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매력 episode 13 - R
(return)
(브금필수!)
우리 내면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감정이란 녀석은 너무나도 제 멋대로여서,
제발 나와달라고 애원하고 또 애원해도 우리 뜻 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 했고.
또한, 그 것은 짖궃기까지 해. 그 끝을 따라가면 더욱 깊이 숨어버리는 청개구리 같은 면모를 지녔다고 했다.
분명 우리는 우리의 감정대로 움직이는 데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조차 멋대로 할 수 없고,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 또한 멋대로 할 수 없으며,
더욱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 시초 조차 찾을 수 없었다.
너의 무릎을 베고 누워, 금새 몰려드는 잠을 이겨내려 두 눈에 부릅 힘을 주는 내 두 눈을 부드럽게 쓸어내린 너는
피식 터뜨려진 웃음소리와 함께 잔잔한 말을 이어갔다.
나는 단 한번도 내 마음대로 무언가를 가지고자 한 적이 없고,
그저 자신의 감정에 휩쓸려, 어느 순간 눈 떠보니 그 것을 가지고자 애쓰고 있었다고.
어렸을 때 아이들이 흔히 하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심도, 사랑하고자 하는 욕심도
어느순간 생각해보니 다 내 것이 아니었다고.
분명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어른들이 말했었는데.
크고나니 그건 모두 다 거짓이었다고.
나는 생각보다 아주 볼품없는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너는 슬프지 않다고 했다.
신데렐라를 지키는 왕자가 아닌 신데렐라의 발 밑에서 억눌려지는 유리구두가 된 것도,
백설공주를 사랑한 왕자가 아닌 그 곁에서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일곱난쟁이가 된 것도,
인어공주의 목소리 보다 더 값졌던 왕자가 아닌 그저 물 속에서 손 쉽게 사라져버리는 물방울이 된 것도.
너는 네 생각보다도 아주 담담하게 그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저 네 헛된 희망이 사라져 버린 그 자리엔 단지 어느샌가부터 공허함만이 가득 들어찼다고 했다.
너는 네 삶을 네 뜻이 아닌 그저 세상이 정해 놓은 대로 옮겨 놓는 사람이고,
어느샌가 또 세상의 뜻 대로 사라져버릴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네 삶이 지겹도록 공허해졌다고.
그래서, 너는 나를 보면 미치도록 공허하다고.
달달한 목소리와 달리 먹먹한 얼굴로 내 머리칼을 하염없이 쓰다듬는 너의 얼굴에 진한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표정으로 멍하니 흘러내린 내 머리칼을 보던 네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탄아.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고, 응. 남준아. 잠에 취한 목소리로 대답하면.
난 지금 이 시간이 너무나도 좋으니까.
이마에 와 닿은 너의 입술 뒤로 홀로 슬피 핀 꽃 하나가 맥 없이 후드드 바닥 위로 흐트러졌고,
너도 내가 공허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너는 아주 오래 전 부터 나의 사랑을 갈구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나는 그제서야 떠올렸다.
*
[남준이 만나러 왔어 - 08:22]
[빨리 갈게 - 08:22]
걱정 말고 기다려. 뒤 이어 눌려지던 말들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깊은 한숨과 함께 핸드폰을 가방 깊숙한 곳에 숨겼다.
서툴게 감겨진 붕대가 아직까지 발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구두 속에 억지로 끼워넣은 듯,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발을 뒤로 숨겼다.
무언가 들켜서는 안 될 것을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그 날 밤 봤던 정국의 얼굴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를 끌어들였다.
그에 이끌려 끝도 없는 곳에 발을 들이면, 미칠 듯 슬퍼보이는 그의 얼굴이,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또 끝이 없는 길의 시작이었다.
일어났으려나.
막힘없이 파고든 생각이 머릿 속에 뿌리를 내렸다.
그의 생각을 지워보려 손을 휘휘 젖다 허공에서 방황하던 손을 가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내 마음과 같이 가방 속에 자취를 감춘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손이, 결국 또 다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화면에는 흰 색의 배경화면만이 묵묵히 화면 위로 떠올랐다.
아직 정국이 일어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강 가에 아이를 두고 온 듯, 정국의 집을 나온 순간부터 마음이 불안했다.
아니, 어쩌면 이 불안은 그를 만난 순간부터 지속되어 왔을지도 몰랐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조금 길게 이어지던 남준의 통화가 그제서야 끝났는지, 그의 방으로 안내하는 여자를 따라
머뭇거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틀었다.
"...먼저 올 줄은 몰랐는데."
조금은 갈라진 듯한 남준의 목소리가 뿌연 방 안을 울렸다.
탁한 냄새와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지친 듯, 소파에 기대 앉은 그가 왼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절로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손 위에 이질적으로 자리잡은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가 방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어쩌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거든."
