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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의 아침은 어제봤던 풍경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차의 유리창은 파손된채 나뒹글었고
전선들은 어지러이 꼬여 텅빈 하늘을 채우고있었다
"이런데서 뭘 찾는다는거야.."
내 옆을 내내 지키던 찬이가 툴툴대며 말했다
물론 나도 척박한 풍경에 이골이 난 상태라 그의 기분에 공감해주기로 했다
"그러게"
우리의 한탄이 들리지 않는 듯
민규와 승관, 한솔은 저들끼리 왁자지껄 떠들며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고
지훈은 어디선가 기다란 막대기를 주워 돌 무더기들을 툭툭 찔러대고 있었다
우리 전쟁중인거 아니었나?
풍경들이 조금 삭막하고 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뺴곤
나와 찬이가 온 곳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모두 약간씩 부족하지만 행복해보이고
심지어 군인들의 눈치도 보지 않는것 같다
아니, 군인이 여기에 있긴 한건가?
승관과 한솔의 말대로 정한이 기억을 잃기 전 무언가 설치해놓은게 분명한듯 했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평화로울리 없어
한참을 걸으니 저 멀리
<CECIL"S MARKET>
이라고 쓰인 건물이 보였다
아마 전쟁 전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대형마트였던것 같다
물론 지금은 유리창이 다 깨져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폐건물일 뿐이지만
찬이가 먼저 들어가 손을 잡아주어
유리에 찔리지 않고 조심히 들어갈 수 있었다
먼저 들어간 사람들은 각자 짜기라도 한 듯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민규는 주류 코너로 (아마 승철이 술을 몇병가져오라고 찔러둔 듯 했다)
승관은 잡동사니 코너, 한솔은 욕실용품, 그리고 지훈, 나와 찬이는 음식코너로 향했다
전쟁이 난 지도 시간이 한참 지났다
야채 코너에 있는 각종 야채들은 이미 문드러진 상태였고
육류들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신선한 채소와 고기를 위해 여기까지 온건 아니었다
우리의 목표는 통조림들이었다
지훈이 가져온 커다란 코스트코 가방 ( 지훈이 LA로 오기 전 살았던 동네에서 주운 것이라고 했다)
에 참치, 연어, 황도 등 통조림이란 통조림은 싹 다 쓸어넣었다
우리의 만족스러운 쇼핑이 끝나가고 있을 즈음,
승관은 어느새 저 멀리서 슬리퍼와 옷걸이, 가위, 집게, 수저세트등 각종 생활 용품을 가득 안고 달려오고 있었고
한솔은 치약과 칫솔, 샴푸, 바디 워시 등 씻을 수 있는 제품이라면 모두 마트의 것으로 보이는 쇼핑카트에 담아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민규는 와인 몇병과 (그중에는 60년이 넘은 고급 와인도 몇병있었다) 맥주를 달랑거리며 걸어왔다
다행히 한솔이 쇼핑카트를 찾아와, 우리는 우리가 수집한. 물건들을 카트에 모두 넣고
마트를 나섰다
한솔과 승관, 민규는 물건들을 구하느라 힘들었다며
우리에 카트 미는 일을 미뤘고
지훈 역시도 그 일을 거절해
자동적으로 카트는 우리의 담당이 되었다
돌아가는 길도 아까와 비슷했다
나와 찬이가 카트를 낑낑 대며 끌고 가고 있다는 것만 빼면,
아마 꽤 많이 걸은것 같다
올때는 금방이었는데 왜 가는건 이렇게 힘든지
나는 물건들이 쏟아지지 않게 옆에서 계속 물건을 위로 쌓아야했다
물론 그래도 물건들은 계속 쏟아졌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찬이도 체력이 부쳤는지, 이를 악물고 카트를 밀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이러다 찬이가 아프면..
"찬아, 저 사람들 시키자"
"아냐, 우리 도와준 사람들이잖아"
"우리를 먼저 도와준건 조슈아야. 저 사람들 말 들을 필요없잖아. 이건 불공평해
게다가 너는 내가 쇼핑카트를 밀지도 못하게 하잖아. 미안해서 안되겠어"
"미안하긴, 같이 장보고 나오는 신혼부부 같고 좋은데 뭐"
"신혼부부? 지금 이 상황에 그런 생각이 나?"
"그럼, 얼마나 꿈 꿔왔는데-"
나도 그랬어 찬아.
나도 너와의 평범하지만 소소한 미래를 꿈꿨어
그치만 지금은. 지금은.
"아니야, 꿈 꾸지마."
"왜?"
"우리 미래가 보장 된것도 아니고, 게다가..."
"게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야."
그가 카트를 밀던 손길을 멈췄다
"그래, 언제 죽을지 몰라. 그렇지만 그럴수록 현재에 집중해야지"
"현재가 언제 끝날지 몰라. 늘 언제 죽을지 긍긍전전하고 있고,
나 너무 무서워 찬아"
"세봉아"
"나 우리 가족처럼 되고 싶지 않아. 마법에 맞아 쓰러지고 싶지 않아. 나는..나는.."
".......김세봉"
갑자기 북받힌 감정.
다른 사람들은 이미 카트를 빼앗아 끌고 집안으로 들어가버렸고
남은건 나와 찬이.
"세봉아 괜찮아. 내가 포털에서 약속했잖아. 내가 널 지켜줄게........
그리고..그래, 내가 너 많이 좋아해 세봉아"
"..........."
"그래,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것도 알아.
그래도 말할래. 나 너 좋아해 세봉아. 그러니까 너무 무서워하지마. 옆에 항상 있잖아 내가 있잖아"
".....그렇지만....."
"아휴, 이제야 속이 좀 후련하네."
사실 나도 그래.
나도 널 좋아해 찬아
"너는 어때?"
"응?"
"넌 날 좋아해?"
그럼. 나도 널
"좋아해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