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 오빠가 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학원에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수정이한테 찡찡 거리기 바빴다.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너 좋아하는 거 아니였냐고! 하자, 수정이는 웃으며 야, 그 오빠가 날 왜 좋아하냐! 하며 웃었다. 소문이겠지? 그럴리가 없어, 완전 어릴 때 완전 나 진짜 왈가닥 때 모습도 다 아는데, 날 좋아할 수가 없지! 하고 소리쳤다. 학원에서 집에 가는 길에 같이 간다고 체육관에서 나온 세훈이가 옆에서 좋아할 수가 없냐? 하고 물어왔다. 그럼 그 모습을 보고 누가 좋아하냐! 하고 따졌고, 세훈이는 그럴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중얼거렸다.
"어? 셋이 어디가?"
"어, 오빠! 나는 우리 집, 얘네는 세훈이 집."
"세훈이 집?"
"저녁 먹을려고."
"같이 가도 돼?"
결국 세훈이와 백현이 오빠와 함께 같이 세훈이 집으로 왔다. 할머니께선 백현이 오빠를 보고 웃으시며 곱게도 생겼다, 잘 놀다가 하고 방에 들어가셨다. 둘이 먹어, 나 할머니하고 먹을래 하고 따라 방으로 들어가자 세훈이와 백현이 오빠가 왜! 하고 발끈했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방으로 들어와서 할머니와 밥을 먹었다. 시시콜콜 드라마 얘기도 하고, 옛날 얘기도 들으며 밥을 먹다보니 아빠가 퇴근할 시간이 돼서 짐을 챙겼다. 백현이 오빠는 데려다줄게 하며 일어섰고, 세훈이는 얘네 아버지가 데리러 오셔 하고 나를 자기 옆에 세웠다.
"둘이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야"
"진짜 이상해 둘 다"
얼마 안 지나 아빠가 데릴러 오셨고, 아빠는 방에 들어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그리곤 세훈이에게 과일 봉지를 주며 할머니 챙겨드리고 너도 좀 챙겨 먹어 하고 이른 뒤,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오셨다. 나는 집에 남은 백현이 오빠와 세훈이에게 인사를 하고 큰 소리로 할머니에게 할머니 내일 올게요! 하고 소리쳤다. 할머니는 오냐~ 조심히 가라, 내 새끼~하고 답해주셨다. 그 뒤로도 저녁을 먹으러 가는 날이면 쭉 백현이 오빠가 같이 갔고, 세훈이는 유독 불편한 티를 냈다. 이렇게 싫은 티 내는 성격이 아닌데, 왜 이러나 싶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2주 뒤, 백현이 오빠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부담은 갖지 말라고, 소문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사귀자는 말은 안 하겠다고, 그냥 알고만 있어달라고. 다른 사람이랑 사겨도 좋다느니 이상한 소리만 잔뜩 하고는 늦었다며 급하게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리고 그 뒤로 오세훈이 내 어깨를 잡았다. 얘기 끝났어? 하고 묻기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밥 먹으러 가자 하며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어김 없이 세훈이 집에서 밥을 먹고 얘기를 하며 아빠를 기다렸다. 세훈이는 훈련이 있어서 또 나가봐야 한다며 짐을 챙기기에 같이 가자고 나도 짐을 챙겨 나왔다. 아빠에겐 체육관으로 와달라고 문자를 하고 세훈이를 따라 체육관으로 따라갔다.
"오랜만에 온다."
"언제 왔었지?"
"중학교 땐 거의 매일 출근도장 찍었지? 고등학교 와서는 처음이야."
"거기 있어, 왕복 2번 하고 시간 잰 거 기록 하고 가면 돼."
세훈이의 말에 시계를 보자, 아빠가 오려면 1시간이나 남아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세훈이가 수영하는 걸 보니, 엄마의 마음이랄까. 뭔가 내가 키운 거 같기도 하고...... 엉뚱한 생각은 버리고 휴대폰이나 보기로 했다. 수정이와 문자를 하고, 셀카를 몇 장 찍고 나서 고개를 드니 물에 있던 세훈이가 없다. 얘 어디 갔어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내 옆에 앉아 있는 세훈이를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야! 놀랬잖아! 하고 어깨를 치자, 아! 하고 아픈 척을 하는 오세훈이였다. 안 속거든! 하자 슬쩍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머리 말려, 감기 걸릴라 하고 젖은 머리를 만지작 거리자, 오세훈이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불길한 예감에 빠트리지 마라, 죽는다 하자 오세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김에리 하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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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짜증나, 진짜. 난 다시 라면 물을 올렸다. 또 끓여야 하다니. 제발, 아무도 집에 안 오게 해주세요. 하지만 내 기대는 라면 스프를 물에 푸는 동시에 깨졌다. 에리야, 문 좀 열어! 하고 소리치는 망할 준면이 오빠 때문이였다. 아, 진짜 죽이고 싶다. 한껏 우울한 표정으로 문을 열자, 준면이 오빠는 웃으면서 들어왔다. 세훈이 왔었다며? 하지만 난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밥 먹고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천연덕스럽게 오빠는 아니 하고 대답하더니 라면 냄새 난다 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와, 진짜 둘이서 미치게 하네.
"세훈이가 뭐래?"
"오빠처럼 라면 뺏어 먹었어, 전화 하면 받으라고 하고 나갔어."
"야, 그래도 오빠는 치킨까지 시켜줬다. 전화 하면 받으라고? 오세훈 새끼, 소심해선."
"왜?"
"걔 짜증나거나 화나거나 힘든 일 있으면 물에서 안 나오잖아, 지금 체육관 들어간지 몇시간이냐... 어쨌든 아직 안 나오고 있어."
