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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절친했던 친구가 죽었다고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던 고3 반장에게 문자가 왔다.
내기억으로 그때가 1997년도였다
내 나이는 열아홉살이였고 지금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7년 이다.
절친했던 친구? 그게 누구야? 10년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사라졌고
기억도 점점 퇴화되어갔다. 나는 이제 스물아홉인데. 결혼준비로 바쁜 한 가장인데.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그랬다. 이른나이에 죽은게 안타깝네.
나중에 장례식 하면 연락해줘. 동창들이랑 같이가자. 하고 넘기려했다.
근데, 그 장례식의 주인공이 변백현이라는 소리를 들었을때
난 수화기를 놓칠수밖에 없었다.
변백현?
백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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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이 열아홉때는 무선호출기 '삐삐' 라는게 있었다.
당시 학생들에게 삐삐는 연락수단이라기보다 친목도모와 연애질을 위한 도구였다.
다이얼 1번(호출)보다는 2번(음성녹음)을 누르는 일이 대다수였으니까.
쉬는 시간이면 누군가 내 삐삐에 남긴 음성메시지를 듣기 위해 공중전화 뒤로 줄을 섰다.
변백현과 나도 삐삐가 있었다. 같이 게임방 가려고할때 변백현이 늦으면 난 삐삐로 호출을 했다.
'44444444444444444444444444444444444444' 를 하염없이 누르며. 해석하자면, '죽어라죽어라죽어라죽어라'.
변백현은 그 호출을 받고 '2626' 하고 호출을 보냈다. '약속장소로 간다=이륙이륙' 이런 유치한 뜻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난 그 유치한 호출을 보며 스리슬쩍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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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과 나는 야간자율학습때도 삐삐로 호출을 했다.
물론 먼저 호출하는건 변백현이였다. 선생님이 반을 나가면,
'0027' 땡땡이 치자. 하고 호출이 오고 나는 순순히 변백현의 말을 따라 후다닥 반을 나갔다.
다음날 엉덩이를 엄청나게 맞긴했어도, 밤공기를 마시며 변백현과 도란도란 나누던 즐거움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하지만 졸업은 눈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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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은 돈이없어서 대학을 가지 못했다.
나는 변백현과 다르게 대학을 갈수있었고 졸업식날 나는 변백현을 위로했다.
'힘들면 연락하고. 보고싶으면 연락하고. 내가 밥 사줄게 백현아'
변백현은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니가 사주는밥 필요없어 짜샤.' 하고 웃으며 넘겼다.
졸업식때 끊임없이 약속했다.
역락 끊으면 사람도 아니다.
너랑나랑 평생친구다.
별의별 약속을 다했다. 그런데 연락을 먼저 끊은건 바로 나였다.
삐삐를 잃어버리기도 했고,
보수적인 아버지는 변백현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 하려면 그런친구 만나고다니지 마라. 으름장을 놓던 아버지의 모습이 무서웠다
한편으론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백현이는 애가 괜찮긴한데. 돈도없고, 애비도 없고, 그런친구는 버리는게 좋아 경수야.'
그래서 변백현과 연락하지 않았다.
동창회도 나가지 않았다.
변백현은 서서히 내마음속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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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잃어버린 삐삐를 찾은것은 고등학교 동창들. 반장을 빼고 다 연락두절이 된채 10년이 지난 오늘 이였다.
변백현의 장례식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야해서 방안의 검은정장을 찾고있는데 서랍속에서 툭. 하고 삐삐가 떨어진것이다.
이게 작동이 될까? 궁금증에 삐삐를 보니 수십통이 넘는 호출이 와있었다.
처음으로 온 삐삐는 고등학교 졸업후 일주일채 되지 않았을 때다.
나는 천천히 그것들을 해독하며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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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미워
'0052' 꼭만나자
'6515' 보고싶다 연락 바란다
'9977' 할 얘기가 너무 많다. 구구절절
'3575' 사무치게 그립다
'0124' 삐삐가 고장났냐
'0285' 몸이 아프다
'1010235' 열렬히 사모해
'0124' 영원히 사랑해
'1008' 나 지금 고민스러워
'1052' 사랑해
'1350' 너없이는 못살겠다
'401'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4486' 죽도록 사랑해
'504' 오직 당신만을 사랑해
'100' 돌아와
'2255' 이리로와
'0285' 몸이 아프다
'0288' 열이 팔팔
'0052' 꼭 만나자
'0024' 영원히 사랑해
'0024' 영원히 사랑해
'0024' 영원히 사랑해
'0024' 영원히 사랑해
'0024' 영원히 사랑해
'0000' 보고싶다
'0000' 보고싶다
'0000' 보고싶다
'0000' 보고싶다
'0000' 보고싶다
'0000' 보고싶다
'0000' 보고싶다
'0000' 보고싶다
'0000' 보고싶다
'0000'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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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동창들을 만났다.
동창들은 퉁퉁 부은 내 얼굴을 보며 놀라했다.
나는 다짜고짜 변백현과 졸업후에도 꾸준히 연락했다는 놈을 붙잡고 물었다.
"변백현…왜 죽었어…?"
"…그전에 묻고싶은거 있는데… 연락. 일부러 안한거야?"
"……."
"변백현이…. 얼마나…"
얼마나…. 남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남자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있었다.
일그러진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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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은 하나남은 엄마를 떠나보내고
혼자 힘들게 살았다고 했는데, 항상 하는일이 담배피고 삐삐를 부여잡는 것이였다고 한다.
혹시 도경수한테 연락이 올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변백현은 나를 좋아했다.
내가 다 잊고 잘살때 변백현은 잊지못해 울었다.
동창의 말로는,
술을 진탕먹고 가다가 트럭에 치여 저만치 날라갔다고 한다.
나는 그 이후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만하라고 고함질렀다.
결론은 변백현은 죽었고 나는 죄책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 변백현은 죽었다.
하지만, 몇달만 지나면 아무렇지않게 행동하며 결혼준비를 하고 행복하게 살 나를 생각하니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어떡하지. 혼란에 휩싸이고 고등학생때 내 목에 팔을 걸며 웃던 백현과 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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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동창들은 두번의 장례식을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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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누가 죽어야 이야기가 끝나요 여태껏 쓴거 다 누구하나 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