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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ON/준환] 네이키드 독스 06 | 인스티즈 


 


 

06 

Put a spell 


 


 


 


 

"Oh God, I love him so much!" 


 


 

걜 너무 사랑해. 어떻게 해야 돼? 질척한 울음과 뒤섞여 다 쉬어빠진 목소리로 클로이가 어물어물 물었다. 울음기에 잔뜩 먹혀들어간 목소리가 웅웅 텅 빈 교실 안을 공명하고 있었다. 형편없이 흩어진 클로이의 금발의 머리칼을 귀 옆으로 쓸어 넘겨 주며 나는 무슨 위로의 말을 꺼내야 할 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옆에서 클로이의 등허리께를 토닥여 주던 딜런도 나와 눈을 맞추며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후 수업이 없는 딜런이 나와 함께 화장실에 쳐박혀 죽을 듯이 눈물을 쏟던 클로이를 데리고 체육관에 데려온 것이 불과 약 한 시간 쯤 전의 일이었다. 


 

딜런이 한 쪽 눈썹을 으쓱하며 클로이에게 휴지를 건넸다. 클로이가 불쌍했다. 구준회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모습이 가여웠다. 저 둘의 관계에서는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어쩔 수 없는 약자였다. 클로이가 뭉그러지는 발음으로 꺽꺽 울음을 쏟아내는 동안 단음의 멜로디가 클로이의 휴대폰으로부터 흘러나왔다. 클로이가 벌겋게 달아오른 코 끝을 휴지로 닦아내다 말고 휴대폰을 집어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오열했다. 


 


 


 

"Look...! He's so lovely!" 

"Speak to him. Communication! That's the key." 


 


 


 

클로이가 구준회의 사진으로 메워지는 휴대폰 화면을 부여잡고 통곡했다. 구준회가 믿을 수 없이 잘생기고 멋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클로이가 구준회를 너무나 깊게 사랑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 사실이 괜히 씁쓸해서 목구멍이 텁텁해졌다. 


 

사실상 구준회와 대화를 하고 자주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그 애의 마음을 읽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구준회는 예측불허의 인간이었고, 도무지 생각 외의 방향으로 튀어나갔기 때문에, 그 애를 따라잡고 그 애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요하는 일이었다. 딜런은 울리는 벨소리에 잠시 생각을 하는 듯 싶더니 이내 클로이에게 소통을 강조하며 구준회와 얘기를 해보라 권유했다. 휴대폰은 이야기를 나누라고 있는 도구잖아. 한 번 통화해 봐. 그러자 클로이가 의구심이 드는 얼굴로 그래? 하고 되묻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고 먼저 말문을 틔웠다. 


 


 


 

"Fuck off, you wanker! No, you listen to me, tosser!" 


 


 


 

휴대폰 화면을 장악한 구준회의 사진들이 너무나 멋지다며 부르짓던 것과는 딴판인 살벌한 얼굴로 클로이가 거침없는 욕지기들을 마구 내뱉었다. 꺼져, 나쁜 새끼야! 날 내버려 둬, 따위의 날카로운 말들을 되는 대로 뱉어낸 클로이가 마지막으로 거친 욕설을 한 번 더 쑤셔박고 나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다시 통화를 끝냈다. 그러곤 다시 맥없는 울음을 토해냈다. 


 

여자들 마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딜런이 클로이의 거친 욕설에 충격이 뒤숭숭하게 번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클로이가 딜런이 건네었던 휴지로 코를 팽, 하고 풀고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뚱히 클로이와 함께 체육관으로 들어와 위로를 건네주던 딜런도 함께 몸을 일으켰다. 씨발, 다리 저려라. 불구가 된 기분이군. 딜런이 낮게 욕지기를 지껄이는 것이 들렸다. 


 


 


 

"I'm really grateful… for the everything." 


 


 


 

정말 고마워. 전부 다. 클로이가 눈물로 인해 잔뜩 헝클어진 얼굴로 말했다. 딜런은 다리가 불구가 된 것만 빼면 괜찮다고 답했다. 다리가 많이 저린 건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욕을 쏟아내는 채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클로이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집 가면서 또 울 것 같으면 써. 클로이가 그제서야 싸늘한 표정을 거두고 내게 살풋 웃어보였다. 