자리에서 일어난 남준이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담배를 비벼끄곤 창문을 열었다.
검게 그을린 예쁘지 않은 무늬가 나무로 된 탁자 위에 박혔고,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할 말을 생각해 두지 않은 건 아니었다.
'왜 그랬어?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 아냐. 변명이라도 해.'
그를 추궁해볼까.
'정말 네가 그랬어?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 정말 네가 날 속였어?'
그를 의심해볼까.
그래서 내가 얻는 게 있을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엉켜진 머릿 속으로 그를 헐뜯고, 그를 아프게 하고, 그를 욕하고.
만나기만하면 소리란 소리를 다 지를 생각이었다.
"..그래서, 싫다고?"
근데 결국 난 또 제자리였다.
전과 같이 담담하게 뱉으며 소파에 앉는 나의 모습에 남준의 당황한 듯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평소와 달리 왼손으로 집어 든 커피잔이 그의 손가락 위에서 사정없이 떨려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 여유로운 표정 밑에 깔린 그의 감정은 이렇게나 그를 괴롭게 했다.
어쩌면, 나는 저 손을 알기에. 남준이 꽁꽁 숨겨둔 그 마음을 알기에.
어쩌면 그래서 나는 그를 떠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미안."
놀란 눈 아래로 가라앉은 마음을 내비치던 그가 커피잔을 내려놓곤 고개를 숙였다.
금새 길어버린 머리칼 뒤로 보이는 어깨가 유난히 아파보였다.
"너도 알다시피 나 변명같은 거 잘 못해."
"..."
"나 믿어달라고 잡지도 못하고."
"..."
"이 때까지 살아온 게 이런거라, 자존심 굽히는 거 못,"
"...알아."
그런 거 바란 거 아냐.
담백하게 이어진 말에 남준의 시선이 나의 눈과 부딫혔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의 눈은 아프게 할퀴어져있었다.
한숨과 함께 입술을 깨물었다.
"너도 나 머리 굴리는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난 그냥 지금보다 예전이 더 행복했던 것 같으니까.
그냥 우리 단순하게 생각하자.
너나 나나 복잡한 건 딱 질색이잖아. 안그래?"
금방이라도 일그러질 것만 같은 얼굴로 억지로 웃어보이는 나를 발견한 네가,
아무 말 없이 씁쓸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주 안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갈게.
네가 말했던 딜, 이제 그만하자. 내가 졌어."
꽉 물린 입술 사이로 뱉어진 말에, 인상을 찡그린 그가 나를 바라봤다.
집요하게 내 시선을 쫒는 그의 눈빛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한숨을 내 쉰 그가 머리를 쓸어넘겼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응"
"전정국은?"
"..걔가 왜."
"김탄."
답답하게 이어지는 대화에 입술을 깨문 그가 나를 노려봤다.
날카롭게 꼽히는 시선이 내 주변 공기를 하나 둘 묶어왔다.
"나도 좀 쉬자. 나도 좀, 나도 좀 이제 쉬고 싶어.
걔랑 있으면 힘들어. 걔만 만나면 온 몸이 다 힘들어, 머리 아파.
이제 그만 하고 싶어. 다 그만하고 다시 돌아갈게. 응?"
힘들다는 걸 티라도 내 듯, 투정과 함께 섞여 겨우 뱉어진 목소리에
아까와 달리 낮은 한숨을 불어넣은 그가 조금은 나긋해진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탄아."
"..."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들 중 하나가 뭔 줄 알아?"
그의 텅 빈 눈동자가 나를 담았다.
"사랑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
"사랑은 좋은 거니까, 편한 게 사랑이겠지. 행복한 게 사랑이겠지.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쉽게 착각해."
"..."
"근데, 아니거든."
"그건 오히려 미친 듯이 아프고 힘든 거거든.
사랑을 하면 절대 편안할 수 없어. 하루하루 온 몸이 불편하고 힘들어.
그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손 끝까지 긴장해서 발 끝부터 저릿저릿 아파오는 거, 그게 사랑이야."
공허하게 비어버린 그의 눈이 빗물로 축축히 젖어가는 커튼 끝을 바라봤다.
분명 밝았던 하늘이 어느샌가부터 툭툭 빗줄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열려진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빗물이 커튼을 적시고, 창문 앞 바닥을 물들여가는 데도 불구하고
남준은 일어설 생각 없이 느릿하게 두 눈을 깜빡였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바보처럼 또 후회 속에 갇히겠지."
어쩌면 너도 나 때문에 아팠을까.
네 말처럼 사랑이 아픈 거라면, 너 또한 하루하루 쉴 틈 없이 아픔 속에서 잠들었을까.
