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even days(7일 동안) # Monday3
"태환."
내 이름을 부르며 기다란 팔로 손을 흔드는 쑨양에게 나도 손을 흔들었다.
그에게 걸어가며 웃는 얼굴과 달리 내부는 뒤엉킨 생각들로 엉망이었다.
너무도 아픈 고통을 겪었던 터라 더이상 숨기기 힘들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생각들로 머릿속을 채웠다.
어떻게 쑨양에게 말을 건네야 할까.
사실 어디 아프냐고 물었을 때 배가 아픈게 아니었어요. 제 병때문에 그런거에요.
제 병이 뭐냐면요. 암이래요. 위암. 그리고 그게 다 번져서 옴몸이 암세포 투성이죠.
이렇게 덤덤히 말해야할까?
아니면 미안해요.숨겨서. 일부러 말 안했어요. 말하고 싶었지만 당신이 혹시라도 부담이 되어서 떠나갈까봐 말하기 싫었어요.
끝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더이상 숨기기 힘들 것 같아서 고백해요.
이렇게 눈물의 사정을 해볼까?
어떤 말이든 다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짜증만 났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어오는거에요?"
생각에 잠긴 나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실고서 물어보는 쑨양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도리질쳤다.
"아무것도. 그냥 힘이 없어서요."
"또 밥 안먹어요?"
"먹었어요. 아니면 쑨양이 혼낼테니까. 후후."
"아...그건...꼭 챙겨먹어야 되는거에요. 크흠. 몸이 안좋으면 그냥 쉴까요?"
"아니에요. 영화보러 가요."
"그래도..."
내가 걱정되서 외출을 주저하는 쑨양에게 괜찮다면 빙긋 웃어보였다.
"정말 괜찮아요. 오랜만이라 꼭 영화가 보고 싶어요."
"알았어요. 혹시라도 몸이 안좋으면 말해요?"
쑨양의 걱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여성에게 문을 열어주는 친절한 페미니스트처럼 쑨양은 차문을 열며 어서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의 다정함이 좋았지만 이렇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 때는 꽤 난감하기도 했다.
나도 얼마든지 차문을 열고 앉을 수 있는데 너무 여자취급하는 것도 같아서 어색했다.
그래도 쑨양이기 때문에 그런 취급조차 불쾌하지는 않았다.
조수석 좌석에 앉고나서 혹여 안전벨트까지 해주려고 할까봐 얼른 벨트를 빼어들고 클립에 고정시켰다.
왠지 쑨양의 얼굴에 아쉬움이 남은 것 같지만 착각이었는지 금세 지워졌다.
쑨양은 차문을 닫고 보닛을 돌아 반대편 건너가서 운전석에 앉았다. 스마트키로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정규속도에 맞춰 차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차량보다 조금 느린 속도였지만 안전을 좋아하는 편이었는지 쑨양은 절대 과속하지 않았다.
차창유리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 보니 날씨가 너무도 좋았다.
"와, 날씨 좋다."
"그렇죠. 이제 곧 여름이 오니까 해도 길어져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동감. 으음, 저 구름은 고양이 같아요. 그 옆은 쥔가? 큭큭."
"쥐보다 물고기에 가깝지 않아요?"
몽실몽실 뭉쳐있는 구름들의 형상을 동물에 대입보았다. 곧 다른 곳으로 관심을 옮겼고 그 것마저 식상해지자 거리풍경을 구경했다.
차도에는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로 가득했다. 평일 오후인데도 이렇게 거리가 복잡하다니 신기할 노릇이다.
모두 일은 안하고 다 놀러나왔나?
일때문에 돌아다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직장 다닐 때, 대부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던 터라 의아하기도 하고 신기했다.
"차가 되게 많네요. 다들 놀러나왔나봐."
"하하. 그런 사람도 많겠지만 일때문에 이동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런가요? 신기해요."
"태환은 일할 때 외근 안해봤어요?"
"네. 잠깐 출장 다녀오는 것 말고는 거의 사무실에서 일했거든요."
쑨양은 예전 생활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것인지, 배려를 해주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내가 직접 이야기 해주는 것 말고는.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 물어보다니 왠일인가 싶기도 하고 나에 대해 더 관심이 생겨서 그런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야기 흐름상 자연스러워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현상이 바람직하게 느껴졌다.
