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불, 나는 너를 사랑했다
(브금 진짜 필수입니다 진짜!)
어렸을 때부터, 항상 내 곁을 지켜주던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아주 조용했고, 과묵했으며 항상 남색 도포를 입고 다녔다.
천성이 덜렁이에 조신하지 못한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라하면
그의 단단한 팔이 내 허리를 감싸안았고,
짖궃은 아이들의 장난에 입술을 깨문채 눈물을 뚝뚝 떨구는 날엔
어디서 나타난건지 그의 팔랑이는 도포가 내 앞을 지켜주었다.
내게 너는 그런 아이었다.
없어선 안되며, 잊을 수도 없고, 그저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던 사람.
너는 내 유년시절을 지켜주던 사람이었다.
너의 이름은 정국이었다.
전정국.
하지만 네 이름을 부르는 사람따윈 없었다.
누구에게도 부름받지 못하는 너는 그저 나의 호위무사였고,
그 때문인지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너는 붉어진 귀를 감추며 달아오른 얼굴로 뒤 돌아섰다.
나는 그런 네가 좋았다.
"정국아!"
내가 부를때마다 쑥쓰러운 얼굴로 괜히 헛기침을 하던 네가,
내 웃는 얼굴을 보며 다정한 미소를 보여주던 네가,
봄과 참 어울렸던 네가
나는 그런 너를 사랑했다.
항상 너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으며,
내 눈을 보지 못한 채 항상 바닥만을 향한 너의 시선을 돌리려
이리저리 폴폴 뛰며 네 팔에 달라붙었다.
비록 내 사랑을 담아주지 못했던 너였지만,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난 그걸로도 좋았고 행복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너도 이제 진정 여자가 될 때가 된 것같구나."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평소같이 웃을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사랑했고, 또 사랑함에 틀림이없는데
그걸 말할 용기가 없었다.
원한다고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걸, 나는 너무 빨리 깨달아 버렸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시집을 간다면, 더 이상 너를 볼수 없음이 뻔했다.
하루하루 네가 없이 눈 떠야하고,
네가 없는 곳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내야할 내가,
머릿 속에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네가 없는 나는 내 상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고 집을 벗어나,
너를 찾아 헤맸다.
평소대로 단정한 표정으로 꽃을 매만지던 네 앞에 달려가,
눈물을 뚝뚝 떨구며 나를 잡아줄 것을 바랐다.
네가 잡아주기만 한다면 나는 어떻게해서라도 네 곁에 남아있겠노라고,
제발 나를 붙잡아달라고,
복잡한 표정으로 쓴 웃음을 짓는 네 앞에서 울고 또 울었다.
"아가씨"
네 가라앉은 목소리에 네 남색 도포를 꽉 쥐었다.
무언가 불안했다.
체념한듯한 너의 꽉 쥔 두 손이,
낮은 한숨과 함께 튀어나오는 갈라진 목소리가,
나를 불안하고 또 불안하게 했다.
"행복하게,"
"..."
"부디, 행복하십시오."
너는 나를 놓았다.
나는 너를 놓지 못하는데,
너는 그렇게 너무나도 쉽게 나를 놓았다.
멍하니 눈물을 뚝뚝 떨구는 나를 보던 네가,
내게서 돌아섰다.
항상 설레기만 했던 네 뒷모습이,
처음으로 너무 시렸고, 아팠다.
나를 행복하게 지켜주던 네가,
처음으로 나를 울게만들었다.
*
시간을 흘러 흘렀고,
아픈 마음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픈 사람처럼 방 안에 누워 눈물을 떨구다 보니,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혼인의 날이 다가왔다.
이 옷이 더 예쁘겠다며 부산을 떠는 시종들을 바라보니
그제야 정말 실감이 났다.
눈물로 가득찬 얼굴이 일그러졌다.
신을 겨우 챙겨 신고는 너를 찾아 나섰다.
비로 젖은 흙을 밟은 발이 더러워 지고,
부스스한 머리로 굵은 빗방울들이 떨어지는 것도 신경쓸 틈 없이
너를 보기 위해 달렸다.
거친 숨을 내쉬며 도착한 너의 집 앞에서,
한발작 한발작 느려진 발이
그제야 멈춰섰고,
너를 부르려던 내 입 또한 멈춰섰다.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이,
너를 불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비가 내 몸도, 마음도 모두 함께 적셔갔다.
맑던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고, 난 그렇게 싸늘히 식어갔다.
주먹을 꽉쥐고 겨우겨우 눈물을 참아냈다.
네가 나올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이대로 가버리면 정말 끝이라는걸 아니까.
이 시간이 지나면, 난 정말 영영 너를 보지 못할 것이란걸 아니까.
아직 어리고 못난 나는,
그게 참 무섭고 두려우니까.
그래서 난 너를 놓아줄 수 없었다.
앞에 밝게 펴 있던 꽃이 물기에 젖어들고,
점차 흐려진 시야에 내 마음이 차갑게 버려졌다는걸 깨달았을 때.
