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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박지민] 불나비 09 | 인스티즈




자우림 - Social Life

반복재생 부탁드립니다.









불나비

09






 결국은 진심만이 살아 숨 쉴 것을 안다. 함부로 던지지도 못하는 시선에 섞인 진심이 흩어지지 않고 남을 것을 안다. 제 몸에 절망의 악취가 배었지만, 저는 절망이 아니다. 저는 절망이 될 수 없다. 아주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탈출구를 만들어 낼 것이다. 두 번이 어려울까. 제가 살아있는 동안, 어쩌면 제가 죽어서도 숨 쉴 진심. 그것이 유일한 길이다. 해답을 찾아낼 것이다. 저의 진심이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도록. 정상 궤도를 벗어난 대도 그이의 주변을 맴돌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제 몸을 태워서라도.


 “나는, 연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야. 그게 내 진심이고.”

 “그래. 그거면 됐어.”


 연화는 생각보다 태연한 자세를 유지했다. 속으로 어떤 생각이 부유하고 있을지, 어떻게 연화를 좀먹고 있을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연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민이 고개를 돌려 연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온한 얼굴, 가끔은 연화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연화가 미소 지었다. 지민은 그만 속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지만 그 감정을 애써 무시했다. 제가 끌어온 시간이 이렇게 만들 줄 알았더라면,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지민에게 닥친 일은 운명적이었다. 지민은 모든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닥쳐온 것은 바로 연화였다. 지민은 연화를 피해낼 수 없었다. 피해낼 재간도 없었을 뿐더러,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연화에게 깔려 죽을지언정, 그녀를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연화는 지민과 함께 일했던 날들을 떠올렸다. 햇수로만 7년이었다. 그가 말하는 진심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지민은 그 사실을 제게 감추기 위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겠지. 장장 7년 동안이나. 연화는 사실 그가 말하는 모든 말을 믿어 넘길 것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로. 거짓이라도 믿을 터였고, 저를 속이려 했다는 진실이라도 상관없었다. 그제야 그의 두 눈동자에 섞인 두려움의 형태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가 언젠가는 리안화를 등질 것이라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닥쳐온 진실은 조금 더 거대했다. 예상 밖의 일이라 말하는 게 맞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지민이라는 사실, 그것이면 족했다. 저에게 손을 뻗었던, 여전히 그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가 지민이라는 사실. 그 사실뿐이면 저는 모든 것을 등질 준비도 되어 있다는 것을. 사실 연화는 지민을 제 곁에 두었을 때부터 그를 바라보기 위해 제가 가진 것을 등질 각오를 했다는 사실을 지민은 모를 터였다. 그러나 연화는 그 사실을 구태여 지민에게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청, 그래서 뭘 더 알아봤어?”

 “연화, 네가 받은 찻잎에는 크라톰 성분은 없어. 그런데 그 찻집은 아마 맞을 거야. 예양이 크라톰을 받은 곳이.”


 지민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청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지민은 아마 차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였다. 연화가 혼자 가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지민은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으나, 금방 입을 다물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제이의 존재를 들켜버린 사실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덧붙이지 않고 청을 만나러 걸음했다. 청이 알아낸 정보를 듣고 머릿속으로 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지민에게 알리는 것은 그 후의 일이 될 것이다. 청이 손에 들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유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옥경은.”

 “모를 거야. 예양이 무슨 거래를 했는지도 모르는 모양이니까. 근데 문제는, 그 크라톰을 또 어디에 전달했냐는 말이지.”

 “전달…. 뒷배가 있다는 말이야?”

 “아마도. 누군가의 임무 수행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연화가 모른다? 그럼 리안화가 아니라는 소리지.”


 연화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가죽의 서늘함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무더운 여름이 닥치지 않았음에도 사무실의 에어컨이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연화는 문득 팔의 솜털이 서는 것만 같았다. 청의 표정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제게 이겨내야 한다던 그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청이 말하던 것이 과연 이런 것이었을까. 저는 청이 아니었으므로, 그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해서 여태껏 떠오르는 것일지도 몰랐다. 유일하게 그녀의 얼굴만이 떠오르지 않았다. 청은 그녀의 얼굴이 떠오를까.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연화. 크라톰 티를 받았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건.”

