방에 넣고 뒤를 돌았는데, 툭- 하고 내 볼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 .... "
비가왔다. 처음엔 한 두방울 떨어지더니 점점 물줄기가 많아졌고, 이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거세지기 시작했다. 여름비인가. 보아하니 쉽게 그칠거같진않았다. 하늘이 흐려 비가올거같다고 예상은 햇지만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미처 우산도 챙기지못했다. 무엇보다 오늘 일기예보에선 비가온다는 말도 없었고... 직원실 안에 우산이있나 들어가보려했지만 그것도 포기했다. 카페에서 정류장까지 가깝지는 않았지만 비가 더 내리기전에 뛰어가면 그리 많이 젖진않을것이다. 매고있던 가방을 머리에 이고 뛰어가려 발을 떼었을때였다.
" ...아! "
누군가 내 팔을 잡고 어디론가 끌어당겼다. 전혀 예상치 못한일에 나는 끌리는대로 몸이 따라갔고,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자 보이는것은 넓직한 누군가의 가슴팍이었다. 너무 놀라 몸을떼고 모르는사람들을 피하고있다는것도 잊은채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했다.
" ...어.. "
" 여름에 비 맞으면 감기 걸려요. "
얼굴을 보자마자 입에선 저절로 바보같은 탄성이 내뱉어졌다. 아까 간 줄 알았는데, 왜 여기에있는걸까. 여름비 맞으면 감기걸린다해놓고, 정작 자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젖어있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게 서있는 나를한번 바라보고 나를 씌워주고있던 우산을 내 손에 넘겨주며 말했다.
" 편의점이 멀어서 애 먹긴 했는데, "
" .... "
" 쓰고가요. "
그는 나를향해 한번 웃어주고는 내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전에 우산밖으로나가 비 사이를 뛰어갔다. 우산도없이, 뭐라도 쓰고갈것도없이 그냥 맨몸으로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이보였다. 잡을까 했지만, 이내 그는 사라지고없었다.
" ... "
도대체 그는, 무엇때문에.
왜. 나를-
무슨생각으로 집까지 왔는지는 기억이안난다. 아니, 그가줬던 우산을 제대로 쓰고왔는지도 모르겠다. 바닥에는 옷과 머리에 붙어있던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지고있었다. 물기를말릴 정신도, 닦을정신도없이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냥 지금은, 모든게 다 하기 싫다.
" ...아, "
너무 정신이 없던 탓일까, 그가주었던 우산을 현관에 놓지않고 방 안까지 들고 들어와버렸다. 손에 들려진 젖은 우산을 보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젠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내가 무서웠다. 꿈이 아닌 다른곳에서 나타나는 그가. 처음에는 다리가 풀릴정도로 놀랐었지만, 이젠 그가 카페에 앉아있을땐 아 오늘도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래서 무서웠다. 이런생각이 더 익숙해지면, 나는 그렇게 무섭다던 운명이라는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 ... "
오늘 꿈에는 그가 나왔으면 좋겠다. 오직 꿈에서만 나눌 수 있는 대화를, 하고싶었다.
실제로 나타나버린 그의 앞에서는, 도무지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질않았기때문에.
만약 오늘 꿈에 그가 나온다면, 먼저 말하고싶었다. 오늘 고마웠다고, 그리고.
제발, 울지말라고.
" ... 뭐야. "
눈을 떠보니 한번도 온 적 없었던 낯선 공간이었다. 낯선 공간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아무생각없이 일단 무작정 걸어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았다. 걸어가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그냥 평범한 시내였다. 다만, 내가 한번도 와보지못한곳. 어디로가면 뭐가 나오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무작정 걷기만 했었다.
몇분을 걸었을까.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인영에 발걸음이 뚝, 멈춰졌다.
" .... "
멀리서봐도 알아볼수있었다. 그는 아직 나를 발견하지는못한듯 뭐가 그리 행복한지 얼굴엔 미소를 가득 담은채 주위를 둘러보고있었다. 요즘 그는 내 꿈에 잘 나오지않았다. 아니, 그냥 꿈 자체를 꾸지 않은거같다. 보름동안 그가 카페에오는동안은, 한번도 꿈을 꾸지않았었다. 간혹가다 꾸는 꿈은 그냥 평범한 꿈이라 기억이나지도 않았다. 근데 왜 하필 오늘-,
이곳이 꿈이라는걸 인지하는 순간 고개를들자 그는 언제부터였는지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그리고 아주 활짝, 지나가던 사람이 봐도 엄청 예쁠만한, 그런 미소를 띄고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벌떡 일어나 나를향해 걸어왔다. 피할생각은 하지않았다. 나는 그에게 할 말이 있다. 잠이들기직전, 꼭 전해줄것이라고 내가 생각했던 말들이 있었다.