 


 


 

"Thank you, lovely." 


 


 


 

클로이가 손수건을 받아든 채 별안간 내게로 몸을 숙이고 뺨을 감싼 채 제 입술을 가져다 대고 짧게 키스했다. 여느 꼬마 아이들에게나 해줄 법한 가벼운 버드 키스였다. 그 꼴을 지켜보던 딜런이 또다시 충격으로 번진 얼굴을 하며 다급한 걸음으로 클로이에게 다가왔으나 클로이는 그런 딜런을 한 번 흘깃 쳐다보곤 가방을 챙겨 쌩하니 체육관 밖을 나설 뿐이었다. 딜런이 입맛을 쩝 다시곤 말했다. 나도 휴지조각 정도는 쥐어줄 수 있었는데. 아깝군. 


 


 


 

"So, how about her kiss, J?" 

"Shut it off." 


 


 


 

닥치라는 말에도 딜런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겠다는 듯 코 끝을 찡긋거리며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 


 

 

 


 

 


 

 


 


 


 

클로이를 집에 어찌어찌 잘 보내고 나서야 한숨을 돌리고 집으로 향하려다가 포퓰러 나무 밑의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담배를 태우고 있는 구준회가 보여 걸음을 멈췄다. 구준회는 웬 백금발의 긴 생머리를 가진 여자애와 함께인 채였다. 클로이는 안중에도 없이 또 다른 여자애와 함께인 모습이 기가 차서 아무런 말도 조음해내지 못하고 입만 벙싯거리자 구준회가 멀리 서 있는 나를 발견한건지 손을 들어올려 인사하는 것이 보였다. 제가 있는 쪽으로 오라는 것 같았다. 나는 무거운 백팩을 다시 한번 고쳐 메고 구준회에게로 찬찬히 걸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흰 벤치에 느긋하게 앉아 홱 꼬아진 길다란 다리를 까닥거리며 연기를 뿜어내는 구준회의 매끈한 뺨엔 전에 볼 수 없었던 생채기들과, 검붉게 멍이 들기 시작한 상처가 자리해 있었다. 


 


 


 

"Hi. I'm Esther." 


 


 


 

밝은 푸른 색의 눈을 한 구준회 옆의 여자애가 빠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하고 내 소개를 하려는데 말을 끝맺기도 전에 여자애는 구준회에게로 고개를 홱 돌리더니 다시 하던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괜히 무안해져 손 끝을 만지작대다가 엉거주춤 에스더 옆의 조금 남아있는 공간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구준회는 에스더가 쨍알쨍알 무슨 얘기를 하든 별 신경쓰지 않는 얼굴로 미소를 머금은 채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었다. 에스더는 구준회가 제 얘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걸 모르는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건지 계속해서 떠들어 댈 뿐이었다. 구준회가 에스더의 허리께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리고 말했다. 이제 가봐야 겠는걸. 친구가 와서. 


 


 


 

"Oh, yeah?" 


 


 


 

에스더가 아무렴 상관 없다는 투로 대답했고 나는 보이지도 않는 듯 구준회에게 살짝 몸을 숙여 가볍게 뺨을 토닥여준 뒤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스더에게 가리워져 잘 보이지 않았던 구준회의 얼굴이 그제서야 제대로 시야 안에 담겼다. 구준회는 날렵한 턱께가 시큰거리기라도 하는건지 연신 담배를 걸치고 있지 않은 손으로 툭 불거져 나온 턱뼈를 매만지는 중이었다. 


 


 


 

"See you tomorrow, Jun!" 


 


 


 

구준회가 희묽게 웃어보인 뒤 고개만 까닥이며 인사를 건넸다. 누구야? 내가 묻자 구준회가 답했다. 


 


 


 

"You and Chloe are coming to hear me sing." 


 


 


 

너랑 클로이는 나 노래하는거 보러와야 해. 쟤가 이번 연극에서 같이 주연을 맡게 된 여자애거든. 운도 좋지. 구준회가 손에 가파르게 걸친 담뱃대를 잡고 검지로 허공에서 재를 탁탁 쳐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It just occured to me how much fun it could be." 