직업이 무엇이고 어떤 회사에서 일 하는지 , 무슨 업무를 보는지 등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와 달랐다.
또한 내가 물어보는 것은 무조건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쑨양을 보면 더욱 대비되서 그렇게 느껴질지도 몰랐다.
-
좌회전, 우회전, 직진.
마지막으로 커브를 돌아 멀티플렉스 관이 있는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했다.
후진해서 주차를 하는데 흔히 여자들이 반한다는 뒤를 보며 운전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차체에 블랙박스를 달아놓고 후방 카메라까지 달려 있기 때문에 내부 디스플레이에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주차라인에 쏙 넣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뻑간다는 멋진 모습을 구경할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단순히 보고 싶다고 해달라기에는 조금 쑥쓰러웠다.
주차를 끝낸 쑨양은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클립에서 빼어 정리하고 차에서 내려섰다.
뒤를 보며 멋지게 후진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섹시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 욕망을 꼭 눌러담고 쑨양이 오기 전에 차문을 열고 후다닥 내렸다.
정말 조수석쪽으로 돌아오던 쑨양의 다리가 멈췄다.
또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그가 직접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길 바란 모양이었다.
아까 짚앞 놀이터에서 보았던 아쉬움이 결코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쑨양씨, 날 얼마만큼 여자취급하는거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매표소가 있는 층까지 올라온 우리는 미리 예매한 덕분에 표를 살 필요없이 간단히 팝콘과 음료만 사기로 했다.
팝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라멜 팝콘이고 음료는 탄산음료가 아닌 이온음료로 골랐다.
사실 환타 포도맛을 주문하려고 했지만 쑨양이 내 말을 자르고 주문을 바꿔버렸다.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쑨양은 거리낌 없는 얼굴로 말하는 것이었다.
"탄산은 몸에 좋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걸로 마셔요."
"그렇게 따지면 팝콘도 몸에 좋지 않은데..."
"하나만 몸에 나쁜게 낫죠. 곱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미 나빠져서 더이상 나빠질 것도 없이 곧 관을 짜고 눕기 직전인데도 쑨양의 묘한 건강학개론은 나의 건강을 생각해줬다.
물론 나의 병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일 것이다.
그런 쑨양이 무척이나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불러일으켰다.
그에게 병명을 곧 고백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씁쓸하고 슬프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곁에 있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슬펐다.
한편으로는 그와 심적의 고통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나를 또 기쁘게 했다.
다정하고 친절한 그는 오히려 아픈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더욱 아껴줄지도 모르니까.
타인의 연민과 동정은 정말 싫지만 쑨양이 주는 연민과 동정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사해할 것이다.
때문에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가정과 나와 함께 끝까지 있어줄지도 모른다는 달콤한 상상이 자꾸 충돌했다.
내 머리는 최악의 가정을 염두하지만 내 가슴은 달콤한 상상을 생각했다.
그리고 진심은 달콤한에 좀 더 기울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있고 싶으니까.
그를 처음 보고 느꼈던 편안함을, 다정함을, 안정감을 끝까지 느끼고 싶으니까.
"시간 되었어요. 이만 들어가죠."
"가죠. 화장실 안가도 돼요?"
"네. 태환은요?"
"저도. 그럼 이대로 가죠."
두손에 든 빅사이즈 팝콘바구니를 안아들고 상영관쪽으로 걸어갔다.
상영관을 찾아 가는 도중, 귓가에 감탄이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목소리들을 추정해보면 여자들이었다.
눈을 흘깃하니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세명의 여자들이 보였다. 그녀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여자들도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 혹시 쑨양을 보고 그러는 건가.
하긴 남자가 봐도 그는 너무 멋지니까.
키도 엄청 크고. 몸매도 좋고. 얼굴까지 잘생긴데다 재력까지 갖춘 모든면에서 완벽한 사람.
왠지 그런 그와 함께 있는 게 우쭐해진다. 그에게 아낌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같은 동성에게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싫지 않았다.
"태환 이쪽이에요."
