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서 일을 하다보면 정말 참기 힘든 날이 있다. 바로 오늘이 그 날이였다, 심리 상담을 신청하고 찾아와선 자기가 성적인 문제가 있다는 둥 그걸 선생님께서 고치실 수 있다는 등등 얘기를 꺼내는 환자 하나가 아침부터 나를 곤란하게 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시고, 다시 한 번 문답에 체크를 해달라고 부탁했음에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손을 뻗어 만지려고 한다. 뒤로 몸을 빼자, 울상이 되어 선생님도 제가 더럽나요? 하고 묻는다. 아, 진짜 잘못 걸렸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허리를 끌어안더니 능글 맞게 웃는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꺼냈다.
"아니요, 환자 분. 잘 들으세요, 문답을 하셔야 저희가 치료를 진행하죠."
"이런 거 필요 없는데, 선생님만 있으면 되는데요?"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가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김종대, 김종인, 김준면 모두에게 문자로 SOS를 요청했고, 김종인, 김준면, 김종대 순으로 내 진료실에 들어왔다. 셋 다 차분한 척 하고 있었지만 머리는 날리고, 가운은 이리 저리 접혀 있었다. 김준면은 환자를 일으켜, 제 진료실로 가시죠 하며 끌어냈고 나는 그제서야 숨을 돌렸다. 김종대는 선배 괜찮으세요? 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고, 김종인은 환자가 나간 문을 씩씩 거리면서 쳐다봤다.
"오케이, 괜찮아. 한 두번 있는 일도 아니고."
"괜히 이상한 걸로 너한테 상담 받고 싶다는 남자들 다 캔슬해."
"맞아요, 선배. 선배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여의사가 선배 뿐이라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니까......"
"걱정 감사하고, 잘 알아 들었고, 항상 이런 일 있을 때면 다들 도와주잖아? 알아서 할게. 이제 가 봐. 달려오느라 수고했어."
괜찮다고 웃어 보이고 손인사까지 하고 나서야, 둘은 진료실을 나갔다. 아침부터 잠이 확 깨네. 변 간은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괜찮으세요? 하고 물었고, 나는 손을 흔들어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 환자 들어가십니다 하고 문을 연다. 우울증 환자를 연속으로 3명이나 받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단 게 땡기는 시점에서 김종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딸기 스무디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먹어, 점심 다 같이 먹기로 했으니까 내려오고."
스무디를 마시면서 진료 차트를 확인하자, 오후 환자들도 다 우울증 환자다. 아무리 내가 전문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혼자 투덜거린 뒤, 점심시간에 맞춰 진료실를 나왔다.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인턴이 보여서 인사를 하자, 고개를 꾸벅 숙인다. 괜찮으세요? 인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턴은 괜찮다는 내 표현에도 한참을 내 얼굴을 쳐다봤고, 나는 닳겠다며 인턴의 턱을 잡아 고개를 돌렸다. 다들 앉아서 밥을 먹으며 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나였다. 어휴, 진짜. 변 간까지 중간에 합류해서 상황을 얘기하는데 미칠 지경이였다.
"남 환자 받지 말자, 에리야."
"헛소리 하지마, 김준면."
내 단호함에 모두들 고개를 저었고, 인턴은 나를 또 쳐다본다. 너 왜 자꾸 나 쳐다봐? 하고 묻자, 아니라며 고개를 돌린다. 김준면은 도끼병이냐? 하고 물었고, 나는 그런 김준면의 머리를 숟가락으로 내려쳤다. 김준면은 아프다고 소리쳤고,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위험해, 1차로 우리가 좀 만나고 너한테 넘겨야겠어."
"오빠, 한 두번도 아니고 왜 이러십니까. 괜찮다니까?"
김종인이 조용히 밥을 먹다가 한마디를 한다, 그 한마디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진짜. 다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괜히 다리를 꼬고 아니꼽게 쳐다보자, 뭐 어쩔거냐는 눈빛으로 다들 나를 쳐다본다. 이러기야?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하, 진짜. 미치겠다.
밥을 다 먹고, 커피는 생략한 뒤 진료실에 들어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두 커피를 들고 내 진료실로 들어왔고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여기가 뭐 휴게실이야? 하고 묻자, 다들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한다. 인턴이 걸어오더니 책상에 초코 프라페를 내려놓았다. 고맙다. 기억력이 좋아, 인턴이. 내 말에 인턴은 싱긋 웃었다.
"모인 이유가 뭐야."
"너 보호 차원에서."
"선배 보호 차원이요."
"들으신 그대로."