" 왔어? "
그가 내게 물었다. 그래, 이렇게 시작했었다. 그가 나왔던 나의 꿈들은. 어딘지도 모를곳에 떨어져 무작정 걸었고 걷던도중 그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항상 나를향에 걸어오며 저렇게 물었었다. 꿈에서의 우린, 연인이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항상 대답했다.
" 응. "
그가 웃는거만큼은 못하겠지만, 아주, 예쁘게 웃으면서.
그와 영화를보고, 카페를가고. 기억이 안 날만큼 많은 수다를떨었다. 매일 같은 형식이었다. 비록 꿈이었지만 한가지 느낀점이 있었다면, 그는, 웃을 때 참 예쁘다는것이었다. 여자인 나보다 더. 마지막 장소였던 카페에서 나와 우리는 걸었다. 걸을때 우린 서로 아무말이없었다. 함께 놀때도 그랬다. 주로 이야기 주제는 그가 먼저 꺼냈으며, 난 그걸 듣기만했었으니까. 그가 아무말이없으니 우리사이에 대화가 끊기는것은 당연했다.
" ... "
잘만 가던 그의 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자연스레 옆에서 걷던 내 발걸음도 멈췄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들었다. 아, 여기서 우리가 헤어지는구나, 여기서, 그는, 또 울겠구나. 계속 앞만보고있던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그는, 웃지않았다. 그렇다고 울지도않았다. 묵묵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기만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가 뭐라 말을하려 입을떼려고했을때, 다급하게 그의 팔을 잡아세웠다.
" ... "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버렸다. 그도 내 행동에 약간 당황을 한듯했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이때동안 수도없이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했던, 고민했던 말들을 천천히 입밖으로 꺼냈다.
"오늘 고마웠어. "
" ... "
" ...우산. "
웃고있던 그의 입꼬리가 점점 굳어졌다. 굳어가는 그의 얼굴을 애써 무시한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 덕분에 감기 안 걸렸어. "
" ... "
" 비가 많이와서 다 젖었긴 했는데, "
" ... "
" 그래도 고마워. "
시선을 살짝내리자 작게 떨고있는 그의 손이 보였다. 항상 내 손을 감싸쥐고, 여자인 내 손보다 더 예뻤던,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했던 그 손이, 갈곳을 잃어 이리저리 방황하고있었다. 천천히, 그의 손을 맞잡았다. 비록 떨고있었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 ..그리고, "
" .... "
" 울지 마. "
꿈이니까 내뱉을 수 있던 내 진심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믿기지가않는듯,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동공은 크게 흔들리고있었다. 내 말을 끝으로 한참동안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가 무슨생각을 하고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나를 계속 쳐다보고있을 뿐이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괜히 민망해져 옆머리를 긁적였다. 한참이 지났었다, 원래 지금이면 그는 사라지고 나는 꿈에서 깨어나야할텐데, 이상하게 그는 사라지지도않았고, 내가 꿈에서 깨지도않았다. 나는 고개를숙여 애꿎은 신발끝만 바라보고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머리맡에서 피식 하고 웃는소리가 나 놀란눈으로 고개를 들어올리자 나를보며 환하게 웃고있는 그가 보였다. 그리고 이내 몇분만인지 모를 그의 목소리가 따뜻하게 묻어나왔다.
" 고마우면, "
" ... "
" 내일 놀러가자. "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환하게웃으며 내 앞에서 사라졌다.
죄송합니다 많이 늦었죠ㅠㅅㅠ
원래 상편, 중편, 하편으로 올리려고했었는데, 제가 생각해뒀던 분량을 세게에 다 넣어서 쓰기에는 연재텀도그렇고 너무 오래걸릴것같아서 상, 중상, 중, 중하, 하편으로 분량을 나누었습니다. 혹시 제목보시고 놀라신분들 있을텐데.. 오타아닙니다..왜 나는 오타로보이지 저게
아무튼 생각지도못했는데 반응이 좋더라구요...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감사합니다
다음편은 금방...(뜸들인다) 올리도록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