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처음보는 저 아이 때문인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괜히 뒷목을 벅벅 긁고는 조용히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조그만 아이를 쳐다보았다. 어중간한 시기에 전학을 온 아이는 부끄러운지 담임이 우리에게 제 소개를 대신하는 내내 눈을 바닥에서 뗄 줄 몰랐다. 마침내 고개가 들리는가 싶어 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파서 전학을 왔다는 처음 들어보는 전학사유에 딱 맞는 듯한 마르고 작은 체구를 가진 아이는 햇빛 한 번 안 받아 본것같은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입술은 약간 짙은 듯한 붉은 색이었다. 그 선명한 색깔 차이가 약간 올라간듯한 눈꼬리에 참 잘어울린다 생각하는 참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교실을 찬찬히 살피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당황스러움에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놀란 듯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눈길을 내게서 뗄 줄 몰랐다. 눈 한 번 마주쳤을뿐인데 가슴부근이 간질간질했다. 이상한 느낌에 입모양으로 "뭘 봐."하고 정확히 또박또박 발음하듯 하였다. 아이는 그런 나를 보고 고개를 홱 돌린 것이 분명하다. 순간 안도와 동시에 아쉬운 기분이 함께 밀려 들어왔다
아이의 이름은 김민석이었다. 병약한 미소녀가 아니라 병약한 미소년 스타일의 새로온 전학생에 난리가 난건 분명 여자애들 뿐만이 아니리라 예상했고 그런 내 짐작은 아주 잘 맞아 떨어졌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수정은 처음 김민석이 들어온 순간부터 화장을 고쳐대더니 내가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스튜핏. 뭘 봐? 너도 해줘?"하고 가소로운듯 웃으며 조용히 내게 속삭였다. 순간 정수정이 진심이라는 것을 몸이 먼저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이러는 이는 비단 미친 정수정 뿐만이 아니었고 남자애들은 흐트러져 있는 옷을 조금씩 고쳐 입거나 여자애들은 슬금슬금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였다.
전학생의 자리는 내 오른쪽 대각선 이었다.담임이 나가자 마자 우르르 몰려들어 전학생 주위를 시꺼먼 교복을 입은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섞여 원처럼 둘러쌌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정수정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정수정의 시선이 꽤나 따가워서 수정의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며 "뭐 임마"하고 말하자 정수정은
"걱정마. 나도 쟤한테 관심있어."
라는 말같지도 않은 말을 내뱉으며 내게 윙크를 했다. 무슨 소리야 이게. 내가 당황할 틈도 없이정수정은 여기서 멀지 않은 김민석의 자리로 사뿐사뿐 걸어가더니 새까만 원을 친 아이들 사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갈라놓고는 당연하다는 듯 김민석의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말을 할 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정수정은 그런 애였다.
"이름이 뭐야?"
"...어...?..김민석이야..."
"알아! 전화번호는?"
정수정의 쓸데없는 추진력과 근거없는 당당함에
"응?...."
김민석은 미친듯이 당황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다른의미로 당황했다. 정수정이 부러워질 줄이야.
전학생의 전화번호를 받은. 아니 쟁취한 정수정의 얼굴은 아주 당당해보였다. 김민석의 짝지에게 대충 포스트잇을 빌려 김민석에게 곧바로 포스트잇과 볼펜을 건낸 정수정의 싱글벙글 웃는 얼굴에 김민석은 어쩔 줄 몰라하며 번호를 적어주었다. 순간 정수정의 저 '쓸데없는 추진력과 근거없는 당당함'이 부러워져 앞의 수식어구가 사라지려는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