 


 


 

구준회가 옅은 색의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내게 시선을 맞췄다. 안광이 형형한 눈이었다. 재밌을거야. 나는 이상하게 그 목소리에 뒷골이 선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도망치듯 황급히 진득한 시선을 떼어내고 고개를 푹 숙인채로 어줍잖게 우물거렸다. 그나저나 왜 그랬어? 클로이한테. 


 


 


 

"Why don't you just leave her alone for a bit?" 


 


 


 

그냥 좀 냅두지 그래. 이제 걔 좀 그만 괴롭힐 때도 되지 않았어? 그러자 구준회가 놀랍다는 듯 두 눈을 치켜뜨더니 약간 이내 그 위에 자리한 눈썹을 잘게 움틀거리며 내게 말했다. 


 


 


 

"Okay. I messed around Bin a bit. So what? It was just a laugh." 


 


 


 

내가 한빈이랑 조금 놀아났는데, 그게 뭐 어때서? 그냥 장난이었어. 말하는 목소리에 약간의 비아냥이 묻어나고 있었다. 구준회가 말할 때마다 사선으로 찢어진 입꼬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필터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But she's not your toy." 


 


 


 

구준회에게 있는대로 놀아나는 클로이가 안쓰러운 마음에 차마 하려고 생각지도 못했던 맘 속 깊은 곳을 맴돌던 말이 무의식적으로 툭, 비어져 나왔다. 걘 니 장난감이 아니잖아. 그러자 구준회가 순간적으로 얼빠진 듯한 표정을 짓다 말고 재밌다는 듯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외틀며 눈을 가늘게 치켜 떴다. 담배를 엷게 입술로 자근거리던 구준회가 검지와 중지로 필터를 입에서 살짝 떼어내고 허, 웃었다. 매캐한 연기가 작게 벌려진 입술을 비집고 증기처럼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졌다. 내가 다시 작게 중얼거렸다. 넌… 클로이를 조종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여. 걔 뿐만이 아니라 걔와의 관계조차도. 


 


 


 

"Actually, I control everthing." 

"…." 

"That's the thing I like most." 


 


 


 

나는 모든 것을 조종하지. 그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거든. Actually, 하고 운을 떼면서 고개를 살짝 비틀고 눈가를 찡긋거리며 건네어지는 목소리가 포식을 마친 들짐승처럼 만족스럽고 느긋했다. 구준회의 암녹색 눈이 일순 번뜩였다. 묘한 색감의 눈동자로 뻗어있는 시선이 나를 뚫어버리기라도 할 듯 위력적이었다.  


 

바비가 약에 취해 있을 때처럼 몽롱하지만 극명하게 허공을 가르는, 짙고, 분명한 목소리가 귓가로 뱅뱅 돌았다. 선이 굵은 목울대가 유유히 울렁이는 것이 보였다. 나른한 표정이 마치 잘 짜여진 오케스트라가 저의 손짓에 맞추어 능숙하게 다뤄질 때 지휘자가 지을 법한 카타르시스와 같은 류의 어떤 것 같기도 했다. 최상위의 포식자 혹은 맹수같이 질척이는 눈빛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이내 말문이 막힌 채 바싹바싹 타는 목만 겨우 축일 뿐이었다.     


 


 


 

"He was bored, I was bored, Chloe was bored, and now we're not." 


 


 


 

여전히 답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자 구준회가 다시 덧붙였다. 변함없이 고개를 한 쪽으로 살짝 비튼 채였다. 잠시 허공을 향하고 있던 눈동자가 쌔하게 돌아갔다.  


 


 


 

"And she's gonna feel so good when she gets me back." 


 


 


 

클로이도 날 다시 얻으면 좋아할거야. 구준회는 드넓은 바다 어딘가를 유영이라도 하는 듯 여유롭고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 눈 아주 깊은 곳 안쪽이 물너울치며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눈 속에 가득 담겨 비치는 내 얼굴도 같이 깊게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빨려들어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내가 머뭇거리자 느긋하게 벤치에 한 쪽 팔을 올리고 가느다랗게 툭툭 마디가 불거진 손가락으로는 담배를 걸쳐 쥔 구준회가 내게서 시선을 거두며 푸스스 웃어보였다. 꽤나 즐거운 표정이었다. 볼이 홀쭉하게 패일 정도로 담배를 깊게 한 번 빨아들인 구준회가 입을 뻐끔거리자 입에서부터 가느다란 연기가 폴폴 피어나왔다. 


