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였다.
작년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 덕분에 휴학의 길을 선택하였고,
이렇게 다시 돌아온 학교는 별로 달갑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편하긴 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재작년과 다르게 꼭, 조용히, 눈에 안 띄게 다닐 것을 다짐하며 걸음을 옮겼다.
" 선배! "
와, 다짐을 하자마자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얘는 우리과 신입생... 이었지만 지금은 2학년인 전정국이다.
작년에는 신입생이었지.
" 뭐예요,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
"응, 정국아. 오랜만이다."
" 아니, 와... "
나를 보곤 한참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전정국.
그렇겠지, 그렇겠지...!
재작년에 그렇게 구설수에 올랐다가 사라졌던 아싸 누나가,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조금 울적해졌다.
얼른 인사 마무리하고 가야지 싶었는데,
" 같이 가요.
오랜만에 봤는데 이대론 못 보내지. "
...
아무래도 글렀지 싶다.
민 교수님이 왜 이래? 01
written by 슨상
" 아니~ 그러니까. "
" 누나 없는 동안 별 일이 다 있었다니까. "
지금 이 후배는 그러니까,
내가 없는 작년에 있었던 일을 다 읊어줄 기세로 조잘대는 중이었다.
사실은 있었던 일을 알려주기 보다는
왜 말도 없이 휴학을 했냐는 질문을 하기 위한 초석인 모양이지만,
내 구설수를 모르는 건지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모르는 이 후배는...
일단 적당히 선을 둬야겠다...
" …… 아, 그리고 민 조교님 알죠. "
" 누구? "
" 작년까지 조교였던 형 있잖아요. "
민 조교?
대충 누구를 말하는 건진 알겠다.
말도 없고 약간은 무섭기도 하던 조교님. 몇몇 친한 애들은 형이라고도 부르던데.
아무튼 갑자기 조교 얘기를 꺼내는 것에
역시나 관심 없던 학교 일 중에 하나겠거니 싶어 영 관심 없는 표정만 한 채 대답하는 중이었다.
" 민 조교님 올해부터는 교수님이에요.
왜, 실기 수업 강사 뽑는다고 예전부터 말 있었잖어요... 어? "
조교님이 교수가 됐구나...
하긴, 우리과는 워낙 좁아서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그래도 우리랑 학번 차이도 크게 안 나는데, 대단하긴 하네.
" 교수님, 안녕하세요. "
" ...? "
" ... "
말없이 우리를 쳐다보다
조용히 고개만 까닥이고 지나치는 민 조교... 아니 민 교수.
묘하게,
길게 눈이 마주쳤던 것 같다.
이전에도 종종 이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은데...
저 사람도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이네...
...
아무튼 조용히 학교 다닐 생각에 휩싸인 나는
더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겨를은 없었다.
겨우겨우 전정국과 인사를 해 보내고 ( 물론 다음에 술 한잔 하자는 무리한 약속을 받아낸 채... )
조용히 모자를 눌러쓰고 강의실을 찾아 들어섰다.
전공 수업이어도 후배들과 같이 듣게 된 수업이라
딱히 크게 아는 척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안심하며 자리에 앉았다.
" 야, 그래서 걔랑 사귀어? "
" 아니라니까... 그냥 친구라고. "
" 잘 생각했어, 걔 여우래. 걔가 저번에 …… "
수업 시작하기 전 들리는 후배들의 이야기에
나는 더욱 더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듣기만 해도 벌써 휴학이 마려워지는... 지겨운 말, 구설수.
다들 그렇게 남들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 안녕하세요! "
" 출석 먼저 부른다. "
아까 마주쳤던 민 교수가 들어온 것도,
출석을 부르기 시작한 것도,
아까 후배들의 말들이 불러온 여러 생각과 감정들에
모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 … 여주. "
남들 일에 다들 관심 좆도 없으면서,
연애, 그놈의 여자, 남자, 연애에만...
" 여주. "
다시는 연애 안 해야지.
특히 학교 내에서는, 절대로.
절, 대로.
" 학생. "
절대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 거야.
" 오랜만에 왔다고 너무 해이해진 거 아니야? "
어느새 코앞에 와 서있는 민 교수와,
나를 돌아보고 있는 학생들.
" 아, 아... 죄송합니다. "
얼굴이 시뻘개져서 다시 고개 숙이길 잠시,
출석인데, 아무리 소수과라고 해도...
저 사람이 어떻게 나를 알고 있지?
" 이번 실기 수업은 개인 프로젝트 위주로,
첫주차부터 개인 면담으로 진행합니다. "
한 번도 얘기 나눠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나를 알고 있었나...? 왜?
아니, 한 번 얘기 나눈 적이 있던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언제였더라.
아.
그날이구나.
" 첫 번째 순서는 여주 학생부터 수업 끝나고 내 연구실로 와요. "
내가, 술에 취해 실수했던 그날.
/
첫작이라...
낯설고 서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