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even days(7일 동안) # prologue3
잃었던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보였다.
시야 한켠에 연하늘색 레일 커튼이 들어왔고 코끝에 소독약 냄새가 파고들어 후각을 흔들었다.
"...병...원...?"
겨우 내뱉은 목소리는 조금 쉬어 있었다.
"아, 깨어났어요?"
흐리멍텅해서 뿌옇기만 한 정신으로 주변을 파악 중인 나에게 물어오는 중저음 목소리.
정신을 잃기 전에 괜찮냐고 물어보던 그 남자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목소리의 기척을 더듬어 고개를 돌리니 정말 그 남자가 간이 의자에 앉아 있었고 여전히 걱정을 담은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갑자기 쓰러져서 놀랐어요. 그래서 가까운 응급실에 데려왔어요. 괜찮아요?"
간단한 상황 설명과 걱정어린 물음에 몽롱한 정신이 깨어났다.
아, 내가 정신을 잃었구나.
-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냉정하게 내 목숨의 남은 시간을 알려주던 날부터 싫어진 병원에 계속 있기 싫어서 무작정 응급실을 나가고 싶다고 투정아닌 투정을 그 남자에게 말했다.
그는 내 말에 어떠한 이유도 묻지 않은 채 따라주었다.
병원을 나온 다음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뜻이라며 그를 끌고 근처 찻집에 들어가 차와 케익을 사서 마주보고 앉았다.
그 남자의 이름은 쑨양이라고 했다. 나이는 나보다 두살 어렸다.
무척 커서 짐짓 나보다 나이를 많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세히 얼굴을 뜯어보니 피부도 하얗고 애띠었다.
"정말 고마워요."
또다시 말하는 감사의 인사에 쑨양은 입꼬리를 말아올려 웃으며 고개를 도리질쳤다.
"아니에요."
"정말인데...저때문에 하루를 버렸잖아요."
내 기억으로는 저녁쯤에 쓰러졌다. 그런데 깨어보니 늦은 오후였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무작정 나간 병원 밖에서 태양이 떠오른 하늘이 나를 반겼으니까.
"아무것도 아니데..."
난처하다는 듯이 뒤통수를 긁적이는 쑨양의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수더분한 그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편안해지고 아픔이 차곡차곡 쌓여 짓무르던 마음의 상처가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다.
지금 이시간에도 얼마없는 삶의 시간이 소모되고 있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 평화로운 시간을 영원히 영휘하고 싶었다.
그 시간은 계속 째깍째깍 흘러가 이제 곧 헤어져야할 시간이 임박했다.
나에게는 그를 더이상 붙잡아 둘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제안을 했다.
"나랑 살래요?"
이 말을 듣고 어안벙벙할 쑨양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주어담을 수 없는 말을 던졌다.
어제 처음 보고 눈앞에서 쓰러져 온갖 민폐란 민폐는 다 끼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했으니까.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냥...마음에 들어서. 당신과 함께 있으면 편안해지거든요."
어쩌면 미친놈이라고 지껄이지 않을까.
그래도 말하고 싶었다. 심신이 지친 나에게 이토록 안정감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누구도 없었다.
거절하겠지?
당연하지.
어제 처음 본데다 그것도 커다란 남자가 친구하자는 말도 아니고 같이 살자는 말을 했는데...
"아, 아니다. 미안해요. 처음 본 사람한테 이런 말 꺼내고. 신경쓰지 말아요."
대답없는 잠깐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번복했다.
까끌해지는 입안에 식은 찻물을 끼얹었다.
번복한 내 말에도 쑨양은 대답하지 않았다. 많이 놀랐나보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의사에게 죽음을 선고받았을 때보다 더 긴 것 같았다.
쓸떼없는 말을 꺼내서는 여러모로 고마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초조감에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다 무늬없는 하얀 찻잔을 만지작 거렸다.
"좋아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네?"
"같이 살아요."
눈을 부릅뜨고 쑨양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가 들은게 맞는 건가? 잘못 들은게 아닐까? 그래 내 귀가 이상해서 잘못 들은거야.
믿기지 않은 대답에 패닉이 찾아왔다.
그런 내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빙긋 웃었다.
나도 어떨떨한 얼굴로 마주 웃었다. 차디차게 식었던 심장이 따뜻해져 왔다.
"그럼 태환씨가 우리집으로 올래요?"
"그럴까요. 근데 정말 괜찮아요?"
"네. 저도 태환씨가 마음에 들어요. 저도 편안해져요."
그렇게 우리는 같이 살게 되었다.
그 결정의 끝이 어떻게 끝날지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나의 라스트 타임을 모르는 그를.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 있고 싶다는 이기적인 바람으로 제안한 말에 허락한 다정한 그를 놓아줄 수 없었다.
언젠가 이야기해야 되겠지만 당분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불치병이 있어서 죽어야 된다고 하면 마음이 바뀌어서 곧 떠나갈까봐 바로 말할 수 없었다.
매몰차게 나를 떠나면 남은 시간조차 못채우고 죽을지도 몰라.
언젠가 말할게요.
그러니까 지금은 모른 채로 함께 있어주세요.
그날 저녁, 슈트케이스에 옷가지와 필요한 물품만 간단히 챙겨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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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세편 투척!
재밌게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다음 글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들어갈거에요.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