 


 


 

"Than that, I want to know more about you." 


 


 


 

그보다 난 너를 더 알고 싶은데. 구준회가 다시 한 번 거두었던 시선을 내게 콱콱히 박아넣으며 말했다.  


 


 


 

"네게 흥미를 느껴."  

"…." 

"넌 나를 자극하거든." 


 


 


 

구준회의 눈자위가 서늘하게 번쩍거렸다. 구준회가 내게 처음 건네는 한국어였다. 여느 타국의 언어를 발음할 때처럼 툭툭 끊기며 귓가에 박혀오는 목소리가 그 형체를 내리깐 채 바닥을 낮게 기었다. 다시 사냥을 나선 짐승의 그것처럼 척척하게 번들거리는 눈초리가 섬광처럼 내 내밀한 어딘가를 찬찬히, 그리고 완연하게 개복하는 것 같았다. 뚫어질 듯한 시선의 끝에서 홧홧한 열기가 일었다. 내 속을 낱낱히 간파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도피를 종용하는 살벌하고 오묘한 눈이 무섭도록 완전하게 나를 잡아 먹고 있었다.  


 

구준회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여느 때보다도 더 비스름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로. 


 


 


 


 

*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구준회와 클로이는 무사히 화해를 한 모양이었다. 김한빈이 흰 우유에 초코 맛이 나는 시리얼을 털어 넣어 퍼먹다 말고 아침부터 농밀한 키스를 나누는 둘에게 시선을 박더니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이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 건 정말 반가운데, 제발 밥상머리에선 좀 자제해주면 안될까? 김한빈이 애원조로 말했으나 클로이는 짧게 미안, 내뱉곤 다시 구준회와 혀를 섞었고, 구준회는 아무 대답도 없이 클로이의 허벅지를 커다란 손으로 느릿하게 쓰다듬을 뿐이었다. 역겨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김한빈이 더는 못먹겠다며 수저를 식탁에 내던지듯 탁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She loves me so much, yeh?" 


 


 


 

구준회가 느릿하게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클로이에게서 잠시 입술을 떼고 속삭였다. 클로이가 꺄르륵 웃으며 구준회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자 구준회가 다시 클로이의 턱을 제게 끌어당겨 입을 맞췄고,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에 멍하니 시선을 박으며 흥미 없다는 듯 느릿하게 발을 까닥거리던 바비가 갑작스레 입을 뗐다. 바비의 유유한 목소리가 테이블 위로 툭, 굴러 떨어졌다. 


 


 


 

"You perform a play today, right?" 


 


 


 

구준회가 그제서야 진득하게 혀를 섞던 것을 잠시 멈추고 클로이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오늘 저녁 7시야. 다들 보러 와. 그러자 바비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잘어울리는데, 친구. 이번엔 어떤 노래를 불러? 성가대 노래라던가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바비가 비실비실 웃으며 묻자 옆에서 정신없이 감자튀김을 쑤셔넣던 딜런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인상을 쓰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괄괄한 목소리로 크게 항의했다. 성가대 노래가 뭐 어때서? 존나게 좋기만 하구만. 딜런이 말할 때마다 입 안에서 잘게 조각난 감자튀김의 일부가 튀기라도 하는건지 앞에 앉아 얌전히 샐러드를 깨작거리던 그웬이 질색을 하며 입 다물라고 딜런에게 주의를 줬다. 딜런이 오, 미안. 하고 짧게 사과를 건넸다. 