 “내가 말했지. 조심하라고. 전달한 놈부터 천천히 다시 찾아봐. 그 찻집과 거래하는 곳, 아마도 두양애가 아닐까 하는데.”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연화는 빠르게 제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을 헤집었다. 제게 예양이 크라톰 티를 받았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은 지민, 혹은 제이. 둘 중 누구일까. 그렇다면 그들이 소속된 곳은 두양애인가. 떠올려야만 했다. 제게 예양의 거래 사실을 알린 이가 누구인지. 만약 예양이 두양애 소속이라면, 또 그들이 두양애 소속이라면. 제게 그 사실을 알린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저를 속여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보를 쉽게 흘린 이유는. 제가 그들에게 받은 정보를 토대로 다시 조사를 시작할 것을 모르지 않았을 터이다. 그렇다면 일부러 저에게 알린 것이 분명한데. 연화는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두양애?”

 “디아바이오 이전에 투자하던 기업이야. 돈이 어디로 새는지 몰라서 다 철회했고.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제 두양애가 하던 일을 디아바이오가 대신해.”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래, 없을 거야.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니까. 남김없이 다 지웠어, 그 애가. 너는 모르는 일이야. 그게 그 애가 죽은 이유고. 네가 관련 정보를 모르면 두양애에 대해 캐지 않을 거라 생각했겠지.”


 이로써 지민이 두양애 소속이라는 것은 사실임이 틀림없었다. 청이 말하는 그 애는 그녀였다. 제가 연화라고 부르던 그녀. 그녀가 죽었던 그날, 저는 지민을 마주했다. 두양애가 하던 일을, 디아바이오가 대신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연구를 진행 중일까? 남아있는 건 없다는 두양애. 그들은 암흑에 숨어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그들에게 목숨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지민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이 일에 관해서는 지민에게 함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알게 됐네. 그 애는 바라지 않았겠지만.”

 “우선은 더 알아내지 않을 거야. 오늘 했던 말, 청만 알고 있어. 할 수 있다면 잊어주면 고맙고.”

 “이제 익숙해졌나봐. 그 애도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연화.”


 연화가 저를 말하는 것인지, 그녀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청은 저를 보면 그녀가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저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청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벌써 그녀가 죽은 지 11년. 익숙해지지 않았을 리 없다. 여전히 식지 않은 커피에서는 김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대로 일어서서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차로 가까워지자 열린 창문 틈새로 운전대에 고개를 박고 있는 지민의 모습이 보였다. 손가락은 버릇처럼 운전대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지민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조수석에 앉기가 무섭게 지민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는 제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할 것처럼 굴었다. 제가 차라리 모르는 척하는 것이 그에게는 나았을까?


 “지민아. 갤러리 잠깐만 들리자.”

 “알겠어, 연화.”


 지민이 손을 뻗어 연화의 안전벨트를 채웠다. 연화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손을 뻗어 지민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잦은 염색으로 상한 머리칼이 손끝을 간질였다. 화려한 걸 좋아하던 그. 그런 그가 갑자기 너무 튀지 않느냐 되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제 차오르는 감정이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제이였을까? 연화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그날을 기억해내야만 했다. 제가 의심하고 있는 순간, 제 앞에 선 것이 과연 지민이었을까. 지민은 제게 옅게나마 미소를 보이더니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예양의 크라톰 티에 관해 이야기 하던 이 공간. 제 옆에서 숨을 쉬고 있던 것은 과연 누구였을지.


 결국 도돌이표처럼 다시 도착한 곳은 경매장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유리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흐려진 기억을 되짚으며 걸었다. 지민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이쯤 서서 그에게 무슨 말을 건네었더라. 뒤를 돌았다. 지민의 얼굴이 보였다. 띤 미소만큼이나 옅게 남아있는 상처가 보였다. 손을 뻗어 그 자국을 가볍게 쓸었다. 여전히 입술이 터 있었다. 제게 가져간 립밤을 제대로 바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손가락의 위치를 옮겨 입술을 부드럽게 만졌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지민이 연화의 손목을 잡았다. 연화가 한 걸음 지민과 가까워졌다. 지민의 목을 조심히 안았다. 지민이 연화의 허리를 감싸더니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숨결이 살갗으로 느껴졌다. 더운 숨이었다. 그의 검은 머리칼을 잠시 바라보다가 왼손으로 매만졌다.


