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사, 동정
"찬아, 너 저번에 시계 갖고 싶다고 했지?" "네, 설마 샀어요?" 찬이는 놀란 표정을 하고 날 쳐다봤다. 한 달동안 단기알바를 해서 찬이에게 시계를 선물해주니 너무 뿌듯했다. 찬이에게 시계가 있는 선물상자를 건네주니 찬이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고맙다며 내 볼에 살짝 뽀뽀했다. "이름 누나, 진짜 고마워요. 이렇게 비싼건 또 언제 샀어요." 눈썹을 팔자로 만들다가 신이 난건지 웃으며 시계를 금방 손목에 찼다. 나는 그런 찬이가 귀여워 흐뭇한 미소로 쳐다봤다. 찬이는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나를 꽈악 껴안았다. "누나 사랑해요, 진짜." 갑자기 껴안는 바람에 내 두 팔이 어정쩡한 위치에 놓였지만 금세 팔을 밖으로 빼 찬이의 등을 토닥였다. 나도 우리 찬이 사랑해. **** 오랜만에 찬이를 깜짝 놀래켜주려 집 앞으로 찾아갔다. 시계를 보니 이때쯤이면 찬이가 하교 야자를 끝내 집으로 올 시간이 되었다. 집 앞 공원에서 기다리는 중 찬이를 봤다. 사실은 찬이말고 그 옆에 같은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도 봐버렸다. 둘 만의 세상인듯 행복하게 웃고 서로 장난치고 있었다. "이찬!" 나는 바로 달려가서 찬이를 불러냈다. 찬이는 여자애에게 다정한 말투로 먼저 가라고 보내고 날 경멸스럽다는 눈빛으로 봤다, 손목에는 내가 준 시계를 차고서. "분위기 파악 좀 하시지." "너 나 사랑한다며, 그리고 나도 너 사랑하고." 난 어쩌면 나는 원래 이 일이 일어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몇 주 번부터 계속 울리는 휴대폰을 너는 걱정 많은 엄마라고만 했었지. 하지만 불안감에 나는 널 돈으로라도 붙잡을 수 밖에 없었어. "본 건 어쩔 수 없네요, 헤어져요." "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더 좋은 것도 줄게. 제발 나 떠나지마." 조금씩 눈물이 고여 시야가 흐릿했지만 왜 찬이의 차가운 눈빛만은 뚜렷하게 보이는 걸까. 찬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에게 아무런 행동과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헛웃음만 짓고 내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기만 했을뿐. "동정, 내가 누나 만난 이유는 누나가 불쌍해서야." "찬아, 난 아직도 너 사랑해." 눈물이 찬이의 얼굴을 가렸다. 지금이라도, 찬이의 매서운 시선이라도 내 뇌에 담아두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 한다. 나는 손으로 눈가를 마구 비볐다. "돈도 이제 질렸어. 나는 성이름 널 만날 이유가 더 이상은 없다고." 찬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덥석 잡았다. 내가 더 잘할게. 항상 선물 주고 더 이뻐해줄 수 있어. "시발, 이쯤이면 그만하지?" 내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찬이는 주머니에서 은색 반지를 꺼냈다. 은색 반지, 찬이가 처음으로 맞추자고 했던 커플링이고 처음으로 내가 찬이에게 준 선물이다. 찬이는 그 은색 반지를 아스팔트 도로 위로 던졌다. 팅, 소리와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 이제 간다." 찬이는 그렇게 나를 스쳐 가버렸다. 난 그 자리에서 소리내어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한 밤에 나만이 혼자 울고 있었다.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도로로 걸어나가 찬이가 버렸던 반지를 주웠다. "이찬, 넌 사람이 어떻게 그래." 도로와 부딪혀 까진 반지를 손가락으로 쓰담았다. 찬이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아 내 손에 꼬옥 쥐었다. 눈을 감고 도로 위에 서 있자 그동안 찬이와 했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 일까. 어디서부터 넌 거짓이었던걸까. 눈물만 흘리며 찬이를 머릿 속으로 계속 떠올리던 중, 묵직한 경적소리와 함께 나는 찬이의 얼굴을 머릿 속에서 볼 수 없었다.
더보기 |
처음입니다 짧아도 잘부탁드려요 |