 

구준회가 엷게 웃었다. 와서 직접 보라구. 재밌을 거야. 딜런은 그웬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준 지 30초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다시 거침없이 입을 놀렸다. 연극부에 예쁜 애들 많겠지? 끝나고 뒷풀이 파티는 어때? 그웬이 다시 한번 딜런의 입에서부터 튀어 나온 감자 조각들에 경악하며 신경절적으로 딜런을 째려봤다. 딜런이 다시 한 번 미안. 하고 중얼거렸다. 바비는 그 꼴이 재미있는 듯 연신 눈을 찡긋거리며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웬은 더이상 자기의 운동복이 딜런의 더러운 음식물 찌꺼기로 오염되는 것을 참을 수 없는건지, 고개를 젓고 음식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얇은 플레이트를 든 채로 쌩하니 식당을 빠져나가 버렸다. 딜런이 미간을 어그러뜨리며 비아냥거렸다. 역시 여자애들이란. 


 


 


 

"Anyway, do you coursework?" 


 


 


 

김한빈이 바비에게 숙제를 해 왔냐며 물었고, 바비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한 쪽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야? 딜런도 숙제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건지 옆에서 작게 욕을 씨근거렸다. 클로이가 그런 딜런에게 쐐기를 박았다. 안타까운 척 하지 마, 딜런. 너 어차피 숙제 안해올거였잖아. 그러자 딜런이 정곡을 찔린 듯 민망하게 씩 웃어보였다. 씨발. 연기한건데 티 나는구나. 딜런은 갑갑하다는 듯 드디어 입 안의 잔여물들을 완벽히 삼켜낸 뒤 초조한 듯 다리를 달달 떨었다. 근데 오늘 숙제 안 해오면 메리한테 키스하는 게 벌 아니었던가? 그러자 바비가 좆됐다는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다. 씨발. 걍 수업을 째야 하나? 


 

메리는 기숙사 사감이었는데, 히스테릭한 성격과 쭈글쭈글하게 늘어진 화난 인상의 얼굴 때문인지 40살이 넘어가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여자였다. 생물학 선생과 연배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성격 또한 닮았던 터라 둘은 죽고 못사는 절친한 노처녀 친구였고, 젊은 남자아이들에게 짖궂고 성적인 농담을 건네는 것을 즐기는 메리의 취미를 잘 파악하고 있는 생물학 선생은 가끔씩 과제를 해 오지 않는 남자애들에게는 메리에게 가벼운 키스를 하거나 백허그 등을 시키는 아주 획기적인 벌을 내리곤 했다. 대부분의 남자애들은 그것을 죽기보다 싫어했기 때문에 그 끔찍한 형벌을 어떻게든 면하기 위해 기를 쓰고 숙제를 해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전히 바비는 가끔 있는 숙제에게조차도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이미 몇 번이나 메리의 탄력없이 다 늘어진 볼에 뽀뽀를 하거나 하는 등의 일 따위를 해내온 이력이 있었다. 바비는 뽀뽀를 하려 얼굴을 가져다 대는 저의 엉덩이를 농밀하게 주무른 메리에게 질릴 대로 질려 더이상은 벌을 받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업에 성실하지도 않았다. 


 


 


 

"그럴 줄 알고 니 것까지 해 왔어. 간단한 거라서 그냥 같이 해 온거야." 


 


 


 

김한빈이 바비에게 말하며 숙제로 보이는 A4 용지 뭉치를 건네자 바비가 뛸 듯이 기뻐하며 김한빈의 목덜미를 크게 껴안았다. 넌 내 생명의 은인이야. 사랑해! 따위의 말들을 내뱉는 채였다. 김한빈은 귀찮은 내색을 하면서도 바비를 밀쳐내지는 않았다. 그 옆에선 딜런이 말도 안된다는 듯 허탈하게 탄식했다. 그리곤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체념한 듯 물었다. 


 


 


 

"Alright. Anybody got any poppers*?" 


 


 


 

누구 대마 있는 사람? 맨 정신으로 늙어빠진 메리한테 키스할 순 없잖아. 


 

딜런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들 딜런을 묵시한 채 고개를 쳐박고 묵묵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딜런이 초조함으로 인해 손에서 땀이 나는 건지 연신 손바닥을 비비며 우리를 쭉 훑어보다 이내 씨발. 역시 너넨 존나게 멋진 친구들이야. 하고 작게 지껄였다. 


 


 


 

― Popper: 아질산 아밀(amylnitrite·상품명 러쉬). 흡입성 환각물질. 최음 및 도취감이 뒤따르며 미국과 남미 등지에서 남용된다. 


