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민윤기와 기묘한 동거일기.txt 00
(부제 : 아니 왠 남정네?)
Prolog #00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 '봉인해제됨'과 동시에 나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운좋게 수능을 대박친 덕에 시골 여학생이던 난 시골딱지를 떼버리고 서울로의 상경이 결정되었다.
근데 2016년 해피뉴이어를 외치기 무섭게 난 늙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공부하러 대학에 가는건데 준비할 것들이 뭐가 그리 많은걸까.
기숙사에 떨어진 난 좌절할 틈도 없이 부모님과 숨가쁘게 집을 보러 다녔고 부모님께서 차곡차곡 모아둔 돈으로 옷과 가구들을 채워나가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 새 입학식 일주일 전이었고 난 혼자 살 준비를 해야한다며 독립을 외쳤지만 부모님의 걱정은 네버엔딩, 절대 사라지지 않는 듯 보였다.
이릴 때부터 같이 지내던 친구놈들은 제 살길 찾아 뿔뿔이 흩어진 마당에 어디서 갑자기 룸메를 구한단 말인가. 그리고 내겐 무엇보다 혼자만의 자유가 간절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기에 솔직히 철없는 생각이지만 기숙사에 떨어진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룸메라니. 다 된 밥에 재뿌리기가 아닌가.
그렇게 입학식 일주일 중 4일 반나절을 꼬박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고스란히 바치고 부모님께선 눈물 아닌 눈물을 흘리시며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자유다!!!!! 자유야!! 역시 스무살은 좋은 거였어!!!!"
그렇게 혼자 새 집에서 보내는 신년을 경축하기 위해 기분이나 낼 겸 캔맥주라도 사서 마실까 싶어 편의점으로 향했다.
두 달 전, 부모님께 술을 배운답시고 첫술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도수 4.3 캔맥주 두모금을 못 견디고 쓰러져 부모님의 걱정은 배가 되었다.
술에는 완전 잼병인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도 어른인데, 술냄새라도 맡자 싶어 맥주를 사러 갔다.
근데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먹고 싶은 걸 집히는 대로 다 사다보니 결국 안주만 2만원어치를 샀더라지. 뭐 어때 간섭할 사람 아무도 없는 걸.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다보니 순식간에 아파트 앞에 다다랐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3층을 누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니 금세 띠링-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약간의 고소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이 있던 난 부동산 아저씨의 추천을 무시하고 3층을 선택했다. 자꾸 9층이 좋다는데 들어보니 별 좋은 것도 없드만.
암튼 복도형 아파트라 한집한집이 길게 가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우리집은 복도 맨 끝에 위치한 집이다. 정겨운 우리집~
비상등이 하나둘씩 켜지며 우리집에 다가와가는데.. 검은색 저거.. 다왔는데.. 뭐지?
"저.. 뭐.. 누구세요?"
우리집 앞에 왠 낯선 남자가 떡하니 서있었다. 아니, 왜 우리집 앞에 서있지? 정확히 말하자면 복도 벽에 기대 무심히 창 밖을 보는 것 같았다.
뭐지? 여긴 분명 우리집인데? 잘못 찾아온건가 싶어 현관문을 보니 309호, 틀림없는 우리집이다.
근데 저 남자, 내가 온게 마침 잘 됬다는 듯 입가엔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주황색 비상등에 비친 웃는 모습이 꽤나 무서웠다. 피부는 왜 저래 하안겨. 설마.. 귀신?
"저.. 누구시냐니까요.."
매서운 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겨울, 안주만 2만원어치가 담긴 CU 글자가 크게 박혀있는 무거운 비닐봉투를 들고 있는 나와 창백한 피부의 낯선 남자. 이상해 무섭다고.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우리집 앞에 서있는 모습이 너무 당당해보였기에 용기내어 누구냐 다시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턱으로 현관문 앞 박스를 가르켰다.
그러고보니 저 남자에게 정신이 팔려 저 박스를 발견조차 못했다. 조금이라도 남자와 가까워질까 무서워 발로 박스를 내 쪽으로 밀고 안을 들여다 보는데..
[TO. 내 딸 김탄소에게그
탄소야 아무래도 엄마가 걱정이 되서 못참겠다. 이 험한 세상에 혼자 사는 건 진짜 좀 아닌 것 같지 않니 딸아?
래서 엄마가 깜짝 선물을 준비했어. 너도 아마 맘에 들어할거야. 귀엽지? 니가 어릴 때부터 키우고 싶다고 조르고 조르던 러시안블루.
엄마가 분양받느라 애 좀 먹었지. 깜짝 놀랬을 모습 보고싶었는데 아쉽다. 암튼 잘 키워봐. 들어보니까 러시안블루가 고양이인데도 강아지처럼 말도 잘 듣는다더라.
귀차니즘 성격도 고칠 겸 잘해보렴. 엄마는 우리딸 믿는다. 그럼 다음 달에 보자! 안녕~]
"...엄마가..?"
아니 그럼 박스에 고양이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박스엔 민트색 하트 쿠션과 편지만이 덩그러니 들어있었다.
아니 고양이는 어디가고 없고 저 남자는 또 뭐고.. 아, 그럼 저 남자가 전주인인가? 아무래도 그런 거 같다.
새주인에게 이것저것 말해줄 것도 많고 기다리다 내가 안오니까 고양이가 추울까봐 고양이를 차 안에 두었다던가, 몰라 암튼 그렇겠지..?
"저기.. 그럼 고양이는 어디에.. 있나..요?"
"...."
"전주인..이신 것 같은데.."
"...."
"고양이는 뭘 주면.. 좋아하나요? 제가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지라.."
"...."
"추,추우실텐데 잠시 들어오실래요? 고양이도 같이 볼겸.."
"...."
마치 죄지은 강아지마냥 눈치를 살살 보며 말을 건네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내 모습이 뭐가 그리 우스운지 결국 남자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난 진지하다고요.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남자는 갑자기 정색하며 기대고 있던 등을 떼고 내게 다가왔다. 엄마야 살려줘..
엄습해오는 두려움에 편의점 봉투를 들고 있던 팔을 올려 눈을 질끈 감고 얼굴을 막는데 남자는 그런 내 오른손을 무심하게 툭 치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어려보이는데 꼴에 술도 마시나보네. 참고로 난 술 싫어합니다."
"네?"
뭐야, 이 술 취한 말투는. 설마 술 취해서 집을 잘못 찾아온거야?
"악수."
"...예?"
"잘 부탁해."
"....."
"주인."
암호닉, 신알신, 추천 모두 대환영합니다.
대체 누가 누굴 키우는 건지, 주인을 이겨 먹는 재미로 사는 반인반묘 민윤기
동거,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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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써오던 아홉수 정리하고 새 글로 찾아왔어요. 독자님들 갑자기 신알신 울려 놀라셨죠?
너무 늦게 찾아봬서 죄송합니다ㅠㅠ 이 글은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약속드려요ㅠㅠ 사랑해요 독자님들..ㅠㅠ 암호닉은 다시 신청해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