 “지민아. 염색, 왜 한 거야?”

 “…제이가 해서.”


 검은색으로 염색하려 한다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머리색이 너무 화려하다고 말하던 얼굴. 제이가 검은색으로 염색했기 때문에 지민이 따라 해야 한다면. 그날의 머리색은 평소보다 더 짙었다. 새로 염색을 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 위에 검은색으로 염색하면 당분간은 다시 이전의 색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서로를 바꾸어 제 앞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제이를 따라 지민이 머리를 검정색으로 덮어야 했다면? 제 예상이 맞다면 그날, 이 공간에서 함께 있었던 것은 지민이 아니라 제이다. 또한, 제게 크라톰 거래 사실을 알린 이도 제이다. 어째서?


 “연화. 연화….”

 “응, 지민아.”


 지민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저와 맞닿아 있는 피부가 뜨겁게 느껴졌다. 지민이 연화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지민은 모든 것이 후회스럽다가도 이내 제가 안은 것이 연화라는 사실에 안심하고야 말았다. 제가 그리던 얼굴, 제가 부르다 죽고 싶은 이름. 제게 연화는 단 하나뿐이다. 저를 불러주는 그 목소리가 변함없이 다정해서, 죽고만 싶었다. 아무것도 몰랐을 그녀를 속여야만 했던 시점부터, 저는 괴롭지 않은 날이 없었다. 가까워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녀를 잡고만 싶었다.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다정함에 빠지고야 말아서. 그 안에서 저는 헤엄쳐 살아남는 법을 몰랐다. 빠져 죽는 곳이 그녀의 다정함이라면 기꺼이 죽고만 싶었다. 지민은 울고 싶었다. 그녀의 품에 안기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가 도망치고 싶은 곳, 연화였다. 연화의 곁에 있으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저와 연화만 남았다. 둘뿐이었다.


 “내 숨은 연화의 것이야.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난 연화를 위해서만 살 거야. 죽어야만 한다면, 죽을 거고.”

 “그래. 나도 지민이 너라면, 나는 모든 걸 등질 수 있지. 내가 욕심내는 건 하나뿐이야. 너는 몰랐을 테지만.”


 연화가 바라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믿음이었다. 저는 이로써 어떠한 절망도 집어삼킬 준비가 되었다. 절망의 먹잇감 따위 이제는 웃기지도 않는다. 제가 절망마저도 씹어 삼킬 것이다. 저를 향해 뻗어진 손끝. 제가 얼마나 절절히 바라왔는지, 그는 알 리 없을 테지만. 죽음, 지민에게 찾아오도록 두지 않겠다. 아직도 생생한 꺼져가는 숨, 그리고 자신의 숨 모두 불꽃에 버려두고 나왔다. 제가 바칠 것은 비단 목숨만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의 자리까지도. 연화는 차라리 지민이 제게 기대어 눈물이라도 흘렸으면 했다. 그날 밤처럼. 제가 아니면 그가 기댈 곳이 있을까? 저는 없었다. 지민이 아니면 제가 숨 쉴 곳이 없었다. 그의 숨결을 받아 들었던 그 겨울날 새벽부터.


 “며칠 후면 디아바이오 자선 행사가 있는 거, 알고 있지? 옥경이랑 예양은 평소 하던 것처럼 해주면 돼. LB 호텔로 참석할 거야.”

 “알겠어요, 연화. 중요하게 접근해야 할 사람은요?”

 “…없어. 그냥 말 좀 흘려주면 돼.”

 “뭐라고 떠들면 될까, 연화?”