쑨양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끌어 당긴다. 보통 남자들보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내가 그에게는 쏙 감싸였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가 그만큼 잘난 것을.
부러웠다. 키 크고 몸도 좋아서.
나도 꿇리지 않고 오히려 좋은 편에 속하지만 그와 비교하면 한참 모자라는 것 같다.
그런데 그가 내 어깨를 감싸고 상영관 안으로 이끌 때 왠지 모를 기쁨의 함성이 뒤에서 들렸다.
착각이겠지?
- 부제 :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왔던 그녀의 이야기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왔다. 요즘 재밌는 액션영화가 나왔다기에 예매를 하고 영화관을 찾았다.
팜플렛을 두어개 집어들고 훑어보는데 눈 앞에 멋진 훈남들이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 남자는 얼추 보기에도 2m에 육박하는 키를 가졌고 옆의 다른 남자는 그보다 작았지만 결코 작지 않는, 오히려 요즘 선호하는 180cm초중반의 키를 갖고 있었다.
얼굴도 잘생겼는데 서로 다른 매력의 페이스였다.
키가 엄청 큰 훈남은 서늘한 눈매가 멋졌고 피부도 질투할만큼 깨끗한데다 하얗기까지 했다.
적당한 키의 훈남은 둥글한 눈매의 큰눈(속눈썹도 길다)에 우뚝한 코는 콧망울이 동글해서 귀여웠다.
두 남자 모두 몸매까지 완벽해 보였다. 감히 상상해보기를 저 걸쳐진 옷을 벗기면 흔히 여자들이 환장하는 식스팩 복근이 숨겨져 있을 것 같다.
그들을 보면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데 내 친구들이나 주변 여자들도 나와 같은 반응이었다.
하긴 저렇게 멋진 남자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튀어나왔는데 안그러면 여자도 아니지. 아니면 레즈거나.
키가 엄청 큰 남자가 티켓을 들고 있었는데 상영관을 찾더니 좌석을 확인한다.
앗, 이런 나와 다른 상영관이다. 친구들도 아쉬워하며 그들과 다른 영화를 티켓 끊은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친구야, 너희들도 이걸로 보자고 정했잖아.
그런데 다 큰 성인남자들이 이 재밌는 액션영화는 안보고 멜로영화를 선택하다니 의외의 선택에 놀라웠다.
그냥 상영관으로 들어가기 아쉬워 두 남자를 지켜보는데 2m의 훈남이 팝콘을 든 귀여운 베이비 페이스를 가진 훈남의 어깨를 팔로 둘러 끌어당기는게 아닌가!
왠지 모를 분위기가 느껴졌다.
단순한 친구가 아닌 느낌이 마구마구 들었다.
한때 인터넷에 왕성한 활동을 했던 동인녀 기질이 치솟았다.
설마? 설마. 설마!
뺨을 상기시켜며 그들을 뚫어지게 보았다.
귀여운 훈남이 2m의 훈남의 품에 쏙 안겼다. 스트라이크!!!
볼링공이 열개의 핀을 모조리 쓰러뜨리는 광경이 펼져졌다. 그 순간 외치는 단어!
그 단어는 지금의 상황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쏙 안긴 귀여운 훈남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다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2m의 훈남에게 상큼하게 웃어주는 모습이라니.
그리고 2m의 훈남은 그런 그를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내려다 보았다.
감동이었다. 아, 그들이 떠난다.
어두운 상영관으로 모습을 감추는 그들을 보며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실제적으로 훈남으로 엮인 남남 커플을 보다니 이 무슨 동인녀 인생의 축복인가.
동인녀 생활을 청산했는데 아무래도 다시 시작해야할 것 같다.
영화 시간 다되었다고 팔을 잡아당기는 친구들에게 끌려가며 이제 그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상영관 입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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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올립니다. 비축분은 아니고 즉석에서 쓱삭!
그래서 오타가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편은 번외편도 첨부해서 올려봅니다.
이런 거 재밌지 않나요?
기본바탕이 새드스토리이지만 유쾌한 스토리도 한번쯤 넣고 싶었어요.
너무 슬프기만 하면 힘드니까..ㅠ.ㅠ
쓰는 저도 힘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