"뭐? 그럼 오래 지났잖아. 치킨 뜯고 있을 때야?"
"야, 먹으라고 권한 건 너거든?"
"몰랐을 때고!! 우리 집에서 나간지 40분 오빠 도착한지 1시간이면, 얘 두 시간 가까이 수영만 하고 있을 거란 소리잖아."
"빙고!"
아, 뭐 내 주변엔 멀쩡한 사람이 없어! 세수를 하고 나와서 대충 로션을 바르고 겉옷을 챙겨 입자, 식탁에 앉아 치킨을 뜯으면서 어디가냐고 묻는 준면이 오빠가 보였다. 오세훈한테 하고 대답하자, 박수를 치더니 오, 좋아요. 좋습니다 하면서 아저씨 표정을 지어 보인다. 와, 얼굴 더럽게 못 써. 나 갔다올게, 나갈거면 문 잠궈 하고 이르자, 오빠는 손으로 오케이를 그려 보이며 열심히 치킨을 먹었다. 고개를 저으며 신발을 신고 나와, 무작정 체육관으로 뛰었다. 사실 세훈이가 자주 가는 체육관 근처로 자취방을 구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지만. 운명 같은 재회를 바랬건만, 실상은 웬수가 따로 없다.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지금은 사용을 못 한다고 얘기하면서 나가달라고 부탁하시기에, 준면이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종결시키곤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나 연습을 한 건지 바닥에도 물이 흥건했다. 진짜 몸 상하는 것도 모르고, 맨날 저래. 물 가까이로 가서 야!!!! 하고 소리 지르자 빠르게 움직이던 오세훈이 멈췄다. 그리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더니 환하게 웃는다. 미친 놈...... 이 말 말고는 지금 오세훈한테 할 말이 없다. 오세훈은 미친 게 분명하다. 그렇게 웃더니 다시 무표정으로 나한테 걸어온다. 그리곤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더니 자기도 올라와 옆에 앉는다. 몸 상해 하고 다그치자, 오세훈은 싱글벙글 웃으며 괜찮아 하고 대답한다. 뭐가 괜찮아 하고 궁시렁 거리자, 너 왔잖아 하더니 갑자기 일어선다.
"야, 너 어디 가는데?"
"너 봤으니까 쉬러, 너네 집 가서 쉴 거야."
"왜? 왜 우리 집 가서 쉬어? 너네 집 가."
"대회 전이라 휴가 받았어. 선수촌 안 가도 돼, 물론 숙소도."
그래, 그 휴가를 왜 나한테 쓰냔 말이다. 어이가 없으려니까 진짜, 이러다가 유아인한테 빙의라도 할 거 같다. 결국 오세훈은 우리 집으로 향하고 있다. 세훈이한테 전화로 피자를 사오라는 준면이 오빠까지 아주 환장의 콜라보다. 정말 둘이 마주 앉게 만들어서 이마를 마구 때리고 싶다. 마음 속으로 참을 인을 새기며 집에 도착했다. 자기 집도 아닌데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는 오세훈과 함께. 그리고 창피해서 말 안 했지만, 내 비밀번호는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날이다. 이걸 오세훈이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지만.
이 환장의 콜라보는 우리 집 냉장고며 선반이며 시키고 사온 음식들로 파티를 열고 있다. 오빠 그러다가 배 나와 하고 잔소리라도 하면 이상한 표정을 짓는 준면이 오빠 덕에 잔소리는 포기했다. 오세훈은 음식은 더 이상 먹기가 힘든지 이불을 깔고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다. 여기가 여관인가, 다들 여기서 모이게. 준면이 오빠에게 원망의 눈빛을 쏴 보내보지만 오빠는 콜라를 벌컥벌컥 마실 뿐이였다. 어쩌다 이렇게 다시 만났을까. 내가 꿈꾸던 재회는 내가 세훈이 체육관에 찾아가서 세훈이를 끌어안으며 세훈이의 사과를 받고, 다시 시작하는 거였는데.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체육관에서 나오던 세훈이를 마주쳤고. 세훈이는 나를 단번에 알아봤다. 그래서 나를 끌고 숙소 주변을 걷기 시작했고,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세훈이가 어제 밤에 한 말이라곤 오랜만이다였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이라곤 그러네가 다였다. 그런데 열애설은 뭐고, 지금 아무렇지 않게 우리 집에 있는 오세훈은 뭐며, 걸신이 들린건지 전투적으로 음식을 삼키는 저 김준면은 뭐냔 말이다.
시간이 지나, 준면이 오빠는 에이전시 팀 회의가 있다고 나갔고, 오세훈은 그런 오빠를 손을 흔들어주며 보냈다. 나는 나머지 음식물 찌꺼기와 쓰레기를 치우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챙겨 나왔다. 나 씻을 거니까 찾지 마 하고 얘기 하자 오세훈은 웃으며 왜 씻어? 라고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너 죽고 싶단 말, 그렇게 돌려서 해? 하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씻고 나와 방에 들어가서 로션을 바르고 대충 머리를 말리고 나오는데 오세훈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얼씨구. 황당하지만 피곤한 거 같아서 똑바로 눕히고 티비도 끄고, 불도 끈 뒤에 마음 속으로 잘 자라고 외친 뒤 주방으로 왔다. 찬 물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속이 타들어갈 거 같았다. 찬 물을 원샷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오세훈이 잠꼬대를 하는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가까이 가서 쪼그려 앉았다.
"......"
"뭐래, 한 개도 안 들려."
"보고 싶었어, 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