거짓말같게도 문이 열리고,
조금은 수척해진듯한 네가 걸어나왔다.
"..정국아..-"
내 앞에와 선 네가, 내 부름에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네 몸을 감싸주던 검은 옷이 젖어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마치 우는 것같이 얼굴을 찡그리던 네가 나를 바라봤다.
처음이었다, 네가 나를 똑바로 쳐다본 것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오늘의 너는 무언가 달랐다.
젖은 속눈썹을 하고는 나를 내려다 보던 네가,
무거운 손을 들어올려 내 머리 위를 가렸고
내 얼굴 위로 뚝뚝 떨어지던 빗방울들을 막아냈다.
"..아가씨"
슬프고 또 슬픈 목소리였다.
아픔에 젖은 목소리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어째서 너는 이렇게도 아파하고있을까.
또 내 미련한 마음이 너를 다치게한걸까.
금새 붉어진 코가 시큰거렸고,
너를 향한 마음이 또 한번 무너졌다.
"내가 이리 당신을 가려주어도
내 작은 손으론 당신을 숨길 수 없고"
네가 미쳐 가리지 못한 어깨 위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덤덤한 표정을 한 너는 울고있었다.
네 눈으로 떨어지지 못해 마음 속 깊이 스며들 그 눈물들이,
너를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당신을 사랑하여도,
내 초라한 마음으론 당신을 지켜줄 수가 없으니"
"..."
"이..얼마나, 비참하고 슬픈지"
"..."
"아가씨는, 알고 계십니까?"
붉어진 얼굴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져내리고,
비와 함께 엉켜들었다.
네가 울고 있는건지, 아님 우릴 위한 하늘이 울고있는건지.
아무도 알지 못할 그 안쓰러운 마음이,
내 마음에 가라앉았다.
"처음으로 세상을 미워해봤습니다."
"..."
"아가씨와 함께 밝혔던 세상을
어둡게 물들이기도 했으며"
"..."
"아가씨가 없는 곳에서
그렇게 꿈틀거지리도 못한 채 시들어도 봤습니다."
내 머리 위를 가려주던 네 손이 내려와 내 눈가에 내려앉았다.
소중한 것을 만지듯,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이
조심스레 붉어진 내 눈가를 닦아냈고,
네 얼굴이 더욱 슬프게 젖어들었다.
"근데"
"..."
"달라지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
"제가, 아무리 시들어도"
"..."
"그 곁에 아가씨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염없이 내 눈물을 닦아내던 네가
내 어깨를 감싸안아 네 품으로 나를 잡아당겼고,
젖은 품 안에서 나는 네 울음소리에,
네 남색 도포를 쥔 채 나도 그렇게 눈물을 떨궈냈다.
"..그러니까"
"..."
"부디"
"..."
"행복하십시오."
돌아서는 너를, 나는 잡을 수 없었고
터덜터덜 슬픈 그 발소리와 함께, 우리는 그렇게 멀어졌다.
오지 않을줄만 알았던, 혼인의 날이 다가왔고
이제 더이상 너를 사랑할 수 없는 나로 바뀌었을 때.
너는 행복해하는 사람들 틈에 가만히 서서
아프게 찢어진 마음을 붙잡고 나의 행복을 빌어줬다.
슬픔을 가린 네 웃는 얼굴이,
나를 사랑했다고.
정말 사랑했다고.
하염없이 속삭였다.
그렇게 계절은 지나,
네가 좋아했던 꽃이 피고 졌고,
더 이상 내 곁에 너는 없었지만.
나는 항상 너를 그렸다.
그 날 이후 보지 못한 그 얼굴을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해줬던 그 입술을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젖은 얼굴로 너를 부르고 또 불렀다.
내가 너를 잊을 수 있을까.
나의 어린시절을 함께했던 너를 잊을 수 있을까.
너의 남색 도포를 매만지는 손길이 멈춰서고,
얼굴 위로 아픈 웃음이 번지면,
나는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너를 또 다시 깊게 쌓아두었다.
너를 잊을 수 있을지도,
너를 지울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단 하나는 확실했다.
미상불,
나는 너를 사랑했다.
*
안녕하세요 독자님들!!여왕의 매력이 아닌 다른 글을 들고 와서 놀라셨죠...ㅎ
다름이 아니라, 어제 너무 정신이 없던 것이 죄송해서
여왕의 매력을 한 편 더 쓰는 건 너무 힘들고ㅠㅠ
이렇게 쉬어가는 글을 만들어 왔습니다!ㅠㅠ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네요ㅠㅠㅠㅎㅎ
이제 댓글 쓰러 가야겠어요!!ㅎㅎ
이제 주말도 끝나는데, 조금이나마 마음을 안정시켜드릴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며!!
다음에는 여왕의 매력 글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이번 주말도 마무리 잘하시기를!!ㅎㅎ
안녕히 계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