 “리안화가, 다른 사업을 기획 중이라고. 두루뭉술하게만. 근데 그게 바이오 산업은 아니고, 갤러리 사업인지. 잘은 모르겠는데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옥경과 예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옆에 앉은 지민이 표정을 굳혔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예양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대로 웃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이오에 주력하던 리안화가 갑자기 노선을 변경한다면 두양애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연화는 미끼를 던져보기로 했다.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는 게 최선일 수 없다. 제 방에 숨어들어 리안화의 정보를 빼돌리는 이유. 바이오 산업과 연관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로 사업체를 키우는 것, 그것이 아니라면 리안화의 몰락. 어쩌면 후자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맞부딪혀야 한다면 그때는 제가 연화로 남아있을 시점이어야 한다. 제가 리안화를 이용할 수 있을 그 시점. 그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한다. 저를 보는 지민의 눈동자에 죄책감이 번지지 않도록.


 “연화, 그날에는. …나 대신 제이가 올 거야. 일이 끝나는 대로 돌아올게.”

 “그래. 무슨 일인지는 물어보지 않을게. 날 속여도 돼. 대신, 그래도 되는 건 박지민뿐이야. 고마워, 미리 말해줘서.”


 연화의 방문 앞에 선 지민이 숨을 내쉬었다. 제 두 손을 얼굴 위로 올렸다. 일이 끝나는 대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행사가 끝난 후일 터였다.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그들이 무슨 일을 꾸밀지, 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제이는 알고 있을까. 제 결정에 동의한다고 말했던 제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제가 대신 오겠다 말했나. 그들은 저와 제이가 바뀐 것을 알 수 없을 예정이었다. 제이가 무엇을 남겨두어서 확인하라 한 것인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지민은 제이가 연화의 곁에 있는 것이 싫었다. 연화를 속여야만 했기 때문에 그랬다. 제이에게 저한테처럼 다정하게 대할 것 같아 그랬다. 끝내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우리를 눈치챈 사람은 없었으므로.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연화는 알아채고야 말았다. 그것이 제가 바라던 것임에도, 제 존재를 알아채 주었으면 제가 뜨겁게 원하던 것이었음에도. 연화가 저를 알아줬음에도 제이가 연화의 곁에 있는 것이 달갑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지키고픈 대상이라 그런 것인가. 연화, 연화.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아 그랬나.


 제이는 제가 가져온 장부를 그들에게 넘겼다. 연화의 금고에서 꺼내 온 것이었다. 그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은 연화와 지민뿐이라는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언젠가 도청으로 들은 적 있는 이야기였다. 심지어는 제가 그것을 대체할 무언가도 없이 가져오면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는 사실 역시도 모르지 않았다. 연화가 눈치챌 수 없게 가져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제가 생각해서 되지 않을 일,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제가 눈치채도록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역을 훑어보면 정상적인 내용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이, 이게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리안화에서 직접 가져온 겁니다.”


 결국 저와 지민은 누군가를 계속 속여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지민은 몰라도, 저는 그런 존재였다. 지민의 조직을 가져다 만들어 낸 삶. 그것이 저의 것이었다. 그만두고 싶지만, 때는 지금이 아니었다. 아직 제가 제대로 삶을 살 시점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가 받은 장부를 한 번 훑곤 제이에게 시선을 던졌다. 제이는 웃지 않았다. 저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알아채지 못한다면 다행이지만 단언할 수는 없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가 등을 돌려 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저의 방으로 향하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언제부터였는지, 지민이 리안화에 가게 되었을 때부터였는지. 굳이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제가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아 그랬다.


 연화에게 보고 싶었다고 말한 것은 충동적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건네고 싶었던 말이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저는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벌어질 사건을 계산하고 있었으므로. 저는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자꾸만 욕심이 생기는 것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지민은 결국 그녀를 지키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려 들 것이다. 침대에 누워 지민의 얼굴을 떠올렸다. 저와 같은데, 달랐다. 그 애는 저와는 달랐다. 겁이 참 없는 사람이었다, 저와는 다르게. 그래서 제이는 지민의 결정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타인의 결정을 따른다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래, 저는 어디에다가도 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지만 말하자면 그랬다. 연화에게 저를 들킨 것은 제 계획이었다. 어디까지나 지민은 모르는 계획. 연화가 알아채길 바라고 한 일이 맞았다. 정말로 구별해낼 줄은 몰랐지만. 정말로 몰랐지만. 그래서 제이는 태어나 가장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다. 연화는 지민과 제이를 구별할 수 있었으므로. 지민을 알아차렸으므로. 연화가 알아주길 바랐다. 알아주길 바란 대상이 저 자신이기도 했지만, 지민이기도 했다. 제가 감히 지민을 동정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단순한 동정 따위가 아니었다. 박지민, 그 애의 인생이 그녀를 둘러싼 채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궤도를 벗어난 것은 저였다. 지민은 여전히 그 주위를 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씩 멀어지는 제가 완전히 멀어지기로 했다.