 


 


 

* 


 


 


 

"It's time for action now." 


 


 


 

딜런이 손수 사들고 온 나쵸를 와작와작 씹어대며 의아하다는 듯 투덜댔다. 연극이 시작될 때가 됐는데도 막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생물학 시간에 과제를 해오지 않은 죄로 내일 안에 메리에게 키스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짜증도 함께였다. 클로이는 기대가 되면서도 제가 되려 긴장이 되는지 입술을 자꾸만 잘근잘근 씹어댔다. 노래를 부르는 구준회라니. 내가 무대에 올라서기 전인 것처럼 속 깊은 곳이 잘게 떨렸다. 지금까지 구준회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음에 그랬고. 그 모습이 전혀 상상이 가질 않아서였음에 그랬다.  


 

옆에서 김한빈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꾸벅꾸벅 졸던 바비가 별안간 큰 효과음과 함께 서서히 열리는 장막을 바라보며 놀란 듯 반사적으로 욕을 지껄였다. 김한빈이 어이없다는 듯 그런 바비에게 제대로 앉아서 감상을 하라며 엄마처럼 주의를 줬다. 딜런은 막이 올라간 것이 주체할 수 없을만큼 기쁜 건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중이었다.  


 


 


 

성녀여. 손이 한 일을 입술도 하게 하소서. 


 

  


 

Fuck it.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거지같게도 구준회가 맡은 역은 로미오, 에스더가 맡은 역은 줄리엣이었고, 흥분에 못이겨 잔뜩 들뜬 채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버렸던 극의 이름은―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이내 에스더의 손등에 부드럽게 키스한 구준회가 대사를 뱉으며 줄리엣에게 키스했고, 줄리엣 역을 맡은 에스더가 구준회의 뒷목을 끌어당겨 더욱 격정적으로 혀를 섞기 시작했다. 딜런은 연신 감동한 듯 죽이는데, 따위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극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것 같았지만 내 옆의 클로이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얇은 주먹을 말아쥐고 분노에 겨워 씩씩대는 중이었고, 나는 조심스레 그런 클로이의 눈치를 살피고 더욱 몸을 밀착하고 능숙하게 혀를 섞는 구준회와 에스더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김한빈과 딜런의 기숙사에서 뒹굴거리거 갈 준비를 하며 가방을 챙기는 동안 연극부의 대기실로 향하던 구준회가 문득 기다란 몸뚱이를 교실 문앞에 비딱하게 기대고 내 쪽을 다붓히 바라보며 건네었던 말이 일순 머리속을 스쳤다.  


 


 

"Come with Chloe. It'll be absolutely worth it." 


 


 

그만한 가치가 있을거야.  


 

저음의 묵직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왱왱 돌았다. 그것이 또 다시 구준회의 그 짖궂고 악랄한 장난이었을 줄은 차마 몰랐다. 재밌다는 듯 가늘게 치뜬 눈매를 봤을 때부터 알아차려야 했는데. 분명 또다시 클로이와의 관계를 이리저리 휘두르고 가지고 놀기 위해 이런 짓을 꾸민 것이 분명했다. 흰 자위에 핏발이 설 만큼 눈을 부릅뜨고 모든 장면을 똑똑히 눈에 담은 클로이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번엔 또 무슨 사단이 벌어질 지에 대한 불안한 예감이 자꾸만 눈 앞을 캄캄하게 메웠다.  


 

그 와중에도 대사를 술술 읊고 묵직한 목소리로 쉽게쉽게 노래를 부르는 구준회의 얼굴이 매끈하고, 믿을 수 없으리만치 반듯해서 머릿속이 혼란하게 엉켰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구준회에게로 오롯히 시선이 쏠렸다. 홀린 듯 구준회의 툭 불거져 나온 턱선과, 날카롭고 시원하게 뻗어있는 콧날과, 그려놓은 듯 반듯한 눈매에, 


 


 


 

"Fucking hell."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속에 담겨 있는 보석같이 묘하게 일렁이는 눈동자에 시선이 가닿자, 나는 어쩐지 클로이가 당하고 당해도 구준회를 도저히 벗어나지 못한 채 열렬히 사랑하고, 매달리고, 사랑을 구걸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미쳤지." 