그리고 어쩌면 지금 또한 너는 나로인해 괴로움으로 몸부림 치고 있을까.
무겁게 떨어진 속눈썹 끝이 바닥을 향했다.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여나 이 것이 마지막으로 드러내는 너의 마음은 아닐까.
제발 너를 잡아달라고, 네 방식대로 돌리고 돌려 말하고 있는건 아닐까.
꾹 깨문 입술 사이로 옅은 탄식과 함께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떤 사람을 깊숙히 알고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힘겨운 일이었다.
지금 남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줄 수 없으니까.
"일어났나보네."
가방 속에서 짧게 울린 진동에 남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핸드폰을 꺼내들자, 그의 예상대로 정국이었다.
"가 봐, 어린 애 상대하기 골치 아파."
"..."
"전정국 그거, 생각보다 어린 구석이 있더라."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휘휘 젖는 그의 모습이 잔상처럼 흐트러졌다.
언제 무너진 모습을 보였냐는 듯 여유로워진 얼굴 속엔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어떤 슬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에게 오길 바랐던 사람이, 어느샌가 다른 이의 공허함을 가득 채워버린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도대체 얼마나 아플런지,
자신을 피워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의 마음은 또 얼마나 지독할런지.
그게 정말 아플거라는 걸 잘 알고있는데,
남준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아픔도 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가 익숙한 남준이라면, 혼자 남겨진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지도,
괴로움에 갇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을 거라는 어쩌면 안타까운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남준이라면 잘 견뎌낼 수 있으니까, 내가 없어도 될 거라고.
그는 금방 나를 잊을 수 있을테니 나 또한 그의 마음을 잊어도 될 거라고.
어둠 속에 덮혀 하염없이 울고있는 어린 시절의 그의 모습을 봤으면서도,
그의 나약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나 뿐이란 걸 알면서도,
잔인하게도 나는 나를 위로했다.
"다음에 밥이나 한 번 같이 먹자."
"..."
"전정국만 괜찮다면."
"...그래."
또 다시 그의 손 위로 떨리는 커피잔을 애써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슬픔만이 가득 들어찬 챗바퀴 속에서,
가장 지독하게 물들어버린건 나일지도 몰랐다.
*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저 진짜 오랜만에 왔는데ㅠㅠ독자님들 다 계실지 모르겠어요ㅠㅠㅠ
공지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늦게와서 정말정말 죄송해요ㅠㅠ
제가 사실 미술 준비생인데 새벽까지 매일 입시니 뭐니 준비하다보니 시간이 안나더라구요ㅠㅠ
이번 편도 하루 10분 20분씩 짬내서 오랫동안 띄엄띄엄 적은 거라 내용이 잘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올릴까 말까 하다가 이러다 진짜 연중 돼 버릴까봐 무서워서 언능 들고왔어요ㅠㅠ
그러다 보니 맞춤법도 제대로 확인 못하고 왔는데ㅠㅠ제 욕심 때문에 글이 이상해질까봐 걱정되네요ㅠㅠ으어ㅠㅠ
제 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중에서 제목 또한 열심히 봐주시는 예쁘신 분들이 계신데,
이번 제목은 그래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덧붙일까 해요ㅠㅠㅠ
return이라는 단어가 돌아가다, 라는 뜻도 있지만 돌려보내다라는 뜻도 있더라구요.
어느 것으로 해석되는지는 독자님들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저는 그 뒤에 의미를 뒀답니다.
여튼ㅠㅠ진짜 제 글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정말 고마운 독자님들인데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ㅠㅠ
앞으로 빠른 연재는 무리일 것 같아서 더 죄송하구 진짜ㅠㅠㅠ
그래도 하루에 20분이라도 꼭 적어서 절대 연중은 안되게 할게요ㅠㅠㅠ
저도 이 글은 제 나름대로 열심히 적어오고, 지금까지 글 중에서 독자님들이랑 제일 얘기도 많이 한 글이라서
애착이 가는 글인데 이렇게 자꾸 흐름이 끊어지니까 안타깝고 막ㅠㅠㅠ
제가 오랫동안 안왔는데도 독방에 제 글 추천해주시고 아직까지도 구독료가 들어오더라구요ㅠㅠ
그거 보고 진짜 감동 받았어요 저ㅠㅠㅠ
글이라도 언능 써서 빨리빨리 보답해드려야 하는데 그 것도 맘처럼 안되고ㅠㅠ
연재 느린 건 정말정말 죄송하고ㅠㅠ 그래도 진짜 절대 연중은 안할 거라고 약속할게요!
혹시 이 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있다면,
늦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ㅠㅠ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 해서 글 적도록 할게요!!
감사하고 죄송하고ㅠㅠ좋은 밤 보내세요 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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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신청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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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빠진 암호닉이 있다면 꼭꼭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