 제이가 꿈꿔오던 시간, 그런 것은 없었다. 제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제 삶이 제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제이의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다. 연화가 제이의 존재를 알아챈 그 시점부터. 침대에 몸을 뉜 제이가 한참이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민도 이런 시간을 보냈을까. 그가 보낸 시간은 어쩌면 더 고통스러웠겠지. 고통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지민. 언제나 괜찮다고 버릇처럼 되뇌는 박지민. 그는 결심을 했을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눈물 지었을까, 미소 지었을까. 지민이라면 그 어떤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만 같았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지민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연화였다. 제가 더 일찍 결심을 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제이는 눈을 감았다.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얼굴은 연화가 아니었다. 지민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지민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박지민. 네가 확인해야 할 게 있어.”


 지민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제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이 자꾸만 저의 일상에 침범해 들을 수 없었다. 과연 그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들은 벌써 지민을 의심하고 있다. 제가 리안화에서 장부를 가져와야 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지민은 감히 연화를 등질 생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내리는 지시를 제가 수행했다. 지민이 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서. 제가 아는 박지민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어쩌면 저의 얼굴만 보아도 두려운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지민을, 그리고 그가 지키고 싶어하는 연화를 지켜야만 했다. 언젠가는 덮칠지 모르는 위험을 예측하는 것. 그리고 그들을 대피시키는 것. 그것이 자신, 제이가 할 일이었다.


 제 존재의 이유를 궁금해 한 적이 있다. 이제야 그 이유가 조금이나마 윤곽이 잡히는 것만 같았다. 저는 이를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닐까. 지민으로 남을 수 있었던 제가 제이가 되어 세상의 빛을 본 이유는.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대신 하던 지민의 모습을 떠올렸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를 향해 보이던 옅은 미소. 저를 향해 뻗던 그 손. 제이라고 부르던 저와 같지만 다른 목소리. 제가 가진 적 없던 용기를 가졌던 박지민. 언제나 절망 앞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그리고 그의 옆을 지키는 연화의 얼굴을 떠올렸다. 제게 내밀어진 달콤한 호의. 잊을 수 없는 그 기억. 어쩌면 그 기억이 끝까지 남아 저를 맴돌지 몰랐다. 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으니. 그녀의 목소리, 어조. 저를 향한 적 없는 다정함까지. 제이가 침을 삼켰다. 목이 꺼끌했다. 제가 지민을 대신하여 할 수 있는 일. 그것뿐이다. 제 삶의 이유란 그런 것이다. 저는 그러기 위해 태어났다. 이제는 피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그럴 것이다. 지민을 위해서라도.


 저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이뿐이다. 제가 진심을 보일 수 있는 대상도 오직 그이뿐이다. 그이가 아닌 상대에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남는 것은 피투성이 몸뚱이뿐이라고 한 대도, 차갑게 식어버린 재라고 한 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어쩌면 모든 일의 시초. 조금 더 손을 뻗었더라면, 그이를 도망치게 했더라면. 하지만 제 욕심은 그이를 제 곁에 묶어두고야 만다. 놓을 수 없다면 숨조차도 바칠 것을. 아주 미약한 숨까지도. 그이를 지킬 수만 있다면.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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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1.137
잘보고있습니다 작가님!!! >..<
줄거리가 너무 좋아요 영화같아요 몰입도 흡입력 짱짱짱!!!
나중에라도 픽션 지우지 말아주세요 와서 낸중에 또 보게요 ㅠㅠ!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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