김준면, 김종대, 김종인 순으로 대답을 하기에 인턴을 쳐다보자, 고개를 끄덕인다. 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나를 챙긴담. 평소에나 좀 잘하지. 나가 하고 손짓을 하자, 다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줄을 서서 쪼르르 나간다. 다 나가고 나서 숨을 좀 돌리나 싶었는데, 변간이 들어온다. 무슨 일 있어? 하고 묻자, 환자 의자에 앉아서 목소리를 낮추라는 제스처를 한다.
"선생님, 이거 다른 분들이 말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시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뭔데?"
"아까 그 환자, 성범죄자래요. 조사 중에 심리적으로 문제가 보여서 병원으로 온 건데, 글쎄 병원에 와서는 멀쩡한 척을 해서 그냥 일반 환자로 넘어갔나봐요."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 내가 한숨을 쉬자, 변간이 제가 괜히 말했나요? 하고 눈치를 본다. 아니야, 덕분에 궁금한 건 좀 괜찮아졌으니까, 다음 환자 10분 뒤에 들여보내. 내 말에 변간은 고개를 끄덕이고 진료실을 나갔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난리였구나. 병원 잘 돌아간다. 환자 정보도 제대로 안 알리고 막 진료실에 넣고.
"선생님, 저 집에 갈래요."
가정폭력 피해자로 심리 치료가 필요했던 5살 짜리 꼬맹이였다. 최준수, 어머니가 돌아가심과 동시에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과 폭행으로 인해 위탁센터에 맡겨졌다가 병원으로 옮겨 온 아이였다.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활짝 웃었다.
"집에 가고 싶어?"
"네, 엄마 보고 싶어요."
"준수야, 집에 가는 건 지금 당장은 조금 힘들구. 선생님이 일요일에 엄마한테 데려다줄게, 대신 엄마 만나고 나면 병원에 다시 오기다?"
"......"
"대답해야지?"
"네, 선생님."
힘이 쭉 빠져 걸어나가는 준수를 보며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변간이 준수를 안더니 병실로 걸어갔고, 나는 다음 환자를 직접 모시고 진료실로 들어왔다. 김종대가 담당하는 할아버지 한 분과 김준면이 담당하는 아주머니 한 분을 차례대로 상담 하고 나니, 모든 일이 끝이 났다. 피곤해서 죽겠다. 시계를 보니 벌써 7시를 향해 달리는 시침이 보였다. 퇴근을 하려고 짐을 챙겨 데스크에 가자, 다들 모여 앉아 있더니 나를 보고 회식 콜? 하고 외친다.
"노 콜, 집에 일찍 가야해."
"수영이?"
"응."
"그게 누구예요?"
"에리 친구, 둘이 같이 살았는데 걔가 미국 유학 갔어. 어제 돌아왔고."
김준면의 대답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럼 회식은 다음에 하는 걸로 하면서 다 흩어진다. 김종인은 다시 진료실로 향하는지 방향을 꺾으면서 나를 보더니 살짝 웃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식 웃고 나서 고개를 돌리자, 인턴이 자료를 들고 내 쪽으로 몸을 틀고 있다. 어깨를 잡아 몸을 돌린 뒤, 이렇게 서서 정리해야 사람들이 지나가지 하자, 고개를 꾸벅 숙인다. 머리를 통통 치며, 수고해라 하고 말하자, 조심히 가세요. 하고 인사를 하더니, 토요일 약속 잊지 마세요! 란다. 웃으며 오냐~ 하고 소리를 친 뒤, 병원을 빠져 나왔다.
택시를 잡아 타고 오피스텔 앞에 도착해서, 수영이가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수영아! 하고 외치자 김에리 하고 뛰쳐나오는 수영이다. 어깨를 토닥이면서 수고했다고 말을 하기에 이 말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며 수영이에게 안겨 어리광을 부렸다. 수영이는 저녁 안 먹었지? 하고 묻더니 주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이것 저것 만들고 사 온 음식들로 가득한 식탁을 보고 내가 입을 쩍 벌리자, 수영이가 웃으면서 먹자! 하더니 포크를 쥐어줬다.
"뭐야, 이게 다?"
"오랜만에 칼로리 신경 안 쓰고 먹고 싶어서."
"다이어트 성공 기념이야?"
"그런 것도 있고, 너랑 다시 지내는 기념도 있고."
수영이와 나는 급하게 음식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고, 다 먹고 나서 배가 불러서 죽겠다며 바닥을 뒹굴었다. 씻고 나와서 수영이를 쳐다보자, 이미 잠들어서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휴, 나도 오늘 너무 피곤했다. 자려고 수영이 옆에 눕자, 휴대폰이 불빛을 낸다.
[푹 쉬어, 예쁜 꿈 꾸고. 내일 토요일이니까 늦잠도 좀 자고.]
김종인이였다.
[오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