 


 


 

높고 반짝이는 무대에 서서 관객 쪽을 쭉 훑던 구준회의 시원하게 찢어진 눈매가 일순 내 눈과 시선을 맞췄다. 허공에서 우리의 눈길이 딱 맞물렸다. 순간 시간이 멈추고, 그 간극 안에 우리 둘 밖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어 머리가 핑 돌았다.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돌이키지도 못할 아주 큰, 큰 곤경에 빠진 것 같았다.  


 


 


 

 

헉 이제 갠홈에서만 연재하려 했었는데ㅠㅠ... 글 수정하려고 들어가보니 트래픽이 초과되었더라구요T▽T.... 흑... 

홈이 터져버렸으므로.... 조심스레.... 6화 두고감미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uvu.. 


 

+) bgm 첨부했으니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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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싸 1등 ㅠㅠㅠㅠ 오늘도 감사합니다ㅜㅜ 자기전에 읽는 네이키드 독스ㅠㅠ
8년 전
정새벽
저야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해요ㅠㅠ...♡ 금방 다음편으로 찾아올게요!
8년 전
독자2
혹시 홈 주소 좀 알 수 있을까여..?
8년 전
정새벽
독방에 찾아보시면 나올거에요! 고기먹을까봐 따로 못알려드리는점 죄송해요ㅠㅠ
8년 전
독자3
독방서치해서 꼭 홈으로 들어갈게요! 고마워용!
8년 전
정새벽
아니에요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8년 전
독자4
와 ..... 진짜재밌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정새벽
감사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8년 전
독자5
와 진짜 늘 재밌게 보고있습니다....작가님 사랑해여...ㅠㅜㅠ
8년 전
정새벽
헉 제가 더사랑해여ㅠㅠㅠㅠㅠ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uvu..♡
8년 전
비회원147.76
비회원이라 독방으로 들어갈 수 없는 저는 홈을 어떻게 알게되죠ㅠㅠㅠㅠㅠㅠㅠ글쟈밋게읽고잇어요!!
8년 전
정새벽
앗 제 블로그에 홈 주소와 배너가 있긴한데... 서치가 안된다면 혹시 메일 주소 적어주실 수 있나요?! 원하시면 주소 드릴게요ㅠㅠㅠㅠㅠ
8년 전
독자6
ㅠㅠㅠㅠㅠㅠ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진짜 한회 한회가 다 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정새벽
흑 아니에요ㅠㅠ 부족한 글 늘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ㅜㅜㅠㅠㅠ
8년 전
독자7
블로그가 비공개되서 완전 우울했는데 여기도 있렀네요(감동) 항상 챙겨보고 있어요ㅠㅠㅠ암호닉 신청 안받으시나요?
8년 전
정새벽
앗 암호닉이야 신청해주시면 저야 좋죠 uvu..♡ (수줍) 블로그는 서로이웃을 하시면 다 볼수 있답니다! 다만 현 연재중인 네독은 완결 후에 한번에 올릴 것 같아요.. 흑.. 한번에 글잡과 갠홈과 블로그 세 개를 왔다갔다하는게 넘나 힘겨워서 그러니 양해부탁드려요ㅠㅠㅠㅠ 죄송 ㅠㅠㅠㅠㅠ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8년 전
독자8
그럼 (뿌득)으로 신청할게요!!!!!!!!감사해요 힘드시겠네요 왔다갔다하느라ㅠㅠ
8년 전
독자9
와 도대체 주네는 무슨생각일ㄱ까여ㅠㅠㅠㅠㅠㅠ도무지 이해하기 힘든글인거같아요ㅠㅠㅠㅠㅠ그렇즈만 이 실마리를 풀어가는게 묘미가아닌가싶네여
8년 전
독자10
드디어서로 제대로 반한것인가!!!!항앜!!!!!!!!너무좋다 언제진도뺄래ㅎㅅㅎ너무기대된다 앞으로
8년 전
독자11
브금이랑 같이 들으니까...진짜 글 분위기에 홀리는 거 같네요ㅠ 노래도 너무 좋고 